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 아... 얼굴 괜찮아? 정말 미안해. 내가 땀이... 좀 많아서.”
“아니야! 뭐 이런 걸로.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진 마! 나 진짜 괜찮아.”
“고마워. 말이라도...”
“우리 친구잖아! 그러니까... 땀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 나한테는, 히히.”
“엇, 하하... 음... 고마워.”
“들어가자!”
병을 앓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게다가 그 병을 누군가가 알게 된다는 것은 더더욱 괴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사뭇 달랐다. 비록 단 몇 마디의 위로일 뿐이었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듣지 못했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순 있었으나 충격적이었던 버스 안에서의 그 장면은 죽을 때까지 나에게 따라다닐 꼬리표가 될 것임엔 변함없었다.
“살았네, 친구?”
강의실에 들어가니 교수님께서 막 출석을 부르고 계셨다. 자리로 향하는데 지호가 아는 체를 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폈다.
“하하... 다행히도.”
물론 난 그 손바닥에 맞장구를 쳐 줄 수 없었기에 그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은 후 뒤편으로 향했다.
홀로 이어폰을 낀 채 앉아 있는 친구 옆으로 착석했다. 그의 이름은 박정훈. 나랑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 대학 친구였다. 그도 서현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술자리를 거치며 친해졌다. 한두 번 옆에 앉아 술을 마셨었는데 대화도 잘 통하고 코드도 잘 맞아 자연스레 모임이던 수업 시간이던 거의 항상 붙어 다니게 되었다.
그는 눈을 꾹 감은 채 음악에 집중하며 내가 옆에 앉은 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손수 이어폰을 귀에서 제거해 주었다.
“아우, 깜짝이야!”
“출석 불러요, 아저씨.”
“아, 오케이.”
“김지호.”
“네.”
“윤초롱.”
“네!”
“김성진.”
“네.”
“최서현.”
“네!”
“노민규.”
“박정훈.”
“네.”
“홍창호.”
“예!”
“혹시 안 부른 사람 있나요?”
“후억, 노... 노민규요!”
“하하하!”
민규가 뒷문으로 뛰쳐 들어오며 외쳤다. 그의 이런 상습적인 모습이 이젠 익숙하지만 볼 때마다 행복해지곤 했다. 그는 숨소리 반 쇳소리 반 섞인 채 헉헉대며 내 뒷자리에 앉았다.
“너도 참, 대단하다. 크큭.”
정훈이 괴로워하는 그를 보며 말했다.
“아니... 후억... 오늘 버스 줄... 후. 왜 이렇게 긴 거야.”
“또~ 버스 줄 탓.”
“아니... 네가 그걸 봤어야 해. 후우... 무슨 전철역 에스컬레이터 위까지 줄이...”
“10분 일찍 나오면 해결되는 거를, 굳이~ 사서 고생을 해요. 참.”
“아, 몰러. 그러면 10분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그러면 되잖아.”
“피곤하잖아 그럼.”
“아니... 성진아, 넌 이해 가냐.”
“뭐... 10분 일찍 일어나는 거 쉽진 않지.”
“너도 이놈이랑 같은 부류네.”
“알람을 10분 땅기는 게 얼마나 고된 건데.”
“후... 역시 내 맘을 잘 아는구먼.”
“그래도 넌 좀 땅겨라. 매주 이럴 거면.”
“아니, 아홉 시 반 강의라 그래.”
“이런 애들 특. 열한 시 첫 강의여도 지각한다.”
“크크큭...”
그렇게 목요일 첫 강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교수님의 말씀이 슬슬 귀에 들어오지 않자, 자연스레 지옥행 버스가 다시 떠올랐다. 나에겐 정말 괜찮다고 했으나 그녀 역시 그 장면이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이기에, 난 앞쪽에 앉아 있는 그녀의 뒷모습만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그녀도 분명히 이 강의가 귀에 들어오진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 최소 며칠 동안은 공포의 수도꼭지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 것 같았다.
“첫날에 조별 과제에 대한 공지를 전달했었죠? 오늘부터 강의 시간을 쪼개서 조원들끼리 회의하는 시간이 있을 거예요. 우선 지금은 조를 불러줄 테니 조끼리 모여 앉아 주세요.”
조별 과제란 말 한마디에 핸드폰을 하던 학생들도, 졸던 학생들도 마치 마법에 걸린 듯이 강의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었다. 과제 중에서도 학생들의 기피 대상 1순위인 조별 과제가 새내기들에게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다들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교수님에 의해 무작위로 정해져 있었던 내 조는 남자 셋 여자 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엔 서현이와 민규가 있었다. 그래도 전공 수업인지라 친한 친구들이 둘이나 있어서 구성은 괜찮았는데 그녀가 껴 있다는 점이 적어도 오늘만큼은 편치 않았다. 뒤통수만 봐도 미안한데, 앞모습까지 당당하게 보기가 힘들었다.
“책상을 가운데로 합쳐서 앉아 주세요.”
교수님의 말씀에 책상 끄는 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책상 배치가 참 무서운 것이 얼굴을 마주하며 앉으니 알던 사람들이 있음에도 자연스레 어색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교수님의 얼굴만 스캔하거나, 책상만 내려다보거나, 핸드폰을 보기 시작한다. 조별 과제가 주는 여러 긴장감 때문인 걸까.
“혹시 사회복지학과는 아니신가요?”
민규가 옆에 앉은 여학우에게 질문을 건넸다. 처음 보는 외모였기에 우리 학과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네~ 저는 경영학과예요.”
“아... 잘 부탁드립니다.”
“앗, 저도요!”
“자~ 그리고 종이를 나눠 드릴 건데 조별 당 한 장씩이에요! 뒤로 돌려주세요.”
교수님께서 굴린 A4용지 뭉치가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조의 종이는 내 앞에 놓였다.
“말하니까 바로 나타나네.”“어? 뭐야, 내 뒷담 깠냐?”“크크... 아니, 이 미친놈아. 너는 진짜 운 좋은 줄 알어라.”“요즘에 운 좋은 일이 있었나?”“어제 술 마실 때 타과 분한테 염병을 했다매요.”“염병? 아~ 반가워서 그랬지, 반가워서.”“심지어 나이도 한 살 많으신데, 어휴.”“그래서 어제 전철에서 사과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다음에 또 마시자고 하셨습니다.”“이제 증거물 하나씩 수집하는 거지. 그리고 나중에 조원 평가할 때 워스트 선정.”“아, 안 되겠다. 이제 술 따라드릴 때마다 절 한 번씩 해야겠다.”“야, 뭔 제사 지내냐?”“프흐흐흡...!”“성진, 그럼 어제 그분이랑 같이 내렸겠네.”“어? 어.”“엥? 같은 동네 살아?”“저번 조별 할 때 그분이 동네에서 마주쳤다고 그랬어, 얘네 둘이랑.”민규가 나랑 서현이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충격적인 그의 발언에 공들였던 내 보호막이 금가기
그다음 자연스레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손을 뿌리치려는 동작이 나와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건 그녀의 미적지근한 피부 말곤 없었다. 내 손과 그녀의 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 것 같았다. 감각을 방해하려는 막이 아닌, 더 편안한 감각을 느끼게끔 도와주려는 막.“이번만 봐 드립니다.”잠깐의 정적이 지나간 후 자리에 도로 앉으며 말했다.“넵...!”그녀의 손이 다시 멀어지면서 혈류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슬쩍 내 손바닥을 확인하니 탈출하려는 불순물과 보호막이 금세 엄청난 전투를 벌였던 건지, 여기저기 울긋불긋했다. 생각해보니 기상 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촉촉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신기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본모습으로 돌아오겠지만, 믿기지 않는 현재까지의 몸 상태에 너무 얼떨떨했다.“근데 너 옷 귀엽게 입고 왔네.”“그래? 고마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옷이야.”“스트릿 잘 어울린다.”“내가 키가 작아서 그래...”“에이~ 키랑 뭔 상관이야. 어떻게 입는지가 중요하지.”“그것도 맞긴 한데 내가 마른 편도 아니어서 오버핏 위주로 입게 되더라구.”“네가 마른 편이 아니면 난 고도비만이야.”“푸흐흐흡... 아냐. 나 많이 나가. 하체 비만이라.”“그러면 너 키에 몸무게 몇 정도가 적당한 것 같은데?”“음... 그래도 사십칠, 팔?”“야, 그 정도면 적당한 게 아니구 그냥 아이돌이잖아.”“아이돌은 더 말랐지~”“그런가. 그래도 사십칠이면 나 초딩 때 몸무게인데.”“크흐흐흐흡... 넌 남자잖아~ 그럼 다음 주에 잘 안 입는 거 한 번 입고 와 볼게.”“잘 안 입는 거? 뭔데.”“청바지인데 슬림핏?”“아... 그래~ 근데 뭐 내가 잘 어울린다고 하면은... 자주 입을 건가?”“음~ 그럴 수도? 근데 진짜 객관적으로 봐줘야 해.”“어... 알겠어.”오늘따라 손바닥이 유난히 찌릿찌릿했다. 근데 왜 허벅지 쪽도 간지럽나 했는데 핸드폰 진동이었다.“어, 정훈이네. 여보세요?
짐을 싸기 시작하니 엠티에 간다는 실감을 느꼈는지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당장 떠오르는 것부터 가방 안에 하나둘 채우고, 그러면서 중간중간 놓쳤던 것들도 가방 속으로 향하고, 그리고 당장은 넣지 못하지만 출발하기 직전 챙겨야 할 것들도 미리 생각해 놓고. 대부분은 이런 리듬으로 여행 가방을 채울 것이다.하지만 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것이 있다. 만약 이걸 깜빡한다면 속옷이나 세면도구를 두고 온 것보다 수백 배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그래도 저것들은 돈만 있으면 대충 사서 갈 수라도 있는데, 얘는 살 순 있으나 사용은 못 한다. 시간을 돌리는 것밖에 답이 없다.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뇌리에 박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가방을 싸는 와중에도 그것만큼은 머릿속에 잘 저장해두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굳이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뒤통수를 톡톡 건들어주었다.사실 그전까지는 놀러 갈 때 이 친구를 챙긴 적이 없었다. 존재 자체를 몰랐다. 알게 된 것도 얼마 전 타인에게 우연히 선물 받아서 그때 처음 마주한 것이었다. 근데 지금은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절대 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그걸 선물해 준 분이 아니었다면 몇 날 며칠 동안 엠티를 갈지 말지 머리 쥐어뜯을 게 뻔했다.이 친구는 가방에 넣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 동행할 예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떼지도 못하고 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소중한 친구다.그래서 그런지 다른 준비물들과는 다르게 특별 대우라는 게 존재하는데 바로 나와 잠자리를 갖는 것이다. 그 친구가 침대로 오는 순간부터 나와 절대 몸을 떼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계약을 맺는다. 신기한 건 그 계약이 언제까지 유효한지는 나만 모른다. 날이 밝을 때까지일 수도 있고, 길면 며칠이 될 수도 있다.
“직관대역엔 자주 놀러 오세요?”개찰구를 향해 같이 걷던 중 이지은이 먼저 침묵을 깼다.“여기는 술 먹을 때만 와서... 가끔 옵니다.”“아~”“근데 알바는 여기서 해요.”“네? 어디요...?”“저기 가위바위보드게임 카페요.”“에? 허어얼~ 저 거기 몇 번 갔었는데. 주말에 하세요?”“네.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아~ 나중에 한번 가야겠다. 저 보드게임 좋아하거든요. 친구들이랑 가끔 해요.”“주로 무슨 게임 하세요?”“음~ 다 비쳐 코드나... 라스 배 안에 가스 정도? 거의 하던 것만 해서... 아! 거기서 일하시니까 많이 아시겠네요. 그럼 재밌는 거 추천해주세요, 크크큭...”“저도 안 해본 게 많아서... 간단한 거 좋아하세요?”“어려운 것보단 낫죠. 배우는 데 시간 너무 잡아먹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음... 요트에 다있오 아세요?”“안 해봤네요. 들어본 것 같긴 해요!”“주사위 여러 개
“음~ 우와. 그것도 인연이네요.”“그러게요. 뭔가 동네 친구 생긴 것 같아서 좋네요.”“하하... 동네 친구, 좋죠.”난 서현이의 얼굴을 흘깃하며 대답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눈동자가 알아서 돌아갔다.“앗, 제가 오바했나요?”“예? 무슨... 대학에서 이렇게 쿵 짝 잘 맞는 호구조사 나누기 쉽지 않은데요, 뭐.”“푸하학하...!”이지은의 입술이 위아래로 터져버렸다. 서현이도 웃다가 귓속으로 파고드는 엄청난 데시벨에 눈이 동그래지며 금방 소심해졌다.“아아... 죄송해요오... 크흡.”“예? 왜 죄송... 계속 웃으셔도 되는데.”“푸후흐흡... 이분 평소에도 이런가요?”“네... 뭐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데요.”“말씀하시는 게... 크큭. 이따 집 갈 때 안 심심하겠다.”“흐흡... 혹시 지금 저한테 부담 주시는 건가요?”“아유... 같이 내릴 사람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요.”서현이는 시선을 이리저리 딴 곳으로 옮기다 치킨 한 조각을 빠르게 처리한 뒤 입을 열었다.
그렇게 1시간 후.“어서오세요~ 몇 분이셔?”“아... 일행 있어요!”“아! 네.”이지은도 약속대로 합류했다. 그런데 우리와 잘 맞는 동기가 나타난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진정 지금이 초저녁이 맞는 건지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이 가관이었다.“어... 흡. 저 왔는데.”“어? 지은씨다!”“아니, 지은씨. 왤케 늦게 와요.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에? 지금 일곱 신데... 끝나고 바로 왔는데...”“예, 일곱 시. 저희~ 어제저녁 여섯 시에 왔어요. 그럼 몇 시간 지났냐. 무려! 열세 시간! 와~”“푸흐흡... 어떡하지.”“야, 노민규. 너 나가서 술 깨고 와. 지은씨, 죄송해요... 크흡.”그나마 정신이 온전한 서현이가 민규를 일으켜 세웠다.“아~ 괜찮아요! 근데 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제가 있어도 되는 건지...”“그럼요, 저 멀쩡해요! 딸꾹... 흐히.”“정신력으로오~ 버텼습니다. 열세 시간으을. 저희 이 정도예요~”“아우~ 닥치고 빨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