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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 수업

Penulis: 데이지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3-10 14:59:09

새벽 여섯 시. 침대 머리맡의 스피커가 울렸다.

금속성의 벨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상. 훈련생 전원은 5분 내 1층 집합.”

창문 밖은 아직 어둡고,  공기에는 먼지와 탄내가 섞여 있었다.

수진은 몸을 일으키며 이불 끝을 움켜쥐었다.

방 안은 적막했지만, 바닥 밑에서 들려오는 진동이 공간을 미세하게 흔들고 있었다.

어제 밤 새벽 내내 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은 인간의 웃음이 아니었다.

언니 수민이 무릎을 꿇은 채 양말을 신었다.

“빨리 움직이자. 늦으면 맞는다.”

수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자 차가운 냉기가 밀려들었다.

긴 복도 끝에는 붉은 네온 불빛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줄지어 서 있었다.

남녀의 구분도, 나이의 차이도 희미했다.

모두 똑같은 회색 옷, 검은 머리, 그리고 말이 없었다.

흑거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발소리는 힐이 아닌 군화의 소리를 닮아 있었다.

“좋은 아침이네, 애들.”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목소리의 기술’을 배운다. 네가 가진 건 그거 하나뿐이니까.”

그녀가 손짓하자 조교들이 전화기와 헤드셋이 달린 기계를 책상마다 놓기 시작했다.

벽에는 스피커가 달려 있었고, 그 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목소리로 움직이지 않는 마음은 없다.”

“이게 오늘 교실이다.”

그녀는 수민의 눈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누구든 처음엔 거짓말을 못한다. 하지만 굶어보면 배운다.

살기 위해선 진심을 버려야 한다.”

조교가 수진 앞에 헤드셋을 씌워주었다.

귀에 밀착된 차가운 금속 감촉이 낯설었다.

그녀는 작게 숨을 삼켰다. 

옆자리 아이가 말했다.

“오늘 첫 수업이래. 목소리 평가부터 한대.”

“목소리… 평가?”

“응. 얼마나 믿기 쉬운가, 얼마나 따뜻한가, 얼마나 돈 냄새가 나는가.”

앞에 서 있던 여교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좋아. 각자 자기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수진의 귀에 자기 목소리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평소의 수진과는 달랐다.

어제 배운 발음 교정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더 맑고 낮게 들렸다.

그녀는 그 목소리에 낯선 매혹을 느꼈다.

자신이 만든 가짜가 진짜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좋아, 다음.”

수민의 차례가 되었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그녀의 음성은 부드럽지만 단단했다.

그러나 흑거미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착하네. 그게 문제야. 사람은 착한 목소리를 믿지 않는다.”

“왜요?”

“착한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하니까.”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고객이 듣고 싶은 건 ‘안심’이지, ‘진실’이 아니야.”

수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수진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묘하게 저려왔다.

자신의 언니가 점점 이곳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박혀들었다.

‘고객이 듣고 싶은 건 안심이다.’

‘진심은 약점이다.’

훈련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전화기의 벨이 울릴 때마다 아이들은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고객님, 저희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입니다.”

“계좌가 위험합니다.”

“지금 바로 안전계좌로 이체하세요.”

거짓말은 명령이었다.

진실을 말하면 밥을 빼앗겼다.

수진은 그 규칙을 너무 빨리 익혔다.

밤이 찾아왔다.

건물 전체가 잠들었지만, 몇몇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수민은 조용히 문을 열고 복도를 나섰다.

벽을 따라 걸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대로 있으면, 우리 끝난다.”

문득,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

수민은 놀라서 몸을 돌렸다.

흑거미가 어둠 속에서 담배 불빛을 켰다.

“도망치려는 거야?”

“그냥… 바람 좀 쐬려고요.”

“바람?”

그녀가 다가왔다. 구두 굽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여기서 나가는 순간, 넌 죽는다.”

“여긴 감옥이에요.”

“아니, 여긴 기회야.”

“무슨 기회요?”

“세상을 속이는 법을 배울 기회.

진짜 세상은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해.”

흑거미는 손을 뻗어 수민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넌 머리가 좋아. 하지만 네 동생처럼은 못 돼.

그 애는 목소리에 ‘진심 없는 따뜻함’이 있어. 그게 세상을 움직이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내일은 첫 실전이야. 준비해.”

수민은 벽에 손을 짚었다. 손끝이 떨렸다.

‘내 동생을 이용할 생각이야…’

다음 날, 교실엔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조교가 말했다.

“오늘은 실제로 전화를 건다.

스크립트는 정해져 있다. 실수하지 마라.”

화면에 숫자 하나가 표시됐다.

‘한국 국번.’

수진은 잠시 망설였다.

“이건… 한국 번호라니?”

“그래. 한국 사람들은 돈이 많거든.”

조교의 냉소가 이어졌다.

“여기서 성공하면, 내일 밥 두 번 준다.”

수진은 헤드셋을 쓰고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린 후,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그녀는 숨을 죽였다가,

“고객님, 은행 보안팀입니다. 

본인 확인을 위해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남자의 말투는 약간 불안했다.

“무슨 일인가요?”

“최근 해외결제가 발생했습니다. 

혹시 본인 사용이 맞으신가요?”

그녀는 스크립트를 그대로 읽었지만,

자기 목소리가 점점 진짜 같아지는 걸 느꼈다.

뒤에서 흑거미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수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좋아. 그 목소리야. 믿음을 주면서, 의심을 심는 목소리.”

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잊었다.

그저 상대의 불안한 숨소리만 들렸다.

“고객님, 안심하세요. 저희가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통화가 끊어지자, 흑거미가 천천히 박수를 쳤다.

“첫 수업 합격. 린자오밍, 네 목소리는 이미 완성됐어.”

수민이 옆자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동생의 얼굴엔 미묘한 기쁨이 떠 있었다.

그 미소가 낯설었다.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수진아, 네가 무너지고 있다…”

밤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지만, 수진만은 눈을 감지 못했다.

전화기의 수화기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문장은 이제 입버릇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 위엔 작은 균열이 있었다.

그 틈으로 바람이 스며들어왔다.

그 바람이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 같았다.

“살기 위해선 진실을 버려야 해.”

그녀는 이불을 덮으며 속삭였다.

“언니… 나 이제 잘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순간, 언니는 복도 끝에서 홀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대신 비가 내리고, 불빛은 꺼져 있었다.

수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 동생이… 점점 저 여자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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