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출근하자마자 메일함을 열던 이재의 손이 멈췄다. 새벽에 들어온 메일 하나가 읽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제목은 없었다. 발신자는 김현석이었다. 태혁에게 몇 번이나 들어 이미 익숙해진 이름이었다. 이재는 메일을 열었다. [십 년 전, 서진우는 당신 아버지에게 직접 연락했습니다. 미리 찾아가겠다고까지 했는데, 왜 그날 당신의 어머니가 죽었을까요.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세요.] 짧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어제까지 자신이 찾아낸 것들 위로 마지막 한 조각이 떨어졌다. 이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 회장실에서 마주 앉은 윤정호는 이재가 서진우의 이름을 꺼내자 예상했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진우 아버지, 세림호텔에서 일했죠?” “……어떻게 알게 됐니. 강 형사가 말하던?” “제가 찾았어요.” 정호의 시선이 이재에게 머물렀다. “사고 난 것도 알고 계셨죠?” “알고 있었다.” “자료를 보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재는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시에 그 사고를 조용히 정리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정호의 표정이 굳었다. “그중에서도 승계 구도 제일 위에 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이재야.” “아빠였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는 회사가 먼저였다.” 부정은 아니었다. “사고 하나로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었어.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렇게 정리하신 거예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거다.” 정호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이재를 바라봤다. “그게 결국 너한테까지 돌아올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겠지.” 이재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서진우가 우리 집에 온 것도 그 일 때문이었던 거죠.” 정호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에서도 지금은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더구나.” “그럼 서진우가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아빠 때문인 거예요?” “그것까지 전부 내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 정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태혁은 잠시 김현석을 바라봤다. “뭘 모른다는 겁니까.” “십 년 전에 자기 집에서 왜 사람이 죽었는지.” “서진우가 윤정호 회장을 노렸다는 뜻입니까.” 김현석은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을 내려다봤다. “진우 아버지가 세림호텔에서 일했던 건 아시죠.” “압니다.” “사고 난 것도.” “네.” 김현석의 시선이 다시 올라왔다. “알고 계셨네요.” 태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서진우가 윤정호 회장한테 원한을 품은 것도 알고 있었습니까.” “네.” “그래서 찾아간 겁니까.” “찾으러 간 겁니다. 집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확한 주소를 몰랐습니다. 성림동에 산다는 것만 알았어요. 그래서 시설 점검 기사로 위장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닌 겁니다.” 십 년 전 수사 기록이 머릿속을 스쳤다. 부유층 주택가. 시설 점검을 핑계로 문을 열게 한 뒤 벌어진 살인. 서로 아는 사이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재산과 거주 지역을 제외하면 피해자들 사이에서 끝내 공통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무작위라고 생각했다. “그럼 앞에 죽은 사람들은 뭡니까.” 김현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처음부터 죽이려고 들어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첫 번째 집에서 들켰습니다. 진우가 사람을 찾고 있다는 걸 알았고, 신고하려고 했어요.” 태혁의 시선이 굳었다. “그래서 죽인 겁니까.” “네.” 짧은 대답이 떨어졌다. 김현석은 한동안 테이블만 바라봤다.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윤정호를 찾는 건 멈추지 않았고, 정체를 들키거나 신고하려는 사람이 생기면 죽였어요.”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마지막 말에서 아주 조금 느려졌다. “그때부터는 저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말릴 생각은 있었습니까.” 김현석의 시선이 멈췄다. “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없었습니다.” 태혁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십 년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태혁에게 연락이 왔다. [내려와요.] 이재는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오전부터 띄워두었던 문서 제목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경영진 보고. 자신의 아버지, 윤정호. 그리고 십 년 전 자신이 살아남았던 그 집. 하지만 더 찾아보지는 않았다. 김현석의 차가 범행 현장 근처에서 확인됐고, 경찰은 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쪽에서 답이 나올 차례였다. *** 차는 회사 건너편에 서 있었다. 이재가 조수석에 타자 태혁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에도 전화가 한 번 울렸다. 태혁은 화면만 확인하고 시동을 걸었다. “바빠 보여요.” “좀.” 차가 도로로 들어섰다.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이재도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았다. 태혁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린 건 신호에 걸렸을 때였다. 이번에는 바로 받았다. “어.” 준호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태혁의 표정이 달라졌다. “나왔어?” 잠시 뒤 그가 시간을 확인했다. “알았어. 바로 갈게.” 통화를 끊은 태혁이 말했다. “영장 나왔어요.” 이재가 그를 돌아봤다. “바로 가요?” “네.” “김현석한테?” 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이재는 잠시 앞을 바라보다 말했다. “잡아요.” 태혁의 시선이 잠깐 이재에게 향했다. “꼭.” 신호가 바뀌었다. 태혁이 다시 앞을 보며 대답했다. “네.” *** 태혁의 집에 도착하자 이재는 먼저 차에서 내렸다. 태혁은 평소처럼 현관 앞까지 함께 올라왔다. 문을 열던 이재가 돌아봤다. “조심해요.” “알았어요.” “끝나면 연락하고.” “네.” 태혁은 이재가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곧바로 돌아섰다. *** 김현석이 사는 곳은 오래된 빌라였다. 골목 안쪽에 들어선 건물 앞에 준호가 먼저 와 있었다. 태혁이 차에서 내리자 준호가 다가왔다. “차는 있습니다.”
이재는 기사 창을 하나 더 열었다. 성 하나만 같았다.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십 년 전 사건 당시 서진우를 다룬 기사들을 찾아 내려갔다. 범행과 피해자에 관한 자극적인 제목 사이로 몇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가족관계를 언급한 기사가 나왔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이재는 세림호텔 사고 기사로 돌아갔다. 피해자 역시 아들과 단둘이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난 건 연쇄살인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맞아떨어지는 게 많았다. 이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태혁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 네. “지금 통화돼요?” ― 네. 무슨 일 있어요? 이재는 모니터에 띄워둔 두 기사를 번갈아 봤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 뭔데요? “서진우 아버지.” 잠깐 말을 멈췄다. “세림호텔에서 일했어요?”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이재가 기다렸다. ― ……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알고…… 있었어요?” 다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 네. 이재의 손끝이 천천히 마우스에서 떨어졌다. “언제부터요?” 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 십 년 전 수사할 때 알았습니다. 십 년 전. 이재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자신이 오늘 하루를 들여 겨우 이어 붙인 사실이 태혁에게는 이미 지나간 수사의 일부였다. “그럼…… 왜 한 번도 얘기 안 했어요?” 한 박자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 말했어야 했는데. 이재의 눈이 조금 움직였다. ― 그때는 사고하고 연쇄살인이 직접 연결된다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때는요?” 태혁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재가 먼저 물었다. “지금도 없어요?” ― 지금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알았어요.” ― 이재 씨. “네.” ― 어떻게 알았어요? 그제야 이재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기사 찾아봤어요.” ― 무슨 기사요? “어제 얘기했던 거요. 네 번째 현장에 있던 세림호텔 기
오후가 되어서도 저장해둔 기사가 자꾸 눈에 밟혔다. 결국 이재는 사내 시스템을 다시 열었다. 오전에 찾아본 건 홍보 자료뿐이었다. 피해자 가족과 책임 공방까지 있었다면 다른 데에도 흔적은 남았을 터였다. 십 년 전 조직도를 찾아보니 당시 사고 대응은 경영지원본부 산하 안전관리팀과 법무팀이 함께 맡고 있었다. 안전관리팀은 몇 년 전 조직 개편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재는 현재 경영지원실 조직도를 훑다가 사내 메신저를 열었다. 십 년 전에도 이 회사에 있었던 사람을 찾았다. *** “십 년 전 세림호텔 사고요?” 경영지원실 부장이 잠시 생각했다. “보안 쪽 직원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요.” “갑자기 그건 왜?” “예전 자료를 보다가요. 사고 이후 기록이 안 보여서.” “그때 일이 좀 길게 갔을 겁니다. 가족하고도 문제가 있었고.” 이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후속 대응은 법무 쪽에서 했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때도 법무가 붙었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 자료도 남아 있을까요?” “목록은 있을 겁니다. 오래된 건 권한 없으면 본문까지는 못 볼 거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온 이재는 법무 쪽 과거 문서 목록을 열었다. 본문은 볼 수 없어도 제목과 작성 시점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가 있었던 달을 따라 내려가자 비슷한 제목들이 걸렸다. 세림호텔 안전사고 관련 법률 검토. 피해자 측 협의 건. 사고 후속 대응 검토. 첫 번째 문서를 눌렀지만 예상대로 접근 권한이 없었다. 대신 목록에는 오전에 본 기사보다 정확한 사고 일자가 남아 있었다. 이재는 날짜를 메모했다. *** “범행일 기준으로 다시 맞춰보고 있습니다.” 수빈이 자료를 넘겼다. 김현석을 용의선에 올린 뒤부터 확인해야 할 범위도 달라졌다. 거주지와 차량, 근무 기록을 다시 보고 네 사건이 발생한 날의 동선을 하나씩 맞추는 중이었다. “회사 기록은?” “확인되는 날은 있습니다. 퇴근 이후가 비어요.” “차량은.”
다은은 제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내려다봤다. “이거 저 주시는 거예요?” “네.” “갑자기요?” “전에 샀는데 계속 까먹었어요.” 상자를 열자 손바닥보다 작은 캐릭터 인형이 나왔다. “귀엽다.” 다은이 웃으며 인형을 꺼냈다. “근데 왜 제 생각이 나셨어요?” 이재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귀여워서.” 다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저랑 닮아서 사신 건 아니죠?” “귀여운 걸 보니까 귀여운 다은 씨가 생각났어요.” 잠깐 말이 없던 다은이 인형을 가슴께로 끌어안았다. “대리님 진짜 사람 설레게 한다.” 이재가 웃었다. 다은은 인형을 제 모니터 아래에 세워놓고 몇 번 각도를 고쳤다. “감사합니다. 잘 키울게요.” 다은이 자리로 돌아간 뒤 이재도 다시 모니터를 봤다. 오전에 처리할 자료가 몇 개 남아 있었다. 메일에 답을 달고 다음 파일을 열려는데 화면 한쪽의 회사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세림호텔앤리조트. 어젯밤 차 안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 그런데 그중에 세림호텔도 있습니다. 이재의 손이 멈췄다. 왜 하필 우리 호텔일까요. 태혁은 확인할 게 있다고 했다. 확인되면 말해주겠다고도 했다. 이재는 새 창을 열었다. 십 년 전을 전후로 기간을 설정하고 세림호텔을 검색했다. 오래된 기사들이 쏟아졌다. 신규 사업과 실적, 행사, 인사 관련 기사 사이로 몇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낯익은 사진 하나가 눈에 걸렸다. 이재가 마우스를 멈췄다. 네 번째 사건 현장에 놓여 있던 기사였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읽었다. 세림호텔에서 보안 업무를 하던 직원이 근무 중 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 사고 경위를 두고 회사의 안전관리 책임이 제기됐고, 이후 피해자 가족과 회사 사이에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날짜는 십 년 전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었다. 이재는 관련 기사를 몇 개 더 열었다. 사고 직후 기사와 회사 측 입장, 피해자 가족의 반발까지 내용은 비슷했다. 피해자의 실명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