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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백이십 년 전의 약속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8 15:23:41

“네가 강수혁을 죽이도록 만든 사람이야.”

제니의 얼굴이 굳었다.

“당신이?”

서도겸이 웃었다.

“정확히 말하면 윤재희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거짓말하지 마.”

수혁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재희는 너를 믿지 않았어.”

“마지막에는 믿었지.”

도겸이 제니의 손목을 가리켰다.

“저게 증거야.”

붉은 표식.

제니가 손목을 감쌌다.

“이게 뭔데?”

“약속.”

“무슨 약속?”

“다시 태어나도 강수혁을 만나게 된다면.”

도겸의 붉은 눈이 수혁을 향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끝내겠다는 약속.”

“그만해.”

수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도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았어?”

그가 제니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네 집에 있었는데, 넌 망설이지 않고 정확히 심장을 찔렀잖아.”

제니의 손끝이 굳었다.

그날이 떠올랐다.

수혁을 처음 봤던 순간.

두려웠다.

분명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런데—

칼을 드는 순간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망설임이 없었다.

“그게 이 표식 때문이라고?”

“일부는.”

“일부?”

도겸이 다가오자 수혁이 곧바로 앞을 막았다.

“거기서 말해.”

“아직도 이러네.”

도겸이 피식 웃었다.

“백이십 년 전에도 재희를 네 뒤에 숨겼지.”

수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결국 도망쳤고.”

“입 닥쳐.”

“가두기까지 했잖아.”

제니가 수혁을 바라봤다.

“그건 들었어.”

이번에는 도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것까지 말했어?”

“다 말한 건 아니겠지.”

제니가 수혁을 보며 말했다.

“항상 그러니까.”

수혁은 반박하지 못했다.

제니는 다시 도겸을 바라봤다.

“표식부터 설명해.”

도겸이 벽에 기대었다.

“재희가 죽기 얼마 전 나를 찾아왔어.”

“왜?”

“부탁할 게 있다고.”

“당신한테?”

“강수혁과 관련된 부탁이었지.”

도겸이 천천히 말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자기가 수혁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어.”

제니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하게 해달라고 했지.”

“뭘?”

도겸의 시선이 수혁의 목으로 향했다.

“강수혁을 죽이는 방법.”

제니가 숨을 삼켰다.

익명의 문자.

다음에는 심장이 아니라 목을 노려.

“그 문자를 보낸 게 당신이야?”

도겸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슨 문자?”

제니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피를 주지 말라고 한 것도.”

화면을 보여줬다.

“강수혁을 믿지 말라고 한 것도.”

도겸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그러다 말했다.

“사진과 여기 주소는 내가 보냈어.”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아니야.”

방 안이 조용해졌다.

제니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또 누가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도 궁금하네.”

도겸의 웃음이 사라졌다.

“누가 너희 둘 사이에 끼어들었는지.”

수혁이 제니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처음부터 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제니는 다시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럼 이건?”

“재희가 남긴 장치에 가까워.”

도겸이 말했다.

“너와 강수혁이 다시 만나면 깨어나도록 만든.”

“왜 하필 나야?”

“그건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몰라.”

“정말?”

도겸이 제니를 똑바로 바라봤다.

“윤재희의 기억을 보고 있잖아.”

제니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다고 내가 윤재희라는 뜻은 아니야.”

그 순간 수혁이 말했다.

“맞아.”

제니가 그를 돌아봤다.

수혁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넌 재희가 아니야.”

도겸이 코웃음을 쳤다.

“백이십 년을 기다려놓고 이제 와서?”

“기다린 건 재희였어.”

수혁은 제니를 바라봤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윤제니고.”

제니의 가슴이 순간 내려앉았다.

도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낮게 웃었다.

“그럼 더 재밌어지겠네.”

“뭐가.”

“재희가 남긴 약속을.”

도겸이 제니의 붉은 표식을 가리켰다.

“윤제니가 지킬 필요는 없으니까.”

그 순간.

손목의 표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방 한쪽 벽에서 붉은 선이 번졌다.

제니가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뭐야?”

벽지 아래 감춰져 있던 문양이었다.

제니의 손목과 똑같은 형태.

도겸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이게 왜 아직 남아 있지?”

수혁이 그를 노려봤다.

“뭔데.”

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제니를 바라봤다.

“이상하네.”

“뭐가?”

“이 표식은.”

도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백이십 년 전에 윤재희가 죽으면서 끝났어야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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