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기에 잠식된 대공》

《마기에 잠식된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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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괴물이라 부르는 북부 대공 단테. 마기에 잠식된 그는 사람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가둔다. 황실에서 사람을 가르치며 성장한 엘라는 그런 그에게 묻는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보다, 어떤 사람인지부터 보면 되잖아요.” 마기를 정화하는 여자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남자. 서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다른 선택을 배워가는 두 사람의 느린 상호구원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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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فصول
황태자 전하, 또 지셨습니다
“전하.”“…….”“황태자 전하.”“…….”“테오도르.”“들려.”풀밭에 대자로 누워 있던 소년이 마침내 대답했다.엘라는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따뜻한 봄이었다.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연둣빛 새순이 돋았고, 황궁 정원을 가득 채운 벚나무에서는 연분홍 꽃잎이 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살랑이는 바람.부드러운 햇살.향긋한 꽃내음.그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제국의 유일한 황태자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엘라는 손에 든 목검으로 테오도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살아 계십니까?”“죽었어.”“말씀하셨으니 살아 계십니다.”“방금 죽었어.”“죽은 사람은 두 번이나 대답하지 않습니다.”테오도르는 눈을 감은 채 입을 다물었다.엘라는 다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쿡.“일어나십시오.”“싫어.”쿡.“일어나십시오.”“엘라.”쿡.“그거 그만해.”“일어나시면요.”테오도르는 결국 벌떡 몸을 일으켰다.“너는 황태자한테 겁도 없이 이래?”엘라는 목검을 거두며 고개를 갸웃했다.“아프셨습니까?”“아팠어.”“죄송합니다.”너무도 순순한 사과였다.테오도르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끝이야?”“네.”“변명은?”“제가 찔렀는데 무슨 변명을 합니까?”“보통은 실수였다거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하잖아.”엘라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일부러 찔렀습니다.”“…….”“안 일어나셔서요.”테오도르는 입을 다물었다.역시 이상한 애였다.펠리시아 공작가의 둘째 영애.엘라 펠리시아.열 살.황태자와 동갑.제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의 딸이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귀족 영애답지 않았다.보통 또래의 귀족 아이들은 테오도르 앞에서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했다.‘황태자 전하.’‘제국의 작은 태양.’‘미래의 황제 폐하.’듣기만 해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그런데 엘라는 달랐다.첫 만남에서 황태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생각보다 작으십니다.’물론 바로 옆에 있던 펠리시아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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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모르겠습니다.”엘라의 대답이 떨어진 순간.교실 안이 조용해졌다.창밖에서는 아침 햇살이 황궁의 첨탑 위로 막 번지고 있었다. 높은 창문을 통과한 빛이 길게 바닥을 가로질렀고, 잘 닦인 책상 위에는 새 교재와 잉크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황태자 전용 교실.본래라면 테오도르 혼자 수업을 받는 곳이었다.하지만 오늘부터는 자리가 하나 늘었다.테오도르의 바로 옆.펠리시아 공작가의 둘째 영애를 위한 자리였다.엘라는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어깨는 펴져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마치 방금 교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맞은편에 선 노교수가 천천히 안경을 고쳐 썼다.“공녀.”“네, 교수님.”“방금 뭐라고 했습니까?”“모르겠다고 했습니다.”“…….”노교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그의 이름은 에드먼드 베르디안.황실 제왕학 교수이자 제국 아카데미의 전임 학장이었다.황제의 교육을 맡았고.지금은 황태자 테오도르를 가르치고 있었다.황실 최고의 학자.까다롭고 엄격하며, 모르는 문제를 내는 것보다 모른다는 답을 더 싫어한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이었다.테오도르는 옆자리에서 조용히 엘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엘라가 고개를 돌렸다.테오도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뭐라도 말해.”“모르는데요.”“생각나는 걸 말하면 되잖아.”“생각나는 게 없습니다.”“그럼 아버지가 말한 거라도.”“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비슷한 거라도!”“조용히 하십시오.”“너 때문에 내가 더 떨리잖아.”“왜 전하께서 떨립니까?”두 사람의 속삭임이 생각보다 멀리 퍼졌다.에드먼드 교수가 손에 든 지휘봉으로 책상을 두드렸다.탁.“두 분.”테오도르가 곧장 입을 다물었다.엘라는 교수에게 시선을 돌렸다.“죄송합니다.”“공녀.”“네.”“내가 무엇을 물었는지 기억합니까?”“황제가 반드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물으셨습니다.”“그런데 모른다고 답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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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못 봤습니다
“전하께서 하셨습니까?”엘라의 목소리가 교실 안을 또렷하게 울렸다.테오도르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멈췄다.“뭘?”“제 책이요.”“네 책이 왜?”엘라는 대답 대신 책상 위를 가리켰다.새것처럼 반듯했던 역사 교재의 표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푸른 잉크가 물에 번진 것처럼 얼룩져 있었고, 아래쪽 모서리는 길게 찢겨 있었다.어제 처음 받은 책이었다.엘라는 저녁 내내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아직 모르는 이름이 많아 작은 종이에 따로 적어 두기까지 했다.그런 책이 망가져 있었다.테오도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이게 왜 이래?”“저도 묻고 있습니다.”“내가 어떻게 알아?”“전하께서 먼저 오셨잖아요.”교실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창가에 서 있던 시종이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에드먼드 교수는 오지 않은 상태였다.테오도르는 엘라의 책을 집어 들었다.“젖었네.”“보면 압니다.”“그리고 찢어졌어.”“그것도 압니다.”“엘라.”“네.”“나한테 화났어?”“조금요.”“왜 나한테?”엘라는 테오도르의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작은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뚜껑은 열려 있었고, 안에는 푸른색 잉크가 절반쯤 남아 있었다.어제 테오도르가 새로 받았다며 자랑했던 잉크였다.엘라의 책에 번진 얼룩과 같은 색이었다.“전하의 잉크잖아요.”테오도르도 유리병을 바라보았다.“색이 같다고 내가 했다는 뜻은 아니야.”“교실에 먼저 오셨고요.”“그건 맞지만.”“어제 제 책을 빌려 달라고도 하셨습니다.”“안 빌려줬잖아.”“그래서 화나셨습니까?”테오도르의 얼굴이 굳었다.“뭐?”“말로 안 되니까 책을 망가뜨리신 겁니까?”“내가 왜 그런 짓을 해?”“전하께서는 가끔 화가 나시면 물건을 던지십니다.”“목검을 한 번 던졌어.”“두 번입니다.”“그건 대련하다가 놓친 거야!”“두 번째는 일부러 던지셨습니다.”“네가 열세 번째로 날 넘어뜨렸잖아!”“그러니까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시는 게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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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열일곱.”엘라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손바닥에 흙과 잔디가 묻어 있었다.무릎도 조금 따끔거렸다.하지만 그녀는 곧장 바닥에 떨어진 목검을 주웠다.“다시 하겠습니다.”맞은편에 서 있던 기사가 난처한 얼굴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테오도르는 훈련장 가장자리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그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다 말고 물었다.“엘라.”“네.”“뭘 다시 해?”“대련을요.”“방금 졌잖아.”“그러니까 다시 해야 합니다.”테오도르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열일곱 번이나 졌는데?”“열세 번 진 전하도 다시 하셨습니다.”“그건 네가 억지로 시켜서 그런 거야.”“그래도 하셨잖아요.”“나는 황태자니까.”“저도 공녀입니다.”“그게 무슨 상관인데?”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자신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었다.다만 황태자가 졌다고 다시 해야 한다면 공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목검을 고쳐 잡았다.“준비됐습니다.”맞은편의 기사가 다시 한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기사는 아직 젊었다.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를 짧게 잘랐고, 눈매는 선해 보였다.이름은 레온 하르트.황궁 제1기사단 소속의 정식 기사였다.실력이 뛰어나면서도 어린 견습 기사들을 잘 가르쳐, 오늘 엘라와 테오도르의 훈련을 맡게 되었다.문제는.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엘라가 훨씬 끈질기다는 것이었다.“공녀님.”레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아직 검을 들 수 있습니다.”“그건 보입니다.”“그럼 계속하겠습니다.”“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계십니다.”엘라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분명 똑바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즉시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이제 안 떨립니다.”레온은 한숨을 삼켰다.“안 떨리는 척하시는 겁니다.”“아닙니다.”“방금 오른쪽 무릎이 세 번 흔들렸습니다.”“바람 때문입니다.”벤치에 앉아 있던 테오도르가 소리 내 웃었다.엘라가 그를 돌아보았다.“왜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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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검을 드십시오.”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견습생.”엘라가 다시 불렀다.“들리지 않습니까?”소년은 들고 있던 목검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정확히는 검을 든 것이 아니라, 가슴 앞에 방패처럼 붙잡고 있었다.목검 끝은 바닥을 향했고.작은 두 손은 하얗게 질릴 만큼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엘라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황궁 기사단의 보조 훈련장.정식 기사들이 사용하는 넓은 훈련장과 달리, 이곳에는 아직 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어린 견습생들이 모여 있었다.누군가는 목검을 휘두르고.누군가는 짝을 지어 발을 움직였으며.한쪽에서는 넘어지며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그 가운데.엘라 앞에 선 소년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이름이 무엇입니까?”소년은 한참 뒤에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노아입니다.”“노아.”“……네.”“아까부터 왜 검을 들지 않습니까?”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엘라는 그의 자세를 살폈다.발을 잘못 디딘 것도 아니었다.다친 곳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목검은 다른 견습생들이 쓰는 것과 같은 크기였다.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뿐이었다.“사용법을 모르십니까?”노아가 아주 조금 고개를 저었다.“배웠습니다.”“그런데 왜 안 합니까?”“…….”“모르면 다시 물어봐도 됩니다.”엘라는 어제 레온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을 떠올렸다.자신도 처음에는 부끄러웠다.그래도 묻고 나니 배울 수 있었다.노아에게도 같은 방법을 알려 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검을 어떻게 잡는지 모르겠으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압니다.”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빨랐다.엘라는 눈을 깜빡였다.“알면서 하지 않는 겁니까?”노아의 어깨가 움찔했다.“……네.”“왜요?”소년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엘라는 잠시 기다렸다.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놀림 훈련을 하던 테오도르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오늘 엘라는 손바닥의 상처 때문에 검을 들지 않기로 약속했다.그래서 레온은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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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말해 주지 않겠습니다
“겁쟁이가 어떻게 기사가 돼?”훈련장에 웃음소리가 번졌다.크지 않은 웃음이었다.몇몇 아이가 입을 가린 채 킥킥거렸고, 누군가는 못 들은 척 목검만 만지작거렸다.하지만 노아에게는 충분히 큰 소리였다.바닥에 놓인 목검을 향해 뻗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손끝과 손잡이 사이.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거리를 남겨둔 채였다.“검도 못 잡잖아.”말한 아이의 이름은 세드릭이었다.황궁 근위대 부단장의 조카.노아보다 한 살 많았고, 견습 기사들 사이에서는 검을 제법 잘 다루는 편이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아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최근 노아가 훈련장 한쪽에서 검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지자, 그 모습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다.“매일 와서 구경만 하고.”세드릭은 손에 든 목검을 빙글 돌렸다.“말이나 돌보려면 마구간지기가 되면 되잖아.”노아의 손이 천천히 거두어졌다.소년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얼굴은 창백했고, 굳게 다문 입술만 조금 떨렸다.훈련장 가장자리에서 책을 읽던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바로 옆에 앉아 있던 테오도르도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방금 뭐라고 했어?”테오도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황태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의 웃음이 순식간에 멎었다.세드릭의 얼굴도 굳었다.“저, 전하.”테오도르가 앞으로 걸어갔다.“다시 말해 봐.”“그게…….”“노아한테 뭐라고 했냐고.”세드릭은 입술을 달싹였다.조금 전까지의 기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황태자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충분한 압박이었다.“겁쟁이라고 했습니다.”테오도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사과해.”“하지만 전하.”“지금.”세드릭은 곧바로 노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미안해.”빠른 사과였다.그러나 노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신발 끝만 바라보았다.테오도르가 미간을 찌푸렸다.“제대로 해.”“미안하다고 했습니다.”“그게 사과야?”“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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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도착한 겨울
“아무도 나가서는 안 됩니다.”시종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황궁 동쪽 별궁에 울렸다.복도를 오가던 시종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창문을 닦던 하녀도.꽃병을 옮기던 시녀도.간식 쟁반을 들고 있던 어린 시종도.모두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엘라도 교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한 손에는 역사 교재를.다른 손에는 아직 먹지 못한 작은 사과를 들고 있었다.“무슨 일입니까?”엘라가 물었다.옆에서 나오던 테오도르가 먼저 대답했다.“또 누가 사고 쳤나 봐.”엘라가 그를 바라보았다.“왜 저를 보십니까?”“안 봤어.”“방금 보셨습니다.”“그냥 옆을 본 거야.”“제가 옆에 있었습니다.”“그러니까 옆을 본 거지.”엘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사고를 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므로 완전히 억울한 의심은 아니었다.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아직은.“두 분께서는 교실로 돌아가 주십시오.”시종장이 빠르게 다가왔다.평소에도 엄격한 얼굴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테오도르가 물었다.“무슨 일인데?”“확인 중입니다.”“그러니까 뭘 확인해?”“전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테오도르의 눈썹이 올라갔다.시종장이 저런 말을 할 때마다, 대개 자신과 아주 밀접한 일이었다.“내 별궁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놓고?”“곧 해결하겠습니다.”“뭐가 없어졌어?”시종장은 잠시 침묵했다.그 짧은 망설임만으로도 테오도르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말해.”어린아이의 목소리였지만 황태자의 명령이었다.시종장은 결국 허리를 숙였다.“전령조 한 마리가 사라졌습니다.”“전령조요?”엘라가 물었다.“편지를 나르는 새 말입니까?”“그렇습니다.”“창문으로 날아간 것 아닙니까?”“날아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시종장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오늘 새벽 북부에서 도착한 전령조입니다.”북부.엘라는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었다.제왕학 수업에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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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도착한 겨울
“아무도 나가서는 안 됩니다.”시종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황궁 동쪽 별궁에 울렸다.복도를 오가던 시종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창문을 닦던 하녀도.꽃병을 옮기던 시녀도.간식 쟁반을 들고 있던 어린 시종도.모두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엘라도 교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한 손에는 역사 교재를.다른 손에는 아직 먹지 못한 작은 사과를 들고 있었다.“무슨 일입니까?”엘라가 물었다.옆에서 나오던 테오도르가 먼저 대답했다.“또 누가 사고 쳤나 봐.”엘라가 그를 바라보았다.“왜 저를 보십니까?”“안 봤어.”“방금 보셨습니다.”“그냥 옆을 본 거야.”“제가 옆에 있었습니다.”“그러니까 옆을 본 거지.”엘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사고를 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므로 완전히 억울한 의심은 아니었다.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아직은.“두 분께서는 교실로 돌아가 주십시오.”시종장이 빠르게 다가왔다.평소에도 엄격한 얼굴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테오도르가 물었다.“무슨 일인데?”“확인 중입니다.”“그러니까 뭘 확인해?”“전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테오도르의 눈썹이 올라갔다.시종장이 저런 말을 할 때마다, 대개 자신과 아주 밀접한 일이었다.“내 별궁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놓고?”“곧 해결하겠습니다.”“뭐가 없어졌어?”시종장은 잠시 침묵했다.그 짧은 망설임만으로도 테오도르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말해.”어린아이의 목소리였지만 황태자의 명령이었다.시종장은 결국 허리를 숙였다.“전령조 한 마리가 사라졌습니다.”“전령조요?”엘라가 물었다.“편지를 나르는 새 말입니까?”“그렇습니다.”“창문으로 날아간 것 아닙니까?”“날아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시종장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오늘 새벽 북부에서 도착한 전령조입니다.”북부.엘라는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었다.제왕학 수업에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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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검은 점은 사라졌다.엘라는 손바닥을 펴 보았다.아무것도 없었다.평소와 똑같은 손.며칠 전 훈련하다 까진 자국과, 목검을 오래 잡아 생긴 작은 굳은살만 남아 있었다.엘라는 손바닥을 뒤집었다.그리고 다시 폈다.“뭐 해?”옆에서 테오도르가 물었다.“확인하고 있습니다.”“뭘?”“손을요.”“손이 어디 갔다 왔어?”“아닙니다.”엘라는 다시 한번 손끝을 살폈다.정말 없었다.검은 점.분명히 본 것 같았다.설응의 전령통에서 보았던 검은 얼룩처럼.아주 작았지만.금빛 신성력 사이에 검은 점 하나가 섞여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잘못 본 걸까.온실이 어두워서.차가운 곳에 오래 있어서 눈이 피곤했던 걸지도 모른다.“엘라.”“네.”“아까부터 이상해.”테오도르가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무슨 일 있어?”엘라는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확실하지 않은 일이었다.괜히 말했다가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건 아닐까.특히 아버지가 알게 되면.당장 신관 열 명은 불러올 것이다.황제까지 알면 더 귀찮아질지도 몰랐다.‘별일 아닐 수도 있잖아.’엘라는 손을 주먹 쥐었다.그리고.어제 에드먼드 교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해야 배울 수 있다.레온은 말했다.힘든 것을 모두 숨기면 손을 내밀 사람도 알 수 없다고.엘라는 천천히 손을 다시 폈다.“전하.”“응.”“아까 제 손에서 이상한 것을 봤습니다.”테오도르의 표정이 바로 진지해졌다.“뭘?”“검은 점이요.”“검은 점?”“신성력을 썼을 때 아주 잠깐 보였습니다.”테오도르의 시선이 엘라의 손으로 향했다.“지금은?”“없습니다.”“아팠어?”“아닙니다.”“뜨겁거나 차갑거나?”“그것도 아닙니다.”테오도르는 잠시 생각했다.그러더니 곧바로 말했다.“아버지한테 가자.”엘라는 예상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왜?”“조금 더 지켜봐도 될 것 같아서요.”“왜?”“사라졌잖아요.”“그래도 이상한 거 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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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알려주지 않는 선생님
“제가요?”엘라는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에드먼드 교수는 아주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제가 저 아이들을 가르칩니까?”“정확히는 도와주는 겁니다.”“같은 말 아닙니까?”“다릅니다.”“어떻게요?”“가르치는 사람은 답을 줄 수도 있지만.”노교수의 시선이 훈련장 한쪽으로 향했다.“도와주는 사람은 스스로 답을 찾게 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엘라는 교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황궁 동쪽 별궁의 작은 정원.그곳에는 다섯 명의 아이가 앉아 있었다.황실과 가까운 귀족가의 자제들.아카데미 입학 전 황궁 예비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었다.나이는 아홉 살에서 열한 살 사이.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노아.세드릭.그리고 얼마 전 기사단 식당에서 엘라를 보고 인사했던 두 명의 귀족 영애.마지막 한 명은 처음 보는 소년이었다.엘라는 다시 교수에게 물었다.“왜 제가 해야 합니까?”“오늘 수업은 ‘협력’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요?”“공녀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엘라는 조금 의심스러운 얼굴로 교수를 바라보았다.“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에드먼드 교수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왜 그렇게 생각합니까?”“교수님께서는 그냥 시키지 않으십니다.”“…….”“항상 나중에 질문하십니다.”“관찰력이 좋아졌군요.”“역시 시험이군요.”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게 답이었다.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던 테오도르가 피식 웃었다.“걸렸네.”엘라가 그를 노려보았다.“전하께서는 안 하십니까?”“나는 관찰자래.”“편하시겠습니다.”“황태자니까.”“요즘 그 말을 자주 쓰십니다.”“쓸 수 있을 때 써야지.”엘라는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아이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정원 중앙으로 걸어갔다.다섯 명의 아이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공녀님을 뵙습니다.”“앉으셔도 됩니다.”아이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엘라는 그 앞에 섰다.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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