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하인은 완강한 태도로 말했다. “어찌 감히 우리 아씨를 함부로 납치하시려는 겁니까!”납치라니? 너무 과격한 단어였다.김단은 당황하지 않고 주위에 모여든 구경꾼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여러분들 중 저를 알고 계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김단은 한양 내 백성들이 심심풀이 삼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당연히 이들 중 그녀를 알아보는 자는 많을 것이다.이내 누군가가 외쳤다. “진산군 댁 큰 아가씨 아니십니까!”“진산군 댁은 무슨! 진산군 댁과의 연은 진작에 끊으셨소! 이제는 평양원군의 의붓누이 되시는 분이오! 실제로 매일 같이 평양원군 관저에서 지내고 계신단 말이오! 저 마차 보이시오? 저것이 바로 평양원군 댁 마차요!”“저도 아씨를 알고 있습니다!”군중 속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김단은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고, 일곱 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군중 맨 앞에 서서 김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씨는 주상 전하께서 직접 봉하신 의녀이시고, 조선의 첫 여성 관료이십니다.”그 말을 듣자 김단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어린 소녀를 사랑스럽게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바로 나다.”그리고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 높여 말했다. “여러분께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시니, 제가 사람을 납치하는 인신매매범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오히려 이 두 사람의 행동과 신분이 의심스럽습니다!”백성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하인은 분해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단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 마차에 치인 것은 중상입니다. 제가 제대로 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이 낭자가 머리를 다치기라도 했다면, 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훗날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저에게 그 죄를 묻더라도 저는 결코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맞습니다! 마차에 치여 죽은 사람은 수 없이 많습니다!”“아씨 말이 맞습니다. 저들을 막아 아씨께서 데리고 가셔야 합니다!”“옳소. 누가 알겠나! 미치광이 여자를 데려
“당연히 아닙니다!”하인은 다급히 부정하며 말했다. “이, 이분은 그저 맹씨 가문의 먼 친척 되시는 사촌 아씨이십니다. 저희 대감 어르신께서 마음이 선하셔서 거두어 보살펴 주시고 계시는 겁니다.”“아...” 김단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내가 낭자를 끝까지 치료해 드렸는데, 아무리 못해도 미치광이가 되지는 않으셨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맹 낭자는 지금 어떠하느냐? 내가 한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댁에 찾아뵙지 못했구나.”“저, 저희 아씨께서는 훨씬 좋아지셨습니다. 얼마 전에 시골로 요양을 가셨습니다.”“그렇다면 아쉽구나. 내 한번 찾아 뵈려 했거늘!”김단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헝클어진 머리의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두 하인은 불안한 듯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마음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시간이 늦어, 저희도 사촌 아씨를 모시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저희 어르신께서 걱정하실 겁니다!”그때 경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까는 너네가 모시는 아씨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지금은 사촌 아씨라 하는 것이냐?”“그, 그때는 상황이 급박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도령님.”김단은 경씨가 말하려는 것을 가로막으며 차분히 그를 설득했다. “맹 대감께서 먼 친척을 거두어 보살피시는 것을 보면, 대감께서 이 낭자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 자들이 긴장하고 조급해하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경씨는 싸늘한 표정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하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긴장되고 조급하여 순간 실수한 것입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들은 그 미치광이 여인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김단이 경씨를 향해 눈짓을 하였다.경씨는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장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여 앞으로 나섰다. 그는 거대한 체구로 두 하인의 앞길을 막아섰다.두
마차 안, 김단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어느 순간에는 어린 시절 임씨 부인의 무릎에 기대어 그녀가 불러주던 동요를 듣던 때가 떠올랐고, 어느 순간에는 세답방 나인들에게 머리를 맞아가며 괴롭힘 당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한편으로는 임원을 감싸던 진산군의 모습이 떠오르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방금 전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진산군이 떠올랐다.사실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털어버릴 수 있었다.최지습이 말했듯, 오래된 상처라도 아픈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그 '혈연'이라는 두 글자가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봄날에 빠르게 자라난 덩굴이 답을 뒤덮듯, 겨울날의 차디찬 한기가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들이닥치듯 말이다...설령 그녀가 피를 쏟아내고 살점을 다 도려내 앙상한 백골만 남는다 해도, 그것마저 그들이 남긴 것이었다.하필 왜 그들인 것일까?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순간 마차가 급정거했다.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김단은 순간 앞으로 몸이 쏠려 넘어질 뻔했다.마차 밖에서 경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낭자, 괜찮소?”김단은 자세를 고쳐 앉은 뒤 대답했다.“전 괜찮습니다. 무슨 일입니까?”“어떤 이가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왔소.”그렇게 말하며 경씨는 마차에서 내렸다. “내가 가서 알아 보겠소!”김단은 그 말을 듣고 무심코 창문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경씨가 어떤 여인을 부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인은 비록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도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지만, 옷감을 보아 부유한 집안에서나 입을 법한 것이었다.김단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혹 어느 집안의 미친 아낙네인가 싶었다.그녀는 경씨를 향해 말했다. “도령님, 낭자께서 다치신 곳은 없는지 살펴봐 주십시오. 저 앞에 의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마차에 치인 것은 중상에 속하니, 최대한 빨리 의원의 진찰을 받는 편이 좋았다.경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인을 부축해 일으켰으나, 예상 외로 여인은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 독이 깊게 침투된 것이 아니라면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독이 소하의 몸에 침투된 지 최소 5년 이상이 되었다. 독이 이미 골수에 스며들어, 수혈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을 것이다.”의원의 말을 들으며,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결국 지금으로써 유일한 희망은 약왕곡의 주인에게 있었다. 그가 하루빨리 최지습에게 답신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김단은 의원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런데 의원의 안채를 나서자마자, 진산군과 마주쳤다.몇 달간 만나지 못해서일까?진산군의 모습은 훨씬 더 늙어 보였다.머리카락은 더 희끗해졌고, 눈가의 주름도 더 깊어졌다.김단을 본 그는 곧장 미소를 보였지만, 그 미소는 매우 부자연스러웠다.일부러 그녀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 티가 났다.그는 이곳에서 한참 기다린 듯했다. 주변 길가의 풀들이 밟혀 납작해져 있었다.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김단의 표정은 굳어졌지만, 마지못해 앞으로 나와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를 올렸다. “대감께 인사드립니다.”“내, 내 얘기 들었다, 네가 왔다고.”진산군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전보다 더 거칠었다. “음, 변방에서는, 잘 지낸 것이냐?”“아무 일 없었습니다.”김단은 차분히 대답했다. 결코 건성으로 답하는 건 아니었다.진산군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김단을 바라보았고,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문득 자신의 딸을 안아본 지도 너무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김단은 그와의 포옹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되려 거부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이에 그는 쉽사리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혹여라도 김단이 싫어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김단은 말없이 서서 잠시 기다리다, 진산군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말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인사를 올리고 떠날 준비를 했
김단이 진산군 댁으로 돌아온 이유는 물론 스승인 의원을 만나기 위함이었다.그렇기에 그녀는 오늘의 방문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진산군 댁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막지는 않았지만, 다급히 진산군에게 보고를 올리러 갔다.김단은 이에 개의치 않아 하며 곧장 의원을 찾아갔다.안채에 들어서자, 짙은 약초 향기가 풍겨왔다. 김단은 약방을 향해 소리쳤다. “스승님, 무엇을 달이시길래 이렇게 향이 좋은 것입니까!”김단의 목소리를 들은 의원은 한걸음애 달려 나왔다. 김단을 보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어제 큰 도련님이 돌아온 걸 보고, 분명 너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땠느냐? 변방은 재미있었느냐?”“재미없었습니다! 거기서 죽을 뻔했습니다!” 김단은 일부러 의원을 약올렸다.그럼에도 의원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평양원군이 널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겠지.”김단은 깜짝 놀랐다. 의원마저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터라,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스승님도 알고 계셨습니까?”“어찌 모를 수 있겠느냐? 그날 대군의 서신이 한양에 도착하자마자, 진산군께서 격노하시어 평양원군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제 넘게 어린 낭자를 탐한다고 욕하셨다!”그 말을 들은 김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의원의 말이 이어서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나이가 있는 사람일 수록 사람을 아낄 줄 안다고 생각한다!”이 말을 들은 김단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스승님께서 좋게 생각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참, 스승님, 약왕곡의 주인을 만났습니다.”그 말을 듣자 의원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되려 긴장감이 돌았다. “언제 말이냐? 네, 네가 약왕곡에 간 것이냐?”“아닙니다!” 김단은 고개를 저었다. “길상진에서 그 자를 만났습니다. 약 파는 노인으로 변장하고는 상흔 약과 독약을 팔고 있었습니다. 제가 호기심에 몇 마디 질문해보니, 과연 약왕곡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분명 변
소한은 한양을 떠나기 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그래서 소하가 그토록 걱정하는 것이고, 김단이 한양으로 돌아자마자 이곳으로 찾아와 그녀에게 서신을 써 주기를 부탁한 것이다.하지만 김단에게 이 서신은 훗날 소한과 얽히게 되는 도화선이 될 것이기에, 그녀가 쓰지 않으려는 것을 그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부디 소한이 김단의 말처럼 전장에서 이성을 되찾고, 모든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김단이 평양관저에 돌아온 것은 한 시진쯤 뒤였다.최지습도 이미 돌아와 있었다.물론 고지운도 함께였다.김단을 보자 고지운은 단숨에 뛰어와 그녀를 맞이했다. “낭자, 낭자네 주상께서는 참으로 상냥하시오! 이곳에서 낭자와 함께 지내도 된다고 허락하셨소!”“그게 정말입니까?”김단의 얼굴에도 기쁨이 번졌다. 김단은 내심 고지운이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궁에 머무르게 되면 오히려 불안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때 최지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께서 조선에 동무가 낭자 한 명뿐이라며, 혼례를 치르기 전까지 낭자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하셨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주상 전하께서 많이 신경을 써주신 듯합니다.”적어도 이 일에 대해서 만큼은 신경을 써준 게 확실했다.고지운은 한참을 웃었고, 시선은 자연스레 김단과 최지습의 얼굴을 오갔다.이내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황급히 김단에게서 떨어져 멋쩍게 웃었다. “대군께서 내게 거처를 마련해 주셨다고 하였소. 내 가서 거처를 확인하고 와야겠소. 나중에 다시 놀러 오겠소!”말을 마친 고지운은 다시 숙희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 “우리 예쁜 숙희, 나랑 같이 가서 확인해 보자구나!”숙희가 어찌 이런 미인의 애교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숙희는 이내 마음이 약해져 애처롭게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고, 그렇게 고지운과 숙희는 손을 잡고 떠났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김단은 어딘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최지습은 당연히 이를 눈치채고 그녀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