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검은 안개가 두 사람의 주변을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라에나는 숨을 죽인 채 주변을 살폈다.“……이 기운, 전보다 훨씬 강해.”레오르칸은 검을 뽑아 들었다.“뒤로 물러나.”“싫어. 이번에는 나도 같이—”“라에나.”낮고 단호한 목소리에 라에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 순간 안개 속에서 붉은 눈이 번뜩였다.하지만 이번에는 공격하지 않았다.대신 검은 기운이 바닥을 따라 퍼지더니, 두 사람의 발밑에 커다란 문양을 만들어냈다.라에나는 문양을 바라보았다.“……이건 처음 보는 문양이야.”레오르칸의 표정이 굳었다.“…….” 레오르칸?”그는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문양으로 시선을 돌렸다.문양의 가운데에는 초승달처럼 휘어진 검은 무늬가 있었다.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주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라에나는 천천히 읽었다.“……흑……월?”레오르칸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라에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흑월…… 그게 뭐야?”“지금은 신경 쓰지 마라.”“또 숨기는 거야?”라에나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하지만 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안개 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흑월을 기억하는 자가 아직 있었군.”라에나는 몸을 굳혔다. “누구야?”대답 대신 검은 안개가 크게 흔들렸다.순간 안개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 아주 잠깐 나타났다.얼굴은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목에는 검은 초승달 모양의 장식이 걸려 있었다.라에나가 한 걸음 다가갔다. “잠깐!”그림자는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기다려!”라에나가 달려갔지만, 그림자는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라에나는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흑월.”그녀는 천천히 그 이름을 되뇌었다.“대체 그게 뭐야?”레오르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낮게 말했다.“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이름이다.”“어떤 존재인데?”“……아직은 알 필요 없다.
숲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라에나는 한동안 숲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레오르칸에게 시선을 돌렸다.“……방금 그 소리.” “들었다.” “늑대였지?”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에 라에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왜 아무 말도 안 해?”“확실하지 않다.” “또 그 말.”라에나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요즘 네가 하는 말은 전부 뭔가 숨기는 것 같아.”레오르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모든 진실을 지금 알 필요는 없다.”“하지만 나는 알고 싶어.”라에나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계속 이상한 일이 생기고 있잖아. 검은 문양도, 그 붉은 눈도……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것들도.”레오르칸은 시선을 돌렸다.“……알게 될 거다.”“언제?” “때가 되면.”라에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또 같은 대답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하지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레오르칸의 목소리가 들렸다.“라에나.” 그녀가 멈춰 섰다. “왜?”“네가 본 석판의 내용은 전부 믿지 마라.”라에나가 천천히 돌아섰다.“왜?” 레오르칸은 잠시 침묵했다.“전설은 언제나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그럼 뭐가 빠져 있는데?”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레오르칸은 그 전설에 대해 알고 있었다.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너…… 그 이야기를 알고 있지?”레오르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역시.”라에나는 작게 중얼거렸다.“대체 너는 누구야?”레오르칸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지금 네 앞에 있는 나다.”“그게 대답이야?” “그래.”라에나는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정말 너무해.”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그때 멀리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레오르칸이 즉시 그쪽을 바라보았다.이번에는 라에나도 느낄 수 있었다.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밤이 깊어졌지만 라에나는 잠들지 못했다.눈을 감으면 자꾸만 낮에 보았던 석판이 떠올랐다.검은 달. 거대한 늑대.그리고 그 아래에 적혀 있던 늑대군주라는 이름.라에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말도 안 돼.”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레오르칸이 정말 전설 속 늑대군주라면?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레오르칸의 모습과 전설 속 이야기가 너무 달랐다.레오르칸은 말수가 적고 차가웠지만, 위험한 순간에는 자신을 지켜주었다.그런 사람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전설 속 군주일까.“……아니야.” 라에나는 고개를 저었다.“전설이 전부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잖아.”하지만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라에나는 마을을 떠나기 전 레오르칸을 바라보았다.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라에나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레오르칸.” “왜.”“어제 석판에 있던 이야기…… 정말 몰랐어?”레오르칸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오래된 전설이다.”“그게 대답이야?”“그 이상 말할 필요는 없다.”라에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역시 이상했다.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까지 태연할 수 있을까.“……너는 뭔가 알고 있지?”레오르칸은 라에나를 바라보았다.“알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해서 전부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또 그 말.” 라에나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나는 네가 뭘 숨기는지 모르겠어.”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마을 밖에서 말 한 마리가 놀란 듯 울었다.히이잉!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멀리 숲 가장자리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 “……저거.”레오르칸은 곧바로 검을 들었다.“여기 있어.” “나도 갈 거야.”“안 된다.” “왜?”“이번 기운은 이전과 다르다.”레오르칸은 숲을 바라보았다.검은 안개 속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아우우…….라에나는 몸을 굳혔다.그
라에나는 손에 들린 검은 돌을 한참 바라보았다.돌에 새겨진 문양은 이상할 정도로 낯익었다.“……어디서 본 것 같은데.”레오르칸은 아무 말 없이 돌을 바라보고 있었다.라에나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너는 알아?” “……모른다.” “정말?”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또 숨기는 거지.”그녀가 돌을 다시 내려놓으려던 순간이었다.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두 사람은 불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그곳에는 오래된 작은 마을이 있었다.마을 입구에는 낡은 석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라에나는 무심코 석판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멈췄다.“……잠깐.” 석판에는 오래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거대한 늑대. 그 뒤로 검은 달이 떠 있었다.그리고 늑대의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라에나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이 그림…….”석판 아래에는 희미하게 글자가 남아 있었다.라에나는 천천히 글자를 읽었다.“검은 달 아래 군림한…… 늑대의 군주…….”레오르칸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라에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늑대의 군주?”그녀는 석판에 적힌 이야기를 계속 읽었다.“수많은 부족을 굴복시키고,자신의 뜻에 반하는 자들을 가차 없이 짓밟았던 존재…….”라에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전설에 나오는 악한 군주인가 봐.”그녀는 석판의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이상하게도 그림 속 늑대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그 순간 레오르칸이 낮게 말했다./“그만 읽어.”라에나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왜?” “오래된 전설일 뿐이다.”“그런데 왜 그렇게 신경 써?”레오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석판과 레오르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그리고 다시 그림을 자세히 살폈다.검은 달. 거대한 늑대.차갑게 빛나는 눈.그 모습이 어딘가 레오르칸과 닮아 있었다.“……설마.”라에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레오르칸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아니야.”라에나는 고개를
숲을 빠져나온 뒤에도 라에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레오르칸 역시 아무 말 없이 앞을 걸었다.하지만 라에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붉은 눈동자. 검은 문양.그리고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존재.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레오르칸.” “왜.”“아까 그 존재가 말한 거 있잖아.”레오르칸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어떤 말.” “곧 시작된다고 했던 거.”라에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그게 대체 뭔데?” “모른다.”“정말?” “그래.”라에나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거짓말하는 것 같아.”레오르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라에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넌 항상 그래.” “뭐가.”“뭔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아.”레오르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알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에나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내가 직접 겪고 있는 일인데 왜 내가 알 필요가 없어?”레오르칸은 잠시 침묵했다.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에나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화가 났지만 더 이상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그런데 바로 그때, 쿠웅…….멀리서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두 사람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또 시작이야?”라에나가 주변을 살폈다.이번에는 검은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땅 아래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진동이 계속 이어졌다.레오르칸의 표정이 굳었다.“여기서 기다려.” “싫어.” “라에나.”“나도 같이 갈 거야.”라에나는 단호하게 말했다.레오르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진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언덕 아래에 도착했다.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런데 바닥에 희미한 검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라에나가 가까이 다가가자 선이 천천히 빛났다.“……이건.”레오르칸이 라에나의 앞을 막았다.“건드리지 마.” “왜?”“아직
숲을 빠져나온 뒤에도 라에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붉은 눈동자와 마지막에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곧 시작된다.”라에나는 낮게 중얼거렸다.“대체 뭘 시작한다는 거야?”옆에서 걷던 레오르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라에나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레오르칸.”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뭐.” “너 정말 아무것도 몰라?”잠시 침묵이 흘렀다.레오르칸은 라에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다.”“그럼 아는 건 말해줘.”“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라에나의 표정이 굳었다.“또 말할 수 없다고?”“그래.” “정말 너무해.”라에나는 화난 듯 고개를 돌렸다.“나도 내 일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계속 나만 빼놓고 이야기하잖아.”레오르칸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라에나의 손끝에 희미한 백색 빛이 나타났다.“내 힘이 이상해지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 검은 문양도.” “…….”“그 존재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도.”이번에도 레오르칸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라에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그녀는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몇 걸음 지나자 레오르칸이 뒤에서 말했다.“라에나.” 라에나가 멈췄다. “뭔데?”“네가 본 붉은 눈의 존재는…… 지금은 신경 쓰지 마라.”라에나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왜?”“아직 네가 알아야 할 때가 아니다.”라에나의 눈썹이 올라갔다.“또 그 말이네.”하지만 이번에는 더 따지지 않았다.대신 조용히 물었다.“그럼 하나만 대답해줘.” “뭐지?”“그 존재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어?”레오르칸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다.라에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알고 있구나.”“확실한 건 아니다.” “거짓말.”라에나는 단호하게 말했다.레오르칸은 잠시 침묵했다.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 존재가 네 이름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라에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자신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