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화

오후 1 시쯤, 왕수란이 어두운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게임을 하고 있던 부민혁이 왕수란을 보며 물었다. “엄마, 누가 화나게 했어요?”

왕수란이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씩씩거리며 앉았다. “이게 다 그 망할 윤슬 계집애 때문이야!”

“누구요?’ 부민혁이 게임기를 내려놓고 왕수란에게 다가가 물었다. “엄마, 윤슬 만나고 왔어요?”

“내가 할 일이 그렇게 없어서 걔를 만났겠니? 저번에 백화점에서 윤슬이랑 젊은 남자 두 명이서 나를 괴롭혔는데 걔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오늘 백화점 가니까 경호원들이 못 들어가게 막더라니까? 내가 무슨 블랙리스트 고객이래!”

왕수란이 이를 갈며 분노했다. “부잣집 사모님 5명 정도 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들어가고 나만 못 들어가게 했다니까? 사모님들이 나를 무슨 거지 취급하듯 쳐다봤어. 진짜 윤슬 계집애 미워 죽겠어!”

왕수란의 목소리가 위층에 있는 부시혁과 고유나에게까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부시혁은 손목의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남색 셔츠가 그를 매우 활기차게 만들었다.

고유나도 순백의 치마를 입고 정성껏 꾸민 듯했다.

왕수란은 다시 한번 간단하게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부시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랑 윤슬이는 이혼했으니 쓸데없이 가서 건드리지 마세요.”

부시혁은 윤슬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 성격도 잘 알기 때문에 왕수란에게 일침을 날렸다.

하지만 왕수란은 부시혁의 말에 화를 내며 말했다. “그 계집애가 먼저 건드린 거야.”

왕수란은 부시혁과 고유나가 외출하는 것 같아 웃으며 고유나에게 물었다. “유나야, 너희 어디 가니?”

고유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다고 하셔서 한 번 찾아뵈려고요.”

왕수란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프면 아픈 거 아냐? 왜 굳이 보러 가? 나는...”

“어머니.” 부시혁이 어두운 표정으로 왕수란의 말을 끊으며 언짢은 듯 말했다. “할머니예요.”

왕수란은 부시혁이 할머니 험담을 안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일찍 들어와. 아줌마한테 유나가 좋아하는 영양죽 만들어 놓으라고 했어. 몸보신해야지.”

고유나는 왕수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부시혁을 따라 집을 나섰다.

윤슬은 몇 년 동안 할머니를 보살피며 정이 깊게 들었다.

고유나는 손자가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윤슬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시혁은 할머니가 고유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고유나를 데리고 할머니를 뵈러 갔다.

앞으로 아내가 될 고유나와 할머니가 친해지길 바랐다.

“할머니, 저희가 특별히 준비한 영양제예요.” 고유나 교양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할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 불러라. 그리고 나는 아무 영양제나 못 먹으니 도로 가져가라.”

고유나는 난감해하며 입술을 깨물며 부시혁에게 도움의 눈빛을 청했다.

부시혁은 고유나를 대신해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유나 마음이니 받아주세요.”

인생을 오래 살아온 할머니는 고유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보였다. “그래. 참 세심해서 내 손자며느리를 내쫓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