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50화

Author: 무안안
심미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차갑게 말했다.

“승산이 100%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라 해도 완벽한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만두겠습니다. 다른 변호사를 찾겠습니다.”

이진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다.

심미연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결국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가 누구를 고용하든 상관없었다.

자신과 관련이 없다면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이진영은 그녀가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줄 몰랐는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심미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신호음에 이진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심미연 씨가 이렇게 쉽게 동의하다니?’

단 한 마디의 설득도 없었다.

만약 이다은의 이혼 사건에서 승소하면 그 변호사 비용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심미연이 이 사건을 놓치면 그만큼 많은 돈을 잃게 되는 셈이었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며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며 급히 전화를 받았다.

“지금 상황은 어때? 변호사는 찾았어?”

“아니. 아직 찾고 있어.”

“왜 심미연을 바꾼 거야?”

“100% 승산을 확신하고 싶어서. 하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이건 이혼 소송이야. 물건 사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감히 100% 승리를 보장할 수 있겠어?”

상대방은 거의 미친 듯이 그를 비난했다.

“상관없어. 난 이기기만 하면 돼. 절대 질 수 없어.”

“변호사 하나 소개해줄게.”

“누구?”

“예전에 경성에서 유명한 변호사였어.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그 사람이 누구냐고? 빨리 말해.”

이진영은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며 말을 끊었다.

상대방은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무겁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진운혁.”

이진영은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사람... 몇 년 전에 죽었잖아? 지금 뭐 무서운 이야기 하는 거야?”

진운혁은 예전에 경성에서 정말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1화

    화면에 여러 통의 미수신 전화가 뜬 가운데 그 중 임현의 번호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심미연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솟구치며 깊이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급하고 당황한 기색이 묻어났다. “심 변호사님...’ “임현 씨, 무슨 일이에요?” 심미연은 급하게 물었다. “심 변호사님, 마을 사람들이 저희를 가둬버렸어요. 아예 나갈 수가 없어요. 제발 와서 도와주세요.” 임현의 목소리는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심미연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눈을 좁히며 긴장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뭔데요? 알았다고 말하세요. 지금 당장 갈게요.” 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신히 대답했다. 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아들 일은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우선 임현을 구하는 일이 급했다. 그녀는 짐을 챙기며 전화를 걸었다. “보스, 무슨 일이에요?” “사람 몇 명 모아서 나한테 와줘요. 싸움 잘하는 사람들로, 알겠죠?” “네. 걱정 마세요. 바로 준비해서 출발할게요.” 짐을 다 챙긴 심미연은 곧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때, 다른 한쪽에서는 비가 갓 내린 마을의 길에 진흙이 고여 빗방울이 은침처럼 땅을 파고들며 불규칙한 물웅덩이를 남기고 있었다. 흐릿한 하늘빛을 반사하는 웅덩이들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임현과 동료들은 그 초라한 작은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작은 창문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겨우 몇 줄기 희미한 빛이 비쳐 들어오며 안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공기는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비가 내린 후 특유의 습기와 냉기가 섞여 사람의 폐 속까지 파고들었고 그녀는 참을 수 없이 기침을 하고 싶어졌다. 밖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소리는 끊임없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로 울려 퍼졌다. 전화를 끊은 후, 임현은 긴장한 몸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2화

    심미연은 차 안에 앉아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외딴 마을로 가는 길을 어떻게 가장 빨리 수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밖에서는 비가 장막처럼 쏟아지며 차창을 세차게 두드렸고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그녀는 앞으로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때, 갑자기 급하고 약간은 당황스러운 두드리는 소리가 차 안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심미연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잠시 후, 박 기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밖에... 사람 같아요...” 박 기사는 말을 하며 자꾸만 후방 거울을 힐끗거리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산속에 늑대가 출몰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지금 밖에 있는 것이 사람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심미연은 박 기사의 말을 듣고 갑자기 고개를 들며 빗물로 가득 찬 창밖을 응시했다. 그 순간, 한 쌍의 호박빛 눈동자가 마치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처럼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비가 내리는 장막을 뚫고 마주친 그녀와 깊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 눈은 깊고 신비로웠으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듯한 빛을 발하며 끝없는 이야기와 비밀을 간직한 듯했다. 그는 조용히 심미연과 눈을 맞추었고 가까이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 좁고 답답한 차 안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심미연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그 눈빛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 기사는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키며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가 된 듯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심미연은 시선을 돌려 손을 뻗어 차 문을 열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스치며 시원한 기운을 전했고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이 비에 젖었다. 그녀는 몸을 살짝 움직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타세요.” 그녀의 말투는 단호하고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사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3화

    문도현은 갑작스럽게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 뜨거운 열기에 의해 속도 모르게 몸이 달아오르며 그 열기가 순식간에 팔다리 끝까지 퍼져나갔다. 생리적인 반응에 당황한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얽히며 살아왔다. 그들 중 누구도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았다. 모든 친밀한 만남은 단지 욕망을 풀기 위한 일상적인 일이었고 예외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명품 가방, 고급차, 그들이 원하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언제나 짧고 목적이 뚜렷했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로의 길을 갔다. 그는 여자를 향한 욕망 외에는 어떤 감정도 느껴본 적이 없었고 애정이나 미련 따윈 일절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마치 번개처럼 그의 평온한 삶을 강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한 번의 시선, 한 번의 행동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까지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듯했다. 문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혼란스러워하며 당황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그에게 전혀 낯선 것이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다듬고 물기가 떨어지는 수건을 가죽 시트 위에 올려 놓고는 차분히 몸을 낮춰 앉았다. 그의 동작은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이어졌다. “심미연 씨, 거래 하나 제안할게요.” 그의 눈은 심미연을 깊이 응시하며 그 속에 장난기와 계산된 의도가 섞여 있었다. 목소리에는 미묘한 가벼움이 섞여 있었고 마치 어두운 밤 속에서 은밀히 피어나는 매혹적인 꽃처럼 끌어당기고 싶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원래 이곳을 조사하려고 왔지만 뜻밖의 폭우가 그를 갇히게 만들었다. 더욱 안 좋은 건 함께 온 기사와 길이 엇갈려 혼란 속에서 헤매다 결국 나무 아래에 숨어 기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외진 시골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4화

    심미연은 문도현을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마치 극지에서 온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그 눈빛은 끝없이 냉담했다.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스치며 그 웃음은 마치 겨울의 날카로운 칼날처럼 차 안에 메아리쳤다. “문도현 씨, 제가 프로젝트 하나 받는다고 해서 당신과 잠자리를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아쉽지만 전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 예전에 강지한이 그녀를 팔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부부였기에 그녀는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문도현은 왜 돈으로 자신과 관계를 맺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위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겁고 침울했다. 박 기사는 운전석에서 한 움직임도 없이 숨조차 조심스럽게 내쉬고 있었다. 그도 듣고 있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듯 서둘러 숨을 참았다. 그는 항상 심미연이 뛰어난 변호사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두려움이 밀려왔다. 문도현은 그 자리에 앉아 여전히 젖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고고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심미연을 바라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심미연 씨는 외모, 몸매, 능력 모든 면에서 제 취향에 완벽하게 맞아요. 만약 돈이 부족하지 않으시다면 원하는 걸 말씀해 보세요. 제가 드리죠.” 그 역시 돈은 부족하지 않으니까. 심미연은 문도현을 바라보며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문도현 씨, 외출할 때 머리도 안 챙기고 나오신 거예요?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요?” 명백하게 거절하는 말을 듣고도 문도현은 이해하지 못한 채 반응했다. “너무 급하게 거절하지 마세요. 천천히 생각해보고 답변해 주세요.”문도현은 화가 내기보다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경성에 있으면 분명히 저를 필요로 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정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5화

    자료를 정리한 뒤 이미 자정이 넘었다. 심미연은 하품을 하며 사무실에서 잠을 청했다. 박유진과 심태하는 집에 없었고 집에 가봐야 혼자일 것 같아 사무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강상미 부모님과 함께 강지한을 찾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섬에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심태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낯선 아줌마가 장난감을 들고 강상미를 달래고 있었다. 강상미는 소파에 앉아 큐브를 돌리고 있었다. 어제 오빠가 가르쳐줬지만 아직 잘 못 하고 있었다. 강상미는 잘 못 해서 조금 초조해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계속해서 말하며 방해했다. 정말 시끄러웠다. 오빠의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줌마는 큐브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 텐데...’ ‘계속 말을 하지도 않으실 거야.’ 심태하는 예쁜 큰 눈을 반짝이며 속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서둘러 방으로 올라가서 옷장에 숨겨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혜자는 그가 내려오는 걸 보고 서둘러 다가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작은 도련님, 아침 준비됐어요. 지금 드실까요?” 심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임 할머니. 수고 많으셨어요.” 임혜자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착한 아이를 도련님은 왜 섬에 가둬두고 엄마와 만나지 못하게 할까?’ “저는 괜찮아요. 얼른 가서 아침 드세요.”임혜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를 이끌고 식당으로 갔다. 심태하는 손을 씻고 나서 식탁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음식을 먹을 때 예의 바르고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으며 싫어하는 것도 남기지 않았다. 음식을 다 먹은 후 그가 싫어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고백하곤 했다. 임혜자는 그의 그런 점을 특히 좋아했다. “임 할머니, 저 아줌마 누구에요?” 심태하가 샌드위치를 들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임혜자는 급히 손가락에 입을 대며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6화

    임혜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세 살짜리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강씨 가문에서 강상미가 다른 아이들보다 똑똑하다고 느꼈던 그녀는 지금 심태하를 보며 그가 훨씬 더 뛰어난 아이임을 알게 되었다. 역시 도련님과 사모님의 자식답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들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 할머니, 왜 서 계세요? 빨리 가세요.” 심태하는 낮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임혜자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대답했다. “네. 지금 가요.” 그녀는 말을 마친 후 서둘러 식당을 나갔다. 심태하는 핸드폰을 꺼내 몰래 메시지를 하나 보낸 뒤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얌전히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임혜자는 임지혜를 따라 들어오며 그 장면을 보고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예쁜 아이가 식탁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며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강상미는 임혜자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오빠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임혜자의 손을 뿌리치며 심태하에게 달려갔다. “오빠, 나도 먹여줘.” 아이는 식탁 옆에 서서 작은 입을 벌리며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심태하는 샌드위치를 동생의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자, 먹어.” 그 순간, 임지혜는 심태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지?’ ‘강지한과 너무 닮았잖아?’ 임지혜는 잠시 놀란 후 불쾌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녀는 아침 일찍 쇼핑몰에 가서 장난감도 사고 예쁜 옷도 샀으며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왔다. 강지한과 결혼하려면 강상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기에 애써 잘해보려 했지만 강상미는 전혀 마음을 열지 않아 그녀는 점점 화가 났다. 그런데 이제 심태하까지 나타나니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7화

    강상미는 그 여자가 자신의 ‘엄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 역시 오빠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가 되길 바랐다. 임지혜의 얼굴이 굳어지며 이를 악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강상미, 이 도움이 안 되는 녀석!’ 그녀는 나중에 강지한의 아내가 되면 그때 천천히 복수할 것을 다짐했다. 임혜자는 심태하를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작은 도련님은 원래 말이 적지 않았나? 도련님을 볼 때마다 인사만 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오늘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 ‘혹시 임지혜 씨가 마음에 들어서 엄마로 삼고 싶은 건 아닐까?’ ‘아이들은 보통 자기 엄마를 좋아하지 않나?’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심태하는 임혜자를 보며 말했다. “임 할머니, 동생 데리고 잠깐 나가서 놀아주세요. 저는 이모랑 얘기할게요.” 그의 목소리는 어리지만 의외로 단호하고 강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임혜자는 본능적으로 거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오빠,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면 안 돼!” 강상미는 심태하가 엉뚱하게 임지혜를 엄마라고 부를까 봐 걱정하며 말했다. 심태하는 한 손으로 강상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빠는 알아서 할게. 상미는 가서 놀아.” 그의 표정과 말투는 어린 아이답지 않게 예상외로 성숙하고 단호했다. 임혜자는 깜짝 놀라 잠시 멈칫했다. 수십 년간 강지한을 돌봐온 그녀는 눈앞의 심태하를 보고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로 너무 똑같았다. 강상미는 임지혜를 몰래 힐끗 쳐다보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이는 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여자가 자신의 엄마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오빠를 믿기로 했다. 결국 강상미는 마지못해 임혜자를 따라 나갔다.곧 식당에는 임지혜와 심태하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이모, 앉으세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58화

    “상미랑 태하가 같이 실종됐어.”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저음이 들려왔고 심미연의 가슴은 마치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두 아이가 함께 실종되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지금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강지한이 물었다. 심미연은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럴 때일수록 반드시 차분해져야 했다. ‘지난번에도 태하가 납치당했을 때 내가 찾아냈잖아.’ ‘심며연, 정신 차려. 진정해!’ “너는 아이들을 찾아. 나는 신경 쓰지 마.”심미연은 말을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쥔 채 깊은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임현이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변호사님, 무슨 일이에요?” 심미연은 급히 일어섰다. “태하가 실종됐어요. 오늘 재판은 임현 씨가 출석하세요. 제가 말한 대로만 하면 돼요.”그녀는 임현에게 당부하며 급히 밖으로 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태하가 실종됐어요. 핸드폰과 시계가 모두 수거돼서 위치 추적이 불가능해요. 위치 추적을 다시 시도하고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구출 작업을 진행하세요. 발견되는 대로 즉시 보고해주세요. 구출 작업은 반드시 안전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보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집에 돌아온 심미연은 급히 서재로 향했다. 컴퓨터를 켜고 심태하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그때, 핸드폰에서 갑자기 메시지가 도착했다. 핸드폰 화면을 열어보니 익숙하지 않은 번호에서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그 문자에는 두 글자, ‘DM’만이 적혀 있었다. 심미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슴을 움켜잡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심태하에게 위급한 상황일 때 이 신호를 보내라고 가르친 적이 있었다. 이 문자는 분명히 그 번호를 추적하라는 신호일 것이다.심미연은 확신이 들며 가슴이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6화

    박유진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심미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될 것이란 사실.만약 그녀가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그녀를 돕고 그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친딸인 양 지극정성으로.박유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함께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심미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박유진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박유진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많고 무거웠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젠 좀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갈래.”박유진의 목소리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심미연을 더욱 꼭 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 뼛속 깊이까지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어쩌면 이 다정함이 그들 사이 마지막 남은 따뜻함이 될지도 모른다...박유진의 마음속은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머릿속 이성은 매서운 바람처럼 그를 휘감으며 이제는 놓아줄 때라며 끊임없이 속삭였다.하지만 감정은 뿌리 깊은 덩굴처럼 박유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바랐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심미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이 찰나의 시간이 남은 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박유진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박유진의 마음속 한기를 모두 녹이는 듯했다.심미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생에 오빠를 만나 알아가고 수많은 인파를 뚫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복이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 손 놓지 말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5화

    박유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이 그녀를 감쌌고 낮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말해 봐.” 심미연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과 마주친 순간, 마음 한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마치 오래도록 감춰온 비밀이 이제야 드러날 것만 같은 예감처럼. “왜 그래, 미연아?” 박유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녀의 불안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아주 섬세하게 묻는 말이었다. 심미연은 입을 열 듯 말 듯 망설였다. 떨리는 입술이 달싹이기만 할 뿐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고 있는 건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진실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지한의 딸, 강상미. 들어본 적 있지?” 박유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아이가 왜?” 툭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미연이랑 강지한의 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지금에서야 그 아이를 말하는 걸까.’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짐하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내가 잃어버린 내 딸... 그 애는 세상을 떠난 게 아니었어.”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그녀는 거의 모든 용기를 다 쏟아부었다. “정말이야?” 박유진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젖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너 분명히 말했잖아. 아이 숨 안 쉬고 있었다고. 직접 확인했었잖아... 확신했었어.” 그 순간, 박유진의 머릿속을 스친 단 하나의 가능성. ‘설마... 지금 미연이가 말하려는 게... 그 아이가 강상미라는 말이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껏 맞춰지지 않던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복잡하게 얽혔던 퍼즐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박유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손끝이 얼어붙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4화

    박시훈은 눈을 깜빡이며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봤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 수가 있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빠른데요? 정상은 아닌 것 같네요.” 심미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시훈은 민망해서 땅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왜 비정상이야... 완전 정상이거든...’ 심미연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붉게 부어 있었고 피도 조금 배어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약을 꺼내 상처 위에 다시 발라주었다. 상처는 쓰라렸지만 박시훈은 이 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곁에 있는 지금이 너무도 소중했다. 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상처를 감싸고 도구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마무리를 한 뒤 장갑을 벗으며 병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저... 방금 야식 시켜놨는데... 같이 먹고 가주면 안 돼요?” 박시훈은 괜히 목이 메여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었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왜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거야...’ “저는 밤에 야식 먹는 습관 없어요.”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야식 너무 자주 먹지 마요. 건강에 안 좋아요. 전 이만 갈게요. 야식 먹고 푹 쉬세요.” 그녀의 말에 박시훈은 마치 한겨울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었다. 심지어 발끝까지 저릿했다. 그녀가 간다. 그를 남겨두고 그냥 떠나버린다.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심미연은 이미 등을 돌린 채 병실을 나서고 있었고 박시훈의 낙담한 얼굴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실을 벗어난 심미연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시간째 이어진 수술에,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강지한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로 걸어 나왔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3화

    심미연의 시선이 하얗게 눈처럼 샌 강준형의 머리카락에 머물렀다. 가슴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려왔다. 만약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웃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땐 주저 없이 말했을 것이다. ‘네. 할게요.’그때 그녀는 강지한을 사랑했고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준형이 걱정된다고 해서 그 바람을 무조건 들어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곁에서 조용히 그녀를 훔쳐보던 가정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떠나신 거구나...’ ‘이러다 어르신 또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시겠네...’강준형도 그녀의 침묵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연이란 게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비록 아쉬움은 남지만 그 역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 사실 저랑...”“딩.” 심미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든 그녀는 곧장 부드러운 눈빛을 머금은 박유진과 눈이 마주쳤고 그 말은 다시 목구멍 깊숙이 삼켜졌다. “오빠, 여긴 어떻게 왔어?”박유진은 따뜻한 미소로 대답했다. “너 데리러 왔어.” 그리고 곧 예의를 갖춰 강준형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강준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유진아, 너랑 미연이...?” 어딘가 모르게 다정해 보이는 둘의 분위기.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스쳤다.“할아버지, 제가 차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심미연은 사실 내일 박유진과 혼인신고를 하러 갈 거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 강준형이 ‘강지한과 다시 잘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말하지 말자. 괜히 말했다가 할아버지 마음만 상할 수도 있어.”그 순간, 박유진의 손이 저절로 움켜쥐어졌다. ‘할아버지한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2화

    하지만 정작 온지유의 칼끝을 막나낸 사람은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박시훈이었다. 심미연의 진지한 얼굴을 본 강준형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를 의자에 앉히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앉아 계세요.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요.” “그래. 다녀오너라.” 강준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냈다. 심미연이 등을 돌려 복도로 사라지자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서 있던 가정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사모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 성격도 훨씬 부드러워지셨고요. 만약 사모님이 도련님과 다시 재결합하신다면 어르신께서도 도련님 혼자 남을까 봐 걱정 안 하셔도 될 텐데요.” 강준형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미연이가 돌아온다면 지한이도 지금처럼 외롭진 않겠지. 상미도 엄마 손길이 필요하고... 지한이가 아무리 잘 챙긴다 해도 아빠는 아빠일 뿐이지. 엄마처럼 섬세하긴 어렵잖니. 게다가 지한이는 이노하이브를 이끄는 입장이라 상미를 온전히 돌보기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말이다.” “나중에 사모님께 슬쩍 한번 말씀드려보시는 건 어떠세요?” 가정부는 늘 심미연을 좋게 봐왔다. 도련님과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세상에 외모, 인품, 성격, 효심까지 갖춘 여자를 다시 만나긴 정말 쉽지 않으니까. 강준형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분위기 봐서 말해보지. 미연이가 듣기 싫어하면 더는 꺼내지 않을 거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가정부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심미연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시죠. 할아버지.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1화

    박시훈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수술복을 입은 심미연을 단번에 알아봤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는 도저히 다른 사람과 헷갈릴 수 없는 것이었다. “날 좀 밀어줘.” 박시훈이 간병인에게 다급히 말했다. 간병인은 곧장 그의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이어 강준형도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심미연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미연아, 상황이 어때?” 강준형의 목소리엔 감추지 못한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그때 박시훈의 시선이 다시금 심미연에게로 향했다. “당신 의사예요?”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직이 말했다. 세계 최고 해커, 그리고 의사. 그녀가 가진 아우라는 더없이 눈부셨다. 박시훈은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상태가 조금 위중해요. 지금은 언제 깨어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심미연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준형이 가장 궁금해할 말이었다.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고 일부러 마지막 문장을 강조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강준형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심미연의 손을 꼭 잡았다. “미연아, 정말 고맙다. 수고 많았어.” 심미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 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강지한은 그녀를 구해준 적이 있다. 이제 그녀가 그를 구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할아버지, 강지한이 깨어나면 병원에서 바로 연락드릴 거예요. 지금은 먼저 집에 가 계세요.” 심미연은 그의 머리 위로 보이는 은빛 머리카락을 보며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시려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강준형은 이전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미연아, 혹시 아이 좀 데려와서 나한테 보여줄 수 있겠니?” 그는 줄곧 강지한이 그녀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0화

    심미연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강지한은 자신을 구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 순간, 이지연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보스를 죽이려고 해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밤 그 대형 교통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대형 트럭을 이용해 그녀를 노렸고 때마침 강지한의 차량이 그 사이에 끼어들면서 그가 대신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차량이 폭발했다면 강지한이 그 안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연아?” 말이 없던 심미연을 걱정한 강준형이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전화를 끊은 줄 알고 불안해졌는지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다. “지금 바로 갈게요.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제가 꼭 강지한 살려낼게요.” 심미연은 단호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꼭 쥔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장 안으로 들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핸드백과 폰을 챙겨 계단을 내려섰다. 그녀는 몰랐다. 서재 문 앞에 조용히 서 있던 박유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박유진의 눈빛은 텅 빈 허공을 떠돌 듯 쓸쓸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이 누구인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야만 했다. 강지한이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켰다면 그녀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아마 오늘 구청이 문을 열었더라도 심미연은 박유진과 그곳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박유진은 마음이 아프지 않은 척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아. 당연한 거야. 나라도 갔을 거야.’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그건 위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속이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 잠시 후, 그는 조용히 서재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지만 화면 속 글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직 한 사람, 심미연. 지금 그 순간에도 그녀만이 그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29화

    ‘강 할아버지’라는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뜨는 순간, 박유진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강지한의 할아버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는 건 분명 강지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강지한이 심미연을 구하려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가 당연히 그를 찾아갈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미연아, 갑자기 급한 회의가 생각났어. 먼저 전화 받아. 난 서재에서 회의 좀 하고 있을게.” 박유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신중했다. 마치 그녀의 마음을 흔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레 말하려 애쓰는 듯했다.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응. 다녀와. 나도 통화 좀 할게.” 박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통화 끝나면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 쉬어. 알았지?” “응. 오빠도 회의 끝나고 푹 쉬어.” 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박유진은 언제나 그녀에게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몇 번이나 외면하고 져버렸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그럼 난 먼저 갈게.” 그는 그녀의 체온을 놓치기 아쉬운 듯 한동안 손끝을 망설였지만 결국 손을 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예전에 박유진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연이와 결혼하고 싶다면 그 아이를 절대 놓치지 마라.’ 하지만 만약... 심미연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하는 건 박유진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그에겐 견딜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서재 문이 조용히 닫히자 심미연은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소파에 앉자마자 아까 걸려온 전화를 다시 눌러 받았다. “미연아, 나야. 혹시 내가 깨운 건 아니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하구나.” 강준형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지쳐 있었고 그 안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28화

    강지한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박시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뉴스 봤어. 네 카이엔이 폭발했다길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네가 무사하니까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그 대형 트럭, 당장 확인해. 전부 조사하고 운전자는 반드시 찾아.” “알겠어. 지금 바로 확인해볼게.”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박시훈의 표정도 금세 굳어졌다. “조금만 기다려. 바로 연락할게.” “응. 최대한 빨리.” 강지한은 단호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마치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편, 심미연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2층 서재로 향했다. 노크를 하려던 순간, 가방 안에서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잠시 망설인 끝에 그녀는 전화를 먼저 받았다. “보스, 큰일 났어요. 누가 보스를 죽이려고 해요.” 이지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대로 귀에 박혔다. 심미연의 머릿속엔 낮에 있었던 사고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 대형 트럭. 정말 자신을 노리고 달려든 게 맞았던 거다. 만약 그 카이엔이 없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연 씨, 천천히 말해봐요.”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최대한 침착하게 반응했다. ‘도대체 누가 날 죽이려는 거지?’ ‘온지유?’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온지유는 지금 그녀 손에 있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저도 방금 들었어요. 육현성 씨가 누군가랑 통화한 녹음이 있었는데 거기서 보스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이지연은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말을 쏟아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봤어요?” 육현성이 자신을 증오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온지유까지 그녀 손에 있는 상황이니 원한을 품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지연이 말한 그 목소리는 육현성이 아니었다. 그게 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