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황태자비가 될 생각은 없었다. 엘로디아가 원하는 건 오직 자신의 이름을 건 도자기를 만드는 것뿐. 그래서 황태자비 선발전에서 어떻게든 탈락하려 했는데, 전날 밤 몰래 찾은 황실 도요원에서 장작을 나르게 했던 남자가 황태자 라시엘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함께 빚은 잔에서 수백 년간 사라졌던 황실의 마력이 깨어난다. 잔이 완성될수록 통증과 체온, 촉각에 이어 은밀한 욕망까지 공유되기 시작하고, 엘로디아는 황실에서 지워진 자신의 가문과 혼인잔의 비밀에 다가간다. “황태자비는 싫다고 했지. 그런데 내가 싫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는데.”
view more“안정화 재검사 기록도 있나요?”기록관리관이 색인을 확인했다.“관련 시험 기록이 별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이번에 볼 수 있을까요?”“검사 시행 여부와 결과 분류까지만 가능합니다.”“그것부터 보겠습니다.”안정화 재검사는 세 차례 예정되어 있었다.첫 번째 검사.시험 종료 후 사흘째.결과.잔류 마력결 기준치 초과.두 번째 검사.시험 종료 후 열흘째.결과.감소 확인. 기준치 초과 상태 유지.세 번째 검사.시험 종료 후 스무째 날.엘로디아의 시선이 멈췄다.검사 미실시.그녀는 비고란을 확인했다.보관 장소 변경에 따른 일정 재조정.“보관 장소가 바뀌었어요?”기록관리관은 원본의 다음 부분을 확인했다.“장소 변경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재되어 있습니다.”“실제로 옮겼다는 뜻인가요?”“그것은 별도의 이송 확인 기록을 봐야 합니다.”엘로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또 구분해야 할 것이 생겼다.장소 변경 지시.실제 이동.이동 완료 확인.서로 다른 절차다.그녀는 수첩에 적었다.제17호 안정화 재검사 — 1·2차 기준치 초과, 3차 미실시.3차 미실시 사유 — 보관 장소 변경에 따른 일정 재조정.그리고 다음 줄.실제 이동 여부 미확인.엘로디아는 기록관리관을 바라봤다.“보관 장소 변경 지시서도 신청할 수 있나요?”“예. 다만 당시 보안구역에 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열람 범위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그럼 실물의 이동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신청하겠습니다.”그녀는 신청서를 받아 적었다.보관 장소의 구조나 보안 설비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제17호 갑발이 실제로 어디까지 이동했는지.그 사실만 확인하면 됐다.점심시간이 되자 엘로디아는 열람실 밖으로 나왔다.로제가 챙겨준 빵을 꺼내자 조금 웃음이 났다.두 개.역시 하나 더 넣어두었다.엘로디아는 첫 번째 빵을 먹으며 오늘 확인한 내용을 정리했다.시험 종료 확인자는 오르텐 베일.임시 보관 접수자는 레이몬드 크레인.혼인도공에게 인계할 예정이었
황실 기록관리국에서 열람 승인서가 도착한 것은 신청서를 제출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엘로디아는 봉투를 열기 전에 먼저 작업대 위에 놓인 물잔을 확인했다. 에밀 하르트에게 전달할 예정인 잔이었다. 최종 소성을 마쳤고, 제작자 자체 검사에서도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용자가 직접 펜촉을 씻어보는 시험은 아직 남아 있었다.“오늘은 기록관리국에 가시겠네요?”로제가 봉투를 보고 물었다.“승인이 났으면.”엘로디아는 조심스럽게 봉인을 뜯었다.제17호 갑발 시험 종료 후 관리 책임 및 인계 상태 확인서 — 감독하 부분 열람 승인.그 아래에는 열람 제한 사항이 적혀 있었다. 당시 시험관리 담당자의 직책과 업무상 서명은 확인할 수 있지만, 다른 사건과 연결된 비공개 부속 기록은 열람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엘로디아는 승인서를 끝까지 읽은 뒤 숨을 내쉬었다.“됐어.”“찾으시던 문서예요?”“응. 그런데 이걸 본다고 갑발이 어디 있는지 바로 알게 되는 건 아니야.”“그래도 보러 가실 거죠?”“당연하지.”로제는 웃으며 외투를 가져왔다.“그럼 점심도 챙겨드릴게요. 지난번처럼 기록 읽다가 식사 시간을 놓치시면 안 되니까요.”“이번에는 안 놓칠 거야.”“아가씨가 그 말씀 하실 때마다 제가 빵을 하나 더 넣게 되더라고요.”엘로디아는 대답하지 못했다.대신 얌전히 가방을 열었다.로제는 빵 두 개와 작은 과일 상자를 넣어주었다.“기록은 도망가지 않지만 아가씨 배는 고파지니까요.”“알았어.”엘로디아는 웃으며 가방을 닫았다.그러고는 작업대 위의 물잔을 한 번 더 돌아봤다.자기가 만든 물건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지도, 언제 검수를 받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이백 년 전 만들어진 제17호 갑발은 달랐다.시험을 마쳤다는 기록이 있다.혼인도공에게 인계한다는 기록도 있다.하지만 실제 인계가 완료됐다는 확인은 없다.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물건을 보관했을 것이다.적어도 마지막으로 확인된 순간까지는.오
저녁 무렵 라시엘이 찾아왔을 때, 엘로디아는 수첩을 두 권 펼쳐놓고 있었다. 하나는 황실 기록. 다른 하나는 앞으로 확인할 민간 거래 기록. 라시엘은 작업대 앞에 서서 두 권을 번갈아 봤다. “오늘은 장부가 둘이네.” “네.” “내일은 셋이 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어요.” 라시엘이 웃었다. 엘로디아는 그에게 오늘 확인한 내용을 설명했다. 계약 종료 당시 반환된 도구. 황실에 남은 시설. 정산된 재료. 그리고 별도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 제17호 갑발. “제17호가 있었어?” 라시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목록에 이름은 있었어요. 그런데 실물이 어디 있는지는 안 나와요.” “르메르로 돌아간 건 아니고?” “그것도 몰라요.” 엘로디아는 수첩을 펼쳤다. “반환·인계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만 확인했어요. 별도 관리 상태였다고요.” 라시엘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그 관리 기록을 찾아야겠네.” “네. 문서 번호는 신청해뒀어요.” “잘했어.” 엘로디아는 그를 보다가 조금 웃었다. “전하, 오늘은 왜 안 놀려요?” “뭘?” “또 기록 찾는다고.” 라시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잖아.” “그릇 만드는 걸 더 좋아해요.” “알아.” 그는 작업대 위의 에밀 물잔을 봤다. “그건 완성됐어?” “아직요. 사용 확인을 받아야 해요.” “잘됐으면 좋겠네.” “저도요.” 엘로디아는 잠시 잔을 바라봤다. 그러다 말했다. “전하, 저 오늘 조금 기뻤어요.” “왜?” “에델리아가 자기 도구를 돌려받았더라고요.” 라시엘은 그녀를 가만히 봤다. “그게 그렇게 좋았어?” “네.” 엘로디아는 웃었다. “황실에서 더 이상 주문하지 않더라도, 자기 도구가 있으면 다른 그릇을 만들 수 있잖아요.” “가마는 필요하겠지만.” “맞아요. 그래서 그다음 기록도 찾아보려고요.” 라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기록?” “르메르가 황실 밖에서 그릇을 팔았는지요.” 그녀는 조금 신이 나서 말을
예외 처리 목록은 생각보다 짧았다.처음 두 항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파손되어 반환할 수 없는 측정 기구.사용 과정에서 소모된 시험편.각각 처리 사유와 정산 여부가 적혀 있었다.그리고 세 번째.엘로디아의 시선이 멈췄다.고내화 갑발 제17호.드디어.나왔다.그녀는 숨을 멈춘 채 다음 칸을 읽었다.반환·인계 대상 제외.사유.별도 관리 상태.엘로디아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별도 관리.그 말은 너무 넓었다.황실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다른 기관으로 이관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시험 결과를 검토하는 동안 실물을 따로 두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엘로디아는 다음 칸을 봤다.실물 소재 — 본 목록에서 확인 불가.“…….”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찾았다.그런데.아직 찾지 못했다.제17호 갑발이 반환·인계 목록에서 빠진 이유는 확인했다.별도 관리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별도 관리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는 이 문서만으로 알 수 없었다.엘로디아는 수첩에 적었다.제17호 갑발 — 계약 종료 당시 반환·인계 대상 제외.사유 — 별도 관리 상태.실물 소재 — 해당 목록에서 확인 불가.그리고 마지막에.르메르 사문서고에 실물이 있다는 증거는 아님.펜을 내려놓았다.조금 아쉬웠다.솔직히 말하면.많이.아쉬웠다.하지만 그 감정 때문에 없는 답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엘로디아는 문서를 다시 살폈다.예외 처리 목록의 오른쪽 끝.아주 작은 칸.처리 근거 문서.번호가 있었다.그녀는 그것을 옮겨 적었다.“이 번호로 별도 문서를 신청할 수 있나요?”기록관리관이 확인했다.“가능합니다. 다만 현재 어느 기록군에 보존되어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엘로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먼저 소재부터 확인하겠습니다.”갑발의 소재가 아니라.갑발에 관한 문서의 소재.지금은 그 순서가 맞았다.그다음에 확인한 것은 시험기물과 관련된 기록류였다.엘로디아는 여기서 또 하나의 차이를 발견했다.실물과 문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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