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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서리
화살은 조예진의 몸을 불과 몇 치 앞에 두고 멈췄다.

조예진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 대신 십자형 화살촉이 박지영의 어깨를 관통했다.

“아...!”

살을 찢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

박지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가슴께로 붉은 피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온몸의 힘이 풀리며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화살대가 등에 박힌 채 뚝 부러졌다.

피가 흥건한 바닥 위에서 박지영의 몸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연신 경련을 일으켰다. 시야도 서서히 흐려졌다.

주변의 아우성은 점점 아득해졌고,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끝내 정신을 잃기 직전, 흐릿한 시야 속으로 김동건의 모습이 들어왔다.

김동건은 말을 타고 조예진을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사람 또한 김동건이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지영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어제 너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경솔했다. 자객들이 태자비마마만 노린다고 생각해 너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구나. 내가 곁에 있었으면서도 너를 다치게 했구나.”

박지영은 눈을 감았다.

이제는 듣기조차 지겨운 변명이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김동건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그의 신분상 태자비를 지켜야만 했으리라 스스로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예진을 살리겠다고 제 몸을 화살받이로 내몬 모습을 직접 본 이상, 더는 그 어떤 변명도 믿을 수 없었다.

박지영은 왜 자신을 화살받이로 내세웠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중상을 입은 자신을 버려둔 채 어째서 조예진부터 데리고 떠났느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으니까.

자신은 김동건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뿐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변명을 듣느라 더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김동건은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겠다며 옷과 장신구를 끊임없이 사들였다.

하지만 이제 박지영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하루라도 빨리 몸을 추스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조예진이 또다시 궁녀를 보내왔다.

“장군 부인께서 태자비마마를 대신해 화살을 맞은 공이 크다 하시어, 마마께서 친히 궁으로 불러 상을 내리신다 하옵니다. 어서 감사의 예를 올리시지요.”

박지영은 단번에 알았다.

상을 내리겠다는 말은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그녀를 불러들인 데에는 분명 다른 속셈이 있었다.

입궁하고 싶지 않았지만, 김동건은 박지영의 뜻을 묻지도 않은 채 대신 응낙했다.

그러고는 새 옷 한 벌까지 꺼내 와 갈아입으라 했다.

박지영은 동궁 앞에서 꼬박 한 시진 동안 무릎을 꿇고 기다렸다.

두 다리가 저려 감각마저 무뎌질 즈음에야, 태감이 나와 동궁전 안으로 들라 전했다.

박지영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높은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상처가 욱신거렸다.

겨우 전각 안에 들어서자 짙은 침향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안쪽에서 조예진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하, 이제 아바마마께 문안드리러 가셔야지요. 그만 신첩을 놀리시옵소서.”

‘이진호도 있었어?’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자, 박지영의 심장이 순간 세차게 뛰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숨을 곳을 찾기도 전에 이진호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한때 그녀를 바라보는 이진호의 눈빛은 더없이 다정했다.

그러나 지금 그 눈에는 혐오와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만이 뒤엉켜 있었다.

이진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곧 시선을 거두더니 앞만 바라본 채 그녀를 지나쳐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예진도 느긋한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박씨, 지난번 나를 구하려다 새로 지은 옷이 망가지지 않았느냐.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어 어렵사리 같은 옷감을 구해 새 옷을 한 벌 지었으니, 몸에 맞는지 한번 입어 보거라.”

조예진이 가볍게 손짓하자, 곧바로 궁인 한명이 쟁반 하나를 받쳐 들고 앞으로 나왔다.

박지영은 고개를 들었다가 쟁반 위에 놓인 가슴가리개를 보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 조예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찌 감사의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이냐? 마침 잘되었으니 여기서 갈아입어 보거라. 본궁이 보고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상의원에 일러 다시 손보게 하마.”

조예진의 웃음소리에 노골적인 악의가 묻어났다. 박지영은 소매 속에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무슨 속셈인지 뻔했다.

조예진은 작정하고 자신을 욕보이려 하고 있었다.

박지영은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날 방도를 생각했다.

“마마, 이곳은 동궁전이옵니다. 소첩이 어찌 감히...”

그 말에 조예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본궁은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네! 박씨가 끝내 은혜를 저버리겠다면, 어쩔 수 없지. 장 상궁, 그대들이 직접 갈아입혀라.”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몇몇 상궁이 곧바로 달려들어 박지영의 두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박지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손톱이 부러질 듯 버티며 상대의 손을 할퀴어 피까지 냈지만, 여러 사람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겉옷이 거칠게 벗겨지고, 속옷마저 하나씩 뜯겨 나갔다.

박지영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옷이 모조리 벗겨지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상궁들이 새로 가져온 가슴가리개를 억지로 입혀 놓고서야 조예진은 흡족한 듯 손뼉을 쳤다.

“역시 잘 어울리는구먼.”

그녀는 박지영을 위아래로 훑었다.

“짙은 자줏빛이 박씨의 흰 살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군. 참으로 보기 좋소!”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 좋은 구경을 본궁 혼자만 할 수야 없지.”

조예진이 장 상궁을 바라보며 명했다.

“장 상궁, 박씨를 데리고 궁 안을 한 바퀴 돌거라.”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궁안에 사람들이 실컷 구경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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