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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인가연
연회장.

정우진이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는 몇몇 상계 원로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틈틈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응대했다.

“우진 오빠.”

은유라가 그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정우진의 팔이 아주 잠깐 뻣뻣하게 굳었다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풀렸다.

“마침 잘 왔어. 인사해, 이분은 전 회장님이야.”

은유라는 정우진의 팔에 살며시 몸을 기댄 채 그가 소개하는 상대에게 우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 회장님, 안녕하세요. 아버님께 익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

“허허, 유라 양이 이렇게 컸나. 어릴 때 내가 안아주기도 했는데 말이야.”

전 회장과 은유라가 덕담을 주고받는 사이 정우진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신시아가 보이지 않자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오빠.”

이때 은유라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사람들이 자꾸 우리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봐.”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그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정우진은 입꼬리를 올렸지만 희미한 눈웃음만 지을 따름이었다.

“곧 하겠죠. 그때 꼭 와서 축하해 주세요.”

주변 사람들이 환호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비즈니스 파티였지만 정계와 재계의 정점에 선 정우진의 사생활이 언급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그때, 뭇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정 대표님, 저기 오는 분 신 비서님 맞나요?”

탄성과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신시아였다.

그녀가 입은 검은색 드레스는 화려함 대신 절제된 우아함이 흘렀다.

은유라가 골라준 그 촌스러운 드레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알록달록한 리본을 전부 떼어내고 너무 벌어진 재봉선은 과감히 정리해 등을 시원하게 드러냈다.

잘록한 허리 라인과 그 위로 드러난 아름다운 쇄골, 살며시 비치는 뽀얀 살결은 그녀가 가진 차분한 분위기 속에 감출 수 없는 설렘을 더해주었다.

드레스가 훼손된 상태였지만 큰 브랜드에서 공들여 내놓은 옷은 역시 클래식 그 자체였다.

옅은 화장에 칠흑 같은 긴 머리를 늘어뜨렸을 뿐인데도 그녀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남다른 아우라가 흘러넘쳤다.

정우진에게 다가가자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대표님.”

정우진 앞에 선 그녀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미모, 총명함까지 갖춘 모습은 고고한 분위기의 정우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 옆의 은유라만 초라해 보일 따름이었다.

파스텔 톤의 드레스는 그녀를 더욱 볼품없어 보이게 만들었다. 정우진이 뿜어내는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신시아에게 쏠리자 은유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쥐어짰다.

정우진은 그녀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도 그녀가 은유라의 스포트라이트를 뺏어간 게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신시아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그의 뒤로 물러섰다.

“계속하시죠.”

정우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술잔을 들어 올려 건배를 청하고는 다시 업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잠시 후, 임정현이 다가오자 신시아는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네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정우진이 옆을 확인했을 땐 이미 비서가 바뀐 뒤였다.

그가 자리를 뜨자 임정현이 대신 술을 비워냈다. 한편 정우진의 시선은 계속해서 연회장 구석을 맴돌았다.

그 시각, 구석으로 물러난 신시아는 정우진과 은유라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저토록 다정하게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박혔다.

‘차라리 보지를 말아야지.’

신시아는 깊은숨을 내뱉고는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갈 채비를 했다.

바로 그때, 연회장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손에는 독한 보드카 잔이 들려 있었는데 그의 등장만으로도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금 정우진과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조차 황급히 그 남자에게 달려가 인사했다.

하선재, 하씨 가문의 장남이자 정우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앙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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