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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키스 예고편

Author: 루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5 05:56:16

“다음엔 침대에서 영화 봐요.”

그 말에 도진의 손가락이 딱 멎었다. 영화가 끝난 거실에는 엔딩 음악도 사라졌는데, 그는 여전히 화면을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이서는 그의 어깨에 기대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침대는 영화 감상 금지 구역이에요?”

“아니. 방금 내 심장이 너무 크게 박수 쳐서 대답을 못 했어.”

“같이 영화만 보는 거예요. 이불 뺏기 시합 아니고.”

“알아. 그런데 여보가 먼저 같이 있자고 해 주니까, 남편 인생에 예고 없이 봄이 왔잖아.”

도진은 그녀의 손을 놓고 먼저 일어났다. 졸린 이서가 편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담요를 걷어 주고는 방문 앞까지만 바래다줬다. 이서는 문을 닫기 전, 복도 조명 아래에 선 남자의 붉어진 귀를 보았다. 그렇게 능글맞은 사람이 정작 그녀의 한마디에는 꼼짝없이 당했다. 이서는 방문에 등을 기댄 채 손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그가 덮어 주었던 담요의 무게가 아직 손목에 남아 있는 듯했다. 침대에서 영화를 보자는 말도 스스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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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35화. 첫 동침

    “여보, 나 지금부터 당신한테 아주 중요한 부탁 하나 해도 돼?”도진이 발코니 의자에서 몸을 돌리자 이서는 담요 끝을 그의 무릎 위로 끌어올렸다. 정원 너머 도시의 불빛은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고, 식은 찻잔 가장자리에는 밤공기가 맺힌 듯 물기가 돌았다.“뭔데요? 대표님이 이렇게 진지하면 회사 하나 사 달라는 얘기 같잖아요.”“그건 아닌데. 조금만 더 기대 있어 줘. 당신 머리 무게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머리 무게 칭찬하는 남편은 처음 봐요.”“나는 당신 머리카락 한 올에도 반하는 전문직이거든.”이서는 웃다가 그의 어깨에 다시 뺨을 댔다. 얼마 전만 해도 그의 손이 가까워지면 어떻게 피할지부터 생각했는데, 오늘은 담요 밖으로 빠져나간 그의 손을 직접 찾아 잡았다. 도진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맞물렸다. 한참 뒤 바람이 세지자 그는 먼저 일어나자고 권했고, 그녀도 순순히 따라나섰다. 도진은 이서의 실내화를 발치에 돌려놓았다. 그녀는 그 배려가 좋아 그의 소매를 슬쩍 잡았다.복도에 들어서자 발코니의 조용한 불빛 대신 복도등이 반짝였다. 이서는 자기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전에 나란히 영화를 보며 졸았던 밤이 생각났다.“강도진 씨. 전에 침대에서 영화 보자고 한 거, 오늘 써도 돼요?”“지금? 우리 여보, 나 심장 건강검진부터 받아야 할 것 같은데.”“영화 보자는 말에 검진까지 필요해요? 무슨 부작용이 그렇게 커요?”“당신이 내 방에 오면 내가 베개한테도 자랑할 것 같아서.”도진은 웃으면서도 곧바로 침실로 앞장서지 않았다. 이서가 그의 방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문을 열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물컵과 책이 있었고, 창가의 작은 스탠드가 부드러운 빛을 뿌렸다. 도진은 침대 위에 널린 쿠션을 정리하고 리모컨을 찾아 영화를 틀었다. 둘은 나란히 기대앉아 화면을 보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이서가 예전에 두고 갔다는 작은 머리끈이 걸려 있었다. 이서는 그 작은 흔적을 치우지 말자고 했다.영화 속 주인공들이 키스를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34화. 발코니 수업

    “데이트 신청은 합격이에요. 대신 오늘 밤엔 제가 당신을 꼬셔 볼게요.”이서가 명찰에 그려 준 별을 톡 건드리자 도진의 입술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 고백 수업을 듣던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녀를 올려다봤다. 칠판에는 ‘잘 들어주기’라는 글씨가 남아 있었고, 그의 손등에는 어제 그녀가 그린 하트가 보이지 않는 도장처럼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여보, 방금 뭘 한다고?”“꼬신다고요. 학생이 졸업했으니까 선생님도 실습해야죠.”“나 지금 퇴학당해도 돼? 너무 좋아서 학교 건물 한 바퀴 뛰고 올 것 같은데.”“그러다 다치면 데이트 취소예요. 여섯 시에 발코니로 오세요.”도진은 손목시계부터 확인했다. 아직 오후 세 시였다. 이서가 칠판을 지우는 동안에도 그는 문간에서 자꾸 돌아봤다. 결국 그녀는 분필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시계를 가리켰다. 도진은 두 손을 들어 항복하는 시늉을 하고서야 응접실을 빠져나갔다.해가 기울 무렵 이서는 서재 옆 발코니에 작은 찻상을 폈다. 도자기 잔 두 개와 따뜻한 차, 서만복에게 부탁해 구운 과자 몇 개가 전부였다. 의자에는 폭신한 담요 한 장을 걸쳐 두었다. 장식 대신 놓아 둔 유리병 안에는 낮에 정원에서 주운 작은 나뭇가지가 꽂혀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이 흔들리며 탁자에 그림자를 만들었다.도진이 도착한 것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전이었다. 그는 넥타이까지 다시 맨 채 문턱에서 멈췄다.“분위기 잡는 법 강의는 왜 발코니에서 해요?”“실내에선 강도진 씨가 자꾸 제 얼굴만 보잖아요. 오늘은 다른 것도 보시라고요.”“어쩌지. 풍경이 아무리 좋아도 자꾸 당신 쪽으로 고개가 도는데.”“그럼 목에 보호대 채워 드릴까요?”“보호대보다 여보 손이 효과 좋은데. 내 턱 좀 잡아 줄래?”이서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를 의자에 앉혔다. 도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난간 너머를 바라봤다. 저택 아래로 늘어선 지붕 사이에서 불빛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낮에는 회색으로 보이던 길이 노란 창문과 자동차 불빛으로 조금씩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33화. 고백 학원

    “수강생 강도진, 오늘부터 ‘여보 예뻐요’ 금지.”이서가 식당 옆 작은 응접실에 세워 둔 칠판에 금지 문장을 적자 도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어젯밤 서재에서 고백 연습을 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듣고 아침부터 설레던 남자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학생처럼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단정한 셔츠 위에 ‘고백 학원 1기 강도진’이라고 쓴 종이 명찰까지 붙인 채였다.“선생님, 그건 제 모국어인데요. 갑자기 한국말 하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다른 언어 배우시면 되죠. 오늘 수업은 구체적으로 칭찬하기, 그리고 잘 들어주기.”“우리 여보는 구체적으로 어느 각도에서 봐도 예쁜데.”“강도진 학생, 시작한 지 12초 만에 벌점입니다.”이서가 칠판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자 도진은 억울하다는 듯 책상에 이마를 기댔다.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와 명찰 가장자리를 환하게 비췄다. 평소 임원들을 앞에 두고 회의를 이끄는 대표가 자신 앞에서는 벌점 하나에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군다는 사실이 어이없어, 이서는 분필을 든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좋아. 그럼 연습할게. 이서 씨는 어제 꽃을 받으면서 웃어 줬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줬어요. 그래서 내가 참 행복했습니다.”“그건 괜찮네요.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칭찬이 아니라 소감문이에요.”“소감문 제출하면 보너스 점수는 없나요? 아내가 최고야.”“그건 기출문제예요!”도진은 명찰 아래에 작은 글씨로 ‘외모 칭찬 봉인 중’이라고 덧썼다. 이서는 그가 너무 진지하게 펜을 움직이는 바람에 또 웃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볼 때마다 예쁘다고 했고, 말끝마다 사랑을 붙였다. 좋으면서도 가끔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해냈는지 알아봐 주길 바랐다. 일 년의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그 전의 자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그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서는 어젯밤 도진이 꽃을 건네던 모습을 떠올렸다. 준비한 문장을 다 잊고도 끝내 자신의 마음을 전했던 순간이었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32화. 고백의 정석

    “다음 회차는 남편의 고백 듣기?”도진이 종이에 적힌 글을 읽자 이서는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괴고 웃었다. 두 번째 입맞춤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거실에는 작은 스탠드만 켜져 있었다. 도진은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셔츠 안주머니에 넣더니 무슨 중요한 계약이라도 맡은 사람처럼 허리를 폈다.“아이고, 여보가 이렇게 예쁘면 내 업무는 누가 해?”“업무 말고 고백이요. 늘 예쁘다, 좋다만 하지 말고 제대로요.”“여보, 그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분야인데.”“그러면 내일 심사받으세요. 대본 읽으면 감점.”도진의 자신만만한 얼굴에 잠깐 금이 갔다. 이서가 웃으며 일어나자 그가 손을 잡아 문 앞까지 바래다줬다. 손을 놓기 직전, 그는 엄지로 그녀의 손등을 한 번 쓸었다. 방금 전 입술이 닿았던 순간을 다시 붙들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더 청하지는 않았다.이서는 돌아서며 일부러 발걸음을 늦췄다. 뒤에서 따라오는 구두 소리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입가에 번진 웃음을 마음껏 풀었다. 복도 모퉁이를 돌기 전 뒤를 돌아보니 도진은 아직 거실 문 앞에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셔츠 안주머니를 톡 두드렸다. 고작 종이 한 장인데도 귀중품처럼 챙기는 모습에 이서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처음에는 매일 쏟아지는 애칭이 낯설었지만 이제는 그 사람의 마음을 기다리는 자신이 더 놀라웠다.다음 날 저녁, 도진이 보낸 메시지는 평소와 달리 짧았다. ‘서재로 와 줄래? 준비는 끝났어.’ 이서는 문장을 세 번 읽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침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한 번 묶었다 풀고는 결국 평소 입던 크림색 니트를 골랐다. 남편의 고백을 들으러 가는데 이렇게 신경 쓰는 자신이 낯설면서도 즐거웠다.서재 앞에 서니 문틈으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하자 안쪽에서 책 한 권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뒤이어 다급한 대답이 돌아왔다.“들어와! 아니, 잠깐만. 이제 들어와!”이서가 문을 열자 도진은 창가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연분홍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구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31화. 두 번째 요청

    “키스 재방송 신청은 어디서 받나요?”도진의 질문에 이서는 맞잡은 손을 빼지 않은 채 눈썹을 치켜올렸다. 거실 창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란히 비쳤고, 탁자 위 사진 상자의 뚜껑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조금 전 입술이 닿았던 감각이 아직 선명한데, 저 남자는 벌써 다음 회차를 예약하려 하고 있었다.“재방송은 유료입니다. 방금 건 시사회였고요.”“평생 정기권 끊었는데요. 혼인신고할 때 자동 결제된 줄 알았는데.”“계약서 잘 보세요. 키스는 별도 동의 항목이에요.”도진이 당장 펜을 찾는 시늉을 하자 이서는 웃으며 그의 넥타이 매듭을 반듯하게 고쳐 주었다. 가까워진 얼굴에 또다시 시선이 머물렀으나, 그녀는 일부러 한 발 물러났다. 방금 스스로 골랐던 첫 입맞춤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진이 뻔히 보이는 입술을 자꾸 바라보니, 장난스럽게 등을 돌린 뒤에도 볼이 화끈거렸다.“오늘은 여기까지. 감독이 편집권도 갖고 있어요.”“알았어. 대신 엔딩 크레디트 올라갈 때 손은 잡아도 돼?”이서가 먼저 손가락을 끼우자 도진은 세상에서 가장 큰 상을 받은 사람처럼 웃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그 웃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서만복이 국을 덜어 주다 도진의 표정을 살피더니 소금 간을 다시 확인할 정도였다. 이서는 그 광경을 보고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는 생선 가시를 발라 주다가도 혼자 웃었고, 이서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아무 일 아니라며 반찬을 밀어 주었다. 조금 전의 단 몇 초가 그의 하루를 온통 바꾼 모양이었다.다음 날 아침, 도진은 현관 앞에서 한참이나 구두 앞코를 내려다봤다. 이서는 구두끈도 없는 신발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끄는 그를 보고 팔짱을 꼈다.“대표님, 지금 뭐 하세요?”“어제 일 생각하느라 발이 잘 안 떨어져.”“구두가 아니라 대표님 정신이 묶였네요.”“응. 당신 입술에.”하필 그때 유리가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도진의 얼굴을 한 번, 귀까지 빨개진 이서를 한 번 보더니 쇼핑백을 바닥에 놓았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30화. 내가 먼저

    “여보, 눈 좀 감아 봐요. 보고 있으면 못 하겠으니까.”넥타이 끝을 붙잡힌 도진이 숨을 멈췄다. 사진 상자는 아직 거실 탁자에 열려 있었고, 창가에 걸린 얇은 커튼이 해 질 무렵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다. 이서는 제 손에 감긴 짙은 남색 천을 내려다봤다. 조금만 당겨도 그가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갑자기 믿기지 않았다.“뭘 못 하는데?”“그걸 물으면 감독이 곤란하죠. 눈 감으라니까요.”도진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늘 입만 열면 온 집안이 달아질 만큼 사랑을 떠들던 남자가 이렇게 얌전하게 있으니 이서 쪽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목에 걸린 넥타이는 그녀가 잡은 만큼만 느슨해졌다. 이서는 그의 셔츠 단추에 반사된 작은 빛을 보았다. 아침마다 능숙하게 채우고 나가던 단추가 오늘은 자신의 눈높이에 있었다. 아는 얼굴인데도 오늘따라 낯설 만큼 잘생겨서, 자꾸만 웃고 싶은 마음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함께 올라왔다.이서는 한 걸음 다가갔다가 멈췄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일 키스하면 오늘은 예고편이라고.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하루 더 기다리게 하는 게 꼭 정답일까.“잠깐. 눈 떠 봐요.”도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서는 넥타이를 놓지 않은 채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자신을 기다리는 눈빛에는 재촉하는 기색이 없었다.“저, 지금 당신한테 키스해도 돼요?”도진의 입술이 벌어졌다. 기쁨이 먼저 올라왔다가, 그녀가 진지하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그도 자세를 바로잡았다.“응. 네가 원하면. 대신 마음 바뀌면 안 해도 돼.”“알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가만히 있어요. 제가 할 거예요.”“알겠습니다. 감독님.”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손은 바지 옆선에서 꼭 쥐어져 있었다. 이서는 그 손을 보며 웃었다. 처음 이 저택에서 눈을 떴을 때는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낯설었던 남자였다. 지금은 제 허락을 기다리느라 손가락 하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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