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예 예상하지 못하고 깜짝 놀랐다.그러나 김단은 몸을 숙여 그 작은 이빨을 주워 들었다. 순간 과거의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그녀는 이 이빨을 기억한다.약 5살 때 그녀는 기어코 임학과 소한을 따라 놀러 가서 임학과 소한의 모습을 따라 높은 가산에서 뛰어내렸다.다행히 그때 임학과 소한이 모두 손을 뻗어 그녀를 받아, 그 자리에서 떨어져 죽지는 않을 수 있었다.단, 이빨 하나가 떨어졌다.모두가 깜짝 놀라 그녀를 감싸며 떠났고, 그 이빨은 인공산 옆에 떨어져 있었다.공교롭게도 그녀와 동갑인 소정온이 이 일을 알고 특별히 와서 그녀에게 떨어진 이를 잃어버리면 악귀에게 잡혀갈 것이라고 말했다.그녀는 겁에 질려 밤이 되자 잠을 자지 않으려고 울기 시작했다. 잠들면 악귀가 그녀를 잡으러 올까 봐 두려웠다.공교롭게도 그날은 천둥번개를 쳐서 어린 그녀를 더욱 두려워하게 했다.설령 진산군이 줄곧 그녀를 안고, 달랬어도 소용없었다.그제야 비에 흠뻑 젖은 임씨 부인이 돌아왔다. 손에는 작은 이빨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그때 임씨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생각났다.“단이야 봐봐, 이 어미가 너 대신 이를 찾았어.”“안심하거라, 악귀가 와서 단이를 잡아가지 않을 거야. 악귀가 있어도 이 어미가 단이 앞을 막을 거야.”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다.“걱정하지 마라. 이 어미는 절대로 너를 지킬 것이야.”어미가, 절대로 지킬 것이야...당시의 김단은 감동하여 임씨 부인을 안고 줄곧 울면서 고맙다고 했다. 어머님이 정말 좋다고도....그러나 지금 김단은 이 모든 것이 풍자로만 느낀다.그녀는 임씨 부인이 오늘 이 이빨을 꺼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당연히 알고 있다.다만, 당시 그녀의 감동도 사실이었고, 지금 머리의 상처가 정말 아픈 것도 사실이다...그녀는 그 작은 이빨을 다시 천 가방에 쌌고, 하마터면 넘칠 뻔했던 눈물을 다시 참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숙희도 당연히 감히 묻지
임씨 부인이 거의 흠뻑 젖은 것을 보고 임학은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임씨 부인을 끌고 가려고 했다.“어머님, 이렇게 자기 몸을 괴롭혀서 뭐 하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다시 이야기하면 안 됩니까?”“이거 놔!”임씨 부인은 임학의 손을 뿌리치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이 일은 너희들과 무관하니 너희들은 가거라!”임원은 훌쩍거리면서 임씨 부인을 껴안았다.“어머님, 이러지 마세요.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빨리 오라버니와 함께 돌아가세요! 원이가 어머님을 대신해서 여기에 서서 언니에게 사과드리겠습니다!”임원의 시녀 명희는 상황을 보고 급히 다가와 아씨를 위해 우산을 쓰려고 손을 내밀며 숙희를 밀어냈다.이 갑작스러운 힘으로 숙희는 비틀거리며 땅에 주저앉았다.손에 든 우산도 찢어졌다.그러나 비가 너무 큰 탓인지 임씨 부인 및 옆에 몇 사람은 뜻밖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임학은 자신의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는 것을 알고, 화가 나서 급히 가서 김단의 문을 두드렸다.“어서 나오거라! 죽은 척하지 마라! 나는 네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어느 집 아이가 부모에게 맞은 적이 없어? 오늘 어머니께서 확실히 좀 충동했지만, 지금 너에게 사죄하려고 하는 것인데, 네가 문을 닫고 만나지 않는 것은 무슨 뜻이냐? 너는 밖에 이렇게 큰비가 내린 걸 보지 못했느냐? 김단, 너는 양심도 없느냐?”말이 떨어지자, 방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계속 문을 두드리려던 임학은 갑자기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김단의 눈빛에서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마주하고는, 반쯤 들고 있던 손을 내려놓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김단은 담담하게 임학을 한 번 보고는 눈빛이 숙희의 몸에 떨어졌다.숙희가 허겁지겁 땅에서 기어오르는 것을 보자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산군댁의 사과하는 방식은 이렇게 내 시녀를 괴롭히는 것인가요?”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야 비로소 숙희 몸에 떨어졌다.숙희는 여러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김단을 향해 바쁘게 뛰어갔다.김단
진산군댁에서 명주처럼 여겨졌던 그 임단, 모든 사람에게 총애받고 애호 받던 임단, 그녀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귀중하게 여겼던 임단!이미 그들이 직접 죽였다!그 하얀 작은 이빨은 땅에 떨어져 두 번 굴러 한쪽 화단 안으로 떨어졌다.김단은 한 쌍의 눈동자로 임씨 부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에게 그것이 임단의 것이지, 그녀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리고 임단은 벌써 죽었다고.이 순간 임씨 부인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우는 것조차 잊었다.그녀는 김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눈동자에서 비추는 감정이 점점 붕괴되면서 결국 산산조각이 났다.김단의 그 두 눈동자는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한 것 같았다. 마치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평온한 감정이었다.임학은 심지어 김단이 자신과 정색하고 크게 싸워, 마음속의 불쾌감과 그녀와 이 진산군댁 사이에 얽힌 복잡한 일들을 모두 토해낼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지금의 그녀는 이 집안의 누구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아니다, 신경 쓰는 것도 있다.김단은 임씨 부인을 바라보는 눈길을 거두고 임학을 바라보았다.“도련님도 조모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은 비록 조모의 거처와 멀지만, 만약 다시 소란을 피우면 조모에게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김단은 말하면서 그 모자 세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당신들은 가야 되지 않을까요?”그녀의 말투와 태도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임학도 김단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만약 조모께서 또 그들의 일 때문에 병이 나신다면, 손자인 그는 아마 평생 욕을 먹을 것이다.그는 바로 임씨 부인을 끌고 떠나려 했지만, 뜻밖에도 방금까지 훌쩍거리고 있던 임씨 부인은 지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다만 그녀의 두 눈동자가 김단의 발끝을 주시하는 것만 같았고, 안색은 매우 평온했다.“
마음속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매섭게 찔리고 째지는 것만 같았다. 임씨 부인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여기는 네 조모의 마당이다. 네가 여기에 있으면 다소 조모를 방해할 수 있다. 이미 깨어난 이상 서둘러 너 자신의 마당으로 돌아가거라!”김단은 사실 오늘 임씨 부인이 연기한 이 연극의 목적이 바로 방금 전의 그 말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사실 그녀도 조모를 위해서라도 임학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조모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손녀가 진산군댁의 유일한 남자를 막다른 길로 몰고 가는 모습을 보게 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조모가 두 눈 뜨고 진산군댁이 몰락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다.다만 이런 일들이 임씨 부인의 입에서 나오니,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괴롭혔다.설령 그녀가 이미 임씨 부인에게도, 이 진산군댁에 대해서도 단념했지만.그녀는 눈을 내려다보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이 숨 막힐 듯 아픈 가슴을 누를 수 있었다.다시 눈을 올려다봤을 때는 여전히 비꼬는 모습이었다.“조모를 위해 저는 확실히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요 며칠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진산군댁에서 맞는 결론이 있어야 합니다.”이 말을 듣고, 임씨 부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래, 너에게 결론을 줘야지. 학이, 너는 사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나의 명령 없이 일어나지 마!”임학은 자신이 먼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임씨 부인은 또 이렇게 이상한 상태이니, 그도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순순히 대답했다.“예!”김단은 이런 광경을 여유 있게 싸늘한 눈으로 방관했다.임씨 부인이 두세 번 숨을 쉬고 나서 다시 입을 여는 것을 보았다.“원이, 너도 가거라!”“어머니!”임학은 놀라서 소리 질렀다.그는 어머니가 왜 임원에게 벌을 내리는지 모른다. 일을 잘못한 것은 분명히 자신이다!그러나 임씨 부인의 말이 들려왔다.“만약 원이가 제멋대로 너희 조모에게 와서 고자질하지 않았다면, 너희
다음날.김단이 깨어났을 때, 머리의 상처가 어제보다 더 심하게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그래서 그녀는 온몸이 몽롱하고 무기력했다.숙희는 보아하니 매우 활기찼다. 김단을 모시고 머리를 빗고 세수한 후에 또 바쁘게 김단의 아침 식사를 시중들었다.김단은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모의 상황을 물어보고 조모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마음을 놓고 아침을 먹었다.눈에는 숙희가 몇 번 말하려고 하다 머뭇거리는 것을 보았다.이 상황을 보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솔직히 해.”숙희가 그제야 몰려와 김단을 향해 보고했다.“아씨, 소인은 도련님과 둘째 아씨가 사당에서 밤새 무릎을 꿇었고, 오늘 아침에 둘째 아씨가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다고 들었습니다.”이 일이구나.김단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그러고 보니 임원의 몸이 아주 좋지 않구나.”하룻밤만 꿇었는데 못 버텨?전에 그녀는 세답방에 있을 때 온종일 무릎을 꿇었다.숙희도 생각해 보니, 김단의 말이 아주 옳다고 느꼈다.“맞습니다. 확실히 좋지 않습니다. 평소에 그 귀중한 약재들을 모두 어디로 보양했는지 모르겠어요!”김단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임학이 차마 임원이 벌을 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특별히 방법을 대서 임원을 기절하라고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숙희는 아씨의 입가에 있는 조롱하는 표정을 보고 마음이 불안해져서, 또다시 말을 꺼냈다.“하지만 아씨는 안심하세요. 도련님은 계속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마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도련님에게 음식을 주지 않도록 하셨고, 또 3박 3일 동안 무릎을 꿇고 있어야만 일어날 수 있다고 명하셨습니다. 나리도 이 처벌을 묵인한 것 같습니다."숙희의 말투를 들으면, 그녀를 달래려는 마음이 보였다.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보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럼 너는 이 처벌이 엄하다고 생각하니?”숙희가 멍해지더니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이 생각났다.그
“됐어”김단은 손을 뻗어 숙희를 막았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천천히 눈을 뜨더니, 눈앞이 이미 맑아진 것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너무 갑자기 일어났나 봐, 괜찮아.”예전에 그녀가 세답방에 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앉아서 잠시 쉬기만 하면 되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숙희는 여전히 걱정했다.“그런데 아씨께서는 어제 금방 머리를 다치셨으니 의원을 부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김단은 천천히 일어나 숙희를 보며 웃었다.“의원이 조모 옆에 있을 수도 있다. 먼저 조모께 갔다가 다시 얘기하자.”숙희는 김단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다가가 김단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김단은 숙희가 너무 과장한다고 느꼈다. 그녀는 어디 봐서 혼자 걸을 수 없는가?별당에서 나오자마자 그녀는 숙희더러 손을 놓으라 했다.별당은 진산군댁의 서쪽에 있고 매화당은 동쪽에 있으며 안채는 두 곳의 정원의 중간에 있다.게다가 숙희는 분명히 임원이 오늘 아침에 쓰러졌다고 했는데, 진짜든 가짜든 기절한 척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그래서 김단은 안채 밖에서 임원을 볼 줄은 생각하지도 않았다.소한이 있을 줄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임원은 예상했던 것 같았다.김단을 보자 임원의 눈동자는 육안으로 봐도 볼 수 있는 속도로 붉어졌다.“언니...”그녀의 목소리는 울먹이면서 소심하게 들려서 김단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김단은 임원의 벌겋게 부은 볼을 보고 마음속으로 냉소했다.만약 정말 그녀를 무서워할 정도로 혼을 내줬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지만, 임원은 어제 방금 조모를 발병하게 했는데, 오늘 아침부터 일찍 또 왔으니, 분명히 교훈을 받지 못한 듯싶다.김단은 임원 옆의 소한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임 낭자가 오늘 아침에 사당에서 기절했다고 들었소.”임원은 김단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마음속의 감정이 다소 복잡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제 자신의 몸에 탄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임원은 소한의 보호를 받았지만 더욱 억울해 보였고, 아예 소한의 뒤에 웅크리고 머리도 내밀지 않았다.김단은 마음속으로 참지 못하고 재수 없다고 욕했다.마음속에 더욱 짜증이 솟아올라 바로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조모는 임 낭자를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으니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정말 소한의 보호 때문인지 임원은 김단에게 말하는 태도가 다소 강경해졌다. 그녀는 머리를 내밀고 김단에게 물었다.“너는 조모도 아닌데 어찌 조모가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오?”김단의 안색은 갑자기 가라앉더니 무의식적으로 임원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말투에 위엄이 가득했다.“당신은 정말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소?”김단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임원은 순간 어제 김단에게 눌려 바닥에서 맞은 두려움을 떠올리며 바쁘게 소한의 뒤로 숨었다. 두 손은 소한의 옷을 더욱 꽉 잡았다. 마치 몸까지 떨고 있는 것 같았다.“나, 난 오늘 조모께 사죄하러 왔소.”뒤에 있는 사람의 두려움을 느끼고 소한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김단을 바라봤다.“원이는 이미 잘못을 알았소. 오늘 나는 특별히 원이와 함께 큰 마님에게 사죄하러 왔소.”여기까지 말하자 소한은 눈을 내려다보고 김단의 주먹을 꽉 쥔 손을 보고 또 무겁게 한마디 했다.“당신도 성질을 좀 죽이오.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지 마소. 임원은 당신과 같지 않소...”“됐습니다!”김단은 갑자기 엄하게 소리를 지르며 소한의 설교를 끊었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고서야 비웃으면서 소한을 바라보았다.“소 장군은 아직 진산군댁의 사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명의상으로는 나는 이 진산군댁의 큰 아씨입니다. 그러므로 진산군댁의 일은 당신이 끼어들 자격이 없고, 나를 가르칠 자격은 더더욱 없습니다.”이 말을 듣자, 소한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들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이 십여 년 동안 김단이 언제 이렇게 그에게 말한 적이 있었나?그가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이제 그녀가 곧 다른 사람과 혼
설령 지금 김단이 일부러 자극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녀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설령 오늘 오라버니가 낸 방법으로 그녀가 쓰러진 척했더라도 만약 이 말을 오라버니가 들었다면, 오라버니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했을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오라버니가 자기를 오해하게 하기 싫다!순간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언니는 이렇게 이간질할 필요가 없소. 내가 사당에 가서 무릎을 꿇으면 되지 않소. 나도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설령 조모가 나를 만나고 싶지 않더라도, 나는 조모께 사죄할 것이오!”말하고는 바로 안채의 마당 방향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눈물과 함께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조모, 원이가 잘못했습니다. 원이는 앞으로 다시는 조모를 화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모께서 원이를 용서해 주십시오!”말이 떨어지자, 그녀는 안채에 대고 절을 세 번 했다.정말 그녀가 절한 것이 몹시 억울했는지 눈물이 글썽거렸다.김단은 생각했다. 설마 임원이 자기가 극히 효도하고 다정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하지만, 그저 우스울 뿐이야!조모께서는 지금 깨어나셨는지 안 깨어나셨는지도 모르는데, 설령 깨어나셨다 하더라도 그녀의 그 조그마한 목소리로 몇 번 외쳤다고 해도, 조모는 아마 듣지 못하셨을 것이다.그래서 이 연극은 누구에게 보여주는 건가?자기? 아니면 소한?절을 하고서야 임원은 명희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 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김단을 한 번 보면서 마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다만 김단이 그녀를 보는 눈빛이 경멸로 가득 차서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그리고 나서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소한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한 쌍 눈은 몽롱하고, 애처롭고 가련했다.“소한 오라버니, 죄송합니다. 힘들게 오셨는데 오늘 헛걸음을 하셨습니다...”소한한테 사과한다니!김단은 한쪽에 서서 꽤 놀랐다.그녀는 임원의 이러한 행동들을 평생 배워도 익힐 수 없다고 느꼈다.물론 그녀도 배울 생각이 없다.어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