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혼례 시각까지는 이제 한 식경도 남지 않았다. 임지헌이 마침내 내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하온아, 데리러 왔다." 방 안 가득 모인 친척들이 곧장 떠들썩해졌다. "신랑이 늦었으니 술을 벌로 받아야지!" "그만들 하십시오. 혼례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신부를 가마에 태워야 합니다!" 막 그의 손에 내 손을 얹으려던 찰나, 등 뒤에서 나의 시집길을 배웅하러 왔던 서민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마에 그린 꽃무늬가 번졌으니 조금 손봐야겠습니다." 나는 몸을 굳혔으나, 임지헌은 도리어 손을 거두었다. "그래. 급할 것 없다." 서민주는 화장함을 뒤적이며 나를 향해 웃었다. "하온아, 근심 말거라. 이내 끝내마." "다 네 혼례를 빛내기 위해서다." 그러고는 임지헌에게 동경을 내밀었다. "이것을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임지헌은 아무렇지 않게 동경을 받아 들었다. 방 안에 감돌던 소란이 문득 잦아들었다. 어머니의 낯빛은 조금씩 창백해졌고, 나는 창가에 놓인 물시계를 한 번 바라보았다. "세자 저하." "관상감에서 정한 출발 시각은 진시 삼각입니다." "지금 나서시면 제때 맞춰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지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고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러느냐." "내가 이미 왔고, 혼서도 오갔으며, 육례까지 모두 갖추었거늘 설마 혼례를 그르치기라도 하겠느냐?" 나는 임지헌의 손에 들린 화장함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어젯밤, 누군가 내 규방에 숨어들어 오늘 나를 데리러 와 혼례를 깨겠다면 그를 따라나설 것인지 물었다. 그때 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었다.
View More벗의 혼인날 화려하게 단장한 서민주가 신랑에게 제 화장함까지 들게 한 일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그 탓에 서씨 가문에 혼담을 넣었던 두 가문은 차례로 혼서를 돌려보냈고, 서민주의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해 그녀를 본가로 돌려보내려 했다.그러나 도성을 떠나기 전, 서민주는 다시 임지헌을 찾아 국공부 대문 앞에서 울며 물었다."지헌 오라버니, 정녕 이제는 저를 외면하실 겁니까?""평생 저를 보살펴 주겠다 하셨잖습니까."임지헌은 대문 너머의 서민주를 한참 바라보았다."전에는 내가 분수를 몰랐다.""민주야, 내가 너를 감쌀 때마다 하온이는 상처를 입었다.""이제 하온이는 떠났다.""더는 같은 잘못으로 내 남은 삶을 망치고 싶지 않다."서민주는 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하지만 제게는 오라버니밖에 없습니다."임지헌은 고개를 저었다."네게 내가 전부인 것은 아니다.""네가 돌아보면 언제나 내가 네 뒤에 서 있는 데 익숙했을 뿐이지.""이제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겠다."국공부 대문이 천천히 닫혔다.서민주는 언제나 제 편을 들어 주던 이를 잃었다.하지만 서민주가 진정 바란 것은 임지헌이 아니라, 그를 내게서 빼앗아 자신이 먼저 선택받았다는 우월감이었을지도 모른다.이제 나는 임지헌을 원하지 않았고, 임지헌도 더는 서민주를 택하지 않았다.서민주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반년 뒤, 임지헌이 국공부 세자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남방 군영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군공을 세워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는 이도 있었고, 진북왕 부부의 금실 좋은 이야기가 날마다 들려오는 도성에 더 머물 수 없었다는 이도 있었다.그 소식이 왕부에 닿았을 때, 나는 뜰에서 약재를 말리고 있었다.보름 전 병사들을 훈련하다 옛 상처가 도진 배정무는 태의의 엄명으로 왕부에서 쉬는 중이었다.그러나 가만히 있지 못하고 회랑 아래에 앉아 내 약재를 나누다, 끝내 전혀 다른 두 약재를 섞었다.나는 참지 못해 그의 손을 쳐 냈다."왕야.""도우시는 겁
배정무는 태연한 낯으로 말했다."두렵다.""여섯 해를 기다려 얻은 여인이니, 나를 버릴까 두려울 수밖에."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눈물을 흘리자 배정무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가를 닦아 주었다."오늘은 울지 마라.""너는 신부이기만 하면 된다."친정에 인사드리는 날, 배정무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났다.내가 단장을 마칠 무렵 왕부 앞마당에는 친정에 보낼 예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북방의 여우 갖옷과 옥기, 궁에서 내린 약재와 비단까지. 십여 대의 마차를 채울 만큼이었다.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배정무가 진지하게 말했다."예를 잃을 수는 없다."아버지는 끝없이 늘어선 마차를 보자 낯빛을 굳히셨다."진북왕부가 구씨 가문의 곳간을 채우려는 것이냐?"배정무가 곧장 답했다."장인어른께서 원치 않으시면, 다음에는 조금만 가져오겠습니다."아버지가 코웃음을 치자 어머니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점심을 먹은 뒤 나는 어머니와 후원을 거닐다, 안채로 드는 문 앞 담장 밖에 선 임지헌을 보았다.사흘 사이 임지헌은 몹시 수척해져 있었다. 단정하던 옷깃에는 주름이 졌고, 턱에는 푸른 수염이 돋아 있었다."하온아."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임지헌이 따라오려 하자 구씨 가문 호위병들이 막아섰다."하온아, 몇 마디만 하겠다."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어머니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먼저 들어가십시오."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으시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임지헌은 호위병 둘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서민주는 이미 도성 밖으로 보냈다.""어머니도 더는 그 아이를 곁에 두지 않으실 것이다.""임씨 가문에 남겨 둔 물건도 모두 돌려보냈다.""하온아, 내가 정말 잘못했다."임지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허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있겠느냐?"나는 임지헌을 바라보았다.나는 이 사람을 여섯 해나 마음에 두며, 혼례복을 입은 그가 꽃가마 앞에서 내 손을 잡아 임씨 가문으로 데려가는 날을 수
"네가 마음에 둔 것은 화장이 아니었다.""너는 내가 혼인하는 날에도 네가 한마디만 하면 임지헌이 여전히 너를 택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지."서민주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나는...""허나 이제 중요하지 않다."나는 왕부 호위병을 보았다."내보내라."서민주는 떠나지 않으려 했다."구하온, 분명 후회할 것이다!"배정무가 마침내 눈을 들었다.그의 눈빛은 북방의 겨울밤처럼 차가웠다."서민주.""오늘은 내 혼례 날이니 피를 보고 싶지 않다.""왕부 호위병들이 칼을 뽑게 하지 마라."서민주의 몸이 떨렸다.호위병들은 곧장 그녀를 끌고 나갔고, 임지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배정무가 입을 열었다."임 세자.""하온이가 할 말은 모두 끝났소.""오늘은 나와 하온이의 혼례 날이니 그만 나가시게."임지헌은 움직이지 않았다.그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하온아.""정녕 후회하지 않겠느냐?"나는 돌아서서 둥근 부채를 다시 들었다."후회하지 않습니다."임지헌이 나가자 혼례는 다시 이어졌다.내시가 예를 알렸다."부부 맞절!"나와 배정무가 마주 서서 몸을 숙이자, 혼례청 가득 축하가 쏟아졌다.배정무는 몸을 일으킨 뒤에도, 눈을 감으면 내가 사라질까 두려운 듯 나를 바라보았다.신방에 들기 전, 배정무는 혼례의 징표라며 백옥 동심패(同心佩) 하나를 내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합근례를 마친 뒤에는 시종에게서 비단 상자를 받아 들었다. 배정무가 남몰래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상자 안에는 옥가락지 한 쌍이 들어 있었다.우리 대소에는 혼인할 때 가락지를 주고받는 풍습이 없었다.내가 의아해하자, 배정무는 그중 작은 가락지 하나를 꺼냈다."북방 서쪽에 한 부족이 있다.""그들은 혼인할 때 서로의 손가락에 둥근 가락지를 끼워 준다.""둥근 모양은 시작과 끝이 없어, 부부가 함께 늙는다는 뜻이라 하더구다."배정무는 내 손가락에 옥가락지를 끼워 주었다.가락지 안쪽에는 아주 작은 흰 매화 가지가 새겨져 있었고, 다
"나와 돌아가자. 응?"나는 담담히 물었다."어디로요?""국공부로.""혼례청도 그대로 있고, 하객들도 아직 떠나지 않았다.""혼례 시각은 다시 정하면 된다."임지헌의 말은 점점 빨라졌다."민주와는 이미 분명히 말해 두었다.""앞으로는 만나지 않겠다.""네가 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일도 모두 고치겠다.""하온아, 우리는 여섯 해를 함께했다.""홧김에 진북왕에게 시집가서는 안 된다."그 말에 피로감이 밀려왔다."세자 저하.""홧김이 아닙니다.""오늘 정말 세자 저하를 따라갔다면, 그때야말로 후회했겠지요.""앞으로 서민주를 볼 때마다, 제가 집을 나서던 날 세자 저하께서 그 아이의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느라 저를 가마에 태워 주지 않으셨음을 떠올리겠지요.""훗날 그 아이가 아프거나 울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세자 저하는 또 먼저 그 아이를 돌보실 테고요.""저는 계속 스스로에게 말해야겠지요. 그저 세자 저하의 의누이일 뿐이라고."임지헌이 고개를 저었다."그러지 않겠다.""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 약조하마."나는 옅게 웃었다."지금 약조하는 것은 제가 떠났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저는 기회를 드렸습니다.""신방에서 물었고.""아버지도 물으셨으며.""마지막에는 저택 앞에서 다시 물었습니다.""그때마다 세자 저하는 서민주를 택했습니다."임지헌의 눈가가 붉어졌다."나는 그저..."나는 말을 잇지 못하는 임지헌을 바라보았다."무엇이라 여겼습니까?"한참 뒤, 임지헌이 낮게 말했다."네가 떠나지 못할 줄 알았다."대청이 고요해졌다.그도 제 말에 찔린 듯 낯빛이 하얗게 질었다.마음에 남은 마지막 미련마저 사라졌다."그러니 세자 저하께서는 제가 상처받을 줄 모르신 게 아닙니다.""아무리 상처받아도 떠나지는 않으리라 여긴 것뿐이지요."임지헌은 입을 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세자 저하.""여섯 해 정이 세자 저하께서 거듭 저를 소홀히 여겨도 되는 연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제가 여섯 해나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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