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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Auteur: 양순이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2-26 17:52:12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거칠게 차에 올랐다. 핸들을 잡은 그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해인이 학원비 좀, 대학은 붙었는데 학비가 없네. 해인이가 해외연수도 가고 싶대.

괜찮은 남자 만나려면 해인이도 명품 좀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그 여자에게 보낸 돈이 억 대에 달했다.

적어도 한 때는 제 여동생이었던 그녀가 번듯한 대학 졸업장을 따고, 고생 따위는 모르는 귀한 집 아가씨처럼 살고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씨발, 그런데 왜……!”

참지 못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도윤은 핸들을 세게 내리쳤다.

“왜 저 꼴로 살고 있냐고, 대체!”

갈라진 손끝과 푸석한 얼굴과 머리카락.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건지, 앙상한 손목과 발목이 망막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거칠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는 그의 눈동자가 액정 불빛에 번들거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익숙하고도 위압적인 목소리가 차안을 채웠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해인이 어머니, 지금 뭐 하고 사는지 아버지는 아시죠.]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수화기 저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와 냉소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네가 그 여자 계좌로 돈 보내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지? 그런데 이제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려고?]

[오늘 해인이 만났습니다. 그 애가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도 아세요?]

[이혼 한 지가 언제 인데 내가 그것까지 알아냐 하니.]

[저한테 분명히 그랬어요. 대학교도 가고, 어학연수도 가고 싶어한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했어! 그 여자한테 돈 보내봐야 해인이 밑으로 한 푼도 안 들어간다고 했지!]

아버지의 무심한 포표에 도윤의 눈시울이 뜨겁게 타올랐다. 핸들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도 해인이는 귀여워하셨잖아요. 무려 10년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며 따랐어요.]

[그렇다고 그 애가 진짜 내 딸이 되는 건 아니지 않니.]

[그럼 그러지 마셨어야죠! 해인이 친아버지 떠나게 만든 거, 그거 아버지잖아요.]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폭탄처럼 터진 도윤의 외침에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 마저 멈춘 듯했다.

[…….]

[그런데 제가 어떻게 관심을 꺼요.]

도윤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렸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마지못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산하동 바둑이 게임장 가봐라. 물론 아직도 거기 처박혀 있다면 말이지.]

뚝.

가차 없이 끊긴 통화음 너머로 도윤의 거친 숨소리만 남았다. 그는 핸들에 머리를 처박은 채, 떨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 억눌렸던 엔진음이 지하 주차장의 공기를 찢고 울려 퍼졌다.

**

비좁은 골목 끝, 간판도 없는 지하 철문을 발로 차듯 열고 들어선 도윤의 미간이 좁아졌다. 쾌쾌한 담배 연기와 기계 돌아가는 소음, 그리고 탐욕에 찌든 인간들의 한탄이 뒤섞인 밑바닥의 냄새.

그곳에서 해인의 엄마, 명희는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모니터 화면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 씨, 한 끗 차이로……! 야! 돈 좀 더 빌려줘 봐!”

도윤은 대답 대신 명희의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섰다. 명숙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가, 눈앞의 남자를 보고 얼어붙었다

이제 소년의 티는 단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은, 제 아비를 닮아서 위압적이고 서늘해진 권도윤이었다.

“……도, 도윤이니?”

“그 돈으로.”

그의 턱 근육이 불거지자, 명희의 손에 쥐어진 칩들이 달그락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인이한테 갔어야 할 돈을 여기에 다 처박은 거야?”

도윤이 명숙의 앞에 놓인 도박 기계를 구두 끝으로 걷어찼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기계가 불꽃을 튀기며 멈춰 섰다.

“그, 그게…… 도윤아, 내가 다 설명할게. 해인이가 공부를 안 하겠다고 해서…….”

“나와.”

도윤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명희의 팔을 낚아챘다.

“아악! 아파, 도윤아! 이거 놓으라니까!”

명희의 비명이 기계 소음에 묻혔지만 도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짐짝을 끌 듯 명희를 지하 하우스 밖으로 끌고 나갔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명희가 발버둥을 쳤으나, 도윤의 손아귀는 미동도 없었다.

철문이 거칠게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두 사람을 덮쳤다. 도윤은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음침한 골목 벽으로 명희를 내동댕이쳤다.

“커헉……! 너, 너 미쳤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어머니였어!”

명희가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도윤은 천천히 수트 상의의 단추를 풀며 그녀의 앞에 섰다. 가로등을 등진 그의 그림자가 명희를 집어삼킬 듯 길게 늘어졌다.

“어머니? 내 어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

도윤이 낮게 읊조리며 안주머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명희의 발밑에 던졌다.

“열어봐. 당신이 10년 동안 내게서 받아 간 돈들에 대한 대여금 반환 청구 서류니까.”

명희의 눈이 커졌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확인하던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이게…… 이게 다 뭐야? 이건 그냥 네가 해인이 생각해서 준 돈이잖아!”

“증여가 아니라 대여였다고 주장하면, 법정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 내 변호사들이, 아니면 도박 중독인 당신이?”

도윤이 한 걸음 다가가 명희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였다. 비릿한 골목의 악취 사이로 도윤의 독한 향수 냄새가 섞여 들었다.

“해인이 대학 등록금, 해외연수비, 품위 유지비……. 내가 보낸 그 많은 돈이 해인이 입에 밥 한 숟갈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증거, 이미 다 확보했어. 빚쟁이로 쳐넣든, 사기로 처넣든 내 마음이라는 소리야.”

명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도윤은 그 비겁한 떨림을 차갑게 관찰하며 마지막 종이를 내밀었다.

“해결하는 건 간단해. 여기에 사인해. 채무 면제 조건으로 윤해인 인생에서 영원히 퇴장하는 거야.”

“…….”

“사인하는 순간 내게 진 빚은 물론 저 안에 있는 도박 빚까지 다 사라져. 하지만 다시 해인이 앞에 나타나는 날엔, 차용증 들고 당신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감옥에 처박아버릴 거야. 내 말, 알아들어?”

명희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서류와 도윤의 서늘한 눈동자를 오갔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미 딸의 얼굴보다, 제 목을 죄어오는 빚더미에서 벗어날 계산이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 도장 없는데. 지장 찍어? 아니면 사인?”

명희의 물음에 도윤은 대답 대신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서류 위로 툭 떨어뜨렸다.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이. 명. 희.

날아갈 듯 유려한 사인이 끝나자, 도윤은 미련 없이 서류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해인이 오늘부터 그 집구석으로 안 들어갈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도윤이 차갑게 내뱉고는 골목 끝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 매끄러운 세단의 엔진 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명희는 바닥에 떨어진 침을 퉤 뱉으며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그때, 지하 하우스의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색이 바랜 화려한 무늬의 셔츠 단추를 가슴팍까지 풀어헤친 사내가 명희를 향해 뛰어왔다.

“누님, 명희 누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까 그 남자 누구야? 사채라도 썼어?”

남자의 물음에 명희는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를 띄웠다. 조금 전까지 도윤의 기세에 눌려 하얗게 질렸던 얼굴은 어디 가고, 탐욕스러운 생기가 가득했다.

“아니, 사채는 무슨. 내가 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낳았지. 나 닮아서 얼굴이 얼마나 반반해?”

명희는 싱긋 웃으며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딸? 아, 아까 그 금수저 같은 놈이 누님 딸이랑 무슨 사이인데?”

“몰라, 지도 미쳐서 돈 보따리 싸 들고 온 거 보니까 조만간 우리 집 안방이라도 차지하겠지. 오늘은 나 먼저 간다.”

“아니, 왜! 나 누님이랑 술 한잔하려고 이때까지 기다렸는데.”

투덜거리는 남자를 뒤로하고 명희가 골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한결 가벼웠다.

“앞으로 우리 집으로 와. 나 이제 자유부인 됐거든. 나 혼자 살면 뭐 하니?”

“진짜? 와, 대박!”

“그래도 딸년이랑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도장 찍어줬으니까 이별 선물이라도 하나 받아야 할 거 아냐.”

명희는 들뜬 목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백화점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도윤과의 약속 같은 건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다.

“어디 돈 좀 있다고 천륜을 끊네 마네야……. 법대로 해봐라, 그게 되나. 겉모습은 컸어도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새끼.”

이별 선물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수탈을 위해, 그녀는 해인을 향해 뱀처럼 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배아파서 낳은 내 딸인데. 걔가 번 돈, 에미가 좀 가져가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자기들이 못하니까 괜히 나한테 지랄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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