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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인가연
정다슬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현주가 방을 나가자마자 그 뒷모습을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

한편, 은유라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향하던 정우진과 서로 밀착해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잔상이 신시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보지나 말걸...’

돌아오는 길에서 신시아는 찬 밤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허기진 배를 달래려 편의점에서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어진 며칠 동안 정우진과 은유라의 결혼 임박 뉴스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정작 신시아를 초조하게 만든 것은 사직서에 대한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는 점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팀 장유민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장유민은 그녀의 사직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인사팀장 보조인 장유민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정우진이 아직 결재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신시아는 곧장 차를 몰아 백영 그룹 본사로 향했다.

운이 나쁘게도 정우진은 회의 중이었다.

비서실 직원은 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안내했지만 30분쯤 지났을 때 나타난 건 정우진이 아닌 은유라였다.

시즌 한정판 명품 백을 걸치고 화사한 미소를 띤 그녀는 이미 ‘안주인’이라도 된 양 비서실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대표이사실로 들어가려던 은유라의 시선이 응접실의 신시아에게 꽂혔다.

그녀는 비서 주하영을 불러 낮게 속삭였다.

“저 여자 뭐죠?”

“신 이사님이요? 대표님 뵈러 왔는데 예약 없이 오셔서 일단 기다리시라고 했어요.”

주하영이 아부하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손톱 끝을 매만지던 은유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주하영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속삭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하영이 응접실로 들어섰다.

“신 이사님, 대표님께서 시간이 안 나신다니 이만 돌아가 보세요.”

신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 회의는 아직 안 끝난 거로 아는데 그게 정말 대표님 말씀인가요?”

주하영은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

이 상황이 누구의 장난질인지 단번에 눈치챈 신시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

“회의 끝나면 전해 주세요. 딱 5분이면 된다고요.”

“뭐 때문에 그렇게 직접 보셔야 한다는 거죠? 전화로 하셔도 되잖아요.”

주하영이 떠보듯 물었지만 신시아는 단호했다.

“전화가 안 되니까 온 겁니다.”

통화가 연결됐으면 여기까지 찾아올 리가 있을까?

이 보고를 전해 들은 은유라는 코웃음을 쳤다.

업무상 급한 일이라면 신시아가 저렇게 차분히 기다릴 리가 없었다.

이건 명백히 정우진의 얼굴을 보러 온 수작이었다.

신시아가 지난 반년간 별 탈 없이 조용히 지내는지라 은유라로서는 그녀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곧 약혼을 앞둔 이 시점에 또다시 등장하다니.

이는 은유라에게 큰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두 여자 사이를 맴돌던 주하영이 다시 응접실로 들어왔다.

“이사님, 이 회의실을 곧 써야 해서 저기 구석에 있는 동쪽 회의실로 옮겨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동쪽 회의실은 복도 끝자락이라 오가는 길목에서 정우진이 보일 리가 없었다.

신시아는 순순히 짐을 챙겨 옮겨갔다.

그리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비서 이은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은수 씨, 정 대표님 사무실 복귀하면 바로 알려줘요.]

이은수와 주하영은 비서실 입사 동기인데 두 사람은 성격부터가 극과 극이었다.

주하영이 소위 ‘처세술’에 밝아 신시아에게 끊임없이 살갑게 굴며 다가갔지만 신시아는 늘 미적지근한 태도로 거리를 두었다.

오히려 그녀가 마음을 준 쪽은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는 성실한 이은수였고 자연히 두 사람의 사이가 더 가까웠다.

이은수에게서 곧바로 [OK] 이모티콘이 담긴 답장이 도착했다.

지사 업무를 처리하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때 이은수가 다급히 달려 들어왔다.

“언니, 미안해요! 대표님 아까 회의 끝나고 은유라 씨랑 6층 식당으로 가셨대요. 제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지나가셨나 봐요.”

신시아는 황급히 노트북을 챙겼다.

“괜찮아요. 지금 내려가면 마주칠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대표님이 언제 돌아오셨는지 전혀 몰랐어요.”

이은수는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건넸다.

신시아는 그녀를 탓할 마음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본인 역시 일에 몰두하느라 물어볼 겨를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맞은편 전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양식 코너를 새로 확장했어. 외국에서 직접 셰프를 모셔 왔으니 네 입맛에 맞을 거야.”

정우진의 다정한 목소리였다. 검은색 정장은 그의 훤칠한 몸매를 더욱 돋보였다.

한편 은유라는 핑크색 스웨터에 검은색 가죽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마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한 아이처럼 그의 곁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이번에도 맛없으면 그 레스토랑 통째로 국내에 옮겨와.”

정우진이 속절없이 웃었다.

“그래, 알았어.”

은유라의 미소는 더욱 화사해졌고 그제야 그녀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우진은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막아 그녀가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밖에 서 있는 신시아를 본 순간, 은유라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대표님, 드릴 말씀 있습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신시아가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다만 곁눈질로 은유라가 냉큼 정우진의 팔짱을 끼는 걸 보게 됐다.

정우진이 잠시 침묵하더니 은유라를 돌아보았다.

“음식 식으면 맛없으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금방 갈게.”

“알았어. 빨리 와.”

은유라가 배시시 웃으며 투정을 부리더니 정우진을 놓아주기가 아쉬운 듯 쭈뼛거리며 손을 뗐다. 그러고는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따라와.”

정우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구석진 휴게실로 신시아를 데려가 담배를 물었다.

시계를 확인하는 그의 태도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5분 줄게.”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제 사직서 좀 빨리 결재해 주세요.”

신시아의 단도직입적인 요구에 정우진이 담배를 떼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직서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신시아가 고개를 들고 그를 마주 봤다.

“그날 임 비서님 편에 보낸 서류요.”

그제야 정우진은 그 봉투를 떠올렸다.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전화를 받고 출국했었고 돌아온 뒤엔 서류가 말끔히 사라졌다. 결국 정우진도 이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못 보신 건가요?”

신시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한편 정우진은 대답 대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몇 초간 침묵했다.

“사직 사유가 뭔데?”

신시아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지사 이사직이 저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반년이 지났지만, 적응이 안 되네요.”

“그럼 본사로 복귀해.”

정우진의 얇은 입술 사이로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신시아를 힐긋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론 불만 있으면 바로 얘기해. 빙빙 돌리지 말고.”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이 남자가 오해할 줄이야.

직원들이 끊임없이 식당을 드나들고 문이 열리는 순간마다 기름 냄새가 훅 끼쳐왔다.

신시아는 반박도 하기 전에 속이 뒤집혀서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옆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임신 두 달이 채 안 된 터라 한창 입덧이 심할 때였다.

매번 속만 게워낼 뿐 제대로 토해내는 건 없었지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몸을 추스르고 화장실을 나섰는데 정우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신 비서님, 나오셨어요?”

정우진이 서 있던 자리엔 임정현이 떡하니 나타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방금 대표님 지시로 신 비서님 본사 복귀 발령을 내는 중입니다. 점심시간 이용해서 짐 챙겨 오세요. 오후부터 바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우진이 명령까지 내릴 줄이야.

“잠시만요, 아직 대표님이랑 얘기 안 끝났어요!”

다시 식당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지만, 임정현이 앞을 막았다.

“대표님 식당에 안 계십니다. 은유라 씨가 셰프 손맛이 별로라고 해서 외식하러 나가셨어요. 그리고 복귀 처리는 이미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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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에 있던 몇 사람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정우진의 어머니 기현주가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왔다.쉰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녀의 몸매는 30대처럼 완벽하게 관리되어 있었다.그녀는 빨간 숄 하나만 어깨에 걸친 채 영하 10도에 달하는 바깥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을 맞으러 나섰다.눈이 부시던 헤드라이트가 꺼지자 신시아는 비로소 정우진과 함께 차에서 내리는 은유라를 똑똑히 보게 됐다.평소 신시아 앞에서는 고고하게 거리만 두던 기현주가 은유라에게는 제 팔짱을 흔쾌히 내어주고 있었다.정우진은 입가에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화

    은유라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임정현은 한창 비행기 티켓을 예매 중이었다.“오빠는요? 비행기 티켓은 왜 예매해요?”“휴식실에 계세요. 지사에 급한 일이 생겨 대표님께서 급히 출국하셔야 합니다.”임정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은유라가 가방에서 여권을 꺼냈다.“내 것도 같이 예매해줘요. 따라갈 테니까.”“네?”임정현이 당황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이에 은유라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꾸했다.“왜요? 우진 오빠한테 직접 확인이라도 받으라고요?”지난 반년, 정우진이 가는 곳엔 늘 은유라가 있었다.임정현은 씁쓸하게 그녀의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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