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36.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붉게 달아오른 뺨, 설렘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랑의 가슴 한구석을 자잘하게 긁어놓았다.
“이 기분이 제대로 된 질투로구나. 방앗간에서 같이 일한다는 그놈과는 또 다르구나.”
힘없이 들려오는 랑의 말에 해솔이 냉큼 랑의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랑아, 질투할 필요 없어. 그분은 그냥 동경에 불과한 마음이야. 응? 난 너밖에 없어.”
해솔이 제 목을 안아 오며 가슴팍에 뺨을 비벼대자, 랑의 단단하던 어깨가 슬며시 풀어졌다. 랑은 기다렸다는 듯 해솔의 잘록한 허리를 굵은 팔로 덥석 감싸 안아 제 무릎 위로 완전히 끌어올렸다.
“나밖에 없다면서, 눈은 반짝이고
56.“그나저나… 민식이한테서 은은하게 풍기던 이상한 기운은 누구의 것이냐? 너나 사율이 가진 이무기의 기운은 확실히 아니던데.”“그건… 사실 저도 몰라요. 예전에 목포에 머물 때, 사율과 민식 아저씨 둘이서만 어디론가 다녀온 적이 있거든요. 그때 이후로 아저씨 몸에서 묘하고 기괴한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어요.”“역시.”갑자기 이어지는 지호와 랑의 은밀한 대화에 해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둘이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기운이라니? 분명 삼척에 있을 땐 아버지한테 아무 이상 문제없다고 나한테 그랬잖아!”“몸을 직접 해치는 위험한 건 아니었다. 네가 괜히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할까, 봐 말을 아꼈던 것뿐이다.”“결국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잖아, 랑아.”단단하던 랑이 입을 다물었다. 해솔의 차가워진 곁에서 랑은 초조한 빛이 서린 눈으로 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옆에 있던 지호가 난감한 듯 거들었다.“아냐, 해솔이 형. 랑님이 형을 속이려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하지만 해솔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차분했던 머릿속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충격으로 가득 차 있었다.늘 여유롭던 랑의 표정이 어둡게 그늘졌다. 랑이 안절부절못하며 해솔의 눈치를 보는 보기 드문 모습에 옆에 서 있던 석지와 도웅까지 덩달아 움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지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55.방 안에서는 지호가 이불을 개고 있었다. 랑은 말없이 다가가 단숨에 지호의 목덜미를 억세게 잡아챘다. 쿵-! 강한 힘에 밀려 지호의 등과 머리가 벽에 거세게 부딪혔다.잠들어 있던 석지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랑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에 석지는 꼬리를 말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지호의 숨이 헉하고 막혔으나, 랑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목을 쥔 손에 악력을 더했다. 랑의 눈동자가 오만한 황금빛 안광을 뿜어내며, 짐승 같은 집착과 소유욕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건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낮고 서늘하게 깔린 랑의 목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랑의 강렬한 신력과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린 지호는 주홍색 눈동자를 떨며 입을 벙긋거릴 뿐, 감히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목을 죄어오는 고통보다도 랑의 눈에 담긴 서슬 퍼런 살기가 지호의 숨통을 조여왔다. 랑은 지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지막하게 경고했다.“해솔이는 내가 입 맞춘 줄 아니까, 너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지호의 입술 끝이 잘게 떨렸다. 랑은 지호의 목을 그러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가, 쓰레기를 버리듯 턱 놓아주었다. 지호가 콜록거리며 가슴을 쥐어뜯는 동안, 랑은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거라. 알겠느냐?”해솔만 모른 채 지나쳐 간 은밀한 사건 뒤로, 서울에서의 나날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온통 설렘
54.입안이 쓴 듯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인간의 눈에는 그저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요물의 뛰어난 시력 덕분에 방 안의 풍경이 너무나 선명하게 지호의 눈에 들어왔다. 해솔의 붉어진 귓불, 그를 담은 랑의 깊은 안광까지.그때, 랑이 지호가 있는 쪽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랑과 지호의 눈빛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랑은 도발하듯 입꼬리를 피식 말아 올리더니, 해솔의 말랑한 뺨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내리찍었다.이어서 랑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해솔의 붉은 입술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놀란 듯 움찔하던 해솔은 이내 자연스럽게 랑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깊어지는 입맞춤을 수용했다. 해솔의 부드러운 숨소리가 어둠 속에 은밀하게 퍼져나갔다.그 다정한 얽힘을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보아야 하는 지호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손에 억세게 힘을 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강한 질투와 오기가 속에서 울컥 차올랐다.하지만 랑은 지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솔의 얇은 상의 밑단 아래로 슬그머니 단단하고 따뜻한 손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이 매끄럽고 여린 해솔의 허리 곡선을 천천히 쓰다듬어 올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체온이 맨살에 직접 닿자, 해솔의 몸이 흠칫 떨렸다.“하아… 랑아, 안 돼… 더 하면… 나 못 참을 것 같아…….”해솔이 발그레해진 얼굴로 랑의 손목을 다급히 잡아채며 숨 가쁘게 그를 말렸다. 랑은 나지막하게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해솔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를 더 깊이 품에 품어 안았다.
53.랑의 단호한 한마디에 석지와 도웅은 귀 내려간 강아지처럼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폭 꺾이고 말았다. 풀이 죽어 시무룩해진 둘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해솔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잠깐 나가자.”“와, 진짜?!”“역시 해솔이가 최고야!”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진 석지와 도웅이 환호성을 질렀고 해솔은 허허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대신 짐부터 깔끔하게 정리하고 옷 갈아입고 나가는 거야.”“알았어, 알았어!”“근데 방이 두 개밖에 없는데, 방은 어떻게 나눠 써?”석지의 해맑은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랑과 지호의 시선이 동시에 해솔에게로 꽂혔다.“마음 같아서는 석지 너 혼자 쓰게 해주고 싶은데, 방이 작아서 거기에 성인 남자 넷이 들어가는 건 좀 무리잖아.”“아, 어차피 나는 잘 때 본체로 돌아가니까 상관없어!”본체가 자그마한 다람쥐인 석지는 언제 어디서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집에서도 잠을 청할 때는 늘 다람쥐의 모습으로 보송한 이불속에 쏙 들어가곤 했다. 석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랑이 해솔의 한쪽 팔을 제 쪽으로 쓱 잡아당겼다.“그렇다면 셋이 큰방을 쓰거라. 나랑 해솔이가 작은방을 쓸 터이니.”“싫은데요? 저도 형이랑 같이 잘래요!”랑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지호가 해솔의 반대쪽 팔을 착 감아쥐며 앙칼지게 끌어당겼다. 양옆에서 제 팔을 하나씩 꿰차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두 남자의 모습에 해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석지랑 도웅이가 작은방 쓰고, 우리 셋이 큰방 쓰는 걸로 하자. 이제 됐지?”해솔의 탕탕탕 판결이 내리쳐지자, 석지와 도웅은 더 이상 불똥이 튀기 전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각기 메고 있던 가방을 큰방 구석에 대충 던져두고는 해솔의 옷자락을 잡고 닦달하기 시작했다.“해솔아, 빨리빨리!”“어서 나와! 해 완전히 떨어지면 랑이 형님이 못 나가게 한단 말이야!”서울로 떠나기 전, 랑은 모두에게 단단히 일러두었
52.해솔뿐만 아니라 세 산신과 지호 역시 촌놈처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저마다 나지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랑아, 너는 서울 와본 적 있어?”해솔이 곁에 서서 제 손을 꼭 잡아 오는 랑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랑은 잠시 옛 기억을 더듬듯 묵직하게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도 자주 오진 않았다. 옛날에 왜놈들이 이 땅을 짓밟고 쳐들어왔을 때, 부탁을 받고 서너 번 정도 와서 정세를 살폈을 뿐이다.”“지호는?”“난 서울은 완전히 처음이야. 보통 따뜻한 아랫지방에서 터를 잡고 살아서 와볼 일이 없었거든.”지호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응수하자, 옆에 있던 도웅이 신나서 거들었다.“난 저번에 설범님이랑 한 번 와봤는데… 그땐 밤중에 몰래 온 거라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어. 낮에 보니까 진짜 넓다!”서울에 여러 번 발을 들여본 랑을 제외하면, 모두가 이 거대 도시의 역동적인 규모와 빽빽한 사람들의 활기에 압도되어 두리번거리기 바빴다.사실 랑 역시 복잡하고 시끄러운 인간 사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과거에는 할 일만 빠르게 끝내고 산으로 돌아가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제 손을 꼭 쥐고 눈을 반짝이는 해솔의 곁에서 그가 바라보는 풍경을 함께 차분히 눈에 담고 있었다.“내가 왔을 때는 식민지 시절이라 사람들의 표정에 그늘이 깊었는데, 지금은 다들 한결 행복해 보이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인간들의 세상은 참으로 빠르구나. 그때만 해도 이렇
51.여행 날짜는 해솔의 휴가에 맞춰 차곡차곡 정해졌다. 둔갑이 자유로운 세 산신에게는 딱히 챙길 짐이 없었기에, 해솔의 옷가지 몇 점을 나누어 가방에 채워 넣었다. 저마다 작은 가방을 하나씩 멘 다섯 명은 기차역에 일렬로 서서, 쿠르르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거대한 철마를 바라보았다.“와, 기차라니! 나 기차 처음 타 봐!”“난 그래도 설범님과 서울에 갈 때 두 번 타 봤지.”석지와 도웅이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거대한 기차를 올려다보는 동안, 해솔은 입술을 다물고 몰래 웃음을 참아야 했다. 다름 아닌, 제 옆에 딱 붙어 서서 껌딱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지호 때문이었다.옆에 바짝 붙어 선 지호가 귀를 쫑긋거리며 해솔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기에, 해솔은 내심 튀어나오려던 ‘KTX’ 자랑을 꾹 눌러 담아야 했다.부산까지 세 시간도 걸리지 않는 매끈한 고속 열차가 지금도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해솔은 속으로만 아쉬움을 삼키며, 강릉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이면 시원하게 쏘아버리던 현실 세계의 현대식 기차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근데, 서울에 정말 볼 게 있어?”석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해솔은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강원도 시골보다는 먹을 것도 훨씬 많고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것도 많지. 멋진 극장도 있고 말이야. 아마 너희가 보면 신기해서 입이 떡 벌어질걸?”전쟁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였지만, 수도 서울은 분명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