LOGIN문 안 쪽에 남아 있던 ‘가짜 수민’,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생명 없는 눈빛을 가진 여자가 갑자기 몸을 날렸다.그 움직임은 훈련된 사람의 그것이었다.흑거미 조직이 오랫동안 써온 방식,‘상대의 가장 약한 심장을 찌르기 위한 얼굴 도용’그 심리전 기술의 산물이었다.그 여자는 처음부터 수민의 모습을 한 대역 요원이었고,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향하는 목표는 수민이 아니라 수진이었다.강혁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수진, 비켜!”그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뛰어들어 수진과 진짜 수민 사이를 막았다.몸으로 충격을 받아내며 대역의 팔을 잡아 눌렀고, 낮게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흑거미의 지시냐. 아직도 사람의 얼굴을 쓰는 짓을 하네.”그 말에 수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녀는 그제야 현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지금 눈앞에 있는 두 사람 비틀거리는 언니, 그리고 언니의 얼굴을 그대로 가진 대역 요원.둘의 체온이 달랐다.숨 고르는 방식도 달랐다.눈동자 안에 담긴 빛이 완전히 달랐다.대역 요원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임무 실패. 대상 확보 우선.”그녀는 손에 숨겨둔 얇은 금속 조각을 꺼냈다.칼날처럼 날카로웠고,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는 은색 조각이었다.흑거미 조직 특유의 방식소리도 남지 않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 근거리용 암기.그 순간 수진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그녀는 언니를 뒤로 밀치며 앞으로 나갔다.숨소리가 뜨겁게 목을 타고 올라오고, 손끝이 자신도 모르게 굳었다.“언니 건들지 마.”말은 작았는데, 대역은 그 말에 움직임을 멈췄다.수진의 눈빛 속에서 자신을 키워낸 조직의 흔적흑거미가 만든 어린 늑대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수민은 그런 동생을 붙잡으려고 했지만손끝이 약했고, 한 걸음 내딛는 데도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그녀는 오래 숨어 다녔고, 몇 번이고 붙잡힐 뻔했고,지금은 몸 하나 간신히 지탱할 만큼 지쳐 있었다.“수진아, 안 돼… 애초에 저 사람은 너를…”“알아, 언니.”수진이 말했다.목소
순간이었다.칼도 총도 보이지 않았지만,그 여자의 움직임은 분명 살의를 품은 속도였다.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아주 얇게 찢어졌고,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방 안에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강혁.그는 반사적으로 수진의 팔을 낚아채 끌어당겼다.수진의 몸이 뒤로 휘청이며 강혁의 품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그녀의 코끝에 섞여 들어온 건 강혁의 숨 냄새, 긴장한 심박, 그리고 폭풍 몰아치기 직전 같은 공기의 떨림이었다.“붙어 있어!”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지만,그 안에는 뼈까지 차갑게 식어버린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그 두려움은 ‘수진을 잃을까 봐’ 생긴 것이었다.하지만 수진은 그 순간조차 눈앞의 여자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그 얼굴이 너무나, 너무나 언니 수민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언니… 언니 맞아…?”그 속삭임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얇았다.그러나 그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한 번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암살자의 눈빛으로.그 눈빛은 수민의 것이 아니었다.그 어떤 온기도 없었다.그저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에 가까웠다.강혁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그는 수진을 벽 쪽으로 밀어 보호한 뒤 그 여자를 향해 몸을 낮게 틀었다.“너… 누구야.”강혁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갈렸다.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딱딱 끊긴 움직임. 마치… 감정을 모방하는 훈련된 그림자처럼.그리고 그녀는 입술을 열었다.언니 수민의 음색과 너무 닮았지만, 정작 그 말의 온도는 한겨울 얼음 같았다.“…임무.”단 하나의 단어. 그 단어만으로 수진의 심장이 뚝 떨어졌다.“임무…?”수진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말했다.“너… 네가 누구길래… 언니 얼굴을 하고…”여자는 천천히, 아주 완벽한 각도로 미소를 지었다.그 미소는 인간의 표정이었지만, 인간의 감정은 없었다.“…흑거미의 명령.”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수진의 전신이 차가운 전율에 눌렸다.흑거미.여진이 방금 전 말하던 그 이
어둠이 흔들렸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에서는 오래된 먼지와 눅눅한 냄새가 섞여 있었지만, 그 속에 자리한 한 사람의 숨결은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든 여진의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는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면서도, 세상에 다시 나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수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숨이 멈춘 듯한 순간이었고, 손끝이 떨렸다.“…여진… 너… 어떻게…”여진은 대답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대신, 몸을 앞으로 조금 움직이는 순간에 무너질 듯한 흔들림이 전해졌다.그녀는 말 그대로 ‘탈출한’ 것이 아니라, ‘갇힌 채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강혁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그의 눈빛은 경계와 충격, 그리고 믿기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혼란이 한꺼번에 엉켜 있었다.“여진, 들려? 여기서 나가야 해. 천천히 숨 쉬고”여진의 시선이 천천히 강혁을 향했다.그녀의 눈동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공포도, 분노도 아니었다.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아주 작은 반응.“…강…혁… 씨…”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약해서 마치 귀에 닿기도 전에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은 그 한 단어에 숨을 멈췄다.수진이 한 발 다가가며 낮게 물었다.“여진아, 누구한테… 누구한테 이런 걸 당한 거야? 너 여기 왜 있는 거야?”여진의 시선이 수진에게 옮겨갔다.어둠 속에서도 그녀는 수진의 실루엣을 알아보는 듯했다.그리고… 수진을 보자마자, 여진의 숨이 갑자기 고르지 못하게 흔들렸다.두려움과 안도, 혼란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한 표정.“…너… 진짜… 살아… 있었네…”수진의 눈썹이 떨렸다.그 말은, 마치 ‘여진 자신이 죽은 상태로 처리됐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음색이었다.강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나중에 이야기해도 돼. 지금은 네 몸이 먼저야. 이 공간 오래 있었지? 상태가”하지만 그때 여진은 그의 손을 피하며 벽 쪽
해남의 모든 불빛이 뒤로 멀어질 때, 차 안의 공기는 조금씩 굳어 갔다. 이 차의 목적지가 단순한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 그들이 향하는 곳이 ‘누군가의 마지막 발자국이 닿은 자리’라는 사실이, 두 사람의 호흡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창밖의 어둠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 속에 깜빡이는 도로표지판은 마치 시간을 찢어내며 지나가는 작은 흉터처럼 보였다.수진은 조용히 허리를 세우고 창밖을 바라보는 강혁의 옆모습을 살폈다. 그는 침묵에 잠겨 있었고, 그 침묵은 방어가 아니라 깊이 간직한 자책으로 보였다. 여진의 마지막 음성이 그의 마음 어딘가를 가르는 듯했고, 그녀가 남긴 단어 하나하나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여진 씨는… 강혁 씨가 움직일 거라는 걸 알았을 거예요.”수진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강혁은 짧은 숨으로 대답했다.“…그 아이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알았지.”그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수진을 바라봤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흔들림은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니라, 깊게 배어 있는 감정의 흔적이었다.“내가 지켜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마지막까지 나를”“지켜준 게 아니라,” 수진이 부드럽게 잘랐다. “남긴 거예요. 무너뜨릴 게 아니라, 움직이도록 만든 거죠. 여진 씨는 항상 당신에 대한 감정이… 참 서툴렀잖아요.”그 말은 잔혹하지만 진실이었다.여진은 사랑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지키려는 방식도 삐뚤어져 있었다.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택한 행동만큼은 단 하나였다.강혁이 조용히 핸들을 감았다.달리는 차가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서울까지 바로 들어가지는 못할 수도 있어요.”수진이 말했다.“폐병원 주변에 배신구 쪽 감시가 붙어있을 확률이 높아요. 임시 시설이라면 누군가 살아있다는 뜻이니까.”“…여진.”강혁은 그 이름을 입술 안쪽에서 한 번 굴렸다.그리고 겨우 내뱉었다.“그 아이를 찾고 나면… 넌 어떻게 할 거야?”수진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창밖을 스치는 어둠을 따라 시선을 길게 빼앗긴 뒤, 아주
여진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배 안의 온도가 한 계단 떨어진 듯했다. 그 목소리는 생기라 부를 만한 기운이 거의 사라져 있었고, 말끝이 닿기도 전에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숨을 들이쉬는 음성 사이로 스치는 기침, 바람인지 실내 기류인지 알 수 없는 잡음이 희미하게 섞였고,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잔혹한 사실을 암시했다.그리고 이어진 문장.“…그 사람… 강혁 씨… 아니야…”그 말이 끝나기 전에 강혁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수진은 숨을 억누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 여진이 마지막으로 남겨둔 흔적일지 모르는 음성.노이즈가 한 번 크게 튀었다.그리고.“…배신… 구… 조심해요…”툭. 메시지는 거기서 끊겼다.짧았다. 하지만 충분했다.강혁의 표정은 굳어졌고, 수진의 눈빛은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그들은 동시에 결론을 알고 있었다. 여진은 아직 살아 있다. 아니면 살아 있는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어떤 쪽이든, 그녀가 이런 방식으로 메시지를 남겼다는 것 자체가 배신구의 손 아래 있다는 증거였다.강혁이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굳는 걸 보고 수진이 조용히 말했다.“흔적을… 끊어놓지 않았네요.”강혁의 목소리는 낮고 섬세하게 갈라졌다.“그 아이… 마지막에 눈 떴을 때도 나한테 말하지 못했던 걸, 지금에서야…”그는 더 이어 말하려 했지만, 숨만 짧게 토해냈다. 여진이라는 존재는 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만큼 복잡하고 어긋난 인연이었다. 강혁에게는 ‘지켜주지 못한 사람’이었고, 수진에게는 ‘질투와 위협의 대상’이었으며, 결국엔 같은 적을 향해 몰려가는 비극의 그림자였다.수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그래서,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가 더 명확해졌네요.”그녀는 메모지와 여진의 음성, 그리고 배 안의 향기까지 모든 조각을 정확히 조립하며 이어갔다.“배신구는 당신을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해요.
해남의 밤거리는 낮보다 더 적막했다. 가로등 아래로 부서지는 빛이 바람에 흔들리며 도로 위에 얼음처럼 굳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폐선된 작은 슈퍼 앞 고양이가 두 사람을 한 번 흘끗 보다가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이 마을이 가진 모든 소리는 파도와 바람이 가져가는 것이었고, 이제는 이 두 사람의 발자국마저 그 어둠 속에 천천히 삼켜지고 있었다. 수진은 꽃집에서 나와 도로에 발을 디딘 순간, 마치 오래 숨막히던 곳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깊게 숨을 들이켰다. “한기가 더 심해졌네요.” 그녀가 말하자 강혁은 고개를 들었다. “겨울 끝이니까. 이런 날씨가 제일 기분 나쁜 일들을 데리고 오지.” 수진은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보통 사람들에겐 그냥 투정일 수 있었지만, 이 둘에게는 너무 익숙한 경고 같았다. “일단 항구로 가자.” 강혁이 말했다. “집은 위험하고,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어디선가 우리가 결정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수진은 대답 대신 짧게 그의 옆을 걸었다. 발걸음이 아주 조금 빠르고, 손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항구로 가면… 당신 배는 안전해요?” 강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 “확신은 없어. 하지만 지금은 거기뿐이다. 사람들이 덜 드나드는 곳, 그리고 내가 감각을 잃지 않고 버텨온 곳.” 수진은 그 대답을 듣고 시선을 잠시 내려 깔았다. 그 말 속에 묘하게 씁쓸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홀로 견뎌온 날들의 잔향 같았다. “강혁 씨.” 수진이 조용히 불렀다. “응.” “나는… 언니 잃고, 연변 떠나고, 한국 오기까지… 한 번도 ‘내 편이 있는 게 어떤 건지’를 몰랐어요.” 강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 수진은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이어 말했다. “근데 지금은… 나한테 강혁 씨가 있어요. 그게… 낯설어서 그래요.”그녀는 끝내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말이 길어지면 감정이 드러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