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4화

Author: 무안안
강지한이 박유진을 언급하자 전에 자신을 구해주기까지 한 사람인데 강지한이 괜히 귀찮게 할까 봐 걱정된 심미연은 다급히 부인했다.

“나랑 박유진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해명을 하는 심미연을 보며 표정을 굳히며 손에 힘을 준 강지한이 말했다.

“왜, 내가 박유진 귀찮게 할까 봐 걱정돼?”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 박유진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표정부터 변하는 걸 보니 심미연이 박유진을 얼마나 아끼는지 짐작이 가서 강지한은 기분이 더 나빠졌다.

강지한에게 속마음을 들켜버린 심미연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제 손에 느껴지는 움직임이 확연히 달라지자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내 아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거짓말을 잘했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심미연도 그냥 다른 남자를 감싸고 돌았을 뿐인데 강지한은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올라 목소리까지 떨려왔다.

폭풍전야 같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심미연은 여전히 부정하느라 애썼다.

“거짓말 아니야, 나랑 박유진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어제 박유진에게서 빌린 외투도 신하린 집에 그대로 있는데 내일 세탁소에 맡기고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했다.

그런데 심씨 집안에서 박유진의 귀국을 알게 되면 사람을 붙여서 미행할 텐데 그러면 다시 만나기도 어려워질 것 같아 심미연은 옷을 어떻게 돌려줄지도 걱정이었다.

한편 강지한은 달싹이는 심미연의 입술을 보고 있으니 더 화가 나서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거칠게 입술을 빨아들였다.

“강지한, 아파...”

갑작스러운 고통에 심미연이 몸부림을 치자 강지한은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뭐 하는 짓이야? 지금 나 밀어낸 거야?”

“그게 아니라 아프다고!”

심미연의 해명에 고개를 숙이던 강지한이 입을 열려던 찰나, 그는 그녀의 어깨에 새겨진 빨간 자국을 보게 되었다.

색깔을 보니 어제 새겨진 것 같아서 강지한은 자연스레 어젯밤 박유진 품에 안겨있던 심미연의 모습이 떠올라 그녀의 턱을 우악스럽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5화

    “박유진 씨가 날 안은 건 그때 내 옷이 다 찢겨져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야. 박유진 씨는 나를 그저 차에만 태워주고 나는 하린이랑 같이 갔어.”강지한이 믿든 말든 심미연이 한 말들은 전부 사실이었다.하지만 그 말을 다 들은 강지한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그런 기사 난 적 없었어.”역시나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내연녀랑 쌍으로 하루가 멀다 하게 기사에 이름을 올릴 때는 자신에게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으면서 고작 자국 하나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강지한에 심미연은 점점 더 실망스러워졌다.“왜 말이 없어? 이젠 거짓말도 못 하겠어?”이미 박유진과 심미연이 부정당한 관계일 거라고 확신한 강지한은 두 눈으로 증거를 확인하기 전에는 심미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눈물이 고인듯한 눈으로 강지한을 올려다보던 심미연은 갑자기 웃음을 흘리더니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그럼 성무진 씨한테 어젯밤 고속도로 CCTV랑 내 입원기록 확인해보라고 연락해. 그럼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한마디 한마디 내뱉을수록 심미연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전에는 강지한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를 이해해보려고 몇 년이나 애를 써왔지만 이제는 그런 생활을 끝낼 때가 된 것 같았다.더 이상 강지한을 보아도 그녀의 심장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하지만 심미연을 보는 강지한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만약 심미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를 사지로 밀어 넣은 게 자신이었기에 강지한은 본인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우리 이혼하자.”하지만 강지한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심미연이 눈을 꼭 감은 채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다시 한번 이혼을 언급했다.같이 있으면 괴롭기만 한 사이니 빨리 끝내는 편이 서로에게 좋은 것 같았다.“전에 할아버지한테 절대 이혼 안 하겠다고 맹세하고 결혼한 거 잊었어? 이제 와서 이혼이 가능할 것 같아?”경성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은 다 강지한의 아내가 되지 못해서 안달인데 그런 저를 제 손으로 버리겠다는 심미연의 이혼 제의에 강지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6화

    의미심장한 심미연의 말에 강지한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 네가 한 말 똑바로 기억하라고. 화 풀렸으면 넥타이나 풀어, 나 갈거야.”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담담히 말하는 심미연에 강지한은 대꾸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버렸다.혹시라도 듣지 말아야 할 걸 듣게 될까 봐 멀찍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신경은 온통 차에 쏠려있던 성무진은 강지한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에게로 다가갔다.“대표님.”“어젯밤 고속도로 CCTV 확인하고 심미연 이틀 동안 입원한 기록 있는지도 알아봐.”강지한은 심미연의 말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눈앞에 놓인 증거를 더 믿는 것뿐이었다.갑작스러운 제 상사의 지시가 의아했지만 성무진은 알겠다는 대답만 남기고 바로 해당 부문에 연락을 했다.성무진이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던 강지한은 심미연의 어깨에 새겨진 자국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한편 손이 묶인 채 차에 혼자 남은 심미연은 차 좌석에 넥타이를 마찰하여 끊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문득 차창 너머로 보이는 강지한의 얼굴에 눈이 가버렸다.꿈에도 나올 정도로 9년이나 사랑한 남자였지만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나니 이 관계를 끝내는 게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그때 빠르게 일 처리를 마친 성무진이 CCTV 영상이 담긴 노트북을 건네자 강지한은 30분이나 되는 영상을 클릭해보았다.그 시간 동안 열심히 넥타이를 풀어낸 심미연은 빨리 옷을 정리하고 강지한 몰래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하지만 당연히 인기척을 느낀 강지한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자 성무진은 빠르게 달려가 붙잡으려 했지만 영상을 다 확인한 강지한이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됐어, 그냥 보내줘.”그에 성무진이 바로 발걸음을 멈추자 그에게 노트북을 건네며 미간을 매만지던 강지한이 나지막하게 말했다.“회사로 가.”영상을 다 보고 심미연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강지한이 자신이 했던 행동들과 못된 말들이 떠올라 어떻게 그녀를 봤으면 좋을지 몰랐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7화

    “대표님께서 사모님과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일이라는데 혹시 회사로 와주실 수 있으세요?”성무진의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자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일 때문에 바빠요, 급하면 로펌으로 찾아오라고 대표님께 전해요. 별로 안 급하면 일 다 끝내고 갈게요.”예전 같았으면 성무진의 전화 한 통에 바로 강지한의 회사로 달려갈 정도로 강지한이 최우선이었지만 이혼을 논의하는 사이가 된 지금에 와서는 강지한보다 일이 먼저였다.“알겠습니다.”성무진에게서 심미연의 말을 전해 듣던 강지한은 그녀가 거절했다는 게 의외였다.전에는 쿠키나 밀크티를 사 들고 사무실로 오는 걸 아주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단칼에 거절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강지한은 성무진이 제대로 전달을 못 한 건가 싶었다.“중요한 일이라고 얘기했어?”이래 봬도 일 잘하는 비서인데 말 한마디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오해를 받은 성무진은 억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에 미간을 짓누르던 강지한이 말했다.“조금 있다가 할아버지가 주신 주식 심미연한테로 양도할 거니까 담당자들 불러와, 오늘 내로 해결해야 해.”심미연이 사무실에 오려 하지 않는 건 팔찌 때문일 텐데 주식을 내어준다면 그녀의 화도 풀릴 것 같아서 강지한은 어느 때보다도 서둘렀다.성무진이 일을 처리하러 나가자 차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킨 강지한이 심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비서와 일 얘기를 하고 있던 심미연은 핸드폰에 뜬 강지한의 이름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성무진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의사는 제대로 전달한 것 같은데 또 전화를 해대는 강지한이 귀찮아서 전화를 받지 않고 있자 궁금했던 비서가 넌지시 물었다.“왜 전화 안 받으세요? 설마 심 변호사님 쫓아다니는 남자예요?”심미연이 차갑고 도도해 보여도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빠지는 데가 없어서 로펌 내에서도 인기가 많았기에 혹시나 해서 한 질문이었지만 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그런 거 아니야.”“일단 서류 먼저 보고 있어, 이상한 부분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화

    온지유가 매번 문자를 보내서 하는 얘기는 똑같았다.임신 아니면 강지한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떠들어댔기에 심미연은 그녀를 상대하기도 이젠 귀찮았다.이혼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건 강지한인데 꼭 자신이 매달리는 것처럼 얘기하는 온지유의 말들도 듣기 불편했다.그런데 생각해보면 온지유에 대한 강지한의 사랑이 그녀가 말한 것처럼 큰 것 같진 않았다.임신을 한 걸 뻔히 알면서도 이혼을 안 한다는데 만약 정말 사랑한다면 자신의 여자가 내연녀라는 소리를 듣는 걸 견디지 못할 텐데 강지한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심미연을 답장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렸고 심미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오늘 내 생일인데 밥이라도 같이 먹자, 센추리 파크 근처에 있는 에빈 레스토랑에서 봐.”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온지유에 헛웃음이 나온 심미연이 대답했다.“밥은 됐고 사람 시켜서 선물이나 보내줄게.”매일 눈에 띄지 못해서 안달인 온지유에게 그토록 원하는 관심을 주기로 한 심미연이었다.“선물은 지한 씨가 이미 줬으니까 괜찮아, 너흰 부부잖아, 하나만 하면 되지.”온지유가 가리키는 선물이라는 게 팔찌를 뜻하는 것이었기에 심미연은 단호하게 말했다.“강씨 집안 팔찌 말하는 거야? 며칠 빌려줬다고 해서 그게 네 물건이 되는 건 아니야, 썼으면 돌려줘야지 주인한테. 안 그러면 나중에 찾으러 갈 거야 내가.”말을 마친 심미연은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온지유가 팔찌를 뺏고 우쭐대면 자신은 그녀를 가차 없이 무시할 수 있는 이 관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이 팔찌는 강씨 집안 안주인 거지, 네 건 아니잖아.”강지한 앞에서 연기 좀 했다고 정말 팔찌를 되돌려받으려 하는 심미연이 어이가 없었던 온지유가 톡 쏘아붙였지만 심미연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그 팔찌는 할아버지가 나한테 주신 거야, 강지한은 내 동의도 없이 너한테 줘버린 거고, 그러니까 넌 내 물건을 훔친 거지.”“그 팔찌는 2억 정도 되거든, 형법 제329조에 의하면 절도죄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9화

    진유영은 원래부터 심미연을 존경하는 그녀의 팬이었다.진유영은 팀장직도 심미연에게는 부족한 자리라고 여기며 수석 파트너 변호사쯤은 되어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내가 아닐 수도 있잖아, 이런 얘기는 내 앞에서나 하지 어디 나가서 떠들고 다니지 마, 남들 비웃겠다.”심미연은 미소를 거두며 진지하게 말했다.로펌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이도 별로 안 좋은데 이런 소문이 떠돌다가 혹시라도 승진을 못 하게 되면 한동안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에 그녀는 주위 사람들 입도 단속시켜야 했다.“당연히 변호사님 앞에서만 얘기하죠, 그런데 저녁에 있는 회식엔 참석하실 거예요?”2년 동안 심미연의 비서로 있으면서 얘기도 많이 하다 보니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눔에 있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진유영의 질문에 시간을 확인하던 심미연이 답했다.“나 지금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 회식 잡히면 주소 보내줘, 내가 그리로 갈게.”이노하이브의 주식은 할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건데 심미연이 안 받는다면 또 온지유에게로 갈 게 뻔해서 심미연은 바로 강지한의 회사로 이동하려 했다.“알겠어요.”그에 진유영도 서류를 정리하며 대답하고는 그녀를 배웅해주었다.“좀 있다 주소 보내드릴게요.”서둘러 로펌을 나선 심미연이 한창 이노하이브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강준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 이름을 보고 잠시 고민하던 심미연이 전화를 받자 화를 참는듯한 강준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할아버님.”“미연아, 지금 바로 지한이 회사로 와, 할 얘기 있다.”“네, 바로 갈게요.”강준형이 심미연을 이렇게 급하게 부를 일은 이틀 전에 난 기사뿐이었기에 심미연은 빠르게 회사로 향했다.한편 강지한 사무실 소파에 앉은 강준형은 불같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난 네가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내 후계자 자리를 맡긴 건데, 봐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나!”“병원에서 청혼한 것도 모자라서 강씨 집안 팔찌를 줘?!”“내가 그거 주면서 꼭 미연이한테 전해주라고 했지, 어떻게 그새 외간여자한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0화

    강준형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기에 강지한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진짜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요?”“없어!”심미연에게 준 건 심미연의 것이었기에 강준형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한쪽에서 숨을 죽이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성무진도 심미연의 팔찌를 온지유에게 선물해준 건 강지한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그저 직장인 일뿐인 성무진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그럼 심미연 오면 물어보고 결정하는 건 어때요?”전에 자신이 도망 다니는 처지일 때 제 손에 돈뭉치를 쥐여주던 온지유가 떠올라 강지한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때 그 돈이 없었다면 강지한은 진작 죽었을 텐데 목숨을 빚진 사람이 원하는 게 고작 팔찌 하나인데 강지한은 그것만큼은 해주고 싶었다.“물어볼 필요도 없어!”염라대왕이라는 소문과 달리 우물쭈물하기만 하는 손자에 강준형은 또 소리를 쳤다.“멀쩡하던 놈이 어쩌다 이렇게 됐어!”“지한 씨, 나왔어!”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해맑은 온지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전에 강지한이 온지유가 오면 그냥 들여보내라고 지시한 탓에 회사 내에서 감히 그녀를 막는 이는 없었다.며칠 전 직원들이 탕비실에서 온지유를 부러워하며 빨리 그녀에게 붙어야겠다는 대화를 나누던 게 떠올라 성무진은 만약 그들이 진짜 사모님이 심미연인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일지 문득 궁금해졌다.갑자기 나타난 온지유에 놀라던 강지한은 이내 얇은 외투 하나만 걸친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긴 왜 왔어? 그리고 옷은 왜 또 그렇게 얇게 입고 다녀, 임신한 몸이라 면역력도 예전 같지 않은데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 아프다고 또 울 거야?”자신을 타박하면서도 빠르게 옷걸이에 걸려있던 외투를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는 강지한을 온지유는 다정하게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한 씨, 나 팔찌 돌려주러 온 거야.”팔찌를 빼서 강지한에게 건네주면서도 온지유는 아쉬운지 손에 힘은 풀지 않고 있었다.그 얼굴을 보자마자 화를 내려던 강준형은 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1화

    그녀는 굳이 눈앞의 손익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강준형은 콧방귀를 뀌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온지유는 그 모습을 보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을 참지 못하며,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말했다.“팔찌 돌려줬으니 나 먼저 갈게.”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강지한을 바라보는 눈빛도 한없이 다정했다.“내가 데려다줄게.”강지한이 말했다.“됐어. 나 혼자 갈게. 지한 씨는 할아버지랑 더 있어.”온지유의 마음속으로는 사실 강지한이 자신을 데려다주길 바랐다. 하지만 속으로는 저 고약한 노인이 허락하지 않는 한 강지한이 자신을 배웅하는 것은 오히려 갈등만 더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강씨 가문에 남아 앞으로 호강하며 살려면 이 노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지금은 조금 참아도 괜찮아. 나중에 저 고약한 늙은이에게 배로 갚아줄 거야!’강지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항상 남 생각만 해? 바보 아니야?”“지한 씨, 나...”온지유는 목구멍에 맺힌 말을 겨우 꺼내려 했지만, 강준형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가고 싶으면 얼른 가! 미연이가 오면 너 보는 게 불편할 거 아니야!”그녀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강준형은 속이 상했다.온지유는 금세 눈가가 붉어지며 말했다.“이만 갈게...”강지한은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며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가자. 내가 데려다줄게.”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안쓰럽게 고개를 저은 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보이는 표정이었다.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걷던 그녀는 문 앞에서 막 들어오던 심미연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심미연은 온지유보다 키가 훨씬 컸고, 온지유의 이마는 그대로 심미연의 가슴에 닿았다.“아, 미안!”온지유가 급히 사과하자, 심미연은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온지유는 심미연의 목소리를 듣고 눈빛에 순간 꿍꿍이가 스쳤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배를 감싸며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2화

    온지유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강지한을 올려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지한 씨, 이건 미연 씨의 잘못이 아니야. 내가 부딪혀서 넘어졌어. 미연 씨한테 사과받을 필요 없어!”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진심 어린 듯 들렸지만, 그 안에는 교묘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심미연은 그런 온지유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연기를 하고 싶다면 하게 둬야지. 어차피 나만 건드리지 않으면 상관없어.’강지한은 심미연을 힐끔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너, 걸을 때 앞 좀 보고 다니면 안 돼?”심미연은 대꾸할 의욕조차 없는 듯 무심하게 받아쳤다.“알았어. 다음엔 조심할게.”‘분명 온지유가 날 들이받았는데, 왜 내가 잘못한 게 되는 거야? 강지한, 네가 날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젠 내가 숨 쉬는 것도 죄냐?’한편 강준형은 어두운 표정으로 온지유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온지유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강지한이 심미연을 오해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저 계략이 보통이 아니구나. 미연이가 저런 애를 어찌 이기겠어!’강준형의 시선을 느낀 온지유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아차, 이 고약한 노인을 잊고 있었네. 내가 무슨 속셈인지 눈치챘을지도 몰라. 만약 진실을 들추면 어떡하지?’그녀는 더 이상 연기를 이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글썽이며 심미연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미연아, 내 잘못 때문에 지한이가 널 오해했어. 정말 미안해.”심미연은 고개를 살짝 젓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사과는 받겠는데, 용서는 못 해.”‘대놓고 이렇게 속 보이는 연기를 하다니. 강지한, 네가 정말 눈이 멀었구나.’강지한은 그 말에 화가 나 심미연을 노려보며 말했다.“미연아, 너무 심한 거 아니야?”그러면서 온지유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심미연은 두 사람이 등을 돌리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온지유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강지한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0화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담아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그래요?”이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온지유 씨가 도망쳤어요.”“언제요?”심미연의 눈빛이 반짝이며 날카로워졌다. 누가 이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스쳤다.“어젯밤에요.”이지연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고 자책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방심했어요.”심미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미안해하지 마요. 이건 지연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이지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당장 찾아올까요?”심미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천천히 만지며 생각했다.“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어젯밤 강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혹시 온지유의 실종과 강지한이 관련 있는 걸까? 만약 강지한이 온지유를 구한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의문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참, 보스. 어젯밤에 스승님 못 보셨어요?”이지연이 물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은 봤었다. 그녀는 진운혁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고 따라붙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제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스승님께서 이진영 씨랑 같이 식사하고 계셨어요!”이지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심미연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문득 이전에 마주쳤던 진운혁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 순간 한 가지 의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그때 내가 본 스승님은... 정말 스승님이 맞았을까?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을 사칭하고 있었다면 그 목적은 대체 뭘까?’그때 이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심미연의 생각을 끊어냈다.“보스!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어요!”“무슨 정보예요?”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자 이지연의 들뜬 목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9화

    백선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진은숙의 팔을 살짝 끌어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제 가요.”진은숙은 손바닥 위에 놓인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이건... 어쩌죠?”백선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난처한 상황을 심미연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심미연 앞에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마음은 충분히 받았지만...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어요.”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봉투 위로 흘렸다.“오빠가 직접 드린 건데 마음 편히 받으세요. 저한테 돌려주실 필요는 없어요. 자,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 벌써 배가 고파졌는걸요.”그러나 말하다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스르르 마음 한쪽에 올라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유진은 예전에 밤하늘을 보며 수없이 약속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녀와 아이를 평생 지키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약속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세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오빠, 나랑 약속한 거 잊은 거야?’“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과 사장님 두 분 다 참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분들이세요. 두 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빌게요!”진은숙은 기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백선영의 팔을 붙잡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오늘 정말 행운이 따랐다 싶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니.심미연도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가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어쩐지 목이 바싹 마른 게, 감정이 몰려서 그런 걸까.막 물을 다 마셨을 무렵 문밖에서 귀엽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어디 있어요?”그 소리는 마치 봄날에 막 피어난 꽃처럼 듣는 사람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심미연은 표정이 풀렸고 얼른 얼굴을 내밀며 따뜻하게 웃었다.“우리 태하, 엄마 여기 있어!”심태하는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 품에 안겼다.“엄마, 아빠가 나 버렸어요!”심미연은 깜짝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8화

    백선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집에 안 계시는 동안 꼭 사모님과 도련님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진은숙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바로 캐리어 들고 곧장 나가셨거든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박유진의 말뜻을 곱씹어 보았지만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 선명하게 와닿지 않았다.“그런데요, 사모님...”진은숙이 심미연을 흘끗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눈빛에는 망설임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왜 그러세요?”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언제나 그래왔듯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태도가 마치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웠다.진은숙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어젯밤에 제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계단 모퉁이에서 사장님을 마주쳤었어요. 사장님도 물 마시러 나오신 것 같았어요.”곁에 서 있던 백선영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저도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문 열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계셨습니다.”심미연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어젯밤에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진은숙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어서 말했다.“불빛이 비쳐서 얼핏 봤는데 사장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더라고요. 꼭 방금 울기라도 한 사람처럼요. 아마 제가 눈치챌까 봐 인사만 툭 하고는 곧장 자리를 피하셨어요. 전 그냥 물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보니까 사장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계셨어요. 제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안 들어오시더라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오늘 아침에 사장님께서 나가신 뒤에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휴지통에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어요. 어젯밤 내내 잠도 못 주무시고 담배만 피우셨던 것 같아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7화

    휴대폰 화면이 켜지고 그 익숙하면서도 가슴을 죄는 번호가 뜨는 순간, 박유진의 심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잡힌 듯 조여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렁이며 축축한 솜처럼 뭉쳐져 목덜미를 틀어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말은 더더욱 나올 리 없었다.그 번호는 마치 꿈결 속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고통과 갈등을 다시 불러냈다.박유진은 손을 떨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공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묘한 압박이 가득했다. 박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손끝으로 천천히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려 문장을 써 내려갔다.[진성에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도 되지?]그 메시지엔 그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언젠가 다시 마주하길 바라는 희미한 기대도 모두 그 짧은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메시지 전송을 마친 박유진은 망설임 없이 전원을 꺼버렸고 휴대폰을 한쪽으로 툭 던졌다. 마치 그렇게 하면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까지 함께 던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텅 빈 공간엔 그의 심장 뛰는 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규칙적이고도 묵직한 박동이 마치 그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했다.박유진은 눈을 감았다. 피로한 몸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갔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찾고자 했다.비록 밤새 한숨도 못 잤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유난히 또렷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지탱해 주듯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하지만 피하고 싶을수록 심미연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의 미소는 때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따스했으며 때로는 눈빛 하나로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또 부끄러워하던 그 순간순간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6화

    박유진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심미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될 것이란 사실.만약 그녀가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그녀를 돕고 그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친딸인 양 지극정성으로.박유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함께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심미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박유진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박유진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많고 무거웠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젠 좀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갈래.”박유진의 목소리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심미연을 더욱 꼭 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 뼛속 깊이까지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어쩌면 이 다정함이 그들 사이 마지막 남은 따뜻함이 될지도 모른다...박유진의 마음속은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머릿속 이성은 매서운 바람처럼 그를 휘감으며 이제는 놓아줄 때라며 끊임없이 속삭였다.하지만 감정은 뿌리 깊은 덩굴처럼 박유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바랐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심미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이 찰나의 시간이 남은 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박유진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박유진의 마음속 한기를 모두 녹이는 듯했다.심미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생에 오빠를 만나 알아가고 수많은 인파를 뚫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복이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 손 놓지 말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5화

    박유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이 그녀를 감쌌고 낮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말해 봐.” 심미연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과 마주친 순간, 마음 한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마치 오래도록 감춰온 비밀이 이제야 드러날 것만 같은 예감처럼. “왜 그래, 미연아?” 박유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녀의 불안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아주 섬세하게 묻는 말이었다. 심미연은 입을 열 듯 말 듯 망설였다. 떨리는 입술이 달싹이기만 할 뿐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고 있는 건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진실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지한의 딸, 강상미. 들어본 적 있지?” 박유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아이가 왜?” 툭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미연이랑 강지한의 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지금에서야 그 아이를 말하는 걸까.’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짐하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내가 잃어버린 내 딸... 그 애는 세상을 떠난 게 아니었어.”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그녀는 거의 모든 용기를 다 쏟아부었다. “정말이야?” 박유진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젖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너 분명히 말했잖아. 아이 숨 안 쉬고 있었다고. 직접 확인했었잖아... 확신했었어.” 그 순간, 박유진의 머릿속을 스친 단 하나의 가능성. ‘설마... 지금 미연이가 말하려는 게... 그 아이가 강상미라는 말이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껏 맞춰지지 않던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복잡하게 얽혔던 퍼즐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박유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손끝이 얼어붙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4화

    박시훈은 눈을 깜빡이며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봤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 수가 있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빠른데요? 정상은 아닌 것 같네요.” 심미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시훈은 민망해서 땅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왜 비정상이야... 완전 정상이거든...’ 심미연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붉게 부어 있었고 피도 조금 배어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약을 꺼내 상처 위에 다시 발라주었다. 상처는 쓰라렸지만 박시훈은 이 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곁에 있는 지금이 너무도 소중했다. 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상처를 감싸고 도구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마무리를 한 뒤 장갑을 벗으며 병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저... 방금 야식 시켜놨는데... 같이 먹고 가주면 안 돼요?” 박시훈은 괜히 목이 메여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었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왜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거야...’ “저는 밤에 야식 먹는 습관 없어요.”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야식 너무 자주 먹지 마요. 건강에 안 좋아요. 전 이만 갈게요. 야식 먹고 푹 쉬세요.” 그녀의 말에 박시훈은 마치 한겨울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었다. 심지어 발끝까지 저릿했다. 그녀가 간다. 그를 남겨두고 그냥 떠나버린다.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심미연은 이미 등을 돌린 채 병실을 나서고 있었고 박시훈의 낙담한 얼굴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실을 벗어난 심미연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시간째 이어진 수술에,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강지한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로 걸어 나왔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3화

    심미연의 시선이 하얗게 눈처럼 샌 강준형의 머리카락에 머물렀다. 가슴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려왔다. 만약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웃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땐 주저 없이 말했을 것이다. ‘네. 할게요.’그때 그녀는 강지한을 사랑했고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준형이 걱정된다고 해서 그 바람을 무조건 들어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곁에서 조용히 그녀를 훔쳐보던 가정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떠나신 거구나...’ ‘이러다 어르신 또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시겠네...’강준형도 그녀의 침묵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연이란 게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비록 아쉬움은 남지만 그 역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 사실 저랑...”“딩.” 심미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든 그녀는 곧장 부드러운 눈빛을 머금은 박유진과 눈이 마주쳤고 그 말은 다시 목구멍 깊숙이 삼켜졌다. “오빠, 여긴 어떻게 왔어?”박유진은 따뜻한 미소로 대답했다. “너 데리러 왔어.” 그리고 곧 예의를 갖춰 강준형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강준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유진아, 너랑 미연이...?” 어딘가 모르게 다정해 보이는 둘의 분위기.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스쳤다.“할아버지, 제가 차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심미연은 사실 내일 박유진과 혼인신고를 하러 갈 거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 강준형이 ‘강지한과 다시 잘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말하지 말자. 괜히 말했다가 할아버지 마음만 상할 수도 있어.”그 순간, 박유진의 손이 저절로 움켜쥐어졌다. ‘할아버지한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2화

    하지만 정작 온지유의 칼끝을 막나낸 사람은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박시훈이었다. 심미연의 진지한 얼굴을 본 강준형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를 의자에 앉히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앉아 계세요.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요.” “그래. 다녀오너라.” 강준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냈다. 심미연이 등을 돌려 복도로 사라지자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서 있던 가정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사모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 성격도 훨씬 부드러워지셨고요. 만약 사모님이 도련님과 다시 재결합하신다면 어르신께서도 도련님 혼자 남을까 봐 걱정 안 하셔도 될 텐데요.” 강준형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미연이가 돌아온다면 지한이도 지금처럼 외롭진 않겠지. 상미도 엄마 손길이 필요하고... 지한이가 아무리 잘 챙긴다 해도 아빠는 아빠일 뿐이지. 엄마처럼 섬세하긴 어렵잖니. 게다가 지한이는 이노하이브를 이끄는 입장이라 상미를 온전히 돌보기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말이다.” “나중에 사모님께 슬쩍 한번 말씀드려보시는 건 어떠세요?” 가정부는 늘 심미연을 좋게 봐왔다. 도련님과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세상에 외모, 인품, 성격, 효심까지 갖춘 여자를 다시 만나긴 정말 쉽지 않으니까. 강준형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분위기 봐서 말해보지. 미연이가 듣기 싫어하면 더는 꺼내지 않을 거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가정부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심미연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시죠. 할아버지.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