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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작가: 루바람
last update 게시일: 2026-10-27 15:31:19

황후의 생신 연회를 앞두고 신지완은 고 재상 댁으로 불려 갔다.

명목은 귀녀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부른 사람이 고명주라는 것을.

“신 아가씨, 드디어 오셨군요.”

고명주는 비단 치마를 끌며 다가왔다.

“궁중 연회에서 연주할 곡을 익혀야 하니, 오늘은 제대로 가르쳐 주셔야겠어요.”

신지완은 예를 갖추었다.

“소녀가 아는 만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 곡부터 연주해 보세요.”

고명주가 악보 한 장을 신지완 앞에 내밀었다.

난도가 높은 곡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한순간이라도 박자를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연주해야 했다.

신지완은 악보를 내려다본 뒤 말없이 거문고를 안았다.

첫 곡이 끝나자 고명주는 느긋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시.”

신지완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현 위에 올렸다.

두 번째 연주가 끝났다.

“아직 부족해요. 다시.”

세 번째, 네 번째.

몇 번이나 같은 곡을 반복했는지 알 수 없었다. 손끝은 이미 얼얼했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들었다.

고명주는 곁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가롭게 지시했다.

“그 부분은 왜 그렇게 느려요? 거문고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 정도 실력밖에 안 되나요?”

주변의 규수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낮게 웃었다.

신지완은 그들의 비웃음을 못 들은 척했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황후의 생신 연회에 다가갈 기회도 사라질 터였다. 아무리 모욕을 당하더라도 버텨야 했다.

“다시 연주하겠습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구부려 현을 눌렀다.

그러나 오랜 연주로 손끝의 살갗이 벗겨진 탓에, 현이 스칠 때마다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손가락이 떨리면서 음이 미세하게 어긋났다.

“멈추세요!”

고명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실력으로 황후마마의 생신 연회에서 연주할 생각이었어요? 신 아가씨, 본인의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요?”

신지완은 입술을 깨물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현실이 더 쓰라렸다.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정말 끈질기시네요.”

고명주는 비웃듯 웃었다.

“좋아요. 이번에도 틀리면 오늘은 식사도 잊고 연습해야겠어요.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겠죠?”

신지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거문고를 끌어당겼다.

첫 음이 울리고, 이어서 빠른 선율이 흘러나왔다. 손가락이 현을 누르고 튕길 때마다 상처가 벌어졌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입술은 고통을 참느라 하얗게 질려 갔다.

마침내 마지막 음이 울렸다.

그 순간, 붉은 피 한 방울이 그녀의 손끝에서 떨어져 거문고 위에 번졌다.

그러나 고명주는 그 피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피가 묻었잖아요. 악기를 망칠 셈인가요?”

신지완은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붉게 물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피 묻은 손을 소매 속에 감추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때 문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장원랑께서 오셨습니다!”

신지완의 손가락이 굳었다.

문이 열리고 김경란이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방 안을 한 바퀴 훑다가 곧 신지완의 손에 멈췄다.

피가 맺힌 손끝.

그녀는 황급히 손을 뒤로 감췄지만 이미 늦었다.

김경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명주가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김 랑!”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끼었다.

“제가 궁중 연회를 준비하느라 신 아가씨에게 곡을 배우고 있었어요. ”

김경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신지완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명주가 그의 팔을 흔들었다.

“김 랑, 저…… 거문고를 너무 오래 탔더니 손가락이 아파 죽겠어요. 김 랑께서 제 손에 입김이라도 불어 주시면 안 될까요?”

고명주는 아픈 손끝을 내보이며 김경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지완은 고개를 숙였다.

“소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순간, 고명주의 허리춤에 매달린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옥패였다.

가장자리에 새겨진 구름 모양의 무늬.

신지완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아버지의 유품에 남아 있던 봉랍과 똑같은 문양이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 무례한 행동에 고명주의 시선이 날카롭게 꽂혔다.

신지완의 눈길이 옥패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고명주는 재빨리 옥패를 손에 쥐고 신지완을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신 아가씨, 설마 욕심나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그녀는 옥패를 들어 보인 뒤, 다른 손으로 김경란을 가리켰다.

“이런 물건이나, 이 사람이나…… 신 아가씨가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고명주는 입가에 얄미운 미소를 띠었다.

“분수에 맞게 행동하세요. 감히 넘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더는 고명주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됐다.

신지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앞의 옥패를 외면하자니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단서를 놓칠 것 같았고, 더 다가서자니 의심을 살까 두려웠다.

그러나 김경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 온 건 너희가 거문고 타는 걸 들으러 온 게 아니다.”

그는 고명주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물었다.

“연습하라고 한 글씨는 얼마나 익혔느냐?”

말을 마친 그는 고명주가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자연스럽게 떼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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