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채린이 강시온 옆에서 낮게 말했다.
“혼자 해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시온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압니다.”
그가 한 걸음 움직이려 하자 한채린이 그의 재킷 소매를 가볍게 잡았다.
위험한 곳에서 혼자 앞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확인하는 짧은 행동이었다.
강시온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자리에 섰다.
레오나르드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강시온이 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거짓말하지 마.”
“정말입니다.”
강시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다만 제가 먼저 포기하지 않았던 건 압니다.&rdq
다음 날 오전 10시 20분.대통령 관저 집무실.강시온은 소파에 앉아 폐막 연설문을 읽고 있었다.“너무 거창하지 않습니까?”맞은편에 있던 한채린이 물었다.“어느 부분이요?”강시온이 태블릿을 돌렸다.“‘대한민국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이끄는 중심 국가가 될 것입니다.’”“외교팀에서 작성한 문장입니다.”“그래서 저랑 안 맞나 봅니다.”“어떻게 바꾸고 싶으십니까?”강시온은 잠시 생각했다.“중심이라는 말을 빼고 싶습니다.”“이유는요?”“이번에 알았잖습니까.”강시온이 그녀를 바라봤다.“혼자 앞에 서는 것보다 옆에 누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한채린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대한민국이 세계 위에 서겠다는 말처럼 들리는 건 싫습니다.”“그럼 어떤 나라가 되고 싶으십니까?”“사람들이 필요할 때 모일 수 있는 곳.”강시온이 말했다.“누가 위에 있는지가 아니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이요.”한채린이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게 훨씬 각하답습니다.”강시온이 고개를 돌렸다.생각보다 가까웠다.한채린은 아무렇지 않게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그럼 이 문장도 수정하는 게 좋겠습니다.”강시온은 화면보다 그녀를 보
한채린은 다음 동선을 확인했다.“윤 대표님은 각하라는 사람보다 판단을 의심했습니다.”강시온이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한 실장님은 처음에 저라는 사람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까?”“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하십니까?”“윤 대표님한테 인정받고 나니까 욕심이 생겼습니다.”“무슨 욕심입니까?”“한 실장님한테는 언제부터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어서요.”한채린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지금은 업무 중입니다.”“업무 끝나면 물어봐도 됩니까?”“그때까지 기억하고 계시면요.”“그건 절대 안 잊습니다.”한채린이 한 박자 뒤에 덧붙였다.“대신 각하께서 먼저 하셔야 할 말씀도 잊지 마십시오.”강시온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피하지도 않았다.오후 5시 20분.World Harmony Fest 폐막 행사장.아침까지 비어 있던 객석은 각국 대표단과 초청 인사들로 가득 찼다.무대 위 조명이 하나씩 켜졌다.폐막식은 이제 마지막 순서를 향하고 있었다.강시온은 무대 옆에서 객석을 바라봤다.“다시 다 모였네요.”“예. 참가국 전원 참석했습니다.”객석 한쪽에는 윤도현도 약속대로 앉아 있었다.강시온과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곧 행사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다음 날.오전 9시 10분.World Harmony Fest 행사장.한때 폭발과 대피 방송으로 멈췄던 광장은 다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철거됐던 안내 시설이 돌아왔고, 각국 실무진은 폐막 행사를 위한 마지막 동선을 확인하고 있었다.강시온은 메인 무대 앞에서 복구 현황을 살폈다.“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요.”한채린이 태블릿을 확인했다.“참가국들이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오늘 안에 모두 돌아옵니까?”“예. 마지막 대표단도 오후 전에 도착합니다.”강시온은 텅 비어 있던 객석을 바라봤다.끝까지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정말 다시 사람들이 모일지는 확신하지 못했다.“각하, 잠시만요.”한채린이 태블릿을 내려 두고 강시온의 넥타이에 손을 뻗었다.비뚤어진 매듭이 몇 번의 손길로 반듯해졌다.강시온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제가 할 수 있는데요.”“이미 끝났습니다.”강시온이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가까이 있던 행사 관계자 둘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사람 많은 데서 이러셔도 됩니까?”“넥타이를 바로잡은 것뿐입니다.”“그건 저도 압니다.”“그런데 왜 그러십니까?”강시온이 입가를 눌렀다.“저만 신경 쓰면 될 것 같습니다.”“보기 드문 장면이군요.”뒤에서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 비서관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민석님도 알아봤어요?”한채린이 낮게 말했다.“유진아.”“아무 말도 안 할게.”서유진은 다시 한채린을 바라봤다.“무슨 일이 있었길래 네가 이렇게 편해 보이나 해서.”한채린의 표정이 순간 멈췄다.늘 긴장을 놓지 않던 그녀의 얼굴이 전보다 편안해져 있었다.“별일 없었어.”한채린이 짧게 답했다.“각하와 함께 잘 해결하고 돌아왔어.”서유진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됐어.”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두 분 식사 계속하세요.”“방해 아닙니다.”강시온이 말하자 서유진이 웃었다.“그 말씀도 지금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데요.”“서유진.”“갈게.”문이 닫혔다.강시온이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원래 저렇게 눈치가 빠릅니까?”“쓸데없는 부분에서만 그렇습니다.”“그럼 틀렸습니까?”한채린은 다시 도시락으로 시선을 내렸다.“식사하십시오.”“대답은 안 해 주시네요.”“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강시온은 더 묻지 않았다.하지만 웃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한채린 역시
오후 4시 42분.대통령 관저.북해에서 돌아온 강시온이 관저 현관을 지나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오민석이었다.“각하!”강시온이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오 비서관님, 저 살아 있습니다.”“그러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오민석은 강시온을 위아래로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이번에는 진짜 뉴스로 각하 생존 여부를 확인할 뻔했습니다.”“그 정도였습니까?”“북해 해저 기지에 대통령이 직접 들어갔는데 그 정도가 아니겠습니까?”뒤따라 들어온 한채린이 말했다.“각하께서는 작전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오민석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실장님이 그 말씀을 하시니까 더 놀랍습니다.”강시온이 먼저 대답했다.“제가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각하께서요?”“왜 그렇게 놀라십니까?”“역사적인 날이라 기억해 두려고요.”강시온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오민석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에 머물렀다.북해로 떠날 때와 미묘하게 달랐다.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다.“두 분… 북해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한채린의 걸음이 멈췄다.“무슨 뜻입니까?”“아닙니다.”오민석은 즉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렸다.“제가 오
임태건이 국제 공조팀과 함께 들어왔다.“레오나르드 크로우.”임태건이 앞으로 나섰다.“국제 테러 조직 운영, 국가 기반시설 공격, 불법 정보 조작 및 다수의 범죄 혐의로 신병을 확보하겠습니다.”레오나르드는 저항하지 않았다.손목에 구속 장치가 채워졌다.그가 강시온을 바라봤다.“후회하지 않나?”“뭘 말입니까?”“대통령이 된 것.”강시온은 잠시 생각했다.“많이 했습니다.”레오나르드가 뜻밖이라는 듯 바라봤다.“지금도 가끔은 합니다.”강시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그래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왜지?”강시온은 대답하기 전에 옆을 바라봤다.한채린이 있었다.언제나 그랬듯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이 자리에 와서 만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한채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레오나르드는 그 시선을 따라갔다.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태건과 공조팀이 그를 데리고 명령실을 빠져나갔다.문이 닫혔다.오랫동안 이어진 싸움이 너무 조용하게 끝났다.강시온은 한동안 닫힌 문을 바라봤다.“끝난 겁니까?”한채린이 태블릿을 확인했다.“적어도 여기서는요.”“실감이 안 납니다.”“저도 그렇습니다.”강시온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