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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기억의 파편

Auteur: 데이지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3-08 19:49:21

윤리위원회가 보류 결정을 내린 직후에도 병원 안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기자들은 퇴근하지 않고 로비와 정문 앞을 지키며 “차수연”이라는 이름을 연이어 외쳐댔다.

마치 그녀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카메라가 불꽃처럼 터져 나올 기세였다.

수연은 잠시 병원 뒤편 작은 휴게실에 몸을 숨겼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잔잔했지만, 마음속 파도는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또 흔들리면 안 돼. 오늘 환자를 살렸잖아. 그게 나야. 그게 내 자리야.’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도혁의 차가운 시선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같은 시간, 서울 시내 한 변호사 사무실.

도혁은 무겁게 잠긴 문 안에서 변호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두꺼운 법률 서류와 의료법 조항이 펼쳐져 있었다.

“윤리위원회에서 시간을 끈다고 해도, 법정으로 끌고 가면 답은 하나입니다.”

변호사가 조용히 말했다.

“환자 사망 사건 당시의 모든 기록을 문제 삼고, 은폐 정황을 덧씌우면 형사 사건으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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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요. 이제는 당신도, 나도 숨지 않아도 되니까.”그의 손이 그녀의 손등을 감싸며 조용히 떨렸다.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닌 긴 시간 끝에 맞이한 안도의 떨림이었다.노을빛이 그들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수연 씨.”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이제 정말 끝났네요.”“아니요.”그녀가 미소 지었다.“이제 시작이에요. 우리 이름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의 첫 장.”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속에서 벚꽃잎 한 장이 그들의 사이로 흘러내렸다.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이제, 세상에 들려줄 차례네요.”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의 이름으로.”그날, 병원 옥상 위 노을 속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처음으로 나란히 불렸다.그것은 결심이었고, 약속이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봄이 지나가고 있었다.병원 앞 은행나무 잎은 짙은 초록빛으로 물들었고,계절은 어느새 여름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었다.새벽 6시, 병원 건물 뒤편 작은 공원에는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를 지키는 두 사람이 있었다.차수연과 강우혁. 커피를 손에 쥐고,하루의 시작을 함께 맞이하는 그들의 아침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우연도 아니었다.“오늘은 유난히 공기가 좋네요.”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당신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그의 대답은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진심이 녹아 있었다.그녀는 미소를 지었다.“이젠 그런 말에 놀라지도 않아요.”“그럼 진심으로 들린다는 뜻이겠네요.”“글쎄요. 이제는 그냥… 익숙해졌어요.당신이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니까.”그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그 말, 참 좋네요.”“어떤 말이요?”“‘당연하다’는 말.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생각하면,그 한마디가 제일 큰 선물 같아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햇살이 그의 옆얼굴을 스치며 부드럽게 번졌다.이제 그 얼굴에는 예전의 차가운 결이 사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273화. 우리의 이름으로

    늦은 오후,병원 앞 정원에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바람이 꽃잎을 데리고 천천히 지나갔다.그 한가운데서, 차수연은 환한 얼굴로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자, 여기까지 한 번 걸어볼까요?”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보조기구를 짚은 소년이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힘겹지만 단단한 걸음이었다.“잘하고 있어요, 민재야.”그녀의 격려에 소년은 미약하게 웃었다.그 모습을 병원 건물 안에서 지켜보던 강우혁은알 수 없는 따뜻함이 가슴 깊이 번져오는 걸 느꼈다.그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짧은 문자를 보냈다.[수연 씨, 지금 모습… 기사로 내면 안 될까요?]그녀가 화면을 보고는 작게 웃었다.[안 돼요. 환자들 얼굴이 다 나오잖아요.][그럼 당신 얼굴만 내요.이 병원의 가장 따뜻한 풍경이니까.][대표님, 일할 때는 그런 말 자제하기로 했잖아요.][그건 약속 안 했는데요.]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그의 말투는 언제나 담담했지만, 그 속에 숨은 감정은 누구보다 깊었다.그날 저녁,회의가 끝난 병원에는 고요가 내려앉았다.직원들은 하나둘 퇴근했고, 넓은 복도에는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차수연은 진료기록을 정리하며 커다란 창가에 걸린 야경을 바라봤다.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그 속에 병원 건물의 불이 유난히 또렷했다.“아직도 안 가요?”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그녀가 돌아보자 강우혁이 손에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다.“대표님도요?”“대표라서요.”“그래서 늘 마지막까지 남으시죠.”“오늘은 사심이 있어서요.”그녀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사심이요?”“당신 기다리느라요.”그의 대답은 담백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잠시 멈춘 듯 뛰었다.“오늘 발표, 잘 봤어요.”그가 말을 이었다.“환자 회복률 통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제 사람들도 알겠죠.차수연이라는 이름이 이 병원의 심장이라는 걸.”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이름이 알려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하지만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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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어느 저녁이었다.창밖에는 벚꽃잎이 마지막 힘을 내어 흩날리고,도심의 거리는 낮의 소란을 지우듯 조용해졌다.병원은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채였다.차수연은 진료실 문을 닫고, 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책상 위엔 정리되지 못한 차트 몇 장과 미처 식지 않은 커피 한 잔이 남아 있었다.“오늘도 늦었네요.”문틈 사이로 들려온 목소리,그녀가 고개를 들자 강우혁이 문에 기대 서 있었다.“대표님은 언제 또 여기까지 오셨어요?”“한참 됐죠. 당신이 고개 한 번도 안 드니까.”그녀는 시계를 봤다.“벌써 아홉 시네요.”“네. 그래서 데리러 왔습니다, 차 과장님.”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에 든 종이봉투를 흔들었다.“이건 뭐예요?”“저녁. 당신이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아서.”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이제는 제 식사 패턴까지 꿰고 계시네요.”“그럼요. 그게 저의 특기잖아요.”그가 테이블 위에 도시락을 펼쳤다.그 안엔 김밥, 샐러드, 그리고 따뜻한 국이 있었다.“이건 집에서 끓인 건데, 좀 식었을지도 몰라요.”그녀는 젓가락을 들었다.“직접요?”“직접이죠. 이제 당신을 위해 요리하는 게 내 하루의 일과가 됐어요.”그 말에 그녀는 잠시 젓가락을 멈췄다.“그럼 저는 이제… 대표님 하루의 일부네요.”그는 웃었다.“이미 오래전에 그랬죠.”식사를 마치고 병원 옥상에 올랐다.밤공기가 차가웠지만, 그 사이로 섞인 봄의 향기가 기분 좋게 감돌았다.그녀는 난간에 팔을 올리고 도시를 내려다봤다.“예전엔 이곳이 참 답답했어요. 이 불빛들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거든요.”그가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랬어요. 이 도시가 우리를 삼키는 것 같았죠.”“근데 지금은 좀 달라요.”“왜요?”“이젠… 이 불빛들이 다 따뜻해 보여요.”그는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그래요.”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 말,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요.”“그럼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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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가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었다.커튼 사이로 흘러든 빛이 하얀 침대 위를 천천히 덮었다.그 빛 사이로 들려오는 건, 커피 머신의 낮은 진동음과 누군가의 조용한 숨소리였다.차수연은 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익숙한 향기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커피 냄새였다.그리고 그 뒤를 따라 조리 중인 팬의 은은한 버터 향.“벌써 일어나셨어요?”그녀가 거실로 나가자, 식탁 앞에서 강우혁이 조리 도구를 들고 서 있었다.하얀 셔츠 소매를 걷고, 앞치마를 두른 그의 모습이 아침 햇살과 묘하게 어울렸다.“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나서 준비했어요.”그는 달걀 프라이를 접시에 올리며 말했다.“대표님이 아니라 요리사 같네요.”그녀가 웃자,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럼 오늘 하루는 요리사로 지낼게요.”그녀는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식탁 위에는 정갈한 토스트, 달걀,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 샐러드가 놓여 있었다.“이렇게 완벽한 아침, 오랜만이에요.”“당신 덕분이에요.이런 일상을 꿈꾼 건, 꽤 오래됐거든요.”그의 말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꿈이라니요?”“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아침을 먹는 모습. 그게 늘 상상 속에서만 있었어요.”그녀는 웃었다.“이제는 현실이에요.”“그래서 더 소중하네요.”그의 눈빛이 잠시 머물렀다.그녀는 식탁 위 포크를 내려놓으며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우린 참 멀리 돌아왔죠.”“그 길이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이 있는 거죠.”그의 대답은 늘 그랬듯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여운이 있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병원으로 향했다.예전엔 그 길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함께 걷는 길이 되어 있었다.병원 현관을 들어서자, 직원들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그러나 그 안엔 더 이상 불편함도, 긴장도 없었다.이제는 모두가 알았다.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대표님, 오늘 회의 10시에 예정되어 있습니다.”비서가 다가와 일정을 전하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270화. 오늘도 괜찮은 우리

    햇살이 병원 로비를 부드럽게 감쌌다.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아침의 빛이 하얀 바닥 위로 천천히 퍼져나갔다.차수연은 출근하자마자 커피 머신 앞에 섰다.커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따뜻하게 들렸다.그녀의 하루는 여전히 바빴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그 바쁨마저도 싫지 않았다.“오늘은 늦었네요, 차 과장.”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강우혁이 커피잔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한 잔은 이미 그녀의 취향대로 블랙이었다.“대표님, 이제는 병원 직원들 다 알아요. 매일 저한테 커피 배달 오는 사람이라고.”그녀가 웃으며 말했다.그는 어깨를 으쓱했다.“괜찮아요. 이제 숨길 일도, 피할 일도 없으니까.”“그래도 눈치 보는 사람들 있을 텐데요.”“그럼 뭐 어때요. 이제는 내가 먼저 당당해질 차례죠.”그녀는 그 말에 잠시 웃었다.그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지만,그 속엔 오랜 시간 버텨온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그녀는 잔을 받아들며 조용히 중얼거렸다.“당신답네요, 늘.”점심 무렵, 병원 근처 공원에선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하얗고 연분홍빛의 벚꽃이 하늘을 수놓았다.그녀는 환자 상담이 끝난 뒤, 잠시 시간을 내어 그곳으로 나왔다.몇 걸음 뒤, 그가 그녀를 찾아왔다.흰 셔츠에 소매를 걷은 채, 양손에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설마 이걸 직접 싸온 건 아니죠?”“믿기 어렵겠지만, 맞아요.”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요즘은 대표님이 아니라, 도시락 장인으로 불러야겠네요.”“장인이라니, 과한 칭찬입니다.그냥… 당신이 제대로 식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그녀는 피식 웃었다.“당신은 여전히 나보다 나를 더 잘 챙겨요.”“그게 제 취미니까요.”그는 담담히 대답하며 도시락을 내밀었다.도시락 속엔 단정하게 나열된 반찬들,그리고 김 위에 올려진 달걀지단이 있었다.그 위엔 작게 써놓은 글씨‘오늘도 괜찮아요’.그녀는 잠시 그 문구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여 웃었다.“이런 낯간지러운 말은 누가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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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앞 화단에 다시 꽃이 피기 시작한 건 4월의 중순이었다.겨우내 얼어붙었던 흙이 녹고, 그 위로 작은 싹들이 고개를 내밀었다.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까지 모두가 분주했지만,그 속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가 스며 있었다.차수연은 진료차트를 들고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그녀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오랜 시간 동안 무겁게 누르던 일들이 하나둘 정리되면서 병원 안의 공기도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과장님, 이번 주말엔 꼭 쉬셔야 해요.”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어요. 이번엔 정말 약속할게요.”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사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몰랐다.그녀는 여전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멈출 줄 몰랐고,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복도를 지나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차 과장.”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강우혁이었다.검은 수트를 벗고, 흰 셔츠 차림에 소매를 걷은 그는병원 이사실이 아니라 마치 현장을 누비는 사람처럼 보였다.“대표님”그녀가 입을 열려던 순간, 그가 먼저 말했다.“오늘은 ‘대표님’ 말고 그냥 우혁 씨라고 해요. 이제 공식적인 일정은 다 끝났으니까.”그녀가 살짝 웃었다.“병원 안에서도요?”“이 병원 안에서도요. 이제 나도 그냥 한 사람으로 있고 싶어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우혁 씨, 오늘은 왜 여기까지 내려오셨어요?”“꽃 피었더라고요.”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작년에 봄이 왔을 땐, 우리 둘 다 제대로 보지 못했잖아요.”그 말에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맞다.그해 봄은 두 사람 모두에게 폭풍 같았다.모든 게 흔들렸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닫아야 했던 시간이었다.“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네요.”그녀가 말했다.“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그래도 괜찮아요. 봄은 늘 완벽하지 않아도 오니까.”그의 말이 부드럽게 흘렀다.잠시 뒤, 그는 그녀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직접 내린 겁니다.”“이 시간에 커피요?”“당신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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