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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인가연
신시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하더니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왜 그래요?”

이에 임정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표님께 직접 본인 불러 달라고 신청한 거 아니었어요?”

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사직서 내러 온 거예요.”

임정현이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네? 갑자기 왜요?”

“개인적인 이유예요.”

그녀는 딱 잘라 말하고는 덧붙였다.

“혹시 인사 발령 취소할 수 있을까요?”

“그것 또한 대표님 허락을 받아야죠.”

임정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신시아는 차오르는 무기력함에 미간을 짚었다.

“연말이라 한창 바쁠 때잖아요. 사표 얘기는 연휴 지나고 다시 하고 일단 가서 짐 정리부터 해요. 오자마자 바로 할 일이 생겼네요. 은유라 씨가 오후에 들어올 때 밀크티 한 잔 사다 달래요.”

“알겠어요.”

임정현의 권유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짐 챙기러 지사로 향했다.

오후 한 시, 신시아는 정확히 비서실 자리에 앉았다.

짐을 다 정리하고 밀크티 한 잔을 들고서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오후의 햇살이 짙게 내리쬐는 사무실 안, 흰 셔츠 차림의 정우진이 앉아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날렵한 턱선까지, 남자는 차가운 위엄과 귀족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한편 은유라는 휴게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는 온갖 주전부리가 널브러졌다.

신시아가 들어서자 정우진은 힐끗 쳐다볼 뿐 다시 일에 몰두했다.

그녀는 은유라에게 다가갔다.

“은유라 씨, 주문하신 음료입니다.”

“놔두세요.”

은유라가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밀크티를 내려놓고 신시아는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자리로 돌아가 물건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내선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정우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그녀는 수중의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정우진이었다.

그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려 은유라 쪽을 보라는 듯 턱짓했다.

신시아는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은유라의 불만 어린 눈동자와 마주쳤다.

“밀크티 왜 따뜻한 거로 사 왔어요?”

“지금 겨울인데 아이스로 원하세요?”

신시아가 조용히 되묻자 은유라는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하죠.”

무심코 정우진을 바라봤지만 남자는 미동도 없이 일에만 전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바로 아이스로 다시 사 오겠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얼음을 가득 넣은 밀크티를 다시 가져왔지만, 은유라는 좀처럼 건네받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얼음은 적게 넣으랬어요, 많이 넣으랬어요?”

“은유라 씨가 원하시는 대로 해드린 겁니다. 여기요, 드세요.”

신시아가 음료를 내려놓았다.

“이봐!”

말꼬리를 잡힌 은유라가 분한 듯 소리쳤다.

“그럼 가서 감자 칩도 사 와요!”

“감자 칩 말고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한꺼번에 사 오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좋으니까요.”

신시아가 메모지를 꺼내며 담담하게 물었다.

“우진 오빠!”

은유라는 그런 그녀를 힐끗 째려보더니 정우진에게 달려갔다.

“오빠, 쟤 좀 봐.”

그제야 남자가 서류에서 눈을 뗐다. 시계를 확인한 그는 곤란한 기색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늘 저녁에 연회도 있고 나 지금 처리할 일이 많아. 그만해, 유라야.”

은유라가 눈을 굴리더니 신시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나 쟤랑 드레스 고르러 갈래.”

정우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블랙 카드를 꺼내 신시아에게 건넸다.

“유라 드레스 좀 골라주고 네 것도 한 벌 골라.”

신시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끝내 카드를 받아 들었다.

“알겠습니다.”

평소 정우진과 함께 연회에 참석할 때는 회사 비용으로 의상을 해결했다.

가장 싼 옷이라 해도 몇백만 원은 훌쩍 넘었으니까.

하지만 은유라는 달랐다. 그녀는 경원에서도 가장 비싼 드레스샵을 고집했다.

30분 후, 목적지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신시아가 먼저 내려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이거 들어요.”

파란색과 분홍색이 섞인 가방이 눈앞에 던져졌다. 바로 최신 유행하는 국제 브랜드의 신상품이었다.

신시아는 가방을 받아 들고 은유라의 뒤를 따랐다.

예약해둔 스타일리스트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은유라 씨!”

은유라가 스타일리스트와 눈을 맞추며 은밀하게 눈짓했다.

이에 스타일리스트는 신시아를 훑어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제일 신상으로 가져와 봐요.”

은유라는 허리를 살짝 꼬며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가게 안에는 여러 사람이 그녀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드레스를 가져다주는 사람, 메이크업 효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람,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가져다주는 사람, 거기에 주전부리까지 있었다.

신시아는 가게 안에 걸려있는 화려한 드레스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가장 저렴한 드레스도 수천만 원 대를 호가했다.

그녀가 가격표를 보면서 너무 비싸지 않은 거로 고르려고 하는데 은유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신 비서, 이리 와요.”

신시아는 살짝 방향을 틀어 은유라에게 다가가서 가방을 전해줬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요? 여기 꼼짝 말고 서 있어요.”

은유라는 메이크업 효과 이미지를 훑어보며 고개도 안 든 채 명령을 내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신시아는 가방을 건네주려던 손을 거두고 묵묵히 그녀 뒤에 서 있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은유라는 드레스를 고르고 메이크업을 받는 내내 신시아를 세워두었다.

뭘 할 때마다 ‘거기 서 있어’, ‘움직이지 마’ 등등의 명령을 내던졌다.

다만 신시아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고 근무 시간에 단지 서 있는 거라면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나으니까.

한참 후, 은유라가 마침내 모든 걸 마치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제일 싼 드레스로 가져와 봐요.”

스타일리스트가 피식 웃더니 직원에게 눈짓했다.

잠시 뒤 가져온 드레스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검은색 바탕에 촌스러운 회색과 주황색 리본이 덕지덕지 달려서 보기 흉하단 말로는 표현조차 안 됐다.

특히 가까이서 보니 알록달록한 리본과 조잡한 박음질이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신시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은유라 씨가 얼마나 배려해 주는 줄 아세요? 이 옷 무려 8천4백만 원이에요.”

스타일리스트가 은유라의 드레스를 정리하면서 빈정거렸다.

8천4백만 원이라, 확실히 저렴한 건 아니었다.

신시아는 평생 이렇게 비싼 드레스를 사 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전액 부담한다고 해도...

“우진 오빠 돈 쓰는 거니까 내 말 들어야죠. 불만 있으면 직접 사시든가요!”

은유라는 거울에 비친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

본인은 연보라색 드레스에 풀 메이크업까지 받아서 우아하고 아름다울 따름인데 만약 신시아가 저 옷을 입고 옆에 선다면 광대 꼴이 날 게 뻔했다.

“그럼 이걸로 해요!”

은유라는 흡족한 얼굴로 거울 속 제 모습을 쳐다봤다.

“결제해요, 가서.”

카운터에서 드레스 두 벌의 계산서를 가져와 신시아에게 건넸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카드를 꺼내 두 벌의 값을 모두 치렀다.

“혹시 메이크업도 받으시겠어요?”

스타일리스트가 형식적으로 물었다.

“아니요.”

신시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계산을 마친 그녀는 드레스에 은유라의 가방까지 들고 먼저 샵을 나섰다.

등 뒤에서 은유라와 스타일리스트가 주고받는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돌아가는 길, 정우진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 없으니 바로 호텔로 와.”

“알겠습니다.”

신시아는 차를 돌려 호텔로 향했다.

연회 시작 5분 전, 그녀는 마침내 호텔 앞에 도착했다.

임정현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뜻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우진 씨는요?”

은유라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거래처 손님이 계셔서 대표님은 먼저 들어가셨어요.”

그는 대답하면서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신시아를 보고 당황했다.

“신 비서님, 아직 환복 안 했어요?”

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 씨 모시고 먼저 들어가세요. 금방 따라갈게요.”

신시아는 드레스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호텔 안으로 향하는 은유라는 득의양양하게 그녀를 째려보곤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어떻게 된 거죠?”

임정현은 두 여자 사이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어리둥절해졌다.

한편 신시아가 고개를 내젓고 나직이 대답했다.

“요즘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는 중이라 술은 못 마실 것 같아요. 안에서 대표님 의전 부탁드려요.”

그녀와 임정현은 늘 업무 분담이 철저했다. 한쪽은 외부 만남을, 다른 한쪽은 운전을 맡았다.

“알았어요.”

대답을 마친 임정현이 먼저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신시아는 드레스를 흘끗 내려다보고 몇 초간 침묵한 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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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회장.정우진이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그는 몇몇 상계 원로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틈틈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응대했다.“우진 오빠.”은유라가 그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정우진의 팔이 아주 잠깐 뻣뻣하게 굳었다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풀렸다.“마침 잘 왔어. 인사해, 이분은 전 회장님이야.”은유라는 정우진의 팔에 살며시 몸을 기댄 채 그가 소개하는 상대에게 우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 회장님, 안녕하세요. 아버님께 익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5화

    신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패딩 자락을 끌어당겨 아직 평평한 배를 가렸다.“했어요 출근. 올해는 유독 추위를 타네요. 나이를 먹었나 봐요.”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제 노트북이 필요하신가요? 그럼 차에서 가져올게요.”“내 거 써.”정우진이 노트북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잠금 화면에 남녀의 뒷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띄워져 있었다.신시아는 한눈에 알아봤다. 남자는 정우진이고 여자의 실루엣을 보아 은유라와 닮아 있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곧장 파일을 열어 기계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기 시작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6화

    정다슬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현주가 방을 나가자마자 그 뒷모습을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한편, 은유라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향하던 정우진과 서로 밀착해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잔상이 신시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차라리 보지나 말걸...’돌아오는 길에서 신시아는 찬 밤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허기진 배를 달래려 편의점에서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이어진 며칠 동안 정우진과 은유라의 결혼 임박 뉴스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정작 신시아를 초조하게 만든 것은 사직서에 대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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