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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uthor: 엣뀽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3 10:08:39

서린의 첫 출근 날이 되었다.

적금을 털어 새로 양복도 맞췄다.

비록 죽이고 싶은 쓰레기를 경호해야 하지만, 자본주의의 노예는 금융 치료만이 답이었다.

재현 선배가 출근하는 길에 태우러 오겠다고 했다.

‘나중에 차비 모아서 드려야겠다.’

머리는 언제나처럼 하나로 질끈 묶고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서린아! 여기야.”

검은색 세단에서 재현 선배가 창을 열고 서린을 불렀다.

양복을 차려입은 재현 선배는 정말 모델이 저리 가라였다.

‘키가 커서 양복 핏이 좋은 건가. 얼굴이 잘생겨서 양복이 멋있는 건가?’

아무 생각이나 해 버린 서린은 긴장한 채 차에 탔다.

“선배, 좋은 아침이에요!”

선배가 후훗 웃으며 물었다.

“회사에서도 선배라고 부를 거야?”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서린이 움찔했다.

‘뭐, 뭘 바라시는지요.’

비지땀이 삐질삐질 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쑤욱 다가오며 거리를 좁히는 재현 선배.

서린은 땀이 두 배로 나는 기분을 느끼며 발에 힘을 주어 엉덩이를 시트에 꽉 붙였다.

“안전벨트 해야지. 그리고 선배라고 불러도 돼. 난 그 호칭 좋아해.”

안전벨트를 매준 재현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매끄럽게 운전했다.

‘깜짝이야.’

드라마에서 왜 안전벨트를 매주는지 알겠다.

심장이 벌렁벌렁, 콧구멍도 벌렁벌렁거렸다.

선배의 달콤한 체취가 순식간에 코를 타고 심장으로 넘어갔다.

‘아니, 이 인간은 왜 갑자기 나한테 플러팅을 하고 난리래.’

출근 첫날부터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회사에 도착한 둘은 바로 시후를 만날 수 없었다.

직속 상사에게 ‘갑’과 ‘을’의 계약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교육을 이수한 뒤,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양복은 입지 말고 시후 또래로 보이는 옷을 입으라고 했다.

단순한 경호가 아니라 특수한 형태의 경호를 위해 선발된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은 정규직이 아니었다.

1년 계약직이었다.

대표의 안전을 위한 교육을 받으러 자리를 옮기던 중 에르딘과 마주쳤다.

이상하게 사회적 위치를 알고 나니 저 눈동자가 위에서 아래로 서린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싸가지 없는 새끼.’

재현 선배와 서린은 가볍게 목례한 뒤 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 순간 에르딘의 눈길이 재현 선배를 느릿하게 훑었다.

‘미친놈이 왜 눈깔을 저따위로 쳐다보지? 선배한테 뭔 영향 가면 안 되는데.’

서린은 한껏 불안해졌다.

그 후로 이론 교육은 그야말로 지루함의 극치였다.

어느새 서린은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탁자에 부딪히려는 서린의 머리를 재현 선배가 ‘어이쿠’ 하며 손으로 받아주었다.

아, 쓰읍.

침 좀 닦고.

“선배, 고마워요.”

“됐어, 뭘.”

자상한 사람.

졸리지도 않은가.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지?

적과의 사투.

아니, 잠과의 사투를 마친 서린은 오랜만에 체육관으로 향했다.

일하기 전에 녹슨 몸에 기름칠 좀 해야지.

오랜만에 타격기 위주로 연습했다.

​

상대는 다 달랐지만 떠오르는 얼굴은 한 사람뿐이었다.

줘 패고 싶은 에르딘.

상상에서 패는 건 괜찮지 않나요?

‘이건 칼빵 값! 이건 독차 마신 값! 아까 눈깔 값!’

서린은 열과 성을 다해 체육관 관원들을 죽어라 팼다.

그날도 서린은 관장님에게 쫓겨났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서린은 곳곳에 남아 있는 에르딘의 잔재를 보았다.

칫솔, 양말, 속옷, 남자 옷…….

싹 다 불살라 버릴까?

하다가 주섬주섬 박스 하나에 모아 넣었다.

혹시!

혹시 모르니까.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고!’

발로 박스를 구석에 지익 차 넣었다.

씻고 나와 침대로 다이빙한 서린은 낮에 본 에르딘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 에르딘이랑 비슷했지…….’

아, 그러고 보니 이쯤이면 『검은 장미의 가시』가 나오지 않았을까?

내일 퇴근길에 사서 봐야겠다.

서린은 좀처럼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눈을 감았다.

다음 날도 재현 선배는 칼같이 집 앞에 와 있었다.

오늘은 바로 벨트 매고 출발!

재현 선배가 기분 좋게 ‘하하하하’ 웃었다.

‘양복 말고 사복 입은 선배도 너무 멋있어.’

지금 이 광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느껴졌다.

오늘도 출근길이 너무 행복했다.

둘은 회사에 들어가 무전기를 하나씩 받아 옷 안으로 숨기고 귀에는 이어셋을 걸었다.

오늘부터 에르딘을 본격적으로 경호하게 되었다.

[오늘 일정은 대원 그룹 둘째 따님과 식사 후 자선회 만찬 일정입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동선 먼저 파악해 주세요.]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재현 선배가 먼저 동선을 파악하고 서린이 밀착 경호를 하기로 했다.

서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꼭대기 층에 자리한 에르딘의 사무실 앞으로 갔다.

그의 비서가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긴 웨이브 머리에 큰 눈을 가진 예쁜 비서 언니는 자료를 탁탁 챙겨 윤시후 대표의 방문을 톡톡 두드렸다.

“들어와요.”

처음부터 윤시후였던 것처럼 에르딘은 존재감을 뿜어냈다.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는데?

신기한 게 많을 텐데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잡생각을 조금 하다 보니 곧이어 에르딘과 비서가 방에서 나왔다.

헉.

북부 공작이 양복 입었어.

젠장.

넌 왜 이렇게 잘생긴 거니.

인정한다.

잘생김을 뿜뿜하며 제 갈 길 가는 에르딘의 뒤를 서린이 바짝 쫓아갔다.

[대표님, 출발하십니다.]

[확인했습니다. 식사 장소 이상 없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셋은 숨 막히는 정적을 경험했다.

‘스몰 토크 같은 건 안 할 거니?’

북부 공작은 괜히 북부를 맡은 게 아닌가 보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오는 듯 주변이 늘 서늘했다.

서린은 차 문을 열어 에르딘을 태운 뒤 앞쪽에 자리했다.

뒤에서는 비서와 뭐라 뭐라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원 그룹 둘째 딸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식사 장소에 도착하자 서린이 먼저 재빨리 내려 주변을 확인했다.

차 문을 열자 비서와 에르딘이 내렸다.

‘에르딘이 내리면서 곁눈질로 나를 본 것 같은데…… 착각인가?’

‘나 째려본 거야, 지금?’

건수 하나 걸려라, 이런 건가?

서린은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너는 지금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것이야.’

문을 쾅 닫고 빠른 걸음으로 에르딘의 앞을 경계하며 나아갔다.

엘리베이터를 잡고 비서와 에르딘을 먼저 태운 뒤 나만 타면 되는데.

젠장.

발이 틈에 걸렸다.

어어, 자빠진다. 젠장.

‘잠자는 사자의 콧터얼!’

망했다.

그 순간 에르딘이 재빨리 서린을 껴안아 단단히 잡아주었다.

그의 단단한 몸에 안긴 서린이 눈을 끔뻑거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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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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