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는 날아가다 곧바로 땅에 떨어졌고, 오동나무 기둥에 닿지도 못했으며 안에 박히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김단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속으로 '역시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때 소하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앉으시오.”김단은 약간 놀랐지만 그래도 그의 말에 따라 앉았다. 이번에는 소하가 직접 김단의 손에 돌멩이를 쥐여주었다.그의 손가락 끝은 약간 차가웠고, 그녀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어떤 무기든 순간적인 힘이 중요하오. 낭자는 처음 배우는 것이니 이 두 손가락에 집중하고, 조준은 생각하지 마시오. 일단 멀리 던지는 것을 먼저 배우고, 다른 것은 나중에 생각하시오.”그 말과 함께 소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부터 손목, 팔꿈치, 그리고 어깨까지 조금씩 올리며 팔 전체의 자세를 바로잡은 후 천천히 말했다. “이제 다시 해보시오.”김단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소하의 말대로 두 손가락에 집중한 다음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탁!”희미한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나무 기둥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김단은 땅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엔 성공한 건가요?”소하의 눈가에도 웃음이 번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성공이오.”김단은 매우 기뻐하며 소하의 손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소하가 방금 잡아준 자세로 다시 던졌다.“탁.”“또 맞았어요!”김단은 깜짝 놀랐다.이전 것은 운이 좋았다고 쳐도, 두 번째 것도 맞았다면 그건 진짜 실력이지 않겠는가?그녀는 소하를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저 재능 있는 건가요?”“당연하오.”소하는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동자에 가득 담긴 기쁨은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았다.그는 손을 뻗어 김단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남은 돌멩이를 모두 김단의 손에 쏟아 넣은 다음 말했다. “내일부터 이각에게 백 개를 준비하도록 할 테니, 이 자리에서 백 개 모두 나무 기둥을 맞히게 되면 두 걸음 뒤
다음 날.소씨 부부는 사람을 보내 김단에게 대청마루로 오라고 전했다.김단은 어제 시험 삼아 침을 놓다가 실패한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은 몰랐다.소씨 부부 외에도 소한과 임원이 있었다.심지어 어제 시험 삼아 침을 놓았던 하인 몇 명도 있었다.앞뜰에 들어서기 전부터, 김단은 삼자대면 심문을 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마음이 무거워졌다.앞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소하는 그녀의 감정을 눈치챈 듯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안심시켰다. “내가 알아서 하겠소.”그가 앞에서 그녀를 보호해주면 소씨 부부도 너무 심하게 몰아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김단은 가볍게 '네'라고 대답하고 소하의 의자를 밀며 앞뜰로 들어갔다.소한의 시선은 이미 김단에게 꽂혀 있었다.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김단과 소하가 나타나자마자 그의 눈에는 그녀가 들어왔다.방금 전 그들이 문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소한은 소하의 말 한마디에 어떻게 그녀가 바로 안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소하가 그녀에게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된 것일까?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이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임원은 소한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소한의 암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김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우스운 것은 소한은 분명 그녀의 남편임에도, 그의 마음이 다른 여자 때문에 흔들린다는 것이다!그녀의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손수건을 쥐어짰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분해하였다.김단과 소하는 대청마루로 가서 함께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어머님께 문안 인사드립니다.”“그래.”소 대감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위엄 있는 모습을 유지했고, 소씨 부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김단을 바라보며 불만을 표했다. "“어제 시험 삼아 침을 놓은 사람 중에 끝까지 버틴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들었다.”김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말을 들은 김단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의원의 신분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그녀가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와중, 소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명의는 속세를 벗어나 살고 있던 와중, 우연히 단이와 인연이 닿아 저를 치료하게 된 것입니다. 유 대인이 간다고 해도 그 자의 얼굴조차 보지 못할 것입니다.”소 대감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단이를 가르쳐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침술을 연습할 사람이 없으면 너를 치료할 방법을 알아낼 수도 없을 것이고, 결국 헛수고만 하는 것 아니냐?”“그럼 치료하지 않겠습니다.”소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바라볼 뿐,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다. “저는 5년 전에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 중 단이가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금 그 희망에 조금 어려움을 겪는다고 어찌 단이를 탓하겠습니까...”말을 마친 소하는 소 대감과 소씨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싸늘한 눈빛에 희미한 총기가 스쳤다. “저는 단이가 안쓰럽습니다.”마지막 말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김단은 멍하니 소하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소하도 소 대감과 소씨 부인을 상대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소 대감과 소씨 부부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소하가 품은 그녀에 대한 '감정'에 놀라 벙쪄 있었다.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김단은 소하의 이 '감정'이 그녀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김단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소한의 눈에는 행복한 수줍음으로 보였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손에 든 찻잔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깨뜨릴 듯했다.예전에 그가 청혼했을 때 그녀는 뭐라고 했는가?그녀는 정암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자신과 혼인하려 하는 그를 보고 인간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럼 그녀가 지금 어떠한가?지금 그녀와
“아니 되오!”“아니 되오!”두 사람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소하는 고개를 돌려 소한을 바라보았고, 소한 역시 소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저절로 두 사람의 얼굴을 오갔다.하인들은 구경꾼 심정으로 큰 도련님과 둘째 도련님이 큰 며늘 아씨 때문에 싸우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했다. 소씨 부부도 미간을 찌푸리며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고, 심지어 소 대감은 소한을 노려보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다!임원은 고개를 숙인 채 더욱 분해하였다.겨우 겨우 소한을 말렸는데, 결국 그가 이렇게 무모한 행동할 줄이야! 이는 그녀를 정실부인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김단 역시 난처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소한을 욕했다! 그녀가 소하를 위해 자신의 몸에 침을 놓겠다는 데, 이게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소한도 그제야 자신의 행동이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변명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원은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했소. 낭자가 자신의 몸에 침을 놓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형님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오.”변명이 정말 어설펐다. 하지만 소하는 동의했다.“한이의 말이 맞아."이 문제에 대해서는 형제 두 사람의 뜻이 같았다. 김단은 소하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서방님, 안심하세요. 저 역시 생각해 봤습니다. 천천히 침을 놓다가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으면 멈추고 다음 날 다시 시도해보면 됩니다! 안심하세요, 다치지 않을 겁니다!”이는 그녀가 어젯밤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자신에게 침을 둠으로써, 첫째로 명확한 수정 방안을 얻을 수 있고, 둘째로 침을 반쯤 꽂았을 때 상대방이 몸부림치며 침이 부러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녀에게 침술을 허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침술을 겪어 본 집안 하인들은 감히 나서지 못했고,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듣는 것 만으로도 겁에 질려 더욱 나서지 못했다.집 밖의 사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늘 임원이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임원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소씨 부인은 소정원을 향해 손짓했다. “네 오라버니를 치료하는 일 때문에 그렇다. 어제 집안 하인들이 시험 삼아 침을 맞았는데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네 둘째 오라버니가 자기에게 시험해 보라고 하지 않느냐.”소정원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이해했다.침을 놓는 것이라면 바지를 걷어 올려야 할 것이다. 다른 하인들은 괜찮지만 소한과 김단은 전에 애매한 관계였으니 이렇게 '가까운 피부 접촉'은 남들로 하여금 헛소문을 만들기 쉬웠다.더군다나 김단을 향한 소한의 마음은 온 집안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임원이 소한의 아내로서 두 사람이 매일 접촉하는 것을 어떻게 허락할 수 있겠는가?임원이 반대하는 것도 당연했다.하지만... 그녀의 큰 오라버니의 다리는 어렵사리 희망을 보게 되었고, 어떠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런 생각에 소정원은 미간을 찌푸렸고, 집안을 위해 무언가를 결심하였다.“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큰 언니와 둘째 오라버니가 제 처소에서 침을 맞는 겁니다! 저는 여자이니 큰 언니께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도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게다가 그녀는 소한의 친여동생이니 다른 사람들이 헛소문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더군다나 그녀의 집은 부모님의 댁과도 가까워 두 사람이 보러 오기에도 편했다.어쨌든 그녀가 있으면 양쪽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소한 역시 이 제안이 좋다고 생각하여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하지만 옆에 있던 임원은 손에 든 손수건을 꽉 쥔 채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분노했다.그녀는 왜 소씨 집안 모든 사람들이 김단의 편을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소정원은 임원을 생각하여 그녀의 심경을 걱정하며 물었다. “둘째 언니는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이에 임원은 얼떨결에 소정원을 바라보았고, 자연스레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을 훑어
한편, 소 대감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지금 한번 해 보거라.”그는 만약 그정도로 침이 아픈거라면 소한조차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만약 첫 번째 시도조차 견디지 못한다면 이후 정원의 집으로 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이에 대해 모두 동의하였다.마침 오늘 사람들이 다 모이기도 하였고, 모두 김단이 어떻게 침을 놓는지 보고 싶었다.그렇게 일행들은 우르르 소정원의 집으로 향했다.동쪽 가장 큰 안채 안, 소 대감과 소 씨 부인은 나란히 앉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소정원은 소씨 부인과 곁을 지키며 수시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소하는 의자를 끌고 옆으로 가 김단이 긴장할까 걱정하였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그는 그녀를 믿었다.하지만 김단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소한이 견디지 못하면 자신에게 직접 침을 놓을 생각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는 소하를 반드시 치료할 것이다.임원도 이들을 따라왔다. 그녀는 소씨 부인 뒤에 서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물론 그녀는 이 자리에 끼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가 왔는데 그녀만 오지 않으면 집안 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김단은 소하의 다리를 치료하는 것으로 점차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이런 자리를 놓쳐 김단에게 기회를 줄 수는 없었다!넓은 방 안에는 소씨 집안 사람들만 있었고, 하인 한 명 없었다.이에 소한은 사람들 앞에 앉아 당당하게 오른 다리를 들어 올린 다음 바짓단을 허벅지까지 걷어 올렸다.김단은 당황하였다.소한의 다리에는 많은 흉터가 있었다.크고 작은 흉터는 모두 칼과 검에 베인 상처였다.그동안 그가 전장에서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그가 전장에서 얻은 모든 영광은 그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었다.김단은 깜짝 놀랐지만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가라앉혔다.침을 놓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가장 조심해야 했다.임원도 소한의 몸에 난 상처를 처음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당연히 그를 안쓰럽게 생각했지
소한은 가슴이 약간 아파왔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하시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은침을 꺼내 첫 번째 혈자리에 꽂았다.그녀는 은침이 들어가면서 소한의 다리 근육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통증에 대처할 때 보이는 정상적인 반응이었다.그녀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인들보다 훨씬 나았다.김단은 이에 매우 만족하며 곧바로 두 번째 침을 놓았다.소한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소씨 부부는 하인들의 말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다섯 번째 침 차례가 왔다.이각마저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던 바로 그 침이었다.하지만 소한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에 맺힌 식은땀만이 그가 아프다는 것을 증명했다.김단도 당연히 이를 보았다. 소한이 왜 소리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지, 혹시 그녀의 침술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졌고 목소리도 약간 낮아졌다. “방금 놓은 침들은 제가 전에 시험해 본 적이 있는 것들이라 어느 정도 반응을 알고 있는 상태이지만, 다음에 놓을 침들은 소 장군님께서 저에게 통증의 강도를 알려주셔야 합니다.”“알겠소.” 소한의 대답은 매우 냉담했다. 마치 형식적인 일 같았다.이각이 기절하는 것을 본 소하는 매우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한아, 억지로 참지 말거라.”어쨌든 친동생이니, 그는 소한의 이런 모습을 보며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하지만 소한은 대답하지 않고 두 눈으로 김단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계속하시오.”김단은 그의 시선 때문에 약간 불안해졌고,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이어갔다.여섯 번째 침은 적당한 깊이를 찾기 위해 조금씩 안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소한의 두 손이 의자 팔걸이를 꽉 쥐는 것을 보았다. 다리 근육은 그가 잘 조절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침술에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은침이 반 푼
그 한마디에 세 사람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소정원은 손에 수건을 든 채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소한을 한번 보고 다시 김단을 보며 김단의 입에서 어떤 놀라운 대답이 나올지 걱정하였다.다행히 김단은 잠시 멈칫 하더니 다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려 그를 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소 장군님은 농담도 잘하시네요.”그 말과 함께 계속해서 침을 놓으려 했다.그런데 그녀의 손목을 갑자기 누군가가 꽉 잡았다.소하였다.김단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의 싸늘한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불쾌한 듯 소한을 노려보았다. “네가 아파서 정신이 나간 모양이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말을 마친 그는 다시 김단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바꾸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쾌함이 묻어났다. “그만 정리하고 가시오.”김단은 소하가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지 몰랐고, 침을 든 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소한의 눈빛은 순식간에 싸늘해졌고,입가의 미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그는 김단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담담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농담을 했을 뿐인데 형님께선 왜 이리 긴장하시는 겁니까? 계속하겠습니다.”이번에는 김단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갈 수도, 남을 수도 없었다.다행히 옆에 소정원이 있었다.그녀는 소한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소하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열 개만 더 놓으면 끝나는데 이렇게 가시면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둘째 오라버니께서 참아내신 고통을 물거품으로 만드실 생각입니까?”소하의 시선은 소한의 다리에 꽂힌 열댓 개의 은침으로 향했고, 소한이 방금까지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소한의 냉담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형님이 싫으시다면 앞으로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소한이 이렇게까지 약속하자, 소하는 망설이며 김단의 손목을 놓았다.하지만 김단을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그는 김단이 자신 때문에 하기 힘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