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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Author: 우담
정하준은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쥔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재촉했지만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 남성이 그의 차 창문을 두드렸다.

“가실 거예요, 말 거예요? 길 막혔잖아요.”

그제야 차를 움직인 정하준은 굳은 듯 몇 미터를 운전하다가 길가에 차를 세웠다.

휴대폰은 이미 상대방이 끊어버린 상태였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담배를 두어 모금 빨아들이자 진한 연기가 목을 찔렀고 그제야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이 두 사람 중, 어떤 쪽도 정하준이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차라리 첫 번째 가능성을 믿고 싶었다.

6년 전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일 거라는 건 거의 본능 같은 직감이었다. 게다가 시간도 맞아떨어졌다.

그가 해외로 나가던 그해. 서이담과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그날 밤.

정하준은 다시 운전대를 움켜쥐었다. 가슴이 쿡쿡 쑤시듯 아려 왔다.

...

라움 디자인 스튜디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서이담은 김유린과 이세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우리 셋이서 밥 먹자.”

김유린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성과급 나왔어?”

서이담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더니 빙긋 웃었다.

이세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분기 우리 디자인팀 실적 1등이 이담 언니잖아요. 상여금 확정이래요!”

김유린은 서이담이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 심장이 좋지 않아 수술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에, 서이담이 이번에 상여금을 받게 됐다는 말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근처 신상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결국 새로 생긴 고깃집으로 결정했다. 서이담은 신규 계정이라 모바일 쿠폰까지 받아 4천 원을 절약했다.

세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배달원이 장미꽃다발을 들고 들어와 백서연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세은이 김유린을 힐끗 보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남자 친구가 보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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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의 세계로   제100화

    정하준은 진심이었다. 그의 답변은 진지하게 고민한 뒤에 나온 답변이었다....서이담은 오늘 어쩌다 지각을 했다. 라움은 탄력근무제이긴 하지만 미루다 미루다 결국에는 연말에 한꺼번에 몰아 업무를 마치는 일이 허다했다.서이담은 자리에 앉은 후 컴퓨터부터 켰다. 하지만 아직도 수리를 안 한 것인지 아무리 켜봐도 켜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가방에서 자신의 태블릿을 꺼냈다.하지만 태블릿으로 뭔가를 확인한 지 2분도 안 돼 금방 회의가 시작되었다.짧은 회의가 끝난 후, 백서연이 그녀를 불러세우며 보름 안에 드레스 하나를 디자인하라고 지시했다. 적절한 가격이었기에 서이담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구체적인 요구사항은 메일로 보내줄게요.”“네, 알겠습니다.”서이담은 자리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다시 뭔가를 하려는데 이번에는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봉규남으로 잠깐 사무실로 오라는 내용이었다.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거래처의 브랜드 책임자가 앉아 있었다. 책임자는 중년 남성이었다.그는 다음 시즌의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다가 서이담을 보고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그녀와 친구 추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거래처 책임자가 디자이너의 연락처를 요구하는 건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이담은 그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게 느껴져 연락처를 주는 게 조금 망설여졌다.그때 봉규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세 사람이 함께 있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문제 될 거 있으면 톡으로 얘기하라고 했다.서이담은 그런 그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봉규남은 다른 대표들과 달리 직원을 아낄 줄 알고 회식 자리에서도 강제로 술을 권하거나 하지 않았다.라움이라는 스튜디오는 그다지 큰 곳이 아니었지만 봉규남이라는 이름은 꽤 무게가 있었다.서이담이 봉규남을 존경하는 건 단지 그가 직원을 위할 줄 아는 참된 대표라서가 아니었다. 오래전, 그 어떤 회사도 그녀의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았을 때 오직 봉규남만이 그녀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면접 기회를 주었다.서이담은 그

  • 다시 너의 세계로   제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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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준은 소파에 앉아 집안 곳곳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그가 앉아 있는 소파는 매우 아담했지만 푹신하고 느낌이 좋았다. 거실도 크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따뜻함이 풍겨 나왔다.탁자 위에는 꽃 한 송이가 든 투명한 꽃병이 놓여 있었고 티비에는 서하율이 붙여둔 갖가지 모양의 스티커가 있었다.서하율은 강아지들을 안방으로 보낸 후 스케치북을 들고 와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정하준의 시선을 느낀 건지 고개를 들며 물었다.“아저씨, 과일 먹을래요?”정하준은 그다지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잠깐만 기다려요.”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곧바로 냉장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들고 서이담에게 과일을 꺼내 달라고 했다.“자, 여기.”서하율은 사과를 건네받은 후 곧장 거실로 달려와 정하준에게 건네주었다.정하준은 아주 잠깐이지만 서이담의 남편이 그간 어떤 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았는지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그는 시선을 들어 부엌에 있는 서이담을 바라보았다. 서이담은 끓고 있는 물은 바라보며 한 손을 들어 목을 스트레칭 했다.그러다 더운지 외투를 벗고는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일 때마다 매끈한 목선이 그대로 드러났다.정하준은 그 모습을 보며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매우 시원하고 단 사과였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입안이 매우 쓰게 느껴졌다. 단맛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는 어느 순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대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서하율은 정하준의 뒷모습을 보며 깜짝 놀란 듯한 얼굴로 서이담을 불렀다.“엄마, 아저씨 갔어요.”서이담도 알고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닫히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으니까.정하준을 위해 끓였던 차는 이제 쓸모가 없게 되었다.서이담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찻물을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컵에 따랐다. 그러고는 거실로 와 딸의 옆에 앉았다.“엄마, 아저씨는 왜 갑자기 가버린 거예요?”서하율이 조금 서운한 얼굴로 물었다.“아마 급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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