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검을 바라본 채,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었다.“나, 나는 금군 총령이다, 너,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그 지위만을 붙잡으려 했다.임학의 얼굴에는 어둠이 깔렸다.“천자의 금군이라면 창을 쥐고 주상을 지켜 목숨을 바쳐야 할 터, 네가 금군 총령으로서 맹세를 저버리고 배신을 택하다니, 이런 역모의 죄는 하늘도 용납치 못한다!”말이 끝나자, 임학은 장검을 뽑아냈다.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단풍잎을 모두 붉게 물들이는 듯했다.하원은 비틀거리며 두 걸음 물러섰고,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상처를 움켜쥐었다.“나,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중전이 협박을… 나는, 나는 억지로……”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학의 장검이 다시 내리쳤다.하원은 미처 피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왼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아직 경련하듯 움직이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는 그제야 찢어질 듯한 비명을 토해냈다.임학은 단 한 점의 연민도 없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이번에는 그의 오른팔까지 잘려 나갔다.붉게 핏발 선 임학의 두 눈에는 한 맺힌 분노가 가득했다.“그날 내 아버지의 두 팔을 잘라냈을 때, 네 놈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상처에서 쏟아지는 피가 하원의 체온을 앗아갔다.그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힘이 빠진 몸은 그대로 주저앉았다.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끝내 단 한 마디도 뱉어내지 못했다.그저 임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 같았다.피로 흠뻑 젖은 장검이 높이 들려 올랐고, 거침없이 내려쳤다.하원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굴러갔다.임학은 표정 하나 변치 않은 채 하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그 머리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그 두 기의 새 무덤 앞에 공물처럼 내려놓았다.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쌓인 원한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붉게 충혈된 눈가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임학은
임학의 목구멍에서 참지 못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사무치는 기억들이 밀물처럼 몰려와 그의 온몸을 휘감고 삼켜버렸다.차마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니.그러나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장정의 울음은 거칠고 서러웠다. 그는 그 자리에 무너져 통곡했고, 곁에 있던 노인조차 연신 눈물을 훔쳤다.최지습의 눈가도 붉어졌다.무슨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알 수 없어, 그저 임학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릴 뿐이었다.한참을 울던 임학은 비로소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최지습을 바라보며 흐느낌 사이로 겨우 몇 마디를 쥐어짜듯 내뱉었다.“아, 안 돼… 단이에게는 말하지 마라… 그녀는… 버티지 못할 거야.”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원망으로 가득했던 부모가, 결국 그녀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고.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한때 직접 그녀를 세답방에 노비로 보내고, 명정 대군의 손에 넘겨져 고통을 당하게 방치했던 부모가…언젠가 기꺼이 그녀를 위해 죽음을 택했다고.그렇다면 단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끝내 미워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평생 죄책감과 고통을 짊어질 것인가.최지습은 침묵했다.그 또한 어찌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그는 예전 김단에게 말했다.“망설이지 말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 그저 너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결정하면 된다.”미움을 이어갈지, 용서하고 풀어낼지, 모든 선택은 그녀의 마음에 달렸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피로 맺어진 혈육의 인연은 하늘이 내린 것이다.그녀에게, 어떻게 선택하라 할 수 있단 말인가.임학은 진산군 부부의 시신을 한양 남쪽의 단풍숲에 묻었다.이 시절의 단풍잎은 아직 붉지 않았고, 한 줄기 바람이 불자 사사삭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그 잔잔한 소리 사이로,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왔군.” 최지습이 낮게 말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임학은 두 기의 새 무덤 앞에 꿇어앉아 머리를 세차게 조아리며 낮게 속삭였다.“부디 잘 지켜봐 주십시오. 아
김단 이야기가 나오자 주상의 얼굴빛도 한층 어두워졌다.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그 시절, 주상에게 한 줄기 희망을 가져다준 이는 바로 김단이었다.이후로도 고 영감이 줄곧 전해주었다. 김단이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덕분에 그가 버티고 버텨 최지습이 돌아올 때까지 견뎌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심중의 감정이 물결치자 주상은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그래, 김단을 데려오는 것이 급하다.”이에 최지습은 즉시 예를 올린 뒤 몸을 돌려 떠났다.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약왕곡으로 달려가 김단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다.임학과 함께 의묘로 향한 것이다.말발굽이 교외의 적막을 짓부수며 내달리고, 바람은 마른 잎을 휘몰아 부패한 기운을 안은 채 얼굴로 스며들었다.임학의 손은 굳게 고삐를 쥐고 있어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의묘는 쇠락해 있었고, 몇 개 남은 등불이 바람에 흔들려 벽에 얼룩진 그림자를 비추었다.그곳을 지키는 꼽추 노인이 두 사람의 비범한 옷차림을 보고는 겁에 질린 듯 다가왔다.“두 분 귀인께서…… 무슨 일이십니까?”임학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관이 어디 있느냐?”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혹시…… 진산군 부부 말씀이십니까? 이, 이쪽입니다.”노인이 앞서 걸음을 옮겼다.임학의 숨이 잠시 막히자 최지습이 그의 경직을 알아차리고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낮게 말했다.“내가 함께 들어가겠다.”의묘 안은 음습하고 차가웠으며, 몇 개의 얇은 관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며 울컥하게 했다.노인은 그들을 구석으로 이끌고 거의 썩어가는 두 개의 얇은 관을 가리키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여기 있습니다……”임학은 천천히 다가가 손끝으로 관을 짚었고, 나무 가시는 살을 파고들었으나 그는 전혀 아프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관 뚜껑은 못질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갑자기 뚜껑을 밀어 올렸다.썩은 내음이 얼굴을 덮쳤다.관 안의 두
조정이 순식간에 술렁였다.주상의 눈빛에 비통한 기색이 스쳤다.“중전, 자네와 짐은 어린 시절부터 부부로서 함께 세월을 견디며 생사를 넘나들었는데, 짐을 해하려는 자들이 아무리 많다 한들 자네만은 아닐 줄 알았다! 맹가가 화를 당했을 때 짐이 너를 지켜주었던 일을 잊었단 말이냐!”중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미친 듯 크게 웃었다.“그래, 어린 부부가 함께 생사를 견디며 살아왔다니,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로구나! 너와 나 사이에 그토록 깊은 정이 있어야 할 텐데! 하지만 주상! 그대의 마음속에 과연 신첩이 있기나 하오? 후궁에 그 많은 빈첩들을 모두 가슴에 품으면서, 심지어 덕빈의 궁녀 하나조차 너는 놓아주지 않았지 않았소? 그 천한 것들과 함께 어울릴 때, 네가 말한 그 ‘어린 부부’를 떠올린 적은 있더냐!”황제의 안색은 철빛으로 굳었다.“그래서 짐을 독살하려 했단 말이냐?”“그렇다!” 중전이 소리쳤다.“차라리 네게 미움을 받아 버려져 냉궁에서 썩어갈 바에야, 내가 먼저 너를 죽여 버리는 편이 낫지!”“잡아라!” 주상이 크게 명했다.그러나 전각 안의 금군들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하원이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때 최지습이 냉랭하게 소리쳤다.“성 밖의 삼만 대군은 이미 소하가 장악했다. 하원, 아직도 어둠을 버리지 못하겠느냐?”그 말에 하원이 크게 놀랐다.지금 이 순간 그는 최지습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더 지체한다면 삼만 대군이 그의 시신을 짓밟고 지나갈 것이 분명하다!이 생각에 미치자, 하원은 돌연 몸을 돌려 옆에 있던 부장을 단칼에 베어 넘어뜨렸다.“말장수 하원이 호가가 늦었습니다. 주상, 용서하여 주시옵소서!”이 돌발 사태에 중전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하원! 너… 너 나를 배반하느냐?”하원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말장수는 오직 주상께만 충성하옵니다! 이전의 일들은 모두 겉으로만 따르는 척하여, 바로 오늘 이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계책이었을 뿐이옵니다!”하원이 돌아서자 나머지 금군들도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세자는 얼굴이 창백하여 종이처럼 하얗고,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으며 입가에는 수상한 침자국이 매달려 있었다.중전은 발 아래 발을 모으고 용좌 곁에 서서 발 아래 드리운 발을 조용히 치켜들어 날카로운 봉안으로 신하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빛을 살폈다.백관이 모두 자리를 정리하자 그제야 중전이 입을 열었다.“여러 사랑하는 신하들도 이미 들었겠지만, 어젯밤 평양원군 최지습이 내시 고덕해와 결탁하여 궁에 잠입, 옥새를 훔치려다 발각되자 주상을 협박해 궁 밖으로 도주하였다. 금군이 전력을 다해 추포하였으나… 찾은 것은… 주상의……”그녀는 그 순간 목이 멘 듯 말끝을 흐리며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조정의 문무백관들이 일제히 술렁이며 소란스러워졌다.예조판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중전마마, 주상께서는…”중전은 슬픔에 겨워 눈을 감았다.“금군이 한양 서쪽 난장지에서 주상의 옷 조각과… 일부 유해를 발견하였다. 태의가 검증한 바, 분명 주상께서 맞다 하였다……”조정은 순식간에 통곡으로 가득 찼다.병부판서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그렇다면 급선무는 새 군주를 추대하는 것이옵니다!”발 아래에서 중전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이 병부판서는 그녀가 오래전부터 은밀히 끌어들인 심복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구태부가 앞으로 나섰다.“마마! 주상의 생사가 아직 확실치 않은데 어찌 경솔히 단정할 수 있겠사옵니까? 게다가 세자 저 모양을 보십시오. 어찌 조정을 다스릴 수 있겠사옵니까? 노신의 생각에는 우선 주상을 계속 수색하고, 내각에서 임시로 조정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 사료되옵니다!”중전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구태부의 말이 잘못되었도다! 주상의 유해가 이미 발견되었는데 어찌 거짓일 수 있느냐? 세자에 관해서는……”그녀는 용좌에 앉은 세자를 돌아보며 말했다.“똑똑히 보아라! 세자는 그저 지나친 슬픔에 잠겨 있을 뿐, 어찌 정사를 돌보지 못하겠느냐?”지나친 슬픔이라니?그러나 중전은 분명 이전에 세자 역시 김단이 내린 독에 중독되었다고 하
“물러가라!”“예!”모두가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응답했다.고지운은 그제야 목에 겨누었던 장검을 거두어들였고, 이내 그것을 금군의 발앞으로 던져 놓았다.그 금군이 장검을 주워 칼집에 넣은 뒤, 고지운을 향해 깊이 예를 올리고 말했다.“예정빈께서 대군자께 전언을 전해 주시길, 금군의 모든 형제들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고지운은 비로소 깊은 숨을 내쉬었다.목덜미에 은근한 통증이 스며들었다. 손을 올려 훑자 따스한 피가 손끝을 적셨다.그런데도 그녀의 눈빛엔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가슴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은 예종원군 관저와 소하를 지켜냈다는 격렬한 감동과 자부심이었다.이 생각에 이르자, 그녀는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하늘 가득한 별빛을 바라보았다.조선의 밤하늘은 돌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하늘 아래에는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가 있었다.단이는 약왕곡에 있겠지만, 분명 이 별빛 아래 숨 쉬고 있을 터.부디 오늘 밤만 무사히 넘기면 모든 것이 평온하게 돌아가길.단아,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웃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폐물들! 전부 쓸모없는 것들!”중전의 분노가 교태전 안을 울렸다.정교한 청자 찻잔이 바닥에 거칠게 부서져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무릎을 꿇은 금군 총령 하원은 이마를 땅에 붙인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두 명의 산 사람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 말이냐?”중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봉황무늬 소매 끝을 힘껏 움켜쥐며 하얗게 질렸다.하원의 목젖이 불안하게 오르내렸다. 그는 조심스레 대답했다.“마마, 한양의 아홉 문은 이미 전부 봉쇄하였고, 조정의 몇몇 중신들의 관저도 수색하였습니다. 평양관저 또한 샅샅이 뒤졌사오나, 금군의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단 하루 밤새로는 두렵건대……”“변명 같은 소리!”중전이 갑자기 탁자를 세차게 내리치자, 머리 위의 금봉 보요가 크게 흔들렸다.전각 안에 무릎 꿇은 궁녀와 내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