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7 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03 06:36:38

뜨거웠다. 지나치게 뜨거워서 이성이 타액처럼 녹아내릴 것 같았다. 시야는 온통 흐릿했으나, 품 안에 엉겨 붙은 말랑한 살결의 감촉과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달큰한 살냄새만은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하으, 윽…….”

여자의 가느다란 팔이 도윤의 목을 뱀처럼 감아왔다. 도윤은 짐승 같은 갈증을 느끼며 그녀를 집어삼키듯 파고들었다. 질척하게 엉겨 붙는 마찰음과 가쁜 신음이 어둠 속을 난폭하게 헤집었다.

누굴까. 이채영인가? 아니면 예전에 스치듯 만났던 이름 모를 여자? 상관없었다. 누구든 지금 이 순간 제 욕망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는 이 존재를 남김없이 부서뜨리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뿐이었다. 도윤은 여자의 골반을 거칠게 틀어쥐고, 벼랑 끝까지 치달은 열기를 가장 깊은 곳까지 쏟아부었다.

“아흑! 너무, 깊어……!”

여자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지만, 터져 나오는 교성은 소름 끼치도록 자극적이었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파열음과 함께 모든 것이 하얗게 점멸하는 순간. 도윤은 본능적으로 여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사정의 순간, 쾌락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이 시야에 박혀들었다.

“……!”

눈물에 젖은 채 멍하니 저를 올려다보는, 윤해인이었다.

헉. 도윤의 상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하아, 하아, 하아…….”

폐부를 찌르는 거친 숨이 어둠 속에서 흩어졌다. 전신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심장은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요동쳤다.

꿈이었다. 전신을 휘감았던 그 지독한 열기가 순식간에 식어 내리며, 등골을 타고 소름 끼치는 한기가 흘렀다. 그러나 하반신을 적신 축축하고 끈적한 감각은, 이것이 단순한 악몽이 아님을 조롱하듯 증명하고 있었다.

속옷이 젖어 있었다. 낯 뜨겁고 수치스러운 흔적이었다. 도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꿈속에서 제가 그토록 난폭하게 유린했던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해인'이라는 사실이 날붙이처럼 심장에 박혔다. 하얗게 질린 채 저를 올려다보던 그 눈동자가.

“……미쳤냐.”

도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기며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돌았군, 권도윤. 진짜 미쳤어…….”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는 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혐오가 깔려 있었다. 차라리 찬물에 머리라도 박고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사내의 눈동자가 갈무리되지 못한 욕망과 처참한 자기혐오로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해인이 한 일은 거울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미쳤어, 윤해인. 어제 그걸 다 먹는 게 아니었어.”

부은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해인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닭한테 미안하지도 않냐’는 도윤의 비아냥을 듣는 게 아니었다. 찬물로 얼굴을 수차례 어푸어푸 씻어내도 속은 여전히 더부룩했고, 거울 속 얼굴은 낯설기만 했다.

평소보다 공을 들여 파운데이션을 펴 바르고, 눈가에 음영을 주던 해인의 손길이 문득 멈췄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오빠한테 잘 보일 이유가 뭐가 있다고. 립스틱을 입술 라인에 맞춰 바르려던 해인은 신경질적으로 화장품을 내려놓았다. 대충 입술 중앙에만 붉은 기를 입히고는 주방으로 나섰다.

‘얹혀사는 동안 밥값은 해야지.’

서툰 솜씨로 냉장고를 뒤졌다. 달갸프라이라도 내놓을 생각이었다.

‘먹을 거라곤…… 어차피 계란 밖에 없네.’

달걀이 팬 위에서 지글거리기 시작할 무렵,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얼른 뒤로 돌자, 완벽하게 핏이 잡힌 수트를 차려입은 도윤이 서 있었다. 넥타이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조여 맨 그는, 어제보다 훨씬 더 다가서기 힘든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해인은 알지 못했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그의 머리카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뭐 하는 거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해인의 뒷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평소보다 조금 더 거칠게 갈라진 음성엔 기묘한 날이 서 있었다.

“아, 일찍 일어났네? 아침…… 밥 좀 먹고 가라고.”

해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뒤집개를 고쳐 쥐었다. 하지만 도윤은 식탁에 차려진 것들을 흘낏 보더니, 이내 시선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마치 해인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철저히 눈을 피하는 그 태도에 해인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일찍 나가봐야 해. 이런 거 할 시간 있으면 대학 갈 준비나 해.”

“……뭐?”

도윤은 구두를 신으며 넥타이를 거칠게 고쳐 맸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손끝이 조금 헤맸으나 해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이나 문고리 같은 무기질적인 것들에 머물러 있었다. 해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새벽녘 꿈속에서 보았던 그 일그러진 미소가 겹쳐 보일까 봐 겁이 난 사람처럼.

“어제도 말했지만, 네가 하고 싶었던 게 뭔지부터 생각해. 부족한 게 있으면 학원부터 알아보고.”

그의 목소리에는 해인의 정성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앞으론 이런 거 하지 마. 가사 도우미 필요해서 데려온 거 아니니까.”

쾅.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요한 집안을 날카롭게 울렸다. 해인은 뒤집개를 꽉 쥔 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성껏 구운 토스트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지만, 속은 쓰라린 모멸감으로 뒤틀렸다.

“누가 안 가고 싶어서 안 갔나…….”

만나자마자 주구장창 저 놈의 대학 이야기뿐이다. 자신이 그동안 어떤 지옥을 구르며 버텨왔는지,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느라 꿈 같은 건 사치였다는 걸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꿈속에서조차 저를 유린했던 남자의 이면을, 해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재수 없어, 진짜.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하지?”

해인은 식어가는 달걀프라이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삼켰다. 입안에서 맴도는 달걀 조각이 모래알처럼 까칠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내게 오는 남자들   243 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심장을 때리는 감각적인 비트.밀라노 패션위크의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한 피날레 워킹이 끝난 직후, 백스테이지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완벽했어요, 서우! 당신은 오늘 밀라노 전체를 완벽하게 압도했어!”수석 디자이너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찬사를 쏟아냈다. 한국계 최초로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의 메인 뮤즈 자리를 꿰찬 강서우.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외신들의 취재 열기는 이제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어머니인 한 여사의 그늘과 그룹의 후계 구도라는 족쇄를 벗어던진 서우는, 이

  • 내게 오는 남자들   242 화

    일부러 들으라는 듯 꽤나 노골적으로 뱉어낸 음성이었다.하지만 샴페인 잔을 들고 지나가던 해인의 걸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사모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우아하게 방향을 틀었다.“상도덕이라는 단어는, 지금 같은 상황에 쓰는 게 아니죠.”갑작스러운 해인의 등장에 사모들의 입이 헙, 하고 다물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을 향해 해인이 맑은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서우 씨는 본인 커리어를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훌륭한 도약을 했고, 저는 제 가치를 완벽하게 알아봐 주는 최고

  • 내게 오는 남자들   241 화

    “권도윤…….”오빠라는 호칭조차 잊을 만큼, 날것의 감정이 섞인 젖은 이름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도윤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평소의 흐트러짐 없이 서늘했던 완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거칠게 풀어 헤쳐진 넥타이와 가쁘게 몰아쉬는 숨결이, 그가 얼마나 미친 듯이 이 먼 거리를 달려왔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왜 말 안 했어.”해인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그의 단단한 가슴을 퍽 쳤다.“바보같이 왜 혼자서 회장님을 상대한다고 지분을 다 매입해 놓고…… 왜 나한테 다 숨겼어!”툭. 마

  • 내게 오는 남자들   240 화

    눈물이 핑 돌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하지만 해인은 애써 붉어지는 눈시울을 꾹 누르며, 끝까지 사장님과의 실무적인 대화를 갈무리했다.완성된 다기의 퀄리티는 완벽했고, 론칭 준비는 이견 없이 순조로웠다.“그럼, 다음 주 론칭 파티 때 뵙겠습니다, 사장님.”“예, 조심히 올라가세요, 디렉터님!”사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공방을 나선 해인은 곧장 자신의 차로 향했다.철컥, 하고 차 문이 닫히며 완벽하게 혼자만의 공간이 확보된 순간.“하아…….”억눌러왔던 뜨거운 숨이 단숨에 터져 나왔다. 해인은 핸들에 이마를 댄 채 한참 동안

  • 내게 오는 남자들   239 화

    시간은 누군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갔다.“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해인 씨. 민 여사님 브랜드라니, 우리 이그니스 출신이라는 게 다 자랑스럽네.”“다 팀장님께서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저한테 첫 기회를 주신 곳이잖아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이그니스 사무실을 나서는 해인의 양손에는 가벼운 짐 상자가, 얼굴에는 홀가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동료들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치른 아름다운 이별이었다.서우와의 인연을 끊어낸 그날 이후, 해인의 삶은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라탔다.‘가장 먼저 한 일은 그

  • 내게 오는 남자들   238 화

    해인은 마른침을 삼켰다.[그래서, 다기는 잘 완성해서 바쳤어?][민 여사가 퍽이나 마음에 들어 했어?]제 작업물과 민 여사에게 얽힌 상황을 못마땅해하며 쏟아낼 가시 돋친 히스테리를 예상했다.하지만 서우의 쩍쩍 갈라진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우리 그만 만나. 헤어지자고.”“……뭐?”예상치 못한 이별 통보에 해인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서우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시선을 삐딱하게 내리깔았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입가에는 한껏 비틀린 조소가 걸려 있었다.“막상 내 옆에 둬 보니까…

  • 내게 오는 남자들   175 화

    이그니스의 사제 목걸이 줄에 매달린 사원증이 더는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까지, 딱 한 달이 걸렸다.그 4주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해인은 더 이상 첫 출근 날처럼 로비에서 길을 잃거나 긴장으로 어깨를 굳히지 않았다. 팀원들의 농담에 자연스럽게 웃음을 섞어 대답할 줄 알게 되었고, 점심시간이면 태준이나 동료들과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어린 시절 도윤과 헤어진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온전한 일상이었다.아니, 어쩌면 홀로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누려보는 평온일지도 몰랐

  • 내게 오는 남자들   174 화

    건너편 식당 문이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밤거리로 빠져나왔다.윤해인이었다.잠시나마 먹먹해졌던 도윤의 눈빛은,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온 남자를 확인한 순간 다시금 차갑게 가라앉았다.한태준이었다.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인의 곁에 서서 걸음을 맞췄다. 두 사람이 선선한 밤공기를 맞으며 편의점 쪽을 향해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어휴, 살 것 같네.”식당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선선한 밤공기가 몸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고기 굽는 연기와 강서우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서 벗어난 해인이 그제야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내게 오는 남자들   173 화

    어둡고 고요한 차 안.도윤은 시동이 꺼진 캄캄한 운전석에 앉아, 건너편 고깃집의 통유리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숨죽인 채 밖에서 대기한 지 벌써 두 시간째였다.‘대체 여기까지 왜 쫓아온 거야.’핸들에 이마를 기댄 채, 자조적인 헛웃음을 흘렸다.[먼저 가, 오빠]라는 차가운 말을 들었을 때, 얌전히 차를 돌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회식 장소로 향하는 일행의 뒤를 천천히 쫓아 기어코 이 어두운 골목에 닻을 내리고 말았다.‘술도 약한 녀석인데 회식 자리에서 취하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 내게 오는 남자들   171 화

    ‘분명히 그때 로비에서 해인이랑 부딪혔던 놈인데…….’사무실에서 떠올렸던 헛된 상상이 어쩌면 망상이 아니라 진짜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남들이 보기엔 그저 첫 출근한 신입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선배의 모습일지 몰랐다. 하지만 도윤의 눈에는 둘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가까워 보였다. 무엇보다 태준을 올려다보며 편안하게 웃어 보이는 해인의 표정이 도윤의 불안을 더 키웠다.결국 참지 못하고 거칠게 차 문을 열고 내렸다.“윤해인.”낮고 서늘한 음성이 웅성거리는 로비 앞의 소음을 단숨에 베어냈다. 동시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