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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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르Updated jus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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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니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남자의 심장을 찔러 죽인다. 그러나 그날 밤, 분명 죽었던 강수혁이 상처 하나 없이 다시 찾아온다. 그의 정체는 오랜 세월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살아온 뱀파이어. 죽여도 돌아오고, 도망쳐도 찾아오는 수혁은 복수 대신 제니에게 집착한다. 매일 밤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제니는 자신이 그를 죽인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을 죽인 여자에게 사로잡힌 뱀파이어와 죽였던 남자에게 흔들리는 여자의 위험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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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01: 분명 내가 죽였다

사람을 죽이면 손끝에 감각이 남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밤까지는.

윤제니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손에 들린 과도의 끝에서도 피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툭.

툭.

새하얀 거실 바닥에 붉은 점이 번졌다.

그리고 제니의 바로 앞에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강수혁.

오늘 처음 본 남자였다.

“하…….”

제니가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토해냈다.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제니는 거실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관문은 분명 잠겨 있었다.

창문도 닫혀 있었다.

그런데 낯선 남자가 너무도 태연하게 소파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셔츠.

유난히 창백한 얼굴.

그리고 자신에게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던 시선.

제니가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

그 말과 함께 다가오는 남자가 무서워 제니는 주방으로 도망쳤다.

손에 잡힌 것이 과도였다.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제니가 휘두른 칼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정확히 심장이 있는 자리였다.

“……죽었어?”

제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수혁의 눈은 감겨 있었다.

제니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가락을 그의 코 아래에 가져갔다.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목에 손을 댔다.

맥박도 없었다.

“미쳤어…….”

제니가 뒤로 주저앉았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경찰.

신고해야 한다.

정당방위였다고 말하면 된다.

이 남자가 먼저 집에 침입했다고.

제니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수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제니의 몸이 굳었다.

“……뭐야?”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니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 수혁의 목에 손을 댔다.

차갑다.

아까보다 훨씬 차가웠다.

맥박은 여전히 없었다.

제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그때 집 안의 불이 꺼졌다.

“아!”

순식간에 거실이 어둠에 잠겼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만 바닥을 비추었다.

제니는 휴대전화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없어.”

강수혁이 사라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사람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피만 남아 있었다.

제니가 다급하게 거실을 비췄다.

소파 뒤.

주방.

현관.

어디에도 없었다.

현관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말도 안 돼.”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라져.

제니는 급히 방문을 모두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결국 경찰에 전화를 걸었지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침입자는 사라졌다.

시체도 없었다.

남아 있는 건 거실에 흥건한 피와 피 묻은 칼뿐이었다.

제니는 신고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바닥을 다시 내려다봤다.

이상했다.

피가—

사라지고 있었다.

닦이는 것이 아니었다.

검붉은 핏자국이 바닥으로 스며들듯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제니가 한 걸음 물러났다.

몇 분 뒤.

마지막 붉은 흔적마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은 것은 제니의 손에 묻은 피뿐이었다.

그날 밤 제니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보조 잠금장치까지 걸었다.

창문도 전부 잠갔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무렵에야 침대에 몸을 누였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계속 수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칼이 들어가던 순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의 수혁은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웃었던 것 같다.

제니가 눈을 떴다.

“미쳤나 봐.”

그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제니는 숨을 멈췄다.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오전 12시 03분.

딩동.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제니는 침대에서 내려와 천천히 현관으로 향했다.

손에는 아까 그 과도를 들었다.

도어록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제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검은 셔츠.

창백한 얼굴.

강수혁이었다.

몇 시간 전 자신의 손으로 심장을 찔러 죽인 남자.

그가 멀쩡하게 문밖에 서 있었다.

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치 화면 너머의 제니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고 웃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짝 드러났다.

“윤제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제니는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수혁이 문에 손을 올렸다.

똑.

똑.

두 번의 노크.

“문 열어.”

“…….”

“나 확인해야 하잖아.”

제니가 떨리는 손으로 과도를 움켜쥐었다.

“뭘…… 확인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수혁이 아주 낮게 웃었다.

“이번에도 네가 날 죽일 수 있는지.”

제니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 순간 수혁의 붉은 눈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나는 네가 죽인다고 죽는 인간이 아니거든.”

잠시 후.

현관문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니는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바라봤다.

수혁이 사라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문 같은 건 잠가 봐야 소용없어.”

제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 현관 밖에 있던 강수혁이—

어느새 그녀의 거실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붉은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곳.

제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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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분명 내가 죽였다
사람을 죽이면 손끝에 감각이 남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적어도 오늘 밤까지는.윤제니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따뜻했다.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손에 들린 과도의 끝에서도 피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툭.툭.새하얀 거실 바닥에 붉은 점이 번졌다.그리고 제니의 바로 앞에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강수혁.오늘 처음 본 남자였다.“하…….”제니가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토해냈다.불과 몇 분 전이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제니는 거실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현관문은 분명 잠겨 있었다.창문도 닫혀 있었다.그런데 낯선 남자가 너무도 태연하게 소파 앞에 서 있었다.검은 셔츠.유난히 창백한 얼굴.그리고 자신에게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던 시선.제니가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드디어 찾았네.”그 말과 함께 다가오는 남자가 무서워 제니는 주방으로 도망쳤다.손에 잡힌 것이 과도였다.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다.경찰에 신고하겠다고도 했다.그런데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그리고—제니가 휘두른 칼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정확히 심장이 있는 자리였다.“……죽었어?”제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대답은 없었다.수혁의 눈은 감겨 있었다.제니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가락을 그의 코 아래에 가져갔다.숨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번에는 목에 손을 댔다.맥박도 없었다.“미쳤어…….”제니가 뒤로 주저앉았다.“내가 사람을 죽였어.”경찰.신고해야 한다.정당방위였다고 말하면 된다.이 남자가 먼저 집에 침입했다고.제니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그 순간이었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수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제니의 몸이 굳었다.“……뭐야?”잘못 봤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제니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결국 다시 수혁의 목에 손을 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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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죽지 않는 남자
“그러니까 문 같은 건 잠가 봐야 소용없어.”윤제니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현관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도어록도, 보조 잠금장치도 그대로였다.그런데 강수혁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몇 시간 전 제니가 심장을 찔러 죽인 모습 그대로.아니.정확히는 그때보다 훨씬 멀쩡했다.검은 셔츠에는 핏자국 하나 없었다.가슴에도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단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눈이었다.붉었다.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오지 마.”제니가 과도를 앞으로 내밀었다.수혁의 시선이 칼끝으로 내려갔다.“그거 또 쓰려고?”“오지 말라고 했어.”“알아.”“알면 나가.”수혁이 웃었다.“싫은데.”제니는 칼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수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오지 마!”이번에는 정말로 칼을 휘두를 생각이었다.하지만 수혁은 멈추지 않았다.한 걸음.그리고 또 한 걸음.제니가 결국 칼을 휘둘렀다.그 순간 수혁이 사라졌다.“……!”눈앞에 있던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다음 순간.제니의 손목이 뒤에서 붙잡혔다.“너무 느려.”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제니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차가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놔.”“싫어.”“경찰 부를 거야.”“불러.”수혁은 아무렇지 않았다.“경찰이 오면 당신부터 잡혀가.”“왜?”“내가 당신을 죽였으니까.”그 말에 수혁이 낮게 웃었다.“시체도 없는데?”제니의 입이 다물렸다.“피도 없어졌고.”“…….”“칼에 묻었던 내 피도 지금쯤 없어졌을 거야.”제니의 시선이 손에 들린 과도로 향했다.분명 붉은 피가 묻어 있었던 칼날이 깨끗했다.제니의 얼굴이 굳었다.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제니는 곧바로 몸을 돌려 그에게서 떨어졌다.“당신 뭐야?”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사람 아니지?”그제야 수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이제 알아?”“대답해.”수혁이 천천히 제니에게 다가왔다.이번에는 제니가 물러나지 않았다.무서웠다.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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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피를 주지 마
[다음에는 심장이 아니라 목을 노려.]윤제니는 한동안 문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발신자 표시 제한.번호도 없었다.답장을 보낼 수도 없었다.제니는 곧바로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아무것도 없었다.문자함으로 돌아가자 세 통의 메시지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 남자에게 피를 주지 마.][강수혁은 네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가 아니야.][다음에는 심장이 아니라 목을 노려.]“내가 뭘 안다고.”제니가 헛웃음을 흘렸다.강수혁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과 그가 뱀파이어라는 사실뿐이었다.그것도 오늘 알았다.그런데 문자를 보낸 사람은 수혁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제니는 다시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붉은 선.수혁에게 붙잡힌 뒤 생긴 흔적이었다.아프지는 않았다.하지만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제니는 욕실로 들어가 손목에 물을 뿌렸다.비누로 닦아도 그대로였다.“대체 이게 뭐야.”그 순간.손목의 붉은 선이 희미하게 빛났다.제니가 움찔했다.동시에 창문 밖에서 무언가 지나갔다.검은 그림자.제니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욕실 창문은 작았다.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크기도 아니었다.그런데 유리 너머로 붉은 눈 두 개가 보였다.“악!”제니가 뒤로 넘어질 뻔했다.다시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곧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경찰에 신고해야 하나.하지만 뭐라고 설명하지?죽였던 남자가 살아 돌아왔고, 그 남자는 뱀파이어이며, 누군가 목을 노리라는 문자를 보냈다고?제니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미치겠네.”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그리고 다음 날 아침.제니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거실로 나왔다.햇빛이 들어오자 조금은 안심됐다.수혁은 밤에만 나타났다.그렇다면 적어도 낮에는 안전할 것이다.제니는 노트북을 켰다.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강수혁.동명이인이 수십 명 나왔다.기업인.운동선수.회사원.학생.하지만 어젯밤의 수혁과 같은 얼굴은 없었다.이번에는 검색어를 바꿨다.강수혁 뱀파이어.당연히 소설과 영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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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나한테서 도망가
“지금은 나도.”강수혁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널 물고 싶으니까.”윤제니는 움직이지 못했다.조금 전 자신을 공격했던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그런데 제니의 시선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수혁의 붉은 눈이 자신의 손끝에 맺힌 피를 쫓고 있었다.“수혁.”“부르지 마.”“왜?”“더 힘드니까.”수혁이 고개를 돌렸다.깨진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그의 손등에 닿았다.치익.피부가 붉게 타들어 갔다.제니의 표정이 굳었다.“손.”“신경 쓰지 마.”“타고 있잖아.”“안 죽어.”“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제니가 커튼을 치려고 다가갔다.수혁이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오지 마.”“햇빛부터 막아야 하잖아.”“윤제니.”“왜 자꾸—”“네 피 냄새가 난다고.”제니가 멈췄다.수혁은 눈을 감은 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지금 네가 가까이 오면.”송곳니가 입술 사이로 드러났다.“진짜로 물 수도 있어.”제니는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봤다.종이에 베인 작은 상처.급히 휴지를 여러 겹 감았다.“이제 됐어?”“뭐가.”“피 안 보여.”수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야.”“그럼?”“냄새.”붉은 눈동자가 다시 제니에게 향했다.“너는 유독 심해.”“내 피가?”“그래.”“왜?”수혁이 헛웃음을 흘렸다.“그걸 알았으면 나도 이러고 있진 않겠지.”그는 일부러 제니와 거리를 벌렸다.“수백 년 동안 인간 피를 수도 없이 맡았어.”“그런데?”“네 건 달라.”수혁이 자신의 목을 쓸어내렸다.“목이 타.”제니의 표정이 굳었다.“머릿속에서는 계속 마시라고 하고.”수혁이 그녀를 바라봤다.“가까이 오면 심장도 없는 놈이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어.”제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제야 알았다.수혁은 자신을 겁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정말로 참는 중이었다.제니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그럼 내가 멀리 있으면 괜찮아?”“조금은.”“조금?”“계속 질문하지 마.”“왜.”“네 목소리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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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백이십 년 전의 여자
“하필이면.”남자의 시선이 제니에게 박혔다.“저 여자였어?”제니의 표정이 굳었다.“그게 무슨 뜻이야?”남자가 대답하려는 순간 수혁이 그의 앞을 막았다.“꺼져.”“왜? 얘는 아무것도 모르나 본데.”“한마디만 더 하면 이번에는 목을 부러뜨리는 걸로 안 끝내.”남자는 피식 웃었다.“여전하네, 강수혁.”“마지막 경고야.”잠시 수혁을 바라보던 남자는 결국 깨진 창문 쪽으로 물러났다.그러면서도 시선은 제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조심해.”“뭘?”“네가 왜 저놈 옆에 있는지 알게 되면.”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먼저 도망치고 싶어질 테니까.”“닥쳐.”수혁이 움직이려는 순간 남자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제니가 급히 달려가려 했다.수혁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가지 마.”“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지금 쫓아가면 네가 혼자 남아.”“그래도—”“저놈이 혼자 왔다는 보장 없어.”제니가 멈췄다.깨진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수혁의 손등이 다시 붉게 타기 시작했다.제니는 급히 커튼을 잡아당겼다.거실이 어두워졌다.수혁이 그녀를 바라봤다.“왜 커튼 쳤어?”“타고 있잖아.”“나 무섭다며.”“무서운 거랑 눈앞에서 타는 걸 보는 건 다른 문제지.”수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나 죽인 사람 맞아?”“또 찔러줄까?”“그건 사양할게.”“아까는 안 죽는다며.”“그래도 아프거든.”제니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 손가락을 다시 확인했다.휴지 사이로 피가 조금 배어나왔다.수혁의 시선이 즉시 그곳으로 떨어졌다.“뒤로 가.”“또?”“제니야.”이번에는 장난기가 없었다.제니는 순순히 거리를 벌렸다.“대체 왜 내 피에만 이러는데?”“모른다고 했잖아.”“수백 년 살았다며.”“그래서 더 이상한 거야.”수혁이 벽에 등을 기댔다.“수백 년 동안 이런 적 없었어.”“한 번도?”“한 번도.”제니는 밴드를 찾아 손가락에 붙였다.그제야 수혁의 붉은 눈이 조금씩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제니는 자신의 손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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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네가 먼저 나를 죽이려 했다
“내가 지키지 못해서.”강수혁의 대답에 윤제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휴대전화 화면에는 여전히 흑백사진이 떠 있었다.백이십 년 전의 강수혁.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여자.윤재희.“그게 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당신 때문에 죽었다는 거야?”수혁의 표정이 굳었다.“그렇게 생각해도 돼.”“애매하게 말하지 마.”제니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이 사람은 나랑 얼굴이 똑같아. 성도 같아. 그런데 누군가는 ‘이번에도’ 내가 먼저 죽는다고 했어.”“알아.”“당신은 알고 있는 게 있잖아.”수혁이 시선을 피했다.제니는 답답했다.“윤재희가 누구였는데?”잠시 침묵하던 수혁이 입을 열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한 여자였어.”“어떻게?”“나를 보고도 안 도망갔어.”수혁의 시선이 사진으로 향했다.“내가 뭔지도 알고 있었고.”“뱀파이어라는 걸?”“응.”“어떻게 알았는데?”“그건 끝까지 말 안 했어.”수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대신 처음 만난 날 나한테 부탁했어.”“무슨 부탁?”“자기를 죽여달라고.”제니의 눈이 커졌다.“왜?”“곧 죽을 거라고 했어.”“병 때문에?”“아니.”수혁이 고개를 저었다.“누군가 자기를 찾고 있다고 했어.”“누가?”“그것도 말하지 않았어.”“당신은 죽여줬어?”“아니.”수혁이 즉시 대답했다.“그래서 재희가 살아 있었던 거야?”“한동안은.”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제니가 물었다.“그럼 결국 어떻게 죽었는데?”수혁의 입이 다물렸다.또 침묵.“또 말 안 할 거야?”“네가 지금 알아서 좋을 게 없어.”“그걸 왜 당신이 결정해?”제니가 날카롭게 받아쳤다.“내 얼굴을 한 여자가 죽었어. 누군가는 내가 또 죽는다고 하고 있고. 그런데 당신은 계속 나한테 모르는 게 낫다고 하잖아.”“제니야.”“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수혁의 눈빛이 흔들렸다.그 순간이었다.제니의 손목이 뜨거워졌다.“아…….”붉은 표식이 선명하게 빛났다.“제니?”수혁이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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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백이십 년을 기다린 남자
“대체 당신이 윤재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강수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윤제니는 기다렸다.이번에는 어물쩍 넘어가게 둘 생각이 없었다.“말해.”“네가 본 장면.”수혁이 낮게 입을 열었다.“틀린 건 아니야.”“그럼 재희가 정말 당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거네.”“그래.”“왜?”수혁의 시선이 제니의 손목으로 내려갔다.붉은 표식은 아직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나도 정확한 이유는 몰라.”“또 모른다고?”“재희가 말하지 않았으니까.”제니가 헛웃음을 흘렸다.“당신은 아는 게 뭐야?”“재희가 나한테서 도망쳤다는 것.”제니의 표정이 굳었다.“당신한테서?”“그래.”“왜?”수혁이 잠시 망설였다.“내가 가뒀으니까.”제니의 눈이 커졌다.“뭐?”“그때 재희를 찾는 놈들이 있었어.”“그래서 사람을 가둬?”“밖으로 나가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재희는 동의했고?”대답이 없었다.그것만으로 충분했다.“안 했네.”“……그래.”제니는 어이가 없었다.“그걸 지키는 거라고 생각했어?”“그때는.”수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잃는 것보다 미움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그래서 결국 도망쳤고?”“그래.”“그리고 당신을 죽이려고 했고.”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제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처음에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던 여자.그런데 나중에는 수혁을 죽이려고 했다.그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재희가 죽은 건 그 뒤야?”“응.”“당신이 죽였어?”수혁의 눈이 제니에게 향했다.“아니.”이번 대답만큼은 망설임이 없었다.“그날 나는 재희 곁에 없었어.”“그럼 누가 죽였는데?”“몰라.”“백이십 년 동안?”수혁의 턱이 굳었다.“찾았어.”“누구를?”“재희를 죽인 놈.”제니가 멈칫했다.“계속?”“오랫동안.”수혁은 사진 속 윤재희를 바라봤다.“그런데 흔적이 사라졌어.”“그래서 포기했어?”수혁이 천천히 제니를 바라봤다.“아니.”“그럼?”“기다렸어.”“뭘.”수혁의 시선이 제니의 얼굴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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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내가 너를 죽이도록 만든 이유
“윤재희가 죽은 곳.”제니의 말에 수혁의 표정이 굳었다.“안 가.”“난 갈 건데.”“윤제니.”“혼자 가라는 말은 안 들을 거야.”제니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같이 가.”“대놓고 나 없이 오라고 했어. 함정이야.”“알아.”“알면서 가겠다고?”“저 사람은 당신이 말하지 않는 걸 알고 있잖아.”수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게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어.”“그러니까 직접 확인할 거야.”제니는 물러서지 않았다.결국 수혁이 먼저 한숨을 내쉬었다.“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알았어.”“내가 뛰라고 하면 뛰고.”“응.”“위험하면 바로 나가.”“그건 보고.”“제니야.”“가자.”주소가 가리키는 곳은 서울 외곽의 오래된 골목이었다.낡은 붉은 벽돌 건물.창문 대부분은 나무판자로 막혀 있었다.제니가 건물을 올려다봤다.“백이십 년 전에도 이게 있었어?”“건물은 바뀌었어.”수혁이 대답했다.“자리는 같아.”“여기서 재희가 죽었어?”수혁은 잠시 침묵했다.“2층.”둘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계단을 오를수록 제니의 손목이 뜨거워졌다.붉은 표식이 조금씩 선명해졌다.“수혁.”“왜?”“이거 또 반응해.”수혁이 제니의 손목을 확인했다.“나가자.”“여기까지 와서?”“느낌이 안 좋아.”그 순간 수혁이 고개를 들었다.“피 냄새도 나.”2층 복도 끝.닫힌 문 하나가 있었다.수혁이 제니를 자신의 뒤로 밀었다.“내 뒤에 있어.”문을 열었다.텅 빈 방.낡은 의자 하나.그리고 벽을 가득 채운 사진.제니가 멈춰 섰다.“……뭐야.”사진 속 사람은 전부 자신이었다.집을 나서는 모습.마트에 가는 모습.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며칠 전 사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수혁을 만나기 몇 달 전의 사진도 있었다.“누가 나를 계속 찍었어.”수혁이 사진 하나를 뜯었다.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2026. 4. 17.수혁의 얼굴이 싸늘해졌다.“나 만나기 전이야.”“알아.”벽 중앙에는 오래된 흑백사진이 붙어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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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백이십 년 전의 약속
“네가 강수혁을 죽이도록 만든 사람이야.”제니의 얼굴이 굳었다.“당신이?”서도겸이 웃었다.“정확히 말하면 윤재희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지.”“거짓말하지 마.”수혁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재희는 너를 믿지 않았어.”“마지막에는 믿었지.”도겸이 제니의 손목을 가리켰다.“저게 증거야.”붉은 표식.제니가 손목을 감쌌다.“이게 뭔데?”“약속.”“무슨 약속?”“다시 태어나도 강수혁을 만나게 된다면.”도겸의 붉은 눈이 수혁을 향했다.“이번에는 반드시 끝내겠다는 약속.”“그만해.”수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도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이상하지 않았어?”그가 제니에게 물었다.“처음 보는 남자가 네 집에 있었는데, 넌 망설이지 않고 정확히 심장을 찔렀잖아.”제니의 손끝이 굳었다.그날이 떠올랐다.수혁을 처음 봤던 순간.두려웠다.분명 처음 보는 남자였다.그런데—칼을 드는 순간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망설임이 없었다.“그게 이 표식 때문이라고?”“일부는.”“일부?”도겸이 다가오자 수혁이 곧바로 앞을 막았다.“거기서 말해.”“아직도 이러네.”도겸이 피식 웃었다.“백이십 년 전에도 재희를 네 뒤에 숨겼지.”수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래서 결국 도망쳤고.”“입 닥쳐.”“가두기까지 했잖아.”제니가 수혁을 바라봤다.“그건 들었어.”이번에는 도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그것까지 말했어?”“다 말한 건 아니겠지.”제니가 수혁을 보며 말했다.“항상 그러니까.”수혁은 반박하지 못했다.제니는 다시 도겸을 바라봤다.“표식부터 설명해.”도겸이 벽에 기대었다.“재희가 죽기 얼마 전 나를 찾아왔어.”“왜?”“부탁할 게 있다고.”“당신한테?”“강수혁과 관련된 부탁이었지.”도겸이 천천히 말했다.“다음 생이 있다면 자기가 수혁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어.”제니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래서?”“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하게 해달라고 했지.”“뭘?”도겸의 시선이 수혁의 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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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가 너를 죽이도록 만든 이유
“백이십 년 전에 윤재희가 죽으면서 끝났어야 했거든.”제니는 손목을 내려다봤다.붉은 표식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끝났어야 했다는 게 무슨 뜻이야?”서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아까는 약속이라며.”제니가 그를 노려봤다.“제대로 설명해.”도겸이 벽에 드러난 문양으로 시선을 돌렸다.“재희가 원한 건 단순했어.”“뭔데?”“다음 생에서도 강수혁을 만나게 된다면.”그의 시선이 수혁에게 향했다.“이번에는 반드시 죽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수혁의 턱이 굳었다.“그래서 표식을 만든 거야?”“그래.”도겸이 고개를 끄덕였다.“조건이 있었어.”“조건?”“첫 번째.”도겸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다시 태어난 재희가 강수혁을 만나면 표식이 깨어난다.”제니는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움켜쥐었다.수혁을 만난 바로 그날.이 표식이 생겼다.“두 번째는?”“강수혁의 피가 가까이 있으면 기억이 돌아온다.”제니의 표정이 굳었다.“그래서 내가 자꾸 그 여자 기억을 본 거야?”“아마도.”“아마도?”“나도 이런 식으로 깨어날 줄은 몰랐으니까.”제니가 미간을 찌푸렸다.“세 번째.”도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정해진 방법으로 강수혁을 죽이면 표식은 사라진다.”제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목.”도겸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장이 아니고.”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니가 그를 돌아봤다.“그래서 아까 대답 안 했구나.”“확실하지 않았어.”“당신 몸인데?”“백이십 년 동안 누가 내 목을 잘라본 적은 없거든.”제니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그걸 농담이라고 해?”“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당신 목 얘기 중이야.”“그러니까 더 살벌하지.”“둘 다 그만하지?”도겸이 끼어들었다.제니는 다시 그를 바라봤다.“그럼 재희는 왜 이런 걸 만든 거야?”“그건 네가 봐야 할 것 같은데.”도겸이 벽의 문양에 손을 댔다.순간.제니의 표식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잠깐—”시야가 어두워졌다.“정말 이 방법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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