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사흘 뒤, 신지완은 어렵게 손에 넣은 초청장 한 장을 받았다.
초청장에 적힌 장소는 고위 관료들의 사적인 연회장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관리.
그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신지완이 찾아 헤매던 장부 조각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연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회를 잡아야 했다.
연회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지완?”
술잔을 들고 있던 김경란이 그녀를 발견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화려한 옷차림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누구를 만나러 왔소?”
신지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손님을 모시는 것이 제 일입니다.”
“그 손님이 고 시랑이오?”
그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완이 좋아졌군.”
신지완의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움켜쥐어졌다.
“장원랑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그녀가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연회장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위 관료들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신지완은 이 자리에 어렵게 들어온 만큼 섣불리 물러설 수 없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고 대인, 소녀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허허, 신 아가씨가 직접 술을 권하다니 영광이오!”
한 사람이 잔을 비우자 다른 사람이 곧바로 술을 따랐다.
신지완은 거절하지 못하고 연이어 술잔을 기울였다.
때로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웃음을 이끌어 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경란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삼 년 전, 자신 앞에서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던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다른 사내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술을 따르고 있었다.
잔을 들 때마다 드러나는 가느다란 손목, 상대의 말에 맞춰 올라가는 입꼬리까지.
김경란은 손에 쥔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쨍!
맑은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거두었지만, 눈길은 어느새 다시 신지완에게 향해 있었다.
그때 고태겸이 다가왔다.
그는 신지완의 손등을 잡고 술잔을 내밀었다.
“신 아가씨, 내게도 한 잔 받으시오.”
신지완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고태겸은 이 연회를 주최한 고위 관료였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망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결국 술잔을 받아 들었다.
“고 시랑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잔을 기울이는 그녀를 바라보던 김경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신지완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며 손을 빼려 했지만, 고태겸은 오히려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신 아가씨, 한 잔 더 하시지요.”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신지완은 마지못해 잔을 받아 입술에 댔다.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낯선 쓴맛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잘못 마셨다.
술잔을 내려놓은 뒤에도 손끝이 저릿했다.
잠시 후 얼굴이 뜨거워지고 숨이 가빠졌다. 눈앞의 풍경마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지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술에 약이 들어 있었다.
“고 시랑, 소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무릎이 휘청거렸다.
고태겸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벌써 취했소? 내가 부축해 주리다.”
그의 손이 팔에서 허리로 내려오려는 순간, 신지완은 남은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손 놓으십시오.”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경란의 눈에 마침내 살기가 어렸다.
신지완이 팔을 빼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고 시랑께서는 기녀 하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실 만큼 한가하십니까?”
김경란이었다.
고태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
“김 장원, 이 여인은 그대와 무슨 관계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김경란은 신지완을 한 번 쳐다보았다.
“다만 취객에게 매달린 기녀를 보면 안쓰러워서 말입니다. 내일 아침 조정에 나가셔야 할 분이 이런 추문에 휘말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고태겸의 손이 느슨해졌다.
신지완은 그 틈을 타 몸을 빼냈다.
“소녀가 술을 과하게 마신 모양입니다.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시야가 흔들렸다.
벽을 짚어도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지완!”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김경란이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아무것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김경란이 재빨리 그녀를 받아 안았다. 뜨거운 이마가 그의 가슴에 닿았다.
“신지완, 정신 차리시오.”
그녀는 대답 대신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조차 흐릿했다.
그저 익숙한 체온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경란…….”
삼 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경란의 몸이 굳었다.
그는 그녀를 안아 들고 가까운 빈방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자 바깥의 소음이 멀어졌다.
신지완은 흐릿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지 마…….”
김경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의 손이 그의 소매를 놓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 두 사람의 숨결이 가까워졌다.
이튿날 아침, 신지완이 눈을 떴을 때 곁에 있던 사내는 이미 떠난 뒤였다.침상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지난밤의 모든 일이 한바탕 꿈에 불과했던 것처럼,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신지완은 한동안 빈자리를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가슴 한구석이 알 수 없이 허전했다.그때였다.쾅!문이 거칠게 걷어차이며 열렸다.“신지완! 당장 나오너라!”시녀들이 놀라 물러섰다. 신지완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뒤 천천히 일어섰다.“고 아가씨께서 어쩐 일이십니까?”고명주는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녀는 방 안을 샅샅이 훑더니 곧장 침상으로 다가가 이불을 걷어 던졌다.“분명 여기 있었을 텐데!”베개를 뒤집고 요까지 들춰 보았지만, 다른 사람이 머물렀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침상이 지나치게 말끔한 탓에 오히려 그녀의 의심은 깊어졌다.“좋아. 흔적이 없다면 직접 확인하면 될 것 아니야!”고명주는 곁에 서 있던 노마님을 돌아보았다.“당장 신지완의 몸을 살펴봐요!”노마님이 난처한 기색으로 망설이자, 고명주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못 들었어요? 어젯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어요!”그녀가 손을 내젓자 하인들이 곧장 신지완에게 달려들었다.“무슨 짓입니까!”신지완이 물러서기도 전에 양팔이 붙들렸다.하인들은 그녀의 저항을 무시한 채 옷자락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옷깃이 흐트러지고 희고 고운 살결이 드러났다.수치심에 얼굴이 굳었지만, 신지완은 이를 악물었다. 기녀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함부로 짓밟혀야 한다는 사실이 뼈아팠다.고명주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밤을 함께 보낸 흔적이라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이럴 리가 없어…….”고명주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신지완은 하인들의 손을 뿌리치고 흐트러진 옷깃을 여몄다. 모욕을 당한 사람은 자신인데, 정작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추궁당
“상처부터 치료해야겠소.”김경란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신지완을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방에 들어서자 하인이 급히 약상자를 가져왔다.신지완은 김경란의 옷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었다.피가 밴 천 아래로 붉은 상처가 드러났다.“조금만 참으십시오.”그녀가 상처를 씻고 약을 바르자 김경란의 미간이 좁혀졌다.“아프십니까?”김경란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걸었다.“그대가 그때 혼서를 찢었을 때만큼은 아니오.”신지완의 손이 멈췄다.김경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선을 돌렸다. 마치 방금 내뱉은 말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씻을 물을 준비하라.”하인이 물러난 뒤,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몸에 묻은 피를 씻어 내기 위해 병풍 양쪽에 각각 물을 준비했다.김경란은 먼저 안쪽으로 들어갔고, 신지완은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얇은 병풍 하나만 놓여 있었다.병풍 너머로 물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병풍 위에 어렴풋이 드리웠다.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지만, 끝내 서로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마치 지금의 두 사람처럼.분명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이미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린 두 사람.한때는 서로를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얇은 병풍 하나조차 넘어설 수 없었다.신지완은 젖은 소매를 걷으며 눈을 감았다.삼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밤이 있었다.그때는 비를 맞고 돌아온 김경란이 감기에 걸렸었다.그녀는 밤새 그의 곁을 지켰고, 그는 잠결에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지완아.”병풍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신지완의 가슴이 내려앉았다.그는 삼 년 동안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예?”잠시 침묵이 흘렀다.“아무것도 아니오.”그녀는 젖은 손을 움켜쥐었다.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예전처럼, 그가 자신을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고.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먼저 씻기를 마친 신지완은 조용히 병풍 밖으로 나왔다.“장원랑, 소녀는
마차가 움직이자 김경란은 약병을 가리켰다.“발랐소?”신지완은 고개를 끄덕였다.“예.”“거짓말하지 마시오.”그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약병이 그대로 닫혀 있군.”신지완은 할 말을 잃었다.김경란이 한숨을 쉬며 약병을 열었다.“손을 내미시오.”“제가 하겠습니다.”“그럼 진작 했어야지.”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상처 위에 약을 발랐다.좁은 마차 안, 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두 사람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맞닿은 무릎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옷자락 사이로 전해지는 체온에 신지완은 괜히 손끝을 움츠렸다.김경란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랐다.약을 바르려 몸을 조금 숙일 때마다 그의 어깨가 그녀의 어깨에 스쳤다.가까이서 맡아지는 옅은 술 향과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에 신지완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예전에도 그는 늘 이렇게 했다.그녀가 손을 다치면 먼저 약을 찾아 주고, 아프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주었다.가난했던 시절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다.하지만 지금의 김경란은 예전과 달랐다.신지완은 무심코 곁에 앉은 그를 훔쳐보았다.소년 티를 벗은 어깨는 예전보다 훨씬 넓고 단단해져 있었다.좁은 마차 안에서는 그 존재감마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시선이 마주칠까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두 뺨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이러면 안 됐다.삼 년 전, 그를 떠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지금 와서 그의 다정함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됐다.“왜 그렇게까지 했소?”김경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고명주가 그토록 괴롭히는데도 참은 이유가 무엇이오?”신지완은 고개를 숙였다.“제 일입니다.”담담한 말투였지만, 목소리 끝에는 자신도 미처 감추지 못한 미세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정말 그것뿐이오?”그녀는 입술을 달싹였다.사실은 말하고 싶었다.그 옥패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고.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김경란까
김경란은 더는 고명주의 말을 듣지 않고 서탁으로 걸어갔다.“그럼 지난번에 배운 글을 한번 써 보시오.”그는 붓과 종이를 가리키며 고명주에게 눈짓했다.고명주는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마지못해 붓을 들었다.한참을 망설인 끝에 종이 위에 글을 써 내려갔지만, 문장은 배운 내용과 전혀 맞지 않았다.글자마저 삐뚤빼뚤 뒤틀려 있어 연습은커녕 붓을 제대로 잡아 본 적도 없는 듯했다.김경란의 시선이 종이 위에 차갑게 내려앉았다.“붓을 제대로 잡으시오.”그가 뒤에서 손을 잡아 자세를 고쳐 주자 고명주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그녀는 신지완을 흘끗 바라보았다.“신 아가씨, 보셨지요? 김 랑께서는 제 글씨까지 직접 가르쳐 주신답니다.”신지완은 아무 말 없이 거문고를 정리했다.그녀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고명주는 더욱 신이 났다.“김 랑, 그럼 이 글자도 써 볼까요?”김경란은 붓을 내려놓았다.“그 전에 한 가지 해 봅시다.”“무엇이요?”김경란은 종이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를 내려다보더니,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지극히 진지했다.“글씨가 엉망인 건 하체에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뿌리가 땅에 단단히 박혀야 붓끝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지.”그는 고명주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덧붙였다.“그러니 이제부터는 마보 자세로 하체부터 단련하시오.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굽힌 채 버티시오. 그 자세로 글을 쓰는 거요.”고명주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김경란을 바라보았다.“김 랑…… 설마 정말 이 자세로 서서 글을 쓰라는 말씀이세요?”김경란은 마당 한쪽을 가리켰다.“그 자세로 글씨를 쓰시오. 두 시진 동안.”“하지만 김 랑…….”“글씨를 잘 쓰고 싶다 하지 않았소?”그의 말투는 담담했다.“기초부터 익혀야지.”고명주는 거절하지 못했다.결국 그녀는 마당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붓을 들었다.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떨리기 시작했다.“김 랑, 이제 그
황후의 생신 연회를 앞두고 신지완은 고 재상 댁으로 불려 갔다.명목은 귀녀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치는 일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자신을 부른 사람이 고명주라는 것을.“신 아가씨, 드디어 오셨군요.”고명주는 비단 치마를 끌며 다가왔다.“궁중 연회에서 연주할 곡을 익혀야 하니, 오늘은 제대로 가르쳐 주셔야겠어요.”신지완은 예를 갖추었다.“소녀가 아는 만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그럼 이 곡부터 연주해 보세요.”고명주가 악보 한 장을 신지완 앞에 내밀었다.난도가 높은 곡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한순간이라도 박자를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연주해야 했다.신지완은 악보를 내려다본 뒤 말없이 거문고를 안았다.첫 곡이 끝나자 고명주는 느긋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다시.”신지완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현 위에 올렸다.두 번째 연주가 끝났다.“아직 부족해요. 다시.”세 번째, 네 번째.몇 번이나 같은 곡을 반복했는지 알 수 없었다. 손끝은 이미 얼얼했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들었다.고명주는 곁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가롭게 지시했다.“그 부분은 왜 그렇게 느려요? 거문고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 정도 실력밖에 안 되나요?”주변의 규수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낮게 웃었다.신지완은 그들의 비웃음을 못 들은 척했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황후의 생신 연회에 다가갈 기회도 사라질 터였다. 아무리 모욕을 당하더라도 버텨야 했다.“다시 연주하겠습니다.”그녀는 손가락을 구부려 현을 눌렀다.그러나 오랜 연주로 손끝의 살갗이 벗겨진 탓에, 현이 스칠 때마다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손가락이 떨리면서 음이 미세하게 어긋났다.“멈추세요!”고명주가 눈살을 찌푸렸다.“이런 실력으로 황후마마의 생신 연회에서 연주할 생각이었어요? 신 아가씨, 본인의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요?”신지완은 입술을 깨물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
“신지완.”김경란이 낮게 불렀다.“정신을 차리시오. 내가 누군지 알겠소?”신지완은 힘겹게 눈을 떴다.“김경란…….”그의 이름을 부른 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그러면 내 손을 놓으시오.”그녀는 오히려 그의 소매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싫어.”희미한 목소리였다.“이번에는…… 가지 마.”김경란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삼 년 전에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비가 쏟아지던 밤, 두 사람은 처마 밑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그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반드시 과거 시험에 급제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그때 신지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내가 기다릴게.’그 약속을 먼저 저버린 사람은 그녀였다.김경란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그는 그녀를 침상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어 문밖의 하인을 불러 의원을 데려오게 했다.그러나 신지완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경란…….”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미안해.”김경란의 손이 멈췄다.“무엇이 미안하오?”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그의 손등에 얼굴을 기댔다.“그날은…… 정말 가고 싶지 않았어.”김경란은 숨을 멈췄다.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묻고 싶었다.왜 자신을 버렸는지, 왜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는지, 그 모든 것을 지금 당장 듣고 싶었다.하지만 신지완은 이미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답을 얻을 생각은 없소.”그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잠시 뒤 의원이 도착했다.약을 먹고 잠든 신지완의 얼굴을 바라보던 의원이 말했다.“술에 약이 섞였습니다. 다행히 제때 데려오셔서 큰일은 피했습니다.”김경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누가 그 술을 건넸는지 조사해 주시오.”김경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고태겸 같은 고위 관료가 기녀에게 약을 먹일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그 술은 신지완이 아니라 자신에게 건네진 것이었다.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