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7 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05 14:43:23
“아, 저기…… 오빠.”

거실로 들어서던 해인이 무거운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오늘 오빠 동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었어.”

“……강서우?”

“응.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이야기 했어?”

도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더 낮고 고요했다. 폭풍 전야의 바다처럼, 지나치게 잔잔해서 더 위태로운 목소리. 그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심문관처럼 여유로웠다. 그 여유가 해인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었다.

“이야기는 무슨. 그냥 우리 매장에서 옷 구경하다가, 여자친구 줄 거라고 옷 사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내게 오는 남자들   243 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심장을 때리는 감각적인 비트.밀라노 패션위크의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한 피날레 워킹이 끝난 직후, 백스테이지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완벽했어요, 서우! 당신은 오늘 밀라노 전체를 완벽하게 압도했어!”수석 디자이너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찬사를 쏟아냈다. 한국계 최초로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의 메인 뮤즈 자리를 꿰찬 강서우.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외신들의 취재 열기는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어머니인 한 여사의 그늘과 그룹의 후계 구도라는 족쇄를 벗어던진 서우는, 이

  • 내게 오는 남자들   242 화

    일부러 들으라는 듯 꽤나 노골적으로 뱉어낸 음성이었다.하지만 샴페인 잔을 들고 지나가던 해인의 걸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사모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우아하게 방향을 틀었다.“상도덕이라는 단어는, 지금 같은 상황에 쓰는 게 아니죠.”갑작스러운 해인의 등장에 사모들의 입이 헙, 하고 다물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을 향해 해인이 맑은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서우 씨는 본인 커리어를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훌륭한 도약을 했고, 저는 제 가치를 완벽하게 알아봐 주는 최고

  • 내게 오는 남자들   241 화

    “권도윤…….”오빠라는 호칭조차 잊을 만큼, 날것의 감정이 섞인 젖은 이름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도윤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평소의 흐트러짐 없이 서늘했던 완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거칠게 풀어 헤쳐진 넥타이와 가쁘게 몰아쉬는 숨결이, 그가 얼마나 미친 듯이 이 먼 거리를 달려왔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왜 말 안 했어.”해인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그의 단단한 가슴을 퍽 쳤다.“바보같이 왜 혼자서 회장님을 상대한다고 지분을 다 매입해 놓고…… 왜 나한테 다 숨겼어!”툭. 마

  • 내게 오는 남자들   240 화

    눈물이 핑 돌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하지만 해인은 애써 붉어지는 눈시울을 꾹 누르며, 끝까지 사장님과의 실무적인 대화를 갈무리했다.완성된 다기의 퀄리티는 완벽했고, 론칭 준비는 이견 없이 순조로웠다.“그럼, 다음 주 론칭 파티 때 뵙겠습니다, 사장님.”“예, 조심히 올라가세요, 디렉터님!”사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공방을 나선 해인은 곧장 자신의 차로 향했다.철컥, 하고 차 문이 닫히며 완벽하게 혼자만의 공간이 확보된 순간.“하아…….”억눌러왔던 뜨거운 숨이 단숨에 터져 나왔다. 해인은 핸들에 이마를 댄 채 한참 동안

  • 내게 오는 남자들   239 화

    시간은 누군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갔다.“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해인 씨. 민 여사님 브랜드라니, 우리 이그니스 출신이라는 게 다 자랑스럽네.”“다 팀장님께서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저한테 첫 기회를 주신 곳이잖아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이그니스 사무실을 나서는 해인의 양손에는 가벼운 짐 상자가, 얼굴에는 홀가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료들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치른 아름다운 이별이었다.서우와의 인연을 끊어낸 그날 이후, 해인의 삶은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라탔다.‘가장 먼저 한 일은 그

  • 내게 오는 남자들   238 화

    해인은 마른침을 삼켰다.[그래서, 다기는 잘 완성해서 바쳤어?][민 여사가 퍽이나 마음에 들어 했어?]제 작업물과 민 여사에게 얽힌 상황을 못마땅해하며 쏟아낼 가시 돋친 히스테리를 예상했다.하지만 서우의 쩍쩍 갈라진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우리 그만 만나. 헤어지자고.”“……뭐?”예상치 못한 이별 통보에 해인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서우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시선을 삐딱하게 내리깔았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입가에는 한껏 비틀린 조소가 걸려 있었다.“막상 내 옆에 둬 보니까…

  • 내게 오는 남자들   87 화

    운전석에 올라탄 서우는 시동을 거는 대신, 핸들을 잡은 채 가만히 앞만 응시했다. 차 안의 공기는 응접실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압박감으로 해인을 옥죄어 왔다.해인은 제 무릎 위에 놓인 블랙 카드를 만지작거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우를 바라보았다.핸들을 쥔 서우의 옆얼굴.여전히 가시지 않은 뺨의 푸르스름한 멍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 응접실에서 피부로 느꼈던 한 여사의 서늘하고도 폭력적인 우월감.친아들의 뺨을 주저 없이 내리치고, 타인을 물건 취급하며 조롱하던 그 붉은 입술.저런 여자 밑에서, 이 숨 막히는 청운재에

  • 내게 오는 남자들   86 화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데.”한 여사는 테이블 위의 찻잔을 매끄러운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굳어있는 해인을 향해 기가 차다는 듯 가볍게 혀를 찼다.“난 대체 무슨 자식 복이 이리 많은 건지, 전처들 자식을 줄줄이 거두네.”그녀의 목소리에는 권 회장의 핏줄과 전처의 흔적을 모두 제 발밑에 두고 쥐락펴락한다는 지독한 우월감이 배어 있었다.“어제 회장님께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네 엄마가 그렇게 엉망이었다지? 쯧.”한 여사가 미간을 구기며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네가 이 청운재에서 계속 그렇게 비실대고 서

  • 내게 오는 남자들   85 화

    서우가 등을 돌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해인은 굳게 닫힌 문에 가만히 이마를 기댔다.‘……강서우 말이 맞아.’언제까지 도윤의 그늘에 숨어 잔뜩 겁먹은 채 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더 이상 그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며, 오빠에게 민폐만 끼치는 짐덩이로 남는 것은 끔찍하게 싫었다.해인의 시선이 방 한구석, 어젯밤 꺼내어 둔 낡은 스케치북에 가닿았다.‘도윤 오빠 옆에 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 적어도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괜찮은…… 동생이 되고 싶어.’누군가 내쳐도 기꺼이 제 두

  • 내게 오는 남자들   84 화

    “X발, 그거면 차고 넘쳐.”서우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지독하게 순수한 열망을 짓씹어 삼키며, 어머니를 향해 나른하게 한쪽 눈을 까딱였다.**육중한 세단 두 대가 나란히 본채를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서우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고 그가 향한 곳은 정원 건너편의 별채였다.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달칵.별채의 묵직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1층 거실 겸 휴게 공간에서 짧은 모닝커피 타임을 가지고 있던 입주 도우미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