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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Penulis: 양순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3-06 06:18:46

“그건, 여자친구랑 나랑 체형이 비슷하대서 피팅해달라서 해준 것 뿐이야. 다른 고객들도 종종 그래.”

해인의 변명은 애처로울 정도로 절박했다. 하지만 도윤의 시선은 해인의 해명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사진 속 그녀의 노출된 어깨선과 붉게 달아오른 뺨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천천히 핸드폰을 거두며 해인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해인의 등이 차가운 벽면에 완전히 밀착되었다. 퇴로를 차단한 도윤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낮게 읊조렸다.

“강서우 말은 다르던데? 자기 이상형이라서 옷 선물했다고.”

도윤의 숨결이 닿은 귓가에 소름이 돋았다. 해인은 울컥 치미는 서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정작 서우 앞에서는 꿋꿋하게 버텼던 자존심이, 가장 믿고 싶었던 도윤의 불신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이러니까.”

“뭐?”

“이렇게 화내니까!”

해인이 고개를 번쩍 들어 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떨리는 눈동자에는 억울함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제 어깨를 누르는 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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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오는 남자들   77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프라이빗 VIP룸.문이 닫히고 단둘만 남겨지자, 앞장서 걷던 해인의 걸음이 뚝 멎었다.은은한 아로마 향과 따뜻한 수증기가 감도는 실내 중앙.당연히 나란히 누워 받는 마사지 베드가 있을 줄 알았던 공간에는, 은은한 조명을 받는 커다란 온수 풀(Spa tub)이 자리 잡고 있었다.“여기…… 마사지 샵 아니었어?”해인이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서우 역시 작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깨를 으쓱했다.“어라. 바우처에 스파 코스라고 적혀 있긴 했는데, 진짜 물에 들어가는 스파일 줄은 나도 몰랐네. 그냥 전신 마사지인 줄 알았어.”한 치의 당황함도 묻어나지 않는, 뻔뻔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변명이었다.제공된 홀터넥 스타일의 얇은 스파용 수영복을 입은 해인이 난감한 얼굴로 맨살을 가리려 팔짱을 끼자, 서우가 피식 웃으며 제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운을 훌렁 벗어 던졌다.조명 아래로 모델다운 매끈하고 탄탄한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군더더기 없이 갈라진 근육 위로 수증기가 맺히는 것을 보며 해인이 흠칫 시선을 피했지만, 서우는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밟고 따뜻한 물속으로 스르륵 몸을 담갔다.“뭘 그렇게 얼어 있어, 누나.”“아니, 남녀가 같이 탕에 들어가는 건 좀…….”“우리 둘 다 수영복 챙겨 입었잖아. 해변가 가면 이것보다 헐벗고도 잘만 돌아다니면서 왜 새삼스럽게 유교 걸처럼 굴어?”서우가 찰바닥, 가볍게 물장구를 치며 나른하게 턱을 괴었다.“다리 끊어질 것 같다며. 따뜻한 물에 담그고 있으면 금방 풀릴 거야. 정 불편하면 밖에서 기다리든가. 나 혼자 이 넓은 거 다 쓰지 뭐.”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였다.여기서 뒷걸음질 치면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한 것 같아 우스워질 판이었다.결국 해인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못 이기는 척 물속으로 조심스레 발을 담갔다.따뜻한 온기가 굳어있던 몸을 녹이자 저도 모르게 나른한 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일렁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서우가 해인의 바로 옆으로 스르륵

  • 내게 오는 남자들   76화

    토요일 아침, 별채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해인은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근육통, 특히 퉁퉁 부어오른 다리의 통증에 앓는 소리를 냈다. 아침 식사도 거르겠다고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일러둔 참이었다.똑, 똑-.규칙적이고 정중하지만, 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노크 소리.권도윤이었다.“해인아, 일어났니? 문 좀 열어봐. 아주머니한테 얘기 들었어. 파스 가져왔으니까 붙이고 좀 쉬어.”문밖에서 들려오는 도윤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해인은 침대에 누운 채로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병 주고 약 주나.도대체 누구 때문에 어제 발이 부르트도록 구두를 신고 그 인파 속을 헤맸는데.“필요 없어. 피곤하니까 오빠도 그냥 가.”해인은 대놓고 문전박대를 날렸다.문밖에서 멈칫하는 도윤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해인은 개의치 않고 눈을 감았다.그때였다.“어라, 형? 여기서 뭐 해? 문전박대라도 당하는 중인가 보네.”나른하고 능청스러운 목소리. 강서우였다.본채에서 건너온 그가 도윤의 옆에 서서 비스듬히 벽에 기댔다. 도윤의 미간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강서우, 넌 가서 네 일이나 봐.”“싫은데. 나 오늘 누나랑 약속 있거든.”서우가 도윤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며 해인의 방문에 가볍게 노크했다.“누나, 나야. 파스 따위보다 훨씬 확실하게 풀어줄 곳 예약해 놨어. 들어간다?”도윤에게는 그렇게나 굳건히 닫혀 있던 문이, 서우의 목소리 한 번에 거짓말처럼 열렸다.서우가 스르륵 방 안으로 사라지고, 문이 다시 닫히는 순간.도윤은 제 손에 들린 파스 상자가 구겨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자신은 한 발자국도 허락받지 못한 그 문 안쪽에서, 두 사람의 낮은 웃음소리가 도윤의 귓가를 잔인하게 할퀴고 있었다....달칵.도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방문을 닫고 들어온 서우가, 침대에 널브러진 해인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주 그냥 솜사탕 물에 빠진 것처럼 늘어져 있네.”“웃지 마. 나 진짜 다리 끊어질 것

  • 내게 오는 남자들   75화

    밤 9시.메인이벤트인 불꽃놀이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자, 광장은 순식간에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인파로 꽉 들어찼다.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히고 떠밀리는 혼란스러운 상황.도윤은 곁에서 비틀거리는 해인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쥐며 제 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사람 많아. 밀리지 않게 조심해.”핑계가 좋았다.도윤은 해인의 가녀린 어깨를 감싼 제 팔에 은근한 힘을 주었다.사방이 어둡고 시끄러운 이 순간만큼은, 오빠라는 수식어 없이 오롯이 남자로서 그녀를 안고 싶었다.해인이 제 품 안에서 작게 숨을 들이켜는 것이 느껴졌다.도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해인의 옆 모습을 내려다보며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징- 징-.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해인의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해인이 도윤의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그 순간이었다.휴대폰 액정의 밝은 빛이 해인의 얼굴을 하얗게 비췄다.도윤은 보았다.제 앞에서는 시종일관 얼음장처럼 차갑거나 가식적인 미소만 지어 보이던 해인의 입매가,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봄눈 녹듯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살짝 가늘어진 눈매와 입가에 번진 그 무방비하고 달콤한 미소.그것은 도윤이 그토록 갈구하던,그러나 자신에게는 온종일 허락되지 않았던 진짜 윤해인의 얼굴이었다.도윤은 심장을 칼로 베이는 것 같은 감각에 숨을 들이켰다.바로 곁에서 어깨를 맞대고 숨을 나누고 있는데도, 해인의 저 미소 하나가 두 사람 사이를 만 리 밖처럼 멀어지게 만들었다.시선이 홀린 듯 그녀의 액정으로 향했다.[강서우]그 세 글자를 확인하는 순간, 도윤의 심장 위로 차가운 얼음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해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윤의 품에서 몸을 쏙 빼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어, 서우야.”오빠인 자신에게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굴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의 남자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편안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불꽃놀이 시작했어?]휴대폰 너머로 서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도윤의

  • 내게 오는 남자들   74화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기괴한 비명 소리와 조잡한 귀신 모형들.하지만 두 사람 사이를 감도는 공기는 그 어떤 장치보다 서늘했다.도윤은 깍지 낀 손을 절대 놓아주지 않은 채, 앞장서 걷는 해인의 속도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해인의 손은 그저 무생물처럼 도윤의 손안에 담겨 있을 뿐, 그 어떤 힘도 온기도 돌려주지 않았다.결국 참지 못한 도윤이 해인을 잡아 세웠다.“윤해인, 잠깐만.”“……왜. 무서워? 조금만 더 가면 출구야.”해인이 귀신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도윤은 이를 악물며 그녀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돌려세웠다.“이러는 거 너랑 안 어울려. 우리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날 세우며 지낸 적 없잖아.”도윤의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오만함과, 제발 예전처럼 나를 보며 웃어달라는 구걸이 뒤섞인 기묘한 호소였다.“예전? 아…… 10살 때?”해인이 어이없다는 듯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그땐 어렸잖아. 다 큰 성인 남녀가, 남매끼리 누가 이렇게 손을 꽉 잡고 다녀?”“…….”“오빠. 오빠라는 핑계로 자꾸 통제하려고 들지 마. 진짜 내 손을 잡고 싶으면, 그 알량한 오빠 노릇부터 집어치우고 남자로 다가오든가.”해인은 깍지 껴진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며, 어둠 속에서 도윤을 향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얄팍하게 굴지 마.”도윤의 턱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용기도 없으면서'라는 조소가 비수처럼 정곡을 찔렀다.그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어떤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이제 그만 놔. 저기 출구 보이네.”해인의 시선이 닿은 곳.바깥의 화려한 야경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 바로 앞, 어둠이 짙게 깔린 사각지대에 익숙한 두 실루엣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민영과 태건이었다.“어머, 이제 오네요? 귀신한테 잡혀간 줄 알았네.”민영이 팔짱을 낀 채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자, 이제 보는 눈 많은 밖이니까 다시 원래 파트너로 돌아

  • 내게 오는 남자들   73화

    귀신의 집으로 향하는 첫 번째 게이트를 지나자, 거대한 동굴처럼 꾸며진 서늘한 실내 대기줄이 나타났다.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조명은 점차 자취를 감췄고, 인파 역시 뚝 끊기며 사방은 짙은 어둠과 음산한 배경음으로 가득 찼다.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도윤은 그 찰나의 어둠을 놓치지 않았다.그는 앞서 걷던 태건과 해인의 사이로 거침없이 파고들며, 태건의 팔짱을 끼고 있던 해인의 손목을 낚아챘다.“어……?”당황한 해인이 작게 숨을 들이켜며 끌려오자, 도윤은 보란 듯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 제 품으로 바짝 붙였다.해인의 어깨 너머로 태건을 향해 쏘아붙이는 도윤의 눈빛은 살벌했다.그 험악한 기세에 태건이 슬쩍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한발 물러섰다.때마침 진짜 귀신의 집 본 입구를 알리는 직원의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자, 두 분씩 5분 간격으로 입장하시겠습니다! 앞 팀 먼저 들어가실게요!]“그럼 저희가 먼저 들어갈게요. 두 사람, 5분 뒤에 천천히 와요!”민영이 생긋 웃으며 태건의 팔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의 형체는 무거운 검은 커튼 너머, 어두운 입구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바깥의 소음이 단숨에 차단된 눅눅한 복도.사방에서 스산한 바람 소리와 귀신 모형이 튀어나왔지만, 두 사람의 걸음은 산책을 나온 듯 평온하기 그지없었다.잠시 뒤를 힐끗 살피며 눈치를 보던 태건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민영아, 나 진짜 네가 시키는 대로만 한 거다. 사심은 맹세코 하나도 없었어.”그의 말에 민영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알아, 아주 연기력 훌륭하던데? 수고했어. 아까 권도윤 표정 봤어? 와, 사람 하나 죽일 기세더라.”민영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 걸음을 옮기며 가볍게 덧붙였다.“그 질투에 눈먼 눈동자를 보니까, 진짜 없던 사랑도 활활 타오르겠던데?”그 순간.옆에서 걷던 태건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어? 왜 그래?”어둠 속에서 태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영을 내려다보았다. 평소의 능글

  • 내게 오는 남자들   72화

    도윤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해인의 귓가를 노골적으로 파고들었다."아무리 연극이라도 매너는 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네가 완벽히 하자고 한 제안인데. 다른 놈 냄새를 묻히고 오는 건……."“다른 놈 냄새라니.”해인이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지금 꼭 진짜 애인처럼 구는 거 알아? 그리고 이거 내가 뿌린 향수야. 요즘 이런 중성적인 향이 트렌드거든. 완벽한 애인 연기를 원한다면서, 파트너 향수 취향 하나 파악 못 해서 어떡해.”도윤이 반박하려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몇 걸음 앞서 걷던 민영이 휙 고개를 돌리며 손을 흔들었다.“거기 두 사람, 안 오고 뭐 해요? 슬슬 사람 많아지는데 우리 파트너 바꾸죠?”민영의 말에 도윤의 굳어있던 표정이 일순간 삐걱였다.세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알리바이.대중의 눈길이 닿는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공식적인 맞선 관계인 도윤과 민영이 연인 행세를 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남은 태건과 해인이 짝을 이뤄야만 했다.민영이 다가와 도윤의 곁에 섰다.그와 동시에, 태건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해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팔을 내밀었다.“그럼 보는 눈이 없어질 때까지, 제가 해인 씨 파트너를 해야겠네요. 오늘 영광입니다.”“아,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태건 씨.”해인이 기다렸다는 듯 도윤에게서 미련 없이 떨어져 나와 태건의 팔짱을 꼈다.태건이 에스코트하듯 해인의 걸음을 맞추며 다정하게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아까도 생각했지만, 진짜 스타일 좋으시네요. 평소에도 이렇게 입으세요?”“아니요.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니까, 신경 좀 썼죠.”방긋방긋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도윤의 눈동자에 옅은 살기가 번졌다.태건의 팔에 닿아 있는 해인의 손길과, 그녀를 내려다보며 실실 웃는 태건의 눈빛이 신경을 사포로 긁어대는 것 같았다.“어머, 도윤 씨. 갑자기 왜 이렇게 표정이 살벌해요? 누가 보면 우리 파투 난 줄 알겠네.”민영이 도윤의 팔짱을 단단히 고쳐 끼며 장난

  • 내게 오는 남자들   18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해인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서우는 그녀가 뺨이라도 때릴 줄 알았지만, 해인의 손은 너무도 부드럽게 서우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었다.“……!”해인이 서우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짐승의 털을 골라주듯 조심스럽고도 단호한 손길이었다. 서우는 숨 쉬는 법조차 잊은 채 굳어버렸다.“불쌍하게 안 봐. 내 주제에 누굴 불쌍하게 보겠어.”해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서우의 귓가에 닿았다.“그런데 어떻게 안 아파. 백 번을 맞아도, 천 번을 맞아도 아픈 건 그냥 아픈 거야. 익숙해진다고 해서 상처가

  • 내게 오는 남자들   17화

    “약 바르게 얼른 세수부터 해.”거실에 발을 들이자 마자, 해인이 그의 팔을 잡아끌며 욕실 쪽을 가리켰다. 해인이 서우의 팔을 잡아끌며 욕실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서우는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싫어.”“왜?”“가만히 있어도 아픈데, 물 닿으면 더 아프잖아.”“그게 무슨…, 네가 어린애야? 빨리 가서 씻어.”서우가 부어오른 눈으로 해인을 빤히 바라보며 덧붙였다.“나 손 떨려서 못 해. 길바닥에서 밤 세우고, 아까 경비 무서워서 힘 다 빠졌단 말이야.”“하아.”기가 막힌다는 듯 해인이 한숨을

  • 내게 오는 남자들   16화

    요새처럼 솟아오른 석조 외벽은 차갑고 단단했다. 서우는 그 벽에 등을 기댄 채 캐리어 뒤로 몸을 웅크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뺨의 부기는 더 단단하게 올랐고, 눈가는 마치 검붉은 꽃이 핀 것처럼 피멍이 번져 시야를 압박해 왔다.“……윽.”살짝 숨을 내쉴 때마다 말라붙은 입술 끝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터진 입술 위로 딱딱하게 굳은 피딱지는 입을 벙긋거리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서우는 그 통증을 굳이 털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이 선명해질수록, 해인이 자신을 보며 지어 보일 가련함의 눈빛이 더 확실해질 터였다

  • 내게 오는 남자들   14화.

    서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 소파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이던 여자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한 여사. 서양인의 깊은 눈매와 동양인의 매끄러운 골격이 절묘하게 섞인 그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미인이었다. 서우의 그 묘하게 이국적이고 퇴폐적인 이목구비는 명백히 그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축복이었다.“웬일이니, 네가 이렇게 일찍 들어오는 날이 다 있고.”“짐 싸러 왔어. 당분간 딴 데 가 있으려고.”서우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단을 오르려 하자, 와인 잔 속의 액체가 파들거리며 한 여사의 날 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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