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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作者: 인가연
신시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하더니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왜 그래요?”

이에 임정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표님께 직접 본인 불러 달라고 신청한 거 아니었어요?”

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사직서 내러 온 거예요.”

임정현이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네? 갑자기 왜요?”

“개인적인 이유예요.”

그녀는 딱 잘라 말하고는 덧붙였다.

“혹시 인사 발령 취소할 수 있을까요?”

“그것 또한 대표님 허락을 받아야죠.”

임정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신시아는 차오르는 무기력함에 미간을 짚었다.

“연말이라 한창 바쁠 때잖아요. 사표 얘기는 연휴 지나고 다시 하고 일단 가서 짐 정리부터 해요. 오자마자 바로 할 일이 생겼네요. 은유라 씨가 오후에 들어올 때 밀크티 한 잔 사다 달래요.”

“알겠어요.”

임정현의 권유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짐 챙기러 지사로 향했다.

오후 한 시, 신시아는 정확히 비서실 자리에 앉았다.

짐을 다 정리하고 밀크티 한 잔을 들고서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오후의 햇살이 짙게 내리쬐는 사무실 안, 흰 셔츠 차림의 정우진이 앉아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날렵한 턱선까지, 남자는 차가운 위엄과 귀족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한편 은유라는 휴게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는 온갖 주전부리가 널브러졌다.

신시아가 들어서자 정우진은 힐끗 쳐다볼 뿐 다시 일에 몰두했다.

그녀는 은유라에게 다가갔다.

“은유라 씨, 주문하신 음료입니다.”

“놔두세요.”

은유라가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밀크티를 내려놓고 신시아는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자리로 돌아가 물건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내선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정우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그녀는 수중의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정우진이었다.

그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려 은유라 쪽을 보라는 듯 턱짓했다.

신시아는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은유라의 불만 어린 눈동자와 마주쳤다.

“밀크티 왜 따뜻한 거로 사 왔어요?”

“지금 겨울인데 아이스로 원하세요?”

신시아가 조용히 되묻자 은유라는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하죠.”

무심코 정우진을 바라봤지만 남자는 미동도 없이 일에만 전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바로 아이스로 다시 사 오겠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얼음을 가득 넣은 밀크티를 다시 가져왔지만, 은유라는 좀처럼 건네받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얼음은 적게 넣으랬어요, 많이 넣으랬어요?”

“은유라 씨가 원하시는 대로 해드린 겁니다. 여기요, 드세요.”

신시아가 음료를 내려놓았다.

“이봐!”

말꼬리를 잡힌 은유라가 분한 듯 소리쳤다.

“그럼 가서 감자 칩도 사 와요!”

“감자 칩 말고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한꺼번에 사 오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좋으니까요.”

신시아가 메모지를 꺼내며 담담하게 물었다.

“우진 오빠!”

은유라는 그런 그녀를 힐끗 째려보더니 정우진에게 달려갔다.

“오빠, 쟤 좀 봐.”

그제야 남자가 서류에서 눈을 뗐다. 시계를 확인한 그는 곤란한 기색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늘 저녁에 연회도 있고 나 지금 처리할 일이 많아. 그만해, 유라야.”

은유라가 눈을 굴리더니 신시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나 쟤랑 드레스 고르러 갈래.”

정우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블랙 카드를 꺼내 신시아에게 건넸다.

“유라 드레스 좀 골라주고 네 것도 한 벌 골라.”

신시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끝내 카드를 받아 들었다.

“알겠습니다.”

평소 정우진과 함께 연회에 참석할 때는 회사 비용으로 의상을 해결했다.

가장 싼 옷이라 해도 몇백만 원은 훌쩍 넘었으니까.

하지만 은유라는 달랐다. 그녀는 경원에서도 가장 비싼 드레스샵을 고집했다.

30분 후, 목적지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신시아가 먼저 내려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이거 들어요.”

파란색과 분홍색이 섞인 가방이 눈앞에 던져졌다. 바로 최신 유행하는 국제 브랜드의 신상품이었다.

신시아는 가방을 받아 들고 은유라의 뒤를 따랐다.

예약해둔 스타일리스트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은유라 씨!”

은유라가 스타일리스트와 눈을 맞추며 은밀하게 눈짓했다.

이에 스타일리스트는 신시아를 훑어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제일 신상으로 가져와 봐요.”

은유라는 허리를 살짝 꼬며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가게 안에는 여러 사람이 그녀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드레스를 가져다주는 사람, 메이크업 효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람,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가져다주는 사람, 거기에 주전부리까지 있었다.

신시아는 가게 안에 걸려있는 화려한 드레스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가장 저렴한 드레스도 수천만 원 대를 호가했다.

그녀가 가격표를 보면서 너무 비싸지 않은 거로 고르려고 하는데 은유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신 비서, 이리 와요.”

신시아는 살짝 방향을 틀어 은유라에게 다가가서 가방을 전해줬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요? 여기 꼼짝 말고 서 있어요.”

은유라는 메이크업 효과 이미지를 훑어보며 고개도 안 든 채 명령을 내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신시아는 가방을 건네주려던 손을 거두고 묵묵히 그녀 뒤에 서 있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은유라는 드레스를 고르고 메이크업을 받는 내내 신시아를 세워두었다.

뭘 할 때마다 ‘거기 서 있어’, ‘움직이지 마’ 등등의 명령을 내던졌다.

다만 신시아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고 근무 시간에 단지 서 있는 거라면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나으니까.

한참 후, 은유라가 마침내 모든 걸 마치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제일 싼 드레스로 가져와 봐요.”

스타일리스트가 피식 웃더니 직원에게 눈짓했다.

잠시 뒤 가져온 드레스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검은색 바탕에 촌스러운 회색과 주황색 리본이 덕지덕지 달려서 보기 흉하단 말로는 표현조차 안 됐다.

특히 가까이서 보니 알록달록한 리본과 조잡한 박음질이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신시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은유라 씨가 얼마나 배려해 주는 줄 아세요? 이 옷 무려 8천4백만 원이에요.”

스타일리스트가 은유라의 드레스를 정리하면서 빈정거렸다.

8천4백만 원이라, 확실히 저렴한 건 아니었다.

신시아는 평생 이렇게 비싼 드레스를 사 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전액 부담한다고 해도...

“우진 오빠 돈 쓰는 거니까 내 말 들어야죠. 불만 있으면 직접 사시든가요!”

은유라는 거울에 비친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

본인은 연보라색 드레스에 풀 메이크업까지 받아서 우아하고 아름다울 따름인데 만약 신시아가 저 옷을 입고 옆에 선다면 광대 꼴이 날 게 뻔했다.

“그럼 이걸로 해요!”

은유라는 흡족한 얼굴로 거울 속 제 모습을 쳐다봤다.

“결제해요, 가서.”

카운터에서 드레스 두 벌의 계산서를 가져와 신시아에게 건넸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카드를 꺼내 두 벌의 값을 모두 치렀다.

“혹시 메이크업도 받으시겠어요?”

스타일리스트가 형식적으로 물었다.

“아니요.”

신시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계산을 마친 그녀는 드레스에 은유라의 가방까지 들고 먼저 샵을 나섰다.

등 뒤에서 은유라와 스타일리스트가 주고받는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돌아가는 길, 정우진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 없으니 바로 호텔로 와.”

“알겠습니다.”

신시아는 차를 돌려 호텔로 향했다.

연회 시작 5분 전, 그녀는 마침내 호텔 앞에 도착했다.

임정현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뜻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우진 씨는요?”

은유라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거래처 손님이 계셔서 대표님은 먼저 들어가셨어요.”

그는 대답하면서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신시아를 보고 당황했다.

“신 비서님, 아직 환복 안 했어요?”

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 씨 모시고 먼저 들어가세요. 금방 따라갈게요.”

신시아는 드레스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호텔 안으로 향하는 은유라는 득의양양하게 그녀를 째려보곤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어떻게 된 거죠?”

임정현은 두 여자 사이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어리둥절해졌다.

한편 신시아가 고개를 내젓고 나직이 대답했다.

“요즘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는 중이라 술은 못 마실 것 같아요. 안에서 대표님 의전 부탁드려요.”

그녀와 임정현은 늘 업무 분담이 철저했다. 한쪽은 외부 만남을, 다른 한쪽은 운전을 맡았다.

“알았어요.”

대답을 마친 임정현이 먼저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신시아는 드레스를 흘끗 내려다보고 몇 초간 침묵한 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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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234화

    은유라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환자복은 그녀를 한층 더 수척하고 가련해 보이게 만들었다.정우진은 침대 발치 쪽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손에 신문을 들고 있었다.노크 소리가 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신시아는 문을 열고 들어서다 실내를 훑어보더니, 잠시 멈칫하고는 문을 닫고 걸어 들어왔다.“대표님.”그녀의 미간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정우진이 자신을 은유라의 병실로 불러낸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앉아.”정우진이 자신의 곁에 있는 1인용 소파를 가리켰다.신시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에 앉으며 과일바구니를 곁에 내려놓았다.그녀와 정우진은 나란히 앉아 병상에 쓸쓸히 앉아 있는 은유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 순간, 은유라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신시아는 은유라를 힐끗 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정우진을 향해 물었다.“대표님, 사직에 관한 건 말입니다만...”“잠깐 기다려.”정우진이 신문을 내려놓고 손을 팔걸이에 얹은 채 손가락 끝으로 팔걸이를 톡, 톡 가볍게 두드렸다.병실 안의 분위기가 점점 미묘해지기 시작했다.신시아는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입술을 살며시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신 비서, 미안해요.”은유라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신 비서와 하선재 사이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려서 신 비서의 명예를 더럽히고, 업무에도 피해를 준 거 정말 미안해요. 나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영상에서 정우진과 은유라가 테라스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신시아는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험악하게 다퉜던 이유가 은유라가 정우진에게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그런데 은유라가 직접 사과를 하다니.그녀는 정우진을 바라보았고 맑은 눈동자 깊은 곳에는 당혹감이 역력히 떠올라 있었다.“넌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어.”정우진이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233화

    권미희는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다.“난 시아가 네 오빠한테 시집오면 팔자 고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니.”은씨 가문에 이어 하씨 가문까지 엮였으니 말이다.“기회를 봐서 하씨 가문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내 늙은 체면 다 버리고서라도 시아가 헤쳐나갈 길을 만들어줘야지.”정다슬은 권미희를 방으로 모셔다드리고 몇 마디 안심시킨 뒤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그러고는 방금 전의 상황이 담긴 영상을 신시아에게 보냈다.[언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언니가 억울한 일 당한 거 다 아세요. 은씨 가문에서 사과하러 왔는데 은유라가 울고불고 징징대는데 얼마나 짜증 나던지. 마치 우리가 갑질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요. 오빠도 완전 뚜껑 열렸고...]정다슬이 이 영상을 신시아에게 보낸 이유는 정씨 가문이 신시아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은유라가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한 건 정우진 때문이니까.신시아는 매일 밤 김지원 라이브 방송을 도우며 보조 역할을 하느라 잠이 늦었다.그녀가 잠에서 깨어 이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할아버지 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전해줘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우니까.]정씨 가문 두 어르신과 정다슬에게 신시아는 고맙다는 말 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참으로 조율하기 힘든 관계였다.서로 걱정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해야 했고 그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미안함을 느꼈다.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잘잘못을 떠나 신시아와 은씨 가문의 관계는 이미 물과 불처럼 상극이 되어버렸다.떠나는 일은 발등의 불이었다.다만 회사 쪽은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배도 불렀는데 이제 나랑 밤샘 작업 같은 건 하지 마.”김지원은 잠에서 깨자마자 그녀의 방으로 건너와 이불을 들치고 침대에 올라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오늘 밤은 일찍 자.”신시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네 일을 좀 거들어 주려고.”비용을 아끼기 위해 김지원은 서브 방송 진행자도 고용하지 않았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232화

    손연경이 테라스 문을 열었다.“유라야...”그녀의 부름이 끝나기도 전에 은유라가 휙 돌아서 밖으로 내달렸고 문 앞에 서 있던 손연경을 거칠게 밀치며 지나쳐 갔다.손연경은 벽에 부딪히며 휘청거렸고 홧김에 다급하게 소리쳤다.“우진아, 빨리 쫓아가 봐!”은유라가 울며 사라진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터라, 거실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정우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은유라의 뒷모습을 좇았지만,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멍하니 뭐 하고 있어? 여자애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사과하러 온 건데, 이 일 때문에 며칠이나 자책하며 잠도 못 잤어...”손연경이 다급히 정우진을 재촉했다.“그만해!”은성빈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거실에 있던 정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 저마다 다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은유라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해도, 결국 이 일을 저지른 건 그녀였다.그런데 울며 도망치는 꼴이라니, 마치 정씨 가문 사람들이 은유라를 괴롭히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설마 정우진더러 쫓아가서 달래주기라도 하라는 건가?은성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씨 가문 어르신들에게 고개를 숙였다.“어르신들, 돌아가면 저희가 유라를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 은씨 가문의 잘못이니, 부모인 저희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테라스에서 돌아온 손연경은 입을 열려 했으나 은성빈이 눈짓으로 제지했다. 딸을 위해 변명해주려던 말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성빈과 같은 사과의 말로 바뀌어 버렸다.“정말 죄송합니다.”결국 은씨 부부는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가정부의 배웅하에 자리를 떴다.그들이 떠난 후, 기현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유라 그 아이가 원래 좀 천진난만해서 그래요. 속이 뻔히 보이는 스타일이라 신시아처럼 살갑지는 못하죠.” 문이 열린 테라스에서 정우진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길고 깨끗한 손가락에 들린 담배 끝에서 연기가 느릿하게 피어올랐다.자욱한 연기 사이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차갑고 신비로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231화

    뼛속에서 배어 나오는 엄숙한 기운이 이 순간 한층 더 뚜렷해졌다.손연경은 은유라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너희 젊은이들 일은 너희끼리 알아서 얘기해.”그녀는 은유라에게 정우진에게 좋은 말이라도 두 마디 건네라고 눈짓했다.은유라는 떠밀리다시피 정우진의 곁으로 갔지만 정우진은 그 자리에 앉아 정면만 응시할 뿐, 눈길조차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남자의 뼛속까지 꼿꼿한 짧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현주 씨, 유라는 어릴 때 정씨 가문에서 살다시피 했고 현주 씨가 보면서 키웠잖아. 보다시피 애가 워낙 순진해서 꿍쳐둔 속셈 같은 건 아예 없어요.”손연경은 기현주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팔짱을 꼈다.“내 말은 이 일이, 그 신시아랑...”“시아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냐?”권미희는 손연경의 입에서 신시아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다.“남이 누구와 연애를 하든, 애를 낳고 결혼을 하든 그게 너희랑 무슨 상관이야? 자기들이 쩨쩨해서 꼬투리나 잡아놓고 누구를 탓해.”손연경은 그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그러나 그녀가 던진 몇 마디 말에 기현주는 또다시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자신이 보고 키우기도 했거니와, 은유라가 정말이지 너무 고지식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정우진의 앞에 서 있는 은유라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 애처로운 모습에 가슴이 아파 왔다.“우진아, 아무리 그래도 네가 은유라한테 미안한 짓을 한 건 사실이잖아.”그녀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권미희는 눈을 까뒤집고는 고개를 홱 돌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행여나 눈알이라도 빠질까 봐 겁이 난 건지, 아예 실눈조차 뜨지 않았다.그때 정우진이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따라와.”은유라에게 짧게 내뱉은 그는 몸을 돌려 테라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은유라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그의 뒤를 쫓았다.“우진이랑 얘기 잘해봐.”손연경이 나지막이 당부했다. 테라스에는 햇살이 가득했다.정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230화

    “그럴 리 없어.”신시아가 무의식중에 대꾸했다.그러고는 자신이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음을 깨닫고 멈칫했다.“하긴, 전 시어머니가 은유라를 워낙 예뻐하니, 은유라가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그 자리는 탄탄하겠지.”김지원은 밥을 한술 뜨며 우물거렸다.“정우진이랑 소꿉친구이기도 하니까 은유라가 그 집 며느리 자리에 앉는 건 떼놓은 당상 같은데.”신시아는 입가로 가져가던 젓가락을 멈추고 김지원을 빤히 쳐다보았다.“밥 먹어. 분위기 깨지는 이야기는 그만 좀 하고.”김지원은 목이 멘 채 속으로 투덜거렸다. ‘분위기를 깬다며 예민하게 구는 건 아직 정우진에게 마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언제쯤 마음이 텅 빈 호수처럼 고요해질지, 그래야 비로소 끝이 날 텐데.’“알았어. 밥 먹자. 다 먹고 나면 빈이 데리고 공원이나 산책하러 가자.”신시아는 김지원의 밥그릇에 고기 한 점을 얹어주었다.“많이 먹고 기운 차려.”김지원이 한숨을 내쉬었다.“말도 마. 방송 복귀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적응이 안 돼.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이 바닥이 원래 힘들잖아. 나중에 돈 좀 모으면 작은 가게나 차려서 다 때려치워.”신시아와 김지원은 예전부터 가게를 차릴 계획을 세워두었다.조그만 슈퍼 하나 차려놓고, 매일 앉아서 주전부리나 먹으며 물건을 팔고 돈을 세는 소소한 일상 말이다.한채은은 두 사람을 두고 야망 한번 참 소소하다고 했다.분명 큰돈을 벌 능력이 있으면서도 당최 야망이 없다며 말이다.하지만 두 사람이 바란 것은 그저 가장 평온하고 여유로운 일상뿐이었다....은씨 가문 부부는 은유라를 데리고 정씨 가문으로 사죄하러 갔다.정우진은 이 일 때문에 일까지 제쳐두고 정씨 본가로 향했다.정태석과 권미희가 소파의 상석에 앉았고, 그 양옆으로 기현주와 정재형이 자리했다.“이 일은 분명 유라가 잘못했습니다. 유라가 우진을 너무 아끼다 보니, 신시아가 우진에게 계속 얽히는 게 걱정돼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신시아는 정우진의 전처니까요.”손연경이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229화

    발밑에 수두룩하게 쌓인 담배꽁초를 보니 꽤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이었다.“정우진이 이제야 신 비서의 정직 처분을 내린 걸 보면, 이사회 앞에서도 끝까지 신 비서를 감싸고 돌았던 모양이야.”당일 정우진을 보좌해 이사회에 참석했던 인물은 임정현이었기에 신시아는 정우진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큰 부담을 짊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래서 그녀는 그저 담담히 읊조렸다.“그분이 절 감싸줄 필요도, 이유도 없어요.”“이유가 왜 없어?”하선재는 담배를 비벼 끄더니,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우리 두 사람을 뒤에서 엿 먹인 놈이 누군지 알아?”우리 둘이라고?신시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백영과 구창의 파트너십을 와해하려는 기획 스캔들이 아니었단 말인가요?”하선재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업계 바닥을 샅샅이 뒤져봐라, 미치지 않고서야 대기업 두 곳을 상대로 이런 겁 없는 짓을 벌일 미친놈이 어디 있겠어!”정우진의 밑에서 수년 동안 일해오며 신시아 역시 거친 비즈니스 생태계를 누구보다 잘 체감해 온 터였다.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 해도 상대가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무모한 부류라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그렇기에 신시아는 이번 일이 오직 자신과 하선재의 목을 죄기 위한 덫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녀를 겨냥했다면...“은유라 짓인가요?”하선재의 눈매에 기묘한 희열이 서렸다.“신 비서, 머리 회전 하나는 끝내주게 빠르네.”너무 똑똑해서 신시아가 아이를 품은 채 정우진 모르게 홀연히 도망쳐 버릴까 봐 내심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신시아는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은유라가 배 속의 아이가 하선재의 핏줄인지 확인해 보려고 이런 무리수를 둔 걸까?’결국 그 무모한 불장난에 정우진만 큰 손해를 입은 셈이었다.“이번에 난 신 비서 때문에 억울하게 불똥을 맞은 셈이야.”하선재가 은근슬쩍 생색을 내며 보상을 바라는 투로 말했다.신시아는 웃음기를 거두며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이걸로 서로 퉁친 셈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9화

    술자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하선재는 어떻게든 정우진에게 시비를 걸려고 들었다.하지만 그의 상대가 될 리 만무하다는 걸 잘 알기에 비겁하게도 정우진의 주변 사람들을 건드리는 차선책을 택했다.예를 들자면 신시아처럼...신시아는 방향을 틀어 후문으로 빠져나가려 했다.이를 눈치챈 하선재가 응대하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쏜살같이 그녀를 따라왔다.신시아가 연회장을 막 빠져나왔을 때, 그는 좁은 구석에서 그녀를 가로막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신시아 씨? 난 또 잘못 봤나 했네.”정우진은 말수가 적고 냉철한 편이다.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6화

    정다슬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현주가 방을 나가자마자 그 뒷모습을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한편, 은유라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향하던 정우진과 서로 밀착해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잔상이 신시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차라리 보지나 말걸...’돌아오는 길에서 신시아는 찬 밤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허기진 배를 달래려 편의점에서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이어진 며칠 동안 정우진과 은유라의 결혼 임박 뉴스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정작 신시아를 초조하게 만든 것은 사직서에 대한 아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5화

    신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패딩 자락을 끌어당겨 아직 평평한 배를 가렸다.“했어요 출근. 올해는 유독 추위를 타네요. 나이를 먹었나 봐요.”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제 노트북이 필요하신가요? 그럼 차에서 가져올게요.”“내 거 써.”정우진이 노트북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잠금 화면에 남녀의 뒷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띄워져 있었다.신시아는 한눈에 알아봤다. 남자는 정우진이고 여자의 실루엣을 보아 은유라와 닮아 있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곧장 파일을 열어 기계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기 시작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8화

    연회장.정우진이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그는 몇몇 상계 원로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틈틈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응대했다.“우진 오빠.”은유라가 그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정우진의 팔이 아주 잠깐 뻣뻣하게 굳었다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풀렸다.“마침 잘 왔어. 인사해, 이분은 전 회장님이야.”은유라는 정우진의 팔에 살며시 몸을 기댄 채 그가 소개하는 상대에게 우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 회장님, 안녕하세요. 아버님께 익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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