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늑대군주?”라에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통로 끝에서 사라진 흑월족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레오르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에나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설마 정말로 알고 있는 거야?”레오르칸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전설에 대해 들은 적은 있다.”“어떤 전설?”잠시 침묵하던 레오르칸이 입을 열었다.“아주 오래전, 달빛이 닿는 모든 땅을 다스렸던 늑대군주가 있었다.”라에나는 조용히 들었다.“그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고 전해진다.”“……그래서?”“사람들은 그를 잔혹한 군주라고 불렀다.”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그녀도 그 전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레오르칸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그 늑대군주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어?”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다시 물었다.“왜?”“전설은 항상 진실을 전부 말해주지는 않으니까.”그 말에 라에나는 레오르칸을 바라봤다.“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해?”레오르칸은 잠시 돌판을 바라봤다.“모른다.”짧은 대답이었다.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그때 돌판에서 다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두 사람은 동시에 돌판을 바라보았다.이번에는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거대한 늑대가 달빛 아래 서 있었다.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리고 그 뒤편에는 검은 초승달 문양이 보였다.라에나가 숨을 삼켰다.“흑월족…….”장면 속 늑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허공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늑대군주는 달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라에나의 눈이 커졌다.“……배신한 게 아니라고?”레오르칸 역시 아무 말 없이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다음 순간,돌판의 빛이 갑자기 꺼졌다.방 안이 어둠에 잠겼다.그리고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실을 알고 싶다면…… 더 깊이 들어와라.”라에나는 레오르칸의
통로 안으로 들어선 순간, 바깥의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라에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벽에는 오래된 등불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지만, 불꽃은 흔들리지 않았다.“여기…… 이상해.”레오르칸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무엇이.”“시간이 멈춘 것 같아.”레오르칸은 잠시 침묵했다.“그럴 수도 있다.”“그럴 수도 있다고?”라에나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너는 이런 곳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익숙하니까.”그 말에 라에나는 걸음을 멈췄다.“……역시 여기 와본 적 있구나.”레오르칸의 걸음도 멈췄다.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래.”이번에는 부정하지 않았다.라에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언제?”“아주 오래전.”“혼자?”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통로 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저기 봐.”두 사람은 빛을 따라 걸었다.통로 끝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방 한가운데에는 둥근 돌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돌판에는 달과 늑대, 그리고 흰 여우의 문양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라에나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순간 돌판에서 희미한 빛이 퍼졌다.“앗……!”라에나가 손을 거두었다.하지만 빛은 멈추지 않았다.허공에 희미한 장면이 나타났다.끝없이 펼쳐진 달빛 아래.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그리고 그 앞에는 흰 여우가 있었다.라에나는 숨을 삼켰다.“……또 나야?”레오르칸의 시선이 허공에 고정됐다.흰 여우가 거대한 늑대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장면이 갑자기 흔들렸다.검은 안개가 달빛을 덮었다.그리고 흑월족의 문양이 나타났다.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흑월족도 이 기억과 관련 있는 거야?”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장면 속 거대한 늑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마치 이쪽을 바라보는 것처럼.라에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그 순간 허공의 장면이 깨지듯 사라졌다.쨍—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월하천궁 안쪽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라에나는 레오르칸과 검은 옷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두 사람…… 아는 사이야?”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레오르칸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많이 변했군.”레오르칸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너는 변하지 않았군.”“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지.”라에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잠깐만.”라에나가 앞으로 나섰다.“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남자가 그녀를 바라봤다.순간 그의 시선이 라에나의 손끝에 머물렀다.“백색의 힘…….”그가 작게 중얼거렸다.“역시 그녀가 데리고 왔군.”레오르칸이 즉시 라에나의 앞을 막았다.“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마라.”남자는 피식 웃었다.“여전히 똑같군.”“무슨 뜻이지?”“누군가를 지키려고 할 때의 그 눈.”레오르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에나는 그의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레오르칸.”“…….”“저 사람은 누구야?”한참 뒤에야 레오르칸이 입을 열었다.“월하천궁을 지키는 자다.”라에나는 놀란 얼굴로 남자를 바라봤다.“그럼 이곳에서 계속 살아온 거야?”“살아왔다기보다는…… 남아 있었다.”남자의 대답에 라에나는 더욱 의문이 생겼다.“왜?”남자는 대답 대신 궁 안쪽을 바라보았다.“너희가 이곳까지 온 이유를 알고 있다.”레오르칸의 표정이 굳었다.“흑월족 때문인가?”“그들도 이유 중 하나겠지.”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네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따로 있지 않나?”레오르칸의 시선이 남자를 따라 움직였다.“……말해.”남자는 잠시 침묵했다.그러고는 월하천궁 깊은 곳을 가리켰다.“따라와라.”라에나는 레오르칸을 바라봤다.“가도 괜찮을까?”“모른다.”“그런데?”레오르칸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확인해야 한다.”세 사람은 궁 안쪽으로 걸어갔다.거대한 늑대도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한참을 걷자 오래된 벽화 하나가 나타났다.라에나는 벽화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멈췄다.
거대한 검은 문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라에나는 숨을 멈췄다.“……드디어 돌아왔군.”낮고 오래된 목소리였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라에나가 아닌 레오르칸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라에나는 천천히 레오르칸을 바라봤다.“너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굳게 닫힌 거대한 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거대한 늑대가 낮게 울었다.크르르르—레오르칸이 늑대를 바라보자 늑대는 조용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천천히 앞발을 들어 문 앞에 놓았다.그 순간.쿠우우웅!거대한 문 전체가 낮게 울렸다.라에나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문 위에 새겨져 있던 월하천궁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문이…… 반응하고 있어.”레오르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이곳은 외부의 존재가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그럼 어떻게 들어가?”“문이 허락해야 한다.”라에나는 미간을 좁혔다.“허락한다고?”그때 거대한 늑대가 다시 길게 울부짖었다.우우우우—울음소리가 끝난 순간 문 위에 새로운 문양이 떠올랐다.달. 그리고 그 아래에 새겨진 늑대의 문양.라에나는 숨을 삼켰다.“늑대 문양…….”레오르칸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그 순간.끼이이이—거대한 문이 아주 조금 열리기 시작했다.문틈 사이에서는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하지만 안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라에나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갔다.“안에 누가 있는 거야?”그때. “라에나.”레오르칸이 그녀를 불렀다.라에나는 걸음을 멈췄다.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안으로 들어가면…… 지금까지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갈 수는 없다.”라에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그럼 이제 말해주는 거야?”레오르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라에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흑월족. 돌문 너머의 존재.그리고 흑월족이 계속 레오르칸에게 했던 의미심장한 말들.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하지만 라에나는 결국 문을 바라봤
검은 초승달이 어둠 속에 떠오른 순간, 레오르칸의 표정이 굳었다.“……흑월족.”라에나는 본능적으로 손끝에 백색의 힘을 모았다.“정말 따라온 거였어.”거대한 늑대가 낮게 몸을 숙였다.크르르르—금빛 눈동자가 계단 아래쪽을 향했다.조금 전까지 조용하던 숲속에서 검은 안개가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레오르칸이 라에나의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여기서 움직이지 마.” “또?”“이번에는 장난이 아니다.”라에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웠기 때문이다.그때. 스스스—검은 안개 속에서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한 명. 두 명. 그리고 3명라에나는 숫자를 세다가 천천히 숨을 삼켰다.“……많아.”흑월족들은 계단 아래를 가로막은 채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그중 한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라에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너.”이전에 여러 번 자신들 앞에 나타났던 흑월족이었다.남자는 희미하게 웃었다.“계속 앞으로 갈 생각인가?”레오르칸이 차갑게 대답했다.“비켜라.” “월하천궁으로?”남자의 눈빛이 레오르칸에게 향했다.“당신이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요.”라에나가 레오르칸을 바라봤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너희가 막을 이유는 없다.”“정말 그럴까요?”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당신이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뜻이야?”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았다.그 순간 거대한 늑대가 앞으로 나섰다.크르르르!흑월족의 몇몇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라에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너희도 저 늑대를 아는 거야?”흑월족의 남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설마.”그의 시선이 늑대에게 고정됐다.“그 존재가 아직도 살아 있었을 줄은.”레오르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에게서 떨어져.”“역시 당신과 함께 있었군요.”남자는 낮게 중얼거렸다.그러자
거대한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멈춘 뒤,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라에나는 손끝에 백색의 힘을 모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레오르칸.”“말하지 마.”레오르칸의 목소리는 낮았다.그의 시선은 안개 너머에 고정되어 있었다.“저게 누구야?”“나도 확실하지 않다.”라에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고 했잖아.”“그래서 이상한 거다.”그 순간. 쿠웅.거대한 발소리가 들렸다.돌계단이 약하게 흔들렸다.라에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안개 속의 그림자가 다시 움직였다.천천히.그리고 두 개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라에나는 숨을 삼켰다.눈동자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희미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늑대……?”라에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그림자는 안개 속에서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레오르칸의 손이 검 손잡이를 더욱 강하게 쥐었다.“여기서 물러나.”그 말은 라에나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안개 속의 존재를 향한 경고였다.그러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오히려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스르륵.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라에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거대한 늑대였다.일반적인 늑대보다 훨씬 큰 몸.검은 털.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하지만 이상했다.라에나는 그 늑대에게서 공격적인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오히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늑대는 라에나를 바라보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레오르칸만 바라보고 있었다.“……너.”레오르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라에나는 그를 바라봤다.“알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러다 거대한 늑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다시 한번 길게 울었다.“크르르르…….”레오르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왜 여기에 있지?”라에나는 깜짝 놀랐다.“정말 아는 사이야?”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늑대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그리고 월하천궁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