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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기억의 파편

Autor: 데이지
last update Última atualização: 2026-03-08 19:49:21

윤리위원회가 보류 결정을 내린 직후에도 병원 안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기자들은 퇴근하지 않고 로비와 정문 앞을 지키며 “차수연”이라는 이름을 연이어 외쳐댔다.

마치 그녀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카메라가 불꽃처럼 터져 나올 기세였다.

수연은 잠시 병원 뒤편 작은 휴게실에 몸을 숨겼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잔잔했지만, 마음속 파도는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또 흔들리면 안 돼. 오늘 환자를 살렸잖아. 그게 나야. 그게 내 자리야.’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도혁의 차가운 시선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같은 시간, 서울 시내 한 변호사 사무실.

도혁은 무겁게 잠긴 문 안에서 변호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두꺼운 법률 서류와 의료법 조항이 펼쳐져 있었다.

“윤리위원회에서 시간을 끈다고 해도, 법정으로 끌고 가면 답은 하나입니다.”

변호사가 조용히 말했다.

“환자 사망 사건 당시의 모든 기록을 문제 삼고, 은폐 정황을 덧씌우면 형사 사건으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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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54화. 복제된 권한, 가려진 진실

    그때 전산팀장이 화면을 확대했다.“그리고 이건… 흉부외과 과장실 옆 보조 저장고 출입 로그. 야간에 두 번 열렸습니다. RFID는”그가 멈칫했다. 스크린에 뜬 이름을 보고 눈동자가 흔들렸다.“차수연.”순간 방 안 공기가 꺼지는 듯했다. 수연이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제가 그 시간에 수술실에 있던 건 모두 압니다. 복제 카드군요.”우혁이 전산팀장을 대신해 덧붙였다. ‘그리고 복제된 카드는 보통 원본 카드에 아주 근접해야만 복제됩니다. 스테이션에서”그는 말을 멈추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당신 곁.”은주가 고개를 들었다.“교수님 카드, 어젯밤 잠깐 제가 받았어요. 약제카트 열려고. 그때 옆에 누가”그녀의 눈동자가 초점 없이 떨렸다. “죄송합니다. 기억이 흐려요. 그때 벨이 울리고, 기자들이 몰려오고, 전산팀하고 말다툼이….”수연이 은주의 어깨를 짧게 잡았다.“그 순간을 기억해내려고 하지 마요. 대신 절차를 강화하면 됩니다. 더는 빼앗기지 않게.”해가 옆으로 기울자 응급동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났다. 환자 침상 사이로 바퀴 달린 수술대가 지나가고, 그 뒤를 따라 베개 높이를 조절하는 간호사의 손길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수연은 손을 씻는 동안 물줄기가 손등의 피 냄새를 씻어가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 마스크 위의 눈이 밤새 운 사람처럼 붉었다.수술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누군가 뒤에서 거즈를 건넸다. 우혁이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닦아내고, 손가락 마디 사이에 고인 물을 타월 끝으로 흡수시켰다.“이런 걸 내가 한다고 덜 힘들어지는 건 아니겠지만.”그가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속삭였다. “그래도 당신 손이 따뜻해질 때까지는 옆에 있고 싶습니다.”수연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거즈가 손끝을 스쳐 지나가는 느린 감각이 이상하게 가슴을 저렸다. 한참만에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다섯 해 전, 유리문에 매달려 있던 목소리를 내가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53화. 15분의 공백, 사라진 라벨

    눈이 한 번 더 새벽빛에 익을 즈음, 병원 전체가 낮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복도 벽에 걸린 시계는 분침을 아주 조금씩만 움직였고, 그 미세한 소리마저 유리창 너머로 번지는 엷은 햇살에 묻혔다. 차수연은 회복실 앞 의자에 앉지 못한 채, 문손잡이를 한 번, 또 한 번 손끝으로 건드렸다. 안쪽 침상에 누운 박준호의 호흡은 아직 일정했지만, 그녀에게 그 규칙은 겨우 붙잡은 줄 하나 같았다.의무기록실에서 서류를 들고 온 우혁이 숨을 고르고 섰다. 얇은 종이의 모서리가 그의 손끝에서 바스락거렸다.“전산팀이 추적한 원격 접속 경로, 특정됐습니다. 위치는 흉부외과 스테이션 안쪽 단말기. 심야 시간대에 세 번, 그리고 어젯밤 한 번 더.”그가 페이지를 넘겨 보이며 덧붙였다. “RFID 인증값이 당신 카드로 찍혔습니다. 복제된 겁니다.”수연은 짧게 눈을 감았다 뜨며 페이지 가장자리를 훑었다. 종이 위 인쇄가 아닌, 밤새 환자에게서 떨어져 있던 시간의 그림자가 그녀를 찔렀다.“기록을 바꾸는 습관이 있는 손이야. 망설임이 없어. 누가 ‘치료의 속도’를 이유로 들어 익숙하게 무시해 온 절차들….”말끝이 공중에서 맴도는 사이, 회복실 문이 아주 살짝 벌어졌다. 은주가 어깨를 들이밀었다.“교수님, 환자 의식 돌아오는 중이에요. 깨면… 오늘은 조금 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세 사람의 시선이 얇은 문틈으로 동시에 스며들었다. 침상 위, 준호의 눈꺼풀이 물 위의 잎처럼 느리게 떨렸다. 수연은 장갑도 끼지 않은 민손으로 침대 난간을 잡고 허리를 기울였다.“무리하지 말고요. 숨부터 고르세요.”그의 입술이 마른 종이처럼 달싹였다.“그날… 차트… 바꾼 사람….”천장의 조명이 가볍게 반짝였다.“민”그 음절이 떨어지는 순간, 벽면 모니터의 포화도 수치가 갑자기 내려앉았다. 알람음이 얇게 쓰르륵 긁혔다.“포화도 84로 하락!”은주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산소 라인 점검!”수연은 한 손으로 산소마스크 위치를 바로잡고, 다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52 끊어진 말과 남겨진 흔적

    병원 복도의 공기는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음에도 여전히 무거웠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빛은 하얀 벽을 타고 흘렀지만, 지난밤부터 이어진 긴장감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수연은 회복실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섰다. 환자 곁을 지키던 은주가 눈을 들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박준호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눈꺼풀이 느리게 움직이며 깨어나고 있었다. 얇은 호흡음 사이로 목이 잠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교…수님….”수연은 곧장 그의 손을 잡았다.“준호 씨,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지금 중요한 건 안정입니다.”그는 고개를 미약하게 저었다. 떨리는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힘겹게 이어졌다.“그날… 차트를… 바꾼 사람….”말끝이 갈라지며 숨이 끊어질 듯 이어졌다. 수연의 손끝이 떨렸다. “누굽니까? 끝까지 말씀하세요.”“민….”그 짧은 음절이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모니터가 경고음을 울렸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고,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다. 간호사들이 즉시 달려와 산소 공급을 조정했다.“혈압 60 밑으로 떨어집니다!”“혈액 공급량 늘려!”수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 한 번 진실은 눈앞에서 끊어졌다.환자의 몸은 겨우 안정됐지만, 준호는 다시 의식을 잃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복도를 나서자 우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녀의 표정을 읽듯 바라보다가 서류철을 내밀었다.“전산팀에서 로그를 추출했습니다. 원격 접속 흔적, 당신 계정에서 확인됐어요.”수연은 서류를 훑었다. 낯익은 시간대, 그녀가 수술실에 들어가 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내가 수술 중일 때라면… 누군가 고의로 제 계정을 사용했다는 뜻이죠.”“맞습니다.” 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속 경로가 병원 내부 네트워크에서 시작됐습니다. 위치 추적이 가능해요. 전산실 단말기 몇 대 중 하나일 겁니다.”그녀는 숨을 깊게 내쉬며 종이를 내려놓았다.“도혁… 그 사람이 직접 움직였거나, 내부에서 손을 써준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51. 기록은 기억을 이기는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응급호출음이 한 번 울리고 끊겼다. 뒤이어 더 급한 톤으로 두 번, 세 번. 인공심박기 알람과 겹쳐 소리가 엇박자로 복도를 찢었다.“소아응급! 다발성 외상, 흉부 타격 의심! 집도의 호출!”전달음은 짧고 선명했다. 수연의 얼굴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그녀는 흰 코트를 의자 위에 던져두고 복도를 내달렸다.소아응급실은 이미 작은 소란으로 들끓고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들것 위에서 희미하게 몸을 떨었고, 보호자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청진기의 차가운 금속이 피부 위에 닿자 아이의 숨은 더 얕아졌다.“산소 마스크, 사이즈 작은 거. 포화도 떨어지는 중이에요. 흉부 X-ray 곧장, 혈액 가스 채혈 들어갑니다.”간호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잡는 사이, 수연은 손끝으로 늑골 라인을 따라 압통을 확인했다. 손상 부위가 좁지 않았다. 깊은 호흡을 요구하자 아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기흉 가능성 높습니다. 흉관 삽입 준비.”“마취는” 레지던트가 묻자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국소로 충분합니다. 시간 없어요. 흉부 전벽, 삼각지점 잡고… 여긴 제가.”손이 들어가고, 금속이 살을 벌렸다. 짧은 신음 뒤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스스’하고 새어 나왔다. 모니터 파형이 조금씩 안정되며 포화도가 회복선을 그리기 시작했다.“좋아요. 더 깊이 가지 마세요. 흉관 고정.”보호자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지만, 수연은 차분함을 놓지 않았다.“지금부터는 시간이 도와줄 겁니다. 저는 옆방 환자 확인하고 곧 돌아올게요.”그녀가 장갑을 벗는 순간, 의무기록실 쪽 복도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전산팀장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이들과 설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카메라를 든 누군가가 뒤섞여 들어왔다. 불청객이었다. 재킷 깃에 달린 보도기관 배지가 번쩍였다.“촬영은 불가합니다.” 수연이 외투 소매로 입구를 막아섰다.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 없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건 인권침해에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50. 다가오는 고백

    해가 완전히 기울자 도시 위로 불빛들이 하나둘 켜졌다. 유리창 너머로 번지는 네온사인은 무심하게 반짝였지만, 오피스텔 안의 공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수연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손등 위로 떨어진 조명이 희미하게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시선은 한참 동안 창밖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우혁은 맞은편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랜 침묵 끝에 그는 입술을 열었다.“교수님.”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묘하게 굵직한 떨림이 배어 있었다. “아니… 수연 씨. 이제는 당신에게 꼭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그의 눈빛은 결심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고, 수연의 심장은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밤마다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파편들, 준호가 남긴 증언의 조각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확신이 지금 눈앞의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그날, 다섯 해 전….” 우혁이 말을 이으려던 순간, 날카로운 진동음이 방 안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휴대전화였다. 병원 비상 호출이었다.수연은 본능적으로 전화를 집어 들었다.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급했다.“교수님, 응급실입니다! 대량 출혈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교통사고로 심폐정지 상태, 당장 수술이 필요합니다!”순간 방 안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혁의 고백은 한순간에 멈춰 섰고, 수연의 눈빛은 단호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이미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준비해 주세요. 곧 내려가겠습니다.”응급실은 전쟁터였다. 피로 얼룩진 스트레처 위에 실린 환자는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었고, 의료진의 손길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심장 압박을 이어가는 레지던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흘러내렸다.“흉부 손상 심각합니다! 맥박 잡히지 않습니다!”“혈압 측정 불가!”그 순간, 수연이 들어섰다. 흰 가운 자락이 휘날리며 수술 준비 구역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고, 손끝은 떨림 하나 없이 움직였다.흉부 절개 준비하세요. 대동맥 손상 의심됩니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49. 너의 심장이 기억하는 순간

    아침 햇살은 병원 유리창을 스치며 희미하게 복도를 채웠다. 밤새 이어진 응급 상황의 긴장감은 아직 가시지 않았고, 환자실 앞에 서 있는 의료진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차수연은 새벽부터 한 걸음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단 한순간도 집중을 놓지 않았다.병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나오는 간호사가 작게 말했다.“교수님, 환자가 다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짧게 대화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수연의 발걸음은 무겁게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기계음이 일정한 리듬을 그리며 울리고 있었고, 하얀 시트 위의 박준호는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의 시선이 수연을 붙잡았다.“교수님….”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인식이 담겨 있었다.수연은 의자에 앉으며 낮게 응답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아직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준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목소리에 힘을 조금 실었다.“저… 말해야겠습니다. 오래 묻어둔 이야기라…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수연은 숨을 죽였다. 그가 전하려는 말이 지난밤 중단되었던 그 진실과 이어져 있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그날… 제 심장은 이미 멎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의사들은 모두 포기했죠. 하지만 교수님만은 끝까지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저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뜨겁고 단호한 손길을.”수연은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러나 준호의 다음 말은 그녀의 눈빛을 더욱 흔들어놓았다.“그리고… 제 옆에서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목소리로 제발 살려 달라… 애원하던 사람이. 그 사람의 절박함이… 제 심장을 붙잡아준 힘이었을지도 모릅니다.”수연의 손끝이 떨렸다. 기억 속 파편과 준호의 말이점점 맞춰지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갔다. 어젯밤 그녀가 거의 확신에 이르렀던 바로 그 목소리.“그 사람… 누구였나요?” 수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준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대답을 이어가려 했지만,갑자기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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