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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수인 남편과 생존 계약
다섯 수인 남편과 생존 계약
Penulis: 오월 여름

제1화

Penulis: 오월 여름
흐릿한 의식 속에서 한여월은 뭔가 스치는 듯한 채찍 소리를 듣고 천천히 깨어났다.

눈을 뜬 순간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깨까지 닿은 은빛이 나는 회색 머리카락이었다.

은빛 회색 머리 주인은 바닥에 무릎 꿇고 있었다. 구릿빛 등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굽어 있었고 근육마다 힘이 넘쳐흘렀지만 살갗에는 가로세로로 얽힌 채찍 자국이 짙게 자리 잡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새로 갈라진 살갗 상처에는 아직도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단단한 근육 결을 따라 흘러 허리 옆구리까지 내려온 피는 수피 가죽 치마의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어두운 빛을 내뿜는 시뻘건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한여월은 마음이 마치 독사의 송곳니에 찔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에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돌린 그는 한여월의 손에 들린 수피 가죽 채찍을 본 순간 입가에 희미한 냉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가시가 박힌 듯한 어조로 허스키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손을 놓는 거야? 오늘은 힘이 다 떨어졌어?”

한여월은 순간 머릿속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극심한 고통이 관자놀이에서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원래 몸 주인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미친 듯이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

갓 사회에 발을 들인 직장인 한여월은 야근을 하다 과로사해 금방 다 읽은 수인 세계 소설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책 속에 등장하는 동명이인의 악질 엑스트라로 빙의한 것이다.

원래 몸 주인의 아빠 한태강은 떠돌이 수인으로 하나밖에 없는 암컷 새끼를 매우 아꼈다. 그래서 한여월이 성년이 되자마자 다섯 명의 수컷을 잡아 와 억지로 그녀와 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하지만 한태강이 잡아 온 수인 남편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한여월은 날마다 방법을 바꿔가며 그들을 학대했다.

눈앞의 잘생긴 수인은 맹독을 지닌 백사로 거칠고 얄짤없는 행동으로 언젠가 한여월의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릴 것이다.

바로 그때 한여월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자 채찍이 찰싹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채찍 끝의 핏방울이 발목에 튀며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윤이산은 아주 미세하게 미간을 살짝 움직였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 악독한 암컷이 채찍을 더 세게 휘두르거나 불에 탄 나무막대로 그를 지졌겠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내던져 버렸다.

“왜? 또 다른 꿍꿍이수작이라도 부리려는 거야?”

“닥쳐.”

섬뜩한 현실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한여월은 바로 윤이산의 말을 끊었다.

수인 세계에서 수컷의 등급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나뉘며 그중 보라 등급이 가장 강하고 빨강을 표시하는 적색 등급이 가장 약했다. 원래 몸 주인의 아빠 한태강은 보라 등급의 전갈 수인으로 수인 세계의 피라미드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다섯 명의 수컷을 억지로 잡아 와 한여월의 수인 남편으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 줄거리에 따르면 한태강은 한여월에게 수인 남편을 구해주기 위해 외출했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한태강이 죽은 후 한여월의 학대에 극한의 한계가 온 수인 남편들은 집단으로 반항하면서 그들은 반역의 위험을 무릅쓰고 파트너 수인 마크를 도려내게 된다. 죽었어야 했을 다섯 명의 수컷들이 미세하게 남은 기운으로 악착같이 살아남아 원래 몸 주인보다 백 배 잔인한 방법으로 한여월을 먹어 치울 것이다.

책에 묘사된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을 생각하자 한여월은 손끝이 순간적으로 저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여월은 절대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나 참혹하게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우 고개를 든 한여월은 어두운 빛을 내뿜는 붉은색 눈동자를 억지로라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고는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하지만 윤이산은 꼼짝하지 않은 채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뭐야,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고문하려는 거야?”

윤이산이 고개를 들자 가슴 위에 있는 전갈 수인 마크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파트너 수인 마크이며 또한 그들의 반항을 속박하는 족쇄이기도 했다.

“상처에 소금이라도 뿌리려고?”

그 말에 한여월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원래 몸 주인이 아마 그런 짓을 저질렀기에 윤이산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몸을 돌려 돌집 구석에 있는 대나무 바구니로 향했다.

그 안에는 한태강이 부족에서 바꿔온 말라비틀어진 약초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원래 몸 주인은 그들에게 절대 약초 같은 것들을 써 주지 않았다. 대신 독이 있는 덩굴을 약초인 것처럼 속인 뒤 그들이 그것을 바르고 아파서 바닥을 구르는 꼴을 보는 걸 아주 좋아했다.

한여월은 대나무 바구니에서 윤이산의 상처를 지혈해 줄 약초를 뒤적이며 말했다.

“네 상처 치료해야 해. 나는 더 이상...”

“됐어.”

윤이산은 한여월의 말을 끊은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여월보다 한 뼘 넘게 키가 큰 윤이산인지라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순간 강렬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그런 속임수 따위 집어치워. 좀 이따 나무막대로 나를 지지려고 그래? 아니면 더 악독한 방법으로 고문할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야?”

약초를 들고 있던 한여월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원래 몸 주인의 포악함이 수인 남편들의 뼛속까지 새겨져 있었기에 아주 사소한 반응조차도 수인 남편들은 새로운 고문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때 돌집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살랑살랑 들려오더니 세 명의 그림자가 동굴 입구에 나타났다. 저마다 부상을 당한 상태였지만 모두들 똑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한여월을 응시했다.

제일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은백색 장발의 서기현이었다. 노랑 등급의 사제 두루미족 수인으로서 원래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을 내뿜을 수인이었지만 지금은 얼굴이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몸에는 화상 자국이 가득했다.

이것들 또한 원래 몸 주인이 쇠막대기로 지져서 낸 상처였다.

서기현이 눈을 내리깔고 있어 긴 속눈썹이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가렸지만 꽉 쥔 주먹만 봐도 얼마나 많이 참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붉은 머리의 불여우 지유혁이 서기현 뒤를 바짝 따랐다. 요염하고 아름다웠어야 할 불여우 얼굴은 눈가에서 턱까지 이어진 칼자국 때문에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한여월을 보자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님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래? 왜 윤이산을 계속 괴롭히지 않는 거야?”

제일 뒤에 서 있는 새까만 단발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체격이 좋은 수컷이 말했다. 짧은 머리가 헝클어진 상태로 이마에 붙어 있고 상체에 칼자국과 채찍 흉터가 가득한 이 수인은 바로 검은 사자족 수인 강진우였다.

그들을 번갈아 본 한여월은 마음속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무거웠다.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네 명의 최상급 미남이었지만 감상할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다섯 명의 수인 남편 중에서 네 명이 왔다.

“나시원은 어디 있어?”

한여월이 무심결에 이 이름을 내뱉은 순간 동굴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바로 그때 지유혁이 신나게 웃었다.

“벌써 잊어버린 거야? 어제 네가 인어 비늘을 뽑은 뒤 흙 속에 묻어두면 어떻게 될지 보고 싶다고 했잖아. 네가 우리보고 나시원을 산에 묻어버리라고 시켰잖아.”

한여월은 발끝까지 얼어붙을 듯했다.

나시원, 다섯 명의 수인 남편 중 유일한 해족 수인으로 소설 줄거리 상 파트너 수인 마크를 도려낸 후 한여월의 피부를 조금씩 도려낼 것이다.

왜냐면 한여월이 나시원으로 하여금 인어로서 제일 끔찍한 비늘이 뽑히는 고통을 겪게 했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상처투성이 네 명의 수컷을 바라본 한여월은 비늘이 뽑힌 나시원이 머릿속에 스치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넋이 나간 한여월의 모습을 알아챈 윤이산은 붉은색 눈동자에 비웃음이 스쳤다.

“뭐야, 또 새로운 놀이 방법을 생각하는 거야?”

윤이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더욱 짙게 풍겼다.

“차라리 한꺼번에 다 써 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든 한여월은 윤이산과 시선이 마주쳤다.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반드시 뭔가 해야만 했다.

“윤이산, 네가 가서 나시원 데려와. 나시원에게 할 말이 있어.”

윤이산은 개그 프로그램을 본 사람처럼 낮은 소리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여월, 또 무슨 꿍꿍이 속셈이야? 한 명씩 고문하는 걸로 부족해? 그래서 이제 다섯 명을 동시에 괴롭히려고?”

한여월은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지혈할 약초를 대나무 바구니에 도로 넣으며 말했다.

“우리 얘기 좀 하자. 너희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너희들 계약을 해제해 줄게.”

이 말이 나오자 돌집 안은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시선을 내리고 있던 서기현은 속눈썹이 저도 모르게 살짝 떨렸고 지유혁 또한 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굳어버렸다. 주먹을 꽉 쥐고 있던 강진우의 손에서도 딱딱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윤이산도 더는 웃지 않고 한여월의 말이 믿을 만한지 판단하는 듯 그녀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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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수인 남편과 생존 계약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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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수인 남편과 생존 계약   제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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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수인 남편과 생존 계약   제26화

    나시원에게 수혈을 마친 한여월은 손가락 끝에서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서기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이미 상처가 난 김에 지금 한 번 더 주는 것이 나중에 다시 살을 긋는 수고를 더는 길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든 채 그대로 서기현에게 다가갔다.제자리에 서 있던 서기현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 한여월이 나시원에게 피를 주던 모습을 지켜볼 때의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자신에게 직진해 오는 것이 아닌가.손가락 사이로 혈액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그녀가 다소 급한 어조로 말했다.“빨리 좀 숙여봐. 너한테도 피 줄게.”서기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거부감이 아니라 경악이었다. 그는 그녀가 어제 했던 말이 그저 상황을 모면하려 던진 빈말인 줄 알았는데 그의 예상이 틀린 것이다.“정말로 나랑 계약을 해제하려고 피를 주겠다는 거야?”서기현이 미간을 찌푸린 채 깊고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여월은 그 눈 속에 담긴 감정을 읽어낼 수도 없었고 읽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길을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한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좀 숙여봐.”서기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몸을 낮췄다.한여월이 즉시 그의 가슴팍 위로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자, 그곳의 수인 마크가 곧바로 한층 연해졌다. 그 순간, 서기현은 고개를 숙이더니 한여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엄지손가락으로 피가 흐르는 그녀의 손가락 끝을 문지르더니 고개를 더 숙여 부드럽게 핥았다.손가락 끝을 감싸는 뜨거운 촉감과 함께 밀려온 서기현 특유의 맑고 깨끗한 체취에 한여월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늘 청초하고 서늘했던 서기현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밑으로 내리깐 긴 속눈썹 아래로 정성스럽게 상처를 핥아내는 모습은 그녀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백지로 만들었다.“너!”한여월은 정신이 번쩍 들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손가락을 힘껏 빼냈다. 손가락 끝에는 여전히 서기현 입술의 온기가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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