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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서리
조예진을 모시는 시녀의 명이 떨어지자, 금군이 곧장 채찍을 치켜들었다.

채찍이 박지영의 몸에 내리꽂히려는 순간, 김동건이 황급히 앞을 막아섰다.

“태자비마마,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소신이 제 처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마마의 행차를 방해했습니다.”

그제야 조예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진북장군이 그리 청하니, 채찍질은 면해 주지요.”

그러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박지영을 내려다보았다.

“박씨, 바닥에 엎드려 본궁에게 열 번 머리를 조아리거라. 허면 이번 일은 더는 묻지 않겠네.”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분명 그녀인데, 헌데 나더러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라니!’

박지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 뒤에서 거칠게 걷어찼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박지영은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치밀어 오르는 수치심을 억누르며 김동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김동건의 시선은 오직 조예진에게만 머물러 있었다.

마치 그녀는 그의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금군에게 짓눌린 채 열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지만, 조예진은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얼굴이었다.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구나. 정성이 모자란 모양이니, 열 번 더 조아리게 하거라!”

바닥을 짚은 박지영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김동건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었다.

그 순간, 박지영은 그에게 품었던 마지막 기대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힘껏 이마를 내리쳤다.

쿵! 쿵! 쿵!

둔탁한 소리가 거리에 연이어 울려 퍼졌다.

갈라진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얼굴을 타고 내려와 옷깃을 붉게 물들였다.

박지영은 입술이 터져 피가 배어 나오도록 악물었다. 입안 가득 비릿한 피 맛이 번졌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아프다는 신음 한마디 내지 않았다.

그 처참한 꼴을 지켜보고서야 조예진은 비로소 만족한 듯했다.

그제야 김동건도 정신을 차린 듯 박지영을 부축해 일으켰다.

하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 궁녀가 뒤에서 그를 불러 세웠다.

“진북장군, 태자 저하께서는 조금 전 입궁하셨습니다. 오늘 태자비마마께서 바깥나들이를 하시는 동안 나으리께서 곁을 지켜 주시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김동건은 곧장 박지영을 부축하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예진의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신, 명을 받들나이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김동건의 목소리를 듣자, 박지영은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도록 주먹을 쥐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대로 자리를 뜨려던 순간, 조예진이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

“본궁이 거리를 좀 둘러볼 터이니, 박씨도 곁을 따르거라.”

마음 같아서는 단번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박지영에게는 그럴 힘도 처지도 없었다.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조예진은 곁눈질로 그녀를 훑어보다가, 하인들이 들고 있는 물건에 시선을 멈췄다.

이내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것은 본궁이 가장 좋아하는 부용떡과 화월방(花月坊)의 연지가 아니더냐? 박씨 너도 같은 것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구려.”

그러다 토끼 모양 연등까지 발견한 조예진은 웃음을 머금었다.

“저 연등도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마침 본궁의 띠가 토끼띠이기도 하니, 저 연등을 본궁에게 양보해 주면 안 되겠느냐?”

박지영은 하인들이 들고 있는 연지와 부용떡을 바라보다가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난 두 해 동안 김동건이 자신을 기쁘게 해 주겠다며 사다 준 것들은 모두 조예진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순간 박지영의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 아릿하게 저려 왔다.

시리고 쓰린 통증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김동건은 김동건은 그런 그녀의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인들에게 물건을 모두 마차에 옮겨 싣게 했다.

조예진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마부에게 출발을 명했다.

그날 밤 조예진은 도성의 크고 작은 거리를 십여 곳이나 돌아다녔다.

김동건은 마차 곁을 지키며 곳곳의 볼거리와 구경거리를 하나하나 다정히 설명해 주었다.

반면 박지영의 발에는 어느새 물집이 가득 잡혀 있었다.

터진 물집마다 피가 배어 나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달군 숯 위를 걷는 듯 쓰라렸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이를 악물고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해시(亥時)가 되어서야 등불놀이가 끝나고, 조예진의 마차도 궁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때쯤 박지영의 두 다리는 퉁퉁 부어 한 걸음조차 떼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녀는 겨우 벽을 짚고 서서 조예진에게 작별을 고하는 김동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웃음이 가득했다.

‘나에게는 형벌이나 다름없었던 이 긴 밤이, 김동건에게는 연모하는 여인과 함께할 수 있는 더없이 귀한 시간이겠지.’

‘그러니 저토록 헤어지기 아쉬운 얼굴을 하는 거젰지.’

그때, 적막을 깨뜨리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객이다! 태자비마마를 보호하라!”

그 소리에 박지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자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고, 순식간에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칼을 뽑아 서로 맞서는 두 무리를 보고, 박지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발목을 다친 탓에 멀리 달아날 수 없었던 박지영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외진 곳에 몸을 숨겼다.

김동건은 이미 칼을 빼 들고 마차 앞을 지키고 있었다.

달려드는 자객들은 단 한 명도 마차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자객들이 쓰러졌고, 붉은 피가 허공에 흩어졌다.

자객들의 기세는 거셌다.

금군만으로는 막아 내기 어려웠고, 어느새 김동건은 혼자 세 명의 자객을 상대하고 있었다.

온몸이 피로 물들고 곳곳에 상처가 늘어났지만, 그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목숨을 내던지듯 싸우는 김동건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지영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슴속에서는 온갖 감정이 뒤엉켜 일었다.

이제야 분명히 알 것 같았다.

김동건은 조예진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반면 자신은 같은 위험 속에 놓여 있는데도, 김동건은 단 한순간도 그녀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이토록 선명했다.

일각쯤 지나 소란을 듣고 달려온 군사들이 전투에 합세했다.

점차 열세에 몰린 자객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제압되었다.

김동건은 칼을 거두고 조예진이 마차에서 내려오도록 손을 내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쉬익―!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동건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조예진을 향해 곧장 날아드는 화살을 보자,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김동건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박지영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앞으로 밀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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