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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란은 눈을 내리깔더니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래서 너도 변했니? 연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유하린의 손끝이 순간 뻣뻣해졌다. 그렇다고,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마디하고 싶었다.하지만 아직은 말할 수 없었기에 유하린이 웃었다.“할머니,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세요? 어릴 때부터 이 사람 주위만 맴돌았잖아요.”진연호가 눈을 들어 유하린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아니야.”김송란의 시선이 유하린의 깨끗한 목을 훑었다.예전에 두 사람이 진씨 저택에 묵으면, 이튿날 아침 유하린의 목에는 늘 애매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김송란은 어젯밤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예전에는 김송란이 편을 들어줄 때면 유하린은 반드시 진연호에게 달라붙었다.게다가 김송란이 있으면 진연호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그러나 어젯밤 두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하린이 원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곧 김송란은 더 말하지 않고 두 사람의 침실로 들어가서 곧장 드레스룸으로 향했다.유하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미 늦었다. 부부의 집에 왜 안주인의 옷이 없는지 설명할 핑계를 찾을 수 없었다.곧 김송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연호랑 별거 중이니?”유하린이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자 김송란은 매섭게 물었다.“언제부터야?”이에 유하린은 일단 상황을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을 만큼만 설명했다.“송지윤 씨 아이가 진씨 저택에 와 있는 걸 봤을 때부터요.”그러자 김송란은 한숨을 쉬었다.“역시 속상했던 거구나. 너 성격이 왜 이렇게 변했어? 예전엔 속상하면 그래도 말이라도 했잖아. 지금은 왜 이렇게 숨겨?”유하린은 김송란의 말에 맞춰 입을 열었다.“저도 이제 성장해야 하니까요.”그러자 김송란은 미간을 찌푸렸다.“송지윤 그 여자 일은 걱정 마. 그 애가 연호랑 엮이게 둘 리 없어. 더구나 결혼했고 아이도 있는데, 연호가 그 애를 눈에 들어
하지만 씻을 방법이 없었다.옷가지를 전부 가져가서 드레스룸에는 진연호의 물건만 남아 있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진연호는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화장대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유하린을 보았다. 진연호는 다시 드레스룸에 들어가 자기 셔츠를 하나 가져와서 던졌다.셔츠가 머리를 뒤덮으면서 시야가 가려지자, 유하린은 잠시 어리둥절했다.옅은 소나무 향이 나는 셔츠를 걷어 내고서야 진연호의 뜻을 알았다. 씻고 나서 자기 옷을 입으라는 것이었다.유하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옷을 다시 던졌다.“필요 없어. 좀 더 앉아 있다가 할머님 주무시면 손님방에서 잘 거야.”그러자 진연호가 유하린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할머니가 도우미한테 손님방 전부 잠그라고 했어.”유하린은 깊이 숨을 들이켰다. 두 사람 사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김송란이 일부러 손을 써 둔 모양이었다.하지만 잠자리를 같은 하는 걸 원하는 사람이라면 온갖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자고,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홀딱 벗고 붙어 있어도 토하고 싶은 생각만 들 것이다.지금 유하린에게 있어서 진연호는 후자에 해당됐다.유하린은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고, 씻고 나왔을 때는 그 셔츠를 입고 있었다. 헐렁한 셔츠가 허벅지 위까지 덮으면서 가늘고 균형 잡힌 긴 다리가 드러났다. 오랜 시간 무용으로 몸매는 가볍고 날렵했고 목은 길고 늘씬했다. 일부러 자세를 잡지 않아도 학처럼 늘씬한 기품이 절로 배어났다.침대로 가서 이불을 걷은 뒤 진연호와 멀리 떨어져서 누웠다.손님방에서 잘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유하린은 진연호가 무슨 짓을 할까 두렵지도 않았다.지난번 김송란이 약을 쓴 때를 빼면, 매번 잠자리는 유하린이 먼저 매달리면서 요구했다.유하린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진연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유하린이 등을 돌린 채 휴대폰을 보자, 진연호는 불을 끄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밤에 휴대폰 보면 눈에 안 좋아.”그 말이 우습기만 했다. ‘이게 무슨 같잖은 관심이지? 일부
하지만 지금은 김송란이 의심한다 해도 진연호와 가까이 붙을 수가 없었다.진연호는 담담한 시선으로 유하린을 훑다가,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는 침묵한 채 시선을 거두었다.“할머니, 저희 결혼한 지 4년이에요.”그러자 김송란은 코웃음을 쳤다.“겨우 4년에 식은 거야? 하린이는 아직 젊어서 이런 분위기를 좋아해. 너도 좀 맞출 줄 알아야지. 젊은 남자 찾아서 널 차 버리면 어쩌려고.”그러나 진연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안 그래요.”유하린은 짜증을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할머님, 비가 올 것 같은데 들어가요.”김송란이 하늘을 보니 잔뜩 흐려 있었다.“그래, 올라가자.”엘리베이터에 오를 때 공교롭게도 송지윤을 보았다. 코트 안에 환자복을 입고 손등에 링거 바늘이 남아 있는 걸 보니 막 수액을 맞고 나온 듯했다.김송란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지만, 송지윤이 지금은 쓸모가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까지 혐오하는 태도는 아니었다.“여긴 뭐 하러 왔지?”유하린도 의외였다. ‘벌써 이곳으로 옮겨와서 진연호와 동거하는 걸까?’송지윤도 김송란이 있을 줄은 몰랐는지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러나 유하린은 송지윤의 손에 든 것을 보았는데 부모 참여 행사 신청서였다. 엄마와 아이 칸은 채워져 있는데 아빠 관련 정보만 비어 있었다.목적이 뻔했다. 김송란의 매서운 눈이 그걸 알아차렸는지 차가운 얼굴로 쏘아붙였다.“어느 뜨내기 남자랑 낳은 아이인지도 모르면서! 설마 연호더러 아빠 노릇 하러 같이 가 달라는 거야? 절대 안 돼!”그러자 진연호가 김송란 앞을 막으면서 송지윤을 보고 말했다.“먼저 돌아가.”송지윤은 김송란과 맞서고 싶지 않아서 곧바로 떠났다. 그러자 김송란은 진연호를 보며 추궁했다.“저 애가 왜 널 찾아와? 연호야, 저 애한테 마음 약해지지 마. 항상 기억해. 넌 지금 아내가 있는 사람이야. 일과 결혼은 확실히 구분해야 해.”진연호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 저도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해요.”그러나
김송란은 한의사 집안 출신이었다. 비록 가업을 잇지는 않았지만 맥은 짚을 줄 알았다.맥이 평범하자, 김송란은 조금 실망한 듯 손을 놓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너희 임신 준비는 하고 있지?”진연호가 담담하게 말했다.“하고 있어요.”김송란이 한숨을 쉬었다.“결혼하자마자 준비했으면 지금쯤 애가 유치원에 다니겠어. 넌 다른 건 다 철이 들었는데 이 방면만은... 그리고 그 송지윤 그 애 말이다.”송지윤 이야기가 나오자 김송란은 유하린을 보며 설명했다.“하린아, 딴생각 하지 마. 연호한테 물어봤어. 그 여자랑은 아무것도 없대. 그쪽이 몸이 불편하고 둘이 예전에 오래 알던 사이라 조금 도와준 것뿐이래.”김송란의 표정이 조금 엄숙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게다가 그룹이 요즘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인공지능 프로젝트에서 그 애가 그 방면의 전문가래. 대학 다닐 때부터 국내에서 상을 꽤 받았다고 하고.”“곧 과학기술 전시회거든. 그 애 작품이 충분히 뛰어나서 전시회 투표 1위를 차지한다면, CH그룹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야.”진씨 집안은 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기에 김송란도 이제 송지윤에게 그렇게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일 쪽에서 연호를 도울 수 있으니 네가 이해해 주도록 해라.”유하린은 할 말이 없었다. 김송란이 진연호 편을 드는 것은 예상한 일이었고, 원래 이런 것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이에 유하린은 무심코 말했다.“네. 저는 믿어요.”아주 심플하게 그 말을 뱉자, 진연호는 깊은 눈빛으로 유하린을 한 번 보았다. 김송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식탁 위의 새우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도우미를 흘겨보았다.“새우를 왜 안 까고 그대로 올렸지?”순간 멍해진 도우미의 입에서 머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예전에는 늘 사모님이 직접 대표님께 까 드려서요.”유하린도 이런 일을 즐겨 했고, 진연호에게 까 줄 때마다 신이 났다.그리고 유하린이 떠난 뒤에도 도우미는 이 습관을 고치지 못한 것이다.제법
그러자 김송란이 유하린을 보았다.“하린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똑똑히 말해.”진연호의 시선이 유하린을 향했다. 날카로운 눈썹뼈 아래 살짝 꺼진 눈두덩이, 연못처럼 깊은 눈동자까지.그 눈빛이 무슨 뜻인지 유하린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말했다가는 박서라의 수술 일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암묵적인 협박이었다.이에 유하린은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제가 스스로 그만둔 거예요. 지금은 다른 새 무용단에 들어갔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그렇게 말했음에도 김송란은 이를 악물고 송지윤을 노려보았다.“그래도 이 여자가 우리 진씨 집안이 투자한 곳에서 날뛰는 건 허락 못 해. 연호야, 지금 당장 전화해서 해고해.”송지윤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진연호를 쳐다보자, 남자의 넓은 등이 그 앞을 막아섰다.“이 사람 일은 이미 정해졌어요. 곧 공연이고 명단도 올라갔어요. 사람을 바꿀 수 없어요.”어이가 없는 말에 유하린은 갑자기 냉소가 나왔다.그때 유하린의 명단도 올라가 있었는데, 유하린은 바꿔도 되고 송지윤은 바꾸면 안 되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었다.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또한 집안싸움도 보고 싶지 않았다.“저는 무용단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그러자 김송란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걱정스럽게 유하린을 보았다.“그래, 먼저 가. 여기는 내가 처리할게.”그저 아무렇게나 댄 핑계였다. 한기준의 말대로 무용단에는 아직 아무 활동도 없었다.유하린은 곧장 연구소로 갔다.과학기술 전시회가 코앞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출품작 투표 1위를 차지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연구소에서 바쁘게 지냈다.원래 저녁은 에드 교수와 함께 먹으며 오후의 성과를 이야기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김송란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서 받았더니, 건너편에서 진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가 집에 계셔. 밥 다 됐는데 언제 와?]유하린은 잠시 멈칫하고서야 진연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김송란이 리버골드에 간 것이다.순간 온몸에
김송란은 두 사람의 말에 날이 서 있는 것을 알아챘다. 진연호가 예술센터의 최대 투자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하린이 갑자기 그만뒀다면 진연호가 모를 리 없었다.“대체 무슨 일이야?”진태성이 입을 열었다.“일을 바꿨다고 하지 않았니?”이에 김송란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로 바꿨는데?”그러자 유하린이 설명했다.“예전 선배의 무용단에 투자만 했어요.”김송란은 더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되물었다.“선배라고? 남자야?”유하린은 예전에 사리분별을 잘 했고, 이성과는 먼저 거리를 두었다. 그래서 김송란도 유하린이 온갖 사람이 뒤섞인 곳에서 일하는 것을 안심하고 허락했다.또한 유하린이 진연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그것도 못 가리고 남자와 협력을 한다니 기가 찰 일이었다.“그럼 예술센터 일은?”진연호가 말했다.“할머니, 그런 건 신경 안 쓰셔도 돼요.”“잘렸어요.”유하린이 입을 열었다.그때 문가에 사람이 하나가 나타났다. 바로 송지윤이었다.안에는 환자복을 입고 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는 데다가 얼굴은 조금 창백했다.송지윤은 곧바로 김송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 정말 시간이 급해서 들어와서 이안이를 데려가려고요.”김송란은 송지윤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너!”머리가 돌아가면서 곧 더 놀랐다. ‘송이안이 저 여자의 아이라니.’화가 난 김송란은 단번에 젓가락을 내던졌고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네 아이를 우리 집에 보내서 뭘 하려는 거야! 대체 무슨 속셈이야!”그러다가 잠시 멈췄다가 뭔가 떠올린 듯 화가 치밀었다.“게다가 일부러 네 아이한테 연호를 아빠라고 부르게 했지! 역겹지도 않니?”이를 악물고 순식간에 진연호를 추궁했다.“이 아이가 저 여자 아이라는 걸 알았어?”진연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김송란을 부축했다.“할머니, 일단 진정하세요.”“진정하라고? 네가 저 악독한 여자를 집에 들이고서는 나더러 지금 진정하라고 하는 거냐!”“연호야, 대체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