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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후회
너무 늦은 후회
Author: 일세종환

제1화

Author: 일세종환
"임서연이 돌아왔으니 이제 형수는 어떡해?"

집 앞, 열린 문틈 사이로 남편 심인혁과 친구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들려왔다.

퇴근한 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던 강나래는 멈칫하고 말았다.

임서연? 보름 전 그녀의 프로젝트에 낙하산으로 합류한 전문가의 이름과 똑같았다.

절묘한 우연이었다.

방 안, 심인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형,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첫사랑인 임서연을 잊지 못했잖아. 그렇게 아껴 쓰면서 매달 남몰래 7억 원을 임서연에게 보내 연구를 도왔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임서연은 이제 국가 기밀 프로젝트의 전문가로 특별 임명되었어. 지금 임서연을 찾아가 입찰에 관해 물어본다면 형은 성우테크 대표 자리를 완전히 꿰찰 수 있는 거야. 아무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할 거라고."

강나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7억 원이라고?

매달 그녀에겐 70만 원밖에 주지 않는 심인혁이 다른 여자에겐 매달 7억 원을 주었다고?

하지만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너무나도 똑똑히 강나래의 귀에 꽂혔다. 심인혁 역시 반박하지 않았다.

순간 강나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심인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서연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됐어, 서연이가 퇴근할 시간이야. 데리러 가봐야 해. 탁자 위의 것들은 치우지 않아도 돼. 나래가 돌아와서 정리할 테니까."

"형, 형수님은 정말 현모양처야. 집 안을 깔끔하게 정리할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살뜰하게 챙기잖아. 정말 형수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적 없어?"

강나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였다.

심인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난 강나래처럼 집안일만 하면서 남편만 바라보는 현모양처는 좋아하지 않아. 서연이처럼 본인의 일에 몰두하며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어낸 빛나는 여자만 좋아하지."

그 말은 마치 칼날처럼 강나래의 가슴을 찔렀다.

강나래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옆으로 축 늘어뜨린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럼 애초에 왜 강나래를 쫓아다닌 거야? 게다가 결혼까지 하고."

"그땐, 서연이가 기어코 나를 버리고 출국했잖아."

"임서연을 화나게 하려고 그런 거란 말이야?"

심인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묵인이었다.

"이제 임서연이 돌아왔으니 강나래와 이혼할 거야?"

그의 친구는 이제 강나래를 형수님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다시 침묵에 빠진 심인혁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강나래는 날 아주 잘 챙겨 주었어. 지난 2년 동안 위병이 도진 적도 없었지. 엄마와 여동생의 일도 잘 처리해 주고 있고. 집안일 때문에 신경을 써본 적도 없어."

심인혁은 성우테크 창립자 가문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대표 자리에 앉게 된 건 오로지 접대 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셔가며 이루어 낸 노력의 결과였다. 때문에 젊은 나이에 벌써 위병을 달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게 마음 아팠던 강나래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 위에 좋다는 보양식을 만들었고 저녁 다섯 시가 되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먹일 국을 끓이고 저녁을 준비했다.

남편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음식을 성우테크로 가져다주고 다시 연구소로 갔다.

결혼 4년 내내 그런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비밀리에 진행되던 '자체 개발 칩' 프로젝트가 4년 만에 드디어 성공을 이루어 냈다.

연구소는 곧 대외적으로 입찰 경쟁을 열 예정이었다. 칩이 시장에 나오기만 한다면 나라와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 프로젝트의 핵심 책임자인 강나래는 적지 않은 금액의 상금은 물론 국가급의 명예도 얻게 될 것이다.

강나래는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그 희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나래는 상금으로 남편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결정까지 마쳐 두었다. 조금 더 귀한 선물로 준비해야 성우테크의 대표인 심인혁의 신분에 걸맞을 것이다.

심인혁이 말을 이었다.

"서연이처럼 똑똑하고 빛이 나는 여자는 번잡하기 그지없는 결혼생활에 묶여 살아서는 안 돼. 마음이 아파서 그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어."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분명할 줄이야. 가슴이 아려왔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씁쓸함이 입가에 맴돌았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강나래는 몸을 돌려 구석에 숨어버렸다.

그들의 기척이 멀어지고 나서야 강나래는 천천히 집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심인혁은 강나래를 아내가 아닌 도우미라 여기고 있었다.

강나래는 청소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그저 자고 싶을 뿐이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날들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

처음 심인혁을 만났을 때, 그는 비를 맞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마침 우산이 있었다.

다시 심인혁을 만났을 때, 그녀는 차를 타기 위해 급히 달려가고 있었고 그는 마침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음, 그들은 자꾸만 우연히 마주쳤다.

은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강나래의 곁을 지킨 사람은 심인혁이었다.

보육원으로 인사를 갔을 때도 심인혁이 함께였다.

프로젝트가 멈추고 직업을 잃었을 때, 심인혁은 괜찮다고 강나래를 안아주며 그녀에게 청혼했다.

월급을 고작 15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 말단 직원이 되었을 때, 심인혁은 웃으며 강나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것만으로도 아주 대단한 것이라 말해주었다.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강나래는 흐리멍덩하게 잠에 들었다.

여섯 시, 늘 그렇듯 남편에게 아침밥을 해주기 위해 정확한 시간에 눈이 떠졌다.

강나래의 두 눈엔 온통 피곤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객실의 이불도 누군가 사용했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심인혁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입구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나래는 고개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심인혁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외투를 건네고 허리를 숙이며 강나래를 안으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난 건지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젯밤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느라 온통 담배와 술 냄새가 가득 배었어. 그러니 포옹은 생략하자."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심인혁은 항상 강나래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면서 말이다.

그제야 강나래는 알아차렸다. 심인혁과의 포옹이 보름 전이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보름 동안 두 사람은 같은 침대를 쓰고 있었지만 각자 떨어져 잠을 청했다. 강나래는 그의 회사일이 너무 고단해 포옹해 줄 기력마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우연찮게도 보름 전 임서연이 다시 돌아왔다.

이미 낌새가 보였던 것이다.

강나래는 고개를 숙였다. 긴 속눈썹이 그녀의 슬픔을 가려주었다.

소파에 앉은 심인혁은 어지럽기 그지없는 탁자를 보며 말했다.

"왜 치우지 않은 거야?"

"몸이 좋지 않아서 오자마자 잠들었어."

희미하게 악취가 풍겨왔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강나래는 허리를 숙여 탁자를 정리하며 말했다.

"치우고 나면 아침을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배달시켜 먹어."

갑자기 심인혁은 강나래가 어딘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결혼 4년 동안, 출장을 간 날을 제외하면 강나래는 매일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국 하나에 요리 네 가지, 매주 다른 메뉴들이었다.

'오늘 아침엔 왜 이러는 거지?'

"어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 때문에 화난 거야?"

남자는 갑자기 진지하게 그녀를 불렀다.

"여보."

여보라는 호칭에 강나래의 마음은 더욱 괴로워졌다.

심인혁은 다정하고 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갓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남자는 갑자기 강나래의 귓가에 '여보'라고 속삭였다. 부끄러움에 귓불이 달아오른 그녀는 결혼 전까진 함부로 호칭을 고치면 안 된다 선을 그었다.

심인혁은 강나래의 뜻에 따라 결혼식을 올린 그날 밤이 되어서야 호칭을 고쳤다.

그 뒤로 항상 여보라 불렀다.

"됐어, 여보 화내지 마. 봐, 나 당신 말을 아주 잘 들었어. 친한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심인혁은 강나래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나 샤워하고 올게."

강나래는 가볍게 '응'하고 대답하고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심인혁은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보, 당신 오늘 좀 이상해."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가 봐."

강나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얼른 샤워하러 가라고 그를 재촉했다. 심인혁은 갑자기 스카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로고를 보니 꽤 값비싼 브랜드의 것이었다.

"어제 지나가다가 봤는데 당신 생각이 나서 샀어."

말을 마친 남자는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있던 강나래는 스카프를 파란색의 에코백에 넣고는 출근길에 올랐다.

'자체 개발 칩' 프로젝트는 은사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얼마간 중단이 되었었다. 다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강나래는 프로젝트의 핵심 책임자가 되었다. 국가 기밀이었기 때문에 은사님의 아내인 오연홍은 그녀가 하성그룹의 말단 행정직에 위장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심인혁은 여태 강나래가 월급 150만 원을 받는 보잘것없는 회사원이라 알고 있었다.

강나래는 매일 집을 나선 뒤 하성그룹의 동쪽 대문으로 들어갔다. 넓디넓은 과학기술원을 지나 다시 서쪽 대문을 나서면 연구소가 그녀를 위해 고용한 기사가 매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실에 도착한 강나래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이 될 무렵, 참지 못한 성 교수가 물었다.

"저녁에 임서연 씨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나서 그러는 거야?"

"임서연?"

강나래가 고개를 들었다.

성 교수는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그 이름을 기억하다니! 네 남편 말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어. 모두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직 두 사람만 만난 적이 없잖아. 더 이상 만남을 미룬다면 혼자 유별나 보일 텐데."

강나래는 미간을 찌푸렸다.

심인혁을 처음 만났을 때 강나래는 그가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상처를 헤집고 싶지 않았기에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4년 동안 심인혁 역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한 번도 그 여자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벌써 오래전에 끝난 일이라 생각했다. 과거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어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심인혁은 그 여자를 잊기는커녕 아내 몰래 돈까지 대주고 있었다.

강나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 교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말아 물었다. 강나래가 임서연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그녀의 은사님이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던 것이었고 지금은 강나래의 심혈이 잔뜩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이 프로젝트에 끼어든 아무개가 불편했을 것이다. 임서연이 이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한 것만으로도 대범한 처사였다.

그런 강나래에게 임서연과의 식사를 강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성 교수는 그런데도 강나래에게 귀띔했다.

"이번엔 거절하지 마. 김 어르신께서 불쾌해하실 거야."

김 어르신은 연구소 내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이자 임서연의 외할아버지였다.

강나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비서의 뒷담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팀원들은 낙하산으로 들어온 임서연에게 불만이 많았다. 임서연의 이력은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연구소 직원들 역시 그녀 못지않게 훌륭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4년 동안 숱한 고생을 해왔다. 한두 달 뒤면 그 결과물을 세상에 공개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시점에 임서연이 전문가라는 신분으로 갑작스럽게 프로젝트에 끼어든 것이다. 연구 과정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으면서 명예를 함께 누리려 하다니. 논문에 제2 저자로 이름을 끼워주는 것보다도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강나래는 외부 전문가가 연구소의 중요한 구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임서연은 한 번도 그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강나래는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작업복을 벗은 임서연이 갈색의 가죽 외투를 걸치더니 밤색의 머리를 찰랑이며 값비싼 흰색 악어가죽 백을 둘러메고 있었다.

오늘 아침 심인혁이 그녀에게 선물한 스카프와 같은 브랜드의 것이었다.

강나래는 저도 모르게 가방에서 스카프를 꺼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마침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온 비서 이세희가 그 스카프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선배, 상금으로 그 브랜드의 가방을 산 거예요?"

"아니."

강나래는 그녀를 쳐다보며 의아한 듯이 말을 이었다.

"가방 안 샀어."

이세희가 말했다.

"아... 스카프 있길래 가방 산 줄 알았죠. 보통 이 브랜드 스카프는 실적 채우기용으로 사잖아요."

"실적 채우기...?"

강나래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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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늦은 후회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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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너 취했었어. 나에겐 널 밀쳐낼 힘도 없었고." 침대에서 내려온 심인혁은 마른세수를 했다. 마치 지금 상황이 곤란한 사람처럼 말이다. 심인혁과 임서연은 그와 강나래의 침대에서 몸을 섞었다. "씻고 올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임서연은 이미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다. 임서연은 그를 쳐다보며 볼을 붉혔다. "인혁아, 너 어젯밤에 너무... 마치 오랫동안 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어." 말을 마친 임서연은 다가와 그를 안았다. 심인혁은 고개를 숙이고 임서연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나날동안 그리워했던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 "나래와는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알아." 임서연은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인혁아, 네 마음속엔 항상 내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 내 마음속에도 온통 너뿐이야." 임서연은 고개를 들어 심인혁의 입술에 입 맞췄다. 심인혁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곧 뭔가 떠오른 듯이 미소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어젯밤 나래가 집으로 왔었어?" 임서연은 그 이름을 듣기가 싫었다. 그녀는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심인혁이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뭐 하러 갔는지 누가 알겠어." 심인혁은 갑자기 임서연의 손을 풀더니 거실로 가 휴대폰을 찾았다. 문자도 전화도 와 있지 않았다. 하. 잘하는 짓이야. 그는 화가 난 나머지 휴대폰을 쥔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인혁아, 나래 씨를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냐고?" 심인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딜 가든 마음대로 하라지. 광명시에는 딱히 나래가 갈 데도 없어. 보육원 아니면 오연홍에게 찾아갔을 거야." "인혁아, 너 나래 씨를 좋아하게 된 거야?" 그에게 다가간 임서연의 표정은 무척 서글펐다. 순간 멈칫하던 심인혁이 대답했다. "허튼 생각 하지 마. 그저 내

  • 너무 늦은 후회   제26화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강나래와 심인혁의 집? 아니면 임서연이 묵고 있는 곳? 임서연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마 출퇴근 시간에 편하게 임서연을 데려다주기 위한 심인혁의 뜻이었을 것이다. 다정하게 대하는 심인혁의 태도가 바로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다정함은 물론 돈도 주었고 그녀를 지지해 주었으며 지켜 주었다. 임서연에게는 숱한 것들을 주었다... 아내인 강나래는 영영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강나래는 명분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서 심인혁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강나래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속인 걸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강나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어차피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마쳤다. 이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면 이혼 접수가 완료될 것이다. 이 늪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편할 테니까. 갑작스럽게 돌아온 강나래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다. 임서연이 심인혁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 뒤, 심인혁은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인혁아, 이쪽이야." 심인혁은 휘청거리며 끝내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임서연은 알고 있었다. 심인혁이 강나래와 살고 있는 그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임서연을 안고 여보를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임서연은 그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심인혁과 강나래의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심인혁을 소파에 눕히자마자 심인혁이 임서연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아." "임서연." 이번에는 그녀의 이름을

  • 너무 늦은 후회   제25화

    "호텔에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었어요. 제가 층수를 누르는 걸 깜빡해서 대표님께서 귀띔해 주셨고요." 사실 강나래는 이 일을 잊고 있었다. 하준혁이 귀띔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하지현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였군요! 우 매니저가 말한 사람이 바로 언니였어요! 예쁜 언니, 우리 오빠, 우리 오빠가... 세상에! 우리 오빠가 드디어 눈을 떴군요!" "뭐라고요?" 강나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현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날 언니가 묵었던 호텔이 우리 가문 소유예요. 오빠가 특별히 호텔 매니저에게 언니를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한 다음에..." 그리고 우 매니저는 당장 그 사실을 두 사람의 부모님에게 알렸다. 오빠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결혼을 재촉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웬 여자를 걱정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동했을 것이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날 낯선 이로부터 받았던 호의가 하준혁이 베푼 것이었다니. 강나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는요, 그러니까..." '됐다, 꾸며내지도 못하겠네.' 하지현은 변명을 포기했다. 하지현은 깨끗한 수건과 칫솔을 가져다주며 유쾌하게 말했다. "예쁜 언니, 일찍 자요~" 하지현은 문을 닫자마자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이렇게 좋은 기회에 왜 언니를 우리 집으로 보낸 거야? 두 사람 다 성인이잖아. 성인 둘이 서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사랑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데. 도대체 알기는 아는 거야?] 하준혁이 답장을 보냈다. [너희 집으로 보내지 않으면. 내일 강나래 씨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지현이 말했다. "음? 언니의 부모님은 엄한 분이시구나?" 타자를 하려던 그때 하준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어린애는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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