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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16 15:16:29

칠흑 같은 한강의 물결 위로 서울의 네온사인이 깨진 보석처럼 흩뿌려졌다.

기부라는 숭고한 명분은 차갑게 식은 샴페인 기포 속에 녹아 사라지고, 한강의 밤바다 위에는 오직 서로의 계급을 확인하려는 은밀한 탐욕만이 번들거렸다.

“표정 좀 풀어. 사람들이 우리 싸운 줄 알겠어.”

채영이 도윤의 팔에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속삭였다.

도윤은 대답 대신 정중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너머, 아직 굳게 닫힌 연회장 입구를 응시했다.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으나, 초점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곧 올 거야. 당신이 아주 깜짝 놀랄 모습으로.”

채영의 입가에 걸린 승리감 어린 미소를 도윤이 읽어내기도 전이었다.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소란스럽던 공기가 단번에 진공 상태가 된 듯 정적에 휩싸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곳으로 쏠렸다.

“강서우 옆에 누구야?”

“그러게 어디서 또 싸구려 하나 주워온 줄 알았더니, 이번엔 제법인데?”

누군가의 비릿한 감탄사가 도윤의 고막을 찔렀다.

입구에는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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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오는 남자들   78화

    스파 건물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해인은 반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었다.풍성한 아로마 오일의 향도,전문가의 섬세한 마사지도 해인의 굳은 몸을 풀어주진 못했다.엎드려 있는 한 시간 내내 머릿속에는 오직 수면 아래에서 들려오던 강서우의 목소리만이 이명처럼 맴돌았으니까.‘나는 누나만의 얌전한 개가 될 수 있어.’해인은 확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려 연신 손바닥을 뺨에 갖다 대었다.반면 서우는 스파 덕분인지, 아니면 제 고백에 흔들리는 해인의 모습을 구경한 덕분인지 아주 개운하고 반짝거리는 얼굴이었다.조수석 문을 열어주던 서우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차 하는 표정으로 해인을 내려다보았다.“아, 맞다. 깜빡하고 말 안 했는데, 나 오늘 오후에 화보 촬영 있거든.”“……어? 촬영?”“응. 그래도 뭐, 같이 가줄 거지? 나 일하는 거 구경도 좀 하고.”뻔뻔하고도 자연스러운 통보였다.해인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서우는 해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가볍게 그녀의 등을 밀어 조수석에 앉혔다.“촬영 금방 끝나니까, 같이 있다가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자. 누나 좋아하는 거 사줄게.”스파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강서우의 능수능란한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려, 해인은 ‘안 돼’라고 거절할 타이밍조차 놓쳐버렸다.“벨트 매.”서우가 운전석에 올라타며 기분 좋은 호선을 그렸다.해인은 어쩐지 저 여우 같은 놈이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바우처를 내밀었다는 강한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이미 스포츠카는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서우의 스포츠카가 해인을 태우고 능수능란하게 스파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을 무렵.같은 시각, 본가에서 멀지 않은 프라이빗 호텔 라운지.도윤은 식은 홍차 잔을 매만지며 맞은편에 앉은 차민영을 건조한 시선으로 응시했다.태성과 에이펙의 합작 건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주말 낮부터 그녀를 불러냈지만, 사실 비즈니스 점검은 얄팍한 핑계에 불과했다.진짜 속내는 따로 있었다

  • 내게 오는 남자들   77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프라이빗 VIP룸.문이 닫히고 단둘만 남겨지자, 앞장서 걷던 해인의 걸음이 뚝 멎었다.은은한 아로마 향과 따뜻한 수증기가 감도는 실내 중앙.당연히 나란히 누워 받는 마사지 베드가 있을 줄 알았던 공간에는, 은은한 조명을 받는 커다란 온수 풀(Spa tub)이 자리 잡고 있었다.“여기…… 마사지 샵 아니었어?”해인이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서우 역시 작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깨를 으쓱했다.“어라. 바우처에 스파 코스라고 적혀 있긴 했는데, 진짜 물에 들어가는 스파일 줄은 나도 몰랐네. 그냥 전신 마사지인 줄 알았어.”한 치의 당황함도 묻어나지 않는, 뻔뻔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변명이었다.제공된 홀터넥 스타일의 얇은 스파용 수영복을 입은 해인이 난감한 얼굴로 맨살을 가리려 팔짱을 끼자, 서우가 피식 웃으며 제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운을 훌렁 벗어 던졌다.조명 아래로 모델다운 매끈하고 탄탄한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군더더기 없이 갈라진 근육 위로 수증기가 맺히는 것을 보며 해인이 흠칫 시선을 피했지만, 서우는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밟고 따뜻한 물속으로 스르륵 몸을 담갔다.“뭘 그렇게 얼어 있어, 누나.”“아니, 남녀가 같이 탕에 들어가는 건 좀…….”“우리 둘 다 수영복 챙겨 입었잖아. 해변가 가면 이것보다 헐벗고도 잘만 돌아다니면서 왜 새삼스럽게 유교 걸처럼 굴어?”서우가 찰바닥, 가볍게 물장구를 치며 나른하게 턱을 괴었다.“다리 끊어질 것 같다며. 따뜻한 물에 담그고 있으면 금방 풀릴 거야. 정 불편하면 밖에서 기다리든가. 나 혼자 이 넓은 거 다 쓰지 뭐.”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였다.여기서 뒷걸음질 치면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한 것 같아 우스워질 판이었다.결국 해인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못 이기는 척 물속으로 조심스레 발을 담갔다.따뜻한 온기가 굳어있던 몸을 녹이자 저도 모르게 나른한 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일렁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서우가 해인의 바로 옆으로 스르륵

  • 내게 오는 남자들   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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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오는 남자들   74화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기괴한 비명 소리와 조잡한 귀신 모형들.하지만 두 사람 사이를 감도는 공기는 그 어떤 장치보다 서늘했다.도윤은 깍지 낀 손을 절대 놓아주지 않은 채, 앞장서 걷는 해인의 속도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해인의 손은 그저 무생물처럼 도윤의 손안에 담겨 있을 뿐, 그 어떤 힘도 온기도 돌려주지 않았다.결국 참지 못한 도윤이 해인을 잡아 세웠다.“윤해인, 잠깐만.”“……왜. 무서워? 조금만 더 가면 출구야.”해인이 귀신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도윤은 이를 악물며 그녀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돌려세웠다.“이러는 거 너랑 안 어울려. 우리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날 세우며 지낸 적 없잖아.”도윤의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오만함과, 제발 예전처럼 나를 보며 웃어달라는 구걸이 뒤섞인 기묘한 호소였다.“예전? 아…… 10살 때?”해인이 어이없다는 듯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그땐 어렸잖아. 다 큰 성인 남녀가, 남매끼리 누가 이렇게 손을 꽉 잡고 다녀?”“…….”“오빠. 오빠라는 핑계로 자꾸 통제하려고 들지 마. 진짜 내 손을 잡고 싶으면, 그 알량한 오빠 노릇부터 집어치우고 남자로 다가오든가.”해인은 깍지 껴진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며, 어둠 속에서 도윤을 향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얄팍하게 굴지 마.”도윤의 턱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용기도 없으면서'라는 조소가 비수처럼 정곡을 찔렀다.그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어떤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이제 그만 놔. 저기 출구 보이네.”해인의 시선이 닿은 곳.바깥의 화려한 야경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 바로 앞, 어둠이 짙게 깔린 사각지대에 익숙한 두 실루엣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민영과 태건이었다.“어머, 이제 오네요? 귀신한테 잡혀간 줄 알았네.”민영이 팔짱을 낀 채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자, 이제 보는 눈 많은 밖이니까 다시 원래 파트너로 돌아

  • 내게 오는 남자들   73화

    귀신의 집으로 향하는 첫 번째 게이트를 지나자, 거대한 동굴처럼 꾸며진 서늘한 실내 대기줄이 나타났다.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조명은 점차 자취를 감췄고, 인파 역시 뚝 끊기며 사방은 짙은 어둠과 음산한 배경음으로 가득 찼다.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도윤은 그 찰나의 어둠을 놓치지 않았다.그는 앞서 걷던 태건과 해인의 사이로 거침없이 파고들며, 태건의 팔짱을 끼고 있던 해인의 손목을 낚아챘다.“어……?”당황한 해인이 작게 숨을 들이켜며 끌려오자, 도윤은 보란 듯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 제 품으로 바짝 붙였다.해인의 어깨 너머로 태건을 향해 쏘아붙이는 도윤의 눈빛은 살벌했다.그 험악한 기세에 태건이 슬쩍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한발 물러섰다.때마침 진짜 귀신의 집 본 입구를 알리는 직원의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자, 두 분씩 5분 간격으로 입장하시겠습니다! 앞 팀 먼저 들어가실게요!]“그럼 저희가 먼저 들어갈게요. 두 사람, 5분 뒤에 천천히 와요!”민영이 생긋 웃으며 태건의 팔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의 형체는 무거운 검은 커튼 너머, 어두운 입구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바깥의 소음이 단숨에 차단된 눅눅한 복도.사방에서 스산한 바람 소리와 귀신 모형이 튀어나왔지만, 두 사람의 걸음은 산책을 나온 듯 평온하기 그지없었다.잠시 뒤를 힐끗 살피며 눈치를 보던 태건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민영아, 나 진짜 네가 시키는 대로만 한 거다. 사심은 맹세코 하나도 없었어.”그의 말에 민영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알아, 아주 연기력 훌륭하던데? 수고했어. 아까 권도윤 표정 봤어? 와, 사람 하나 죽일 기세더라.”민영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 걸음을 옮기며 가볍게 덧붙였다.“그 질투에 눈먼 눈동자를 보니까, 진짜 없던 사랑도 활활 타오르겠던데?”그 순간.옆에서 걷던 태건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어? 왜 그래?”어둠 속에서 태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영을 내려다보았다. 평소의 능글

  • 내게 오는 남자들   51화

    별채로 돌아온 해인은 책상 앞에 주저앉았다.오늘 낮, 화방에서 사 온 빳빳한 캔버스와 전문가용 연필이 고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해인은 홀린 듯 연필을 쥐었다. 그리고 빈 캔버스 위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단정하고 곧은 눈썹, 날카롭지만 자신을 향할 때만 둥글게 휘어지던 눈매, 가끔 낮게 웃을 때면 보기 좋게 패이던 입매까지.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그려왔던 모습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캔버스 위를 채워가는 선들이 점점 길을 잃고 엇나갔다.해인의 손끝이 멈칫했다.도무지 눈동자를 그려 넣을 수가 없었다.

  • 내게 오는 남자들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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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오는 남자들   49화

    별채로 돌아온 해인은 화방 봉투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외출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흐트러진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다.‘오빠도 왔으니, 저녁 준비하겠네.’가만히 앉아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건 가시방석이나 다름없었다.한 여사의 눈치도 눈치였지만, 얹혀사는 식객으로서 뭐라도 밥값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해인은 지체 없이 방을 나섰다.어스름이 깔린 정원을 가로질러 본채로 향하자, 주방 쪽에서 정갈한 칼질 소리가 들려왔다.해인이 주방으로 들어서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식사 준비, 제가 거들게요.”순간, 분주하던

  • 내게 오는 남자들   44화

    거대한 샹들리에가 내뿜는 차가운 빛이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어 눈을 찔렀다. 유람선의 소란스러운 파티장보다, 청운재의 이 정적 흐르는 다이닝 룸이 해인에게는 훨씬 더 숨 막히고 가혹했다.식탁의 상좌에는 권 회장이, 그 옆에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의 세 번째 부인, 한 여사가 앉아 있었다. 세 사람은 그 맞은편에 죄인처럼 나란히 섰다.“앉거라. 시장할 게다.”권 회장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떨어지고서야 해인은 조심스럽게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서우는 피딱지가 앉은 얼굴로 삐딱하게 다리를 꼬았고, 도윤은 그 모든 상황을 통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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