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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Auteur: 인가연

제1화

Auteur: 인가연
깊은 밤, 신시아가 갓 태어난 아기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드디어 엄마 되었어요. 우리 첫째랍니다!]

피드를 올린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반년 전에 이혼한 전남편 정우진이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정우진의 침울한 얼굴이 비좁은 방 안의 공기를 싸늘하게 식혔다.

신시아는 문고리를 더 세게 잡았다.

“무슨 일이에요?”

남자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번쩍이는 새 구두가 낡은 복도식 아파트의 빛바랜 꽃무늬 장판 위를 밟자 그 위화감이 공기를 가르고 들어오는 듯했다.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이 처음은 아닌지라 망설임 없이 신시아의 침실로 직행했고 뒤따르던 그의 비서 임정현이 계약서 한 부를 그녀에게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신 비서님. 이건 대표님 전담 변호사가 밤새 준비한 친권 합의서입니다.”

신시아는 계약서를 받아서 펼쳐 보았다.

[정씨 가문의 장손은 반드시 정씨 가문에서 양육해야 한다.]

길고 긴 설명 속에서 이 문장만 비수처럼 박혀 들었다.

예상대로 정우진은 친권을 다투려 하고 있었다.

그도 그리 무정하지만은 않았다. 신시아가 아이를 만 세 살까지는 키울 수 있다고 적어놨으니까.

물론 그녀가 원한다는 전제하에 성립되고 만약 원치 않으면 정우진은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를 데려갈 기세였다.

신시아는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고 그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 정우진이 안방에서 나왔다.

“아이는?”

2년 전 그와 결혼했을 때부터 신시아는 이 남자가 과묵하고 냉랭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우진은 나름 남자다운 면도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신시아와 관계를 맺은 후 책임을 지겠다며 결혼을 제안해왔다.

신시아가 결혼을 승낙했던 이유는 6년이라는 짝사랑의 서사 때문이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까지 말을 아끼는 남자의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시렸다.

‘정말 더 할 말이 없는 걸까?’

임정현이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분위기가 점점 싸늘해지자 눈치껏 문밖을 나섰다.

비좁은 공간, 그리고 고요한 밤...

신시아가 대뜸 피식 웃으며 적막을 깨트렸다.

“무슨 아이요?”

정우진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희미한 황색 불빛이 그의 얼굴 윤곽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신시아가 고개를 돌리자 환한 조명 아래 하얗고 깨끗한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맑고 검은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났다.

그녀는 정말 정우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싶었다.

“계산해보니 이혼할 때 임신한 거네? 근데 왜 이혼하자고 했어?”

정우진의 질문에는 일말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순전히 호기심에 의한 질문이었다.

이 남자와 결혼한 후에야 깨달았다. 그가 오직 책임감 때문에 결혼을 택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밖에 다른 이유를 굳이 꼽자면 합법적인 ‘생리적 욕구 해소 도구’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신시아는 자신이 그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비중을 정확하게 인지했다.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는 사랑이 결핍했고 안정감도 결핍했다.

이 결혼은 그녀에게 어떠한 따스함도 안겨주지 못했다.

정우진이 밤마다 품에 꼭 끌어안고 오직 자신만을 담은 그 눈빛을 보이던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곤 어떠한 온기도 없었다.

결국 신시아가 먼저 이혼을 제기했고 정우진은 단 한 마디만 내뱉었다.

“너만 후회 안 하면 돼.”

이혼 절차를 마친 그날 오후, 신시아는 즉시 그에게 전근을 요청했고 경원의 다른 구역 지사로 발령받아 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반년 만에 그녀가 아이를 낳았다니.

정우진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저 지금 은유라 씨한테 자리 내주는 거잖아요.”

신시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진 씨가 아이 데려가면 유라 씨는 동의한대요? 두 사람 곧 좋은 소식 있을 텐데 유라 씨가 홧김에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소문에 의하면 은유라는 정우진이 평생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라고 한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헤어졌고 은유라는 해외로 나갔다.

그 후로 몇 년간 정우진은 홀로 지냈고 스캔들 하나 없었다. 언론에서는 그의 이 오랜 싱글 생활을 은유라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몇 차례 보도하기도 했다.

반년 전, 은유라가 귀국하면서 신시아는 떠나고 싶으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했던 마음을 깔끔하게 접었다.

은유라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당일 밤, 신시아는 망설임 없이 이혼을 통보했다.

“그건 너랑 상관없는 일이고 네가 신경 쓸 문제도 아니야.”

정우진은 여전히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너도 똑똑한 사람이니 잘 알 거야. 아이는 너랑 같이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안 돼. 정씨 가문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야.”

그녀가 아무리 똑똑한들 사랑 앞에서 이성을 다잡을 수 있을까?

“이런 환경이요? 내 아이가 근본도 잊고 엄마인 나를 싫어할까 봐요? 우진 씨 설마 아이 앞세우면서 날 무시하는 거예요?”

신시아는 늘 그렇듯 쉽게 굽히지 않았다.

정우진은 그런 그녀를 너무 잘 안다. 스스로의 신념이 확고해서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그녀.

전에 업무 때문에 정우진에게 맞섰던 적이 있는데 한 프로젝트 평가를 두고 해고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오직 침대 위에서만 기꺼이 정우진에게 굴복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신시아가 아무리 버텨도 이 남자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나한테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비겁하리만치 노골적으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녀의 목을 꽉 조르는 듯했다.

반박할 능력도, 반격할 힘도 없었다.

신시아는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대표님, 오해하셨어요. 그 아이 지원이 애예요. 저 실은 퇴근하고 병원 들러서 지원이 잠깐 만나고 이제 막 집에 들어온 참이거든요.”

정우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응시했다.

의심이 잔뜩 담긴 눈길로 살펴보다가 오늘 그녀의 의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타이트한 힙업 스커트를 입어서 매혹적인 힙 라인을 자랑하고 잘록한 허리까지 어우러지니 임신에 갓 출산까지 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원이 아시죠? 전에도 자주 얘기했던 김지원...”

그녀가 해명하려 했지만, 정우진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창가로 다가가서 한 모금씩 연기를 내뿜었다.

얼떨결에 아빠가 되었다가 다시 그 신분을 내려놓기까지 고작 한 시간이 걸렸다. 지금 정우진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었다.

반년 만에 만난 신시아는 어딘가 달라졌지만,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의 기억 속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창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결혼 생활 2년 동안 약간 변덕스럽긴 해도 둘만 있을 때면 영락없는 애완 고양이 같았다.

언제나 온순하고 말 잘 듣는 고양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길들지 않은 야생 고양이를 방불케 했다.

감히 이런 터무니없는 장난을 칠 줄이야?

신시아가 다가와 그의 앞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뼛속까지 시린 한겨울의 찬 바람이 불어 들어와 담배 연기를 흩뜨렸다.

“오해한 건 그렇다 치고 궁금한 거 있어요. 만에 하나 진짜 아이가 있다면 은유라 씨랑 아이 중에 대표님은 누굴 선택하시겠어요?”

그녀는 사리 분별을 잘하는 편이다. 스스로도 정우진의 선택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만약은 없어.”

정우진은 담배를 비벼 껐다. 집안을 둘러봐도 재떨이가 보이지 않아 담배꽁초를 쥔 채 문밖을 나섰다.

그는 전 부인과 한밤중에 옛이야기를 나눌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신시아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피드를 못 봤다면 우진 씨는 평생 나 보러 오지 않았겠지?’

물론 한 달 전 우연히 호텔에서 마주친 것 말고는...

그때 정우진은 술에 취했고 둘은 또 한 번 관계를 맺었다.

신시아는 서로 민망해질까 봐 옷을 챙겨입고 그가 깨어나기 전에 도망쳤다.

이 일을 무덤까지 갖고 가려 했으나 그녀의 뱃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줄이야.

신시아는 정말로 임신했다. 임신 6주 차에 태아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창밖에 흩날리는 커다란 눈발이 올 블랙 차림의 남자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는 창문을 닫고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채 계속 정우진만 내려다보았다.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길가에 세워둔 부가티에 올라 도로를 질주하는 저 남자...

그 차는 이 판자촌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마치 신시아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정우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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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24화

    “그건...”임정현은 난처해했다.“대표님 집안일인데 제가 끼어들어도 괜찮겠어요?”정우진의 뜻이라면 정씨 가문 사람이 직접 전해도 되는 일이었다.아랫사람인 자신이 정씨 가문 가족들 앞에서 정우진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시키는 대로 해.”정우진이 짧게 말했다.“그쪽도 널 난처하게 하진 않을 거야.”임정현은 결국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어서 전화를 끊었다.정우진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걸음을 멈추고 박도영을 돌아봤다.박도영은 양손에 캐리어를 하나씩 끌며 따라오고 있었다.“휴대폰 줘.”말이 떨어지자 박도영은 캐리어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넸다.정우진은 휴대폰을 받아 유심칩을 빼 버리고 새 유심을 끼웠다.“여기에 내 번호 저장돼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그리고 지금은 꺼져. 내 눈앞에 보이지 마.”그는 휴대폰을 돌려주고 자기 캐리어를 챙긴 후 성큼성큼 떠났다.네온사인이 도시의 저녁을 밝히고 있었다.한산한 도로 위로 빛이 쏟아져 남자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박도영은 정우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경원, 정씨 가문.“현주 씨, 유라가 우진이와 결혼하는 게 우리 은씨 가문 입장에서 과분한 혼사인 거 알아요. 그래도 우진이가 유라를 너무 소홀히 하는 거 아니에요?”손연경은 눈가가 붉어진 은유라를 품에 안고 마음 아파했다.기현주와 수십 년 이어온 우정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오늘만큼은 따져야 했다.“남자가 결혼 전이랑 후가 다르다는 말도 이해해요. 우진이가 바쁜 사람이니 평생 유라 비위만 맞춰주길 바란 적도 없고요. 그런데 아직 결혼도 안 했잖아요. 둘이 제대로 사귄 지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이러면, 내가 어떻게 안심하고 딸을 맡겨요?”기현주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한편으로는 오랜 친구인 손연경이 정씨 가문까지 찾아와 따지는 바람에 집안사람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았다.무엇보다 애초에 이 결혼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23화

    가장 많이 전화하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주경재였다. 어디에 갔냐며 모두 회의 진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재촉했다.말이 회의지, 사실은 신시아를 몰아붙이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신시아는 답하지 않았다.신시아는 한승윤이 보내온 수많은 문자도 열어봤다. 마지막 문자는 이랬다.[신 상무님,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정 대표님은 대체 왜 이런 겁쟁이를 지사 책임자로 보낸 겁니까!]신시아는 여전히 답하지 않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둔 채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그녀는 김지원과 맞은편 아파트를 계약하고, 김지원과 빈이의 짐을 그쪽으로 옮겼다.한바탕 정신없이 움직이고 나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두 집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김지원은 빈이를 안고 집 앞 계단에 앉아 신시아가 젖병을 가져오길 기다렸다.“갑자기 남자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김지원이 도로 건너편 신시아를 향해 목청껏 외쳤다.“우리 둘 중 하나라도 남편이 있었으면 이럴 때 끌고 와서 짐꾼으로 쓰면 딱이잖아.”신시아는 젖병을 들고 밖으로 나와 문을 잠근 뒤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그럼 너도 하나 찾지 그래.”김지원이 코웃음을 쳤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손만 까딱해도 줄줄이 와. 일 안 해줘도 괜찮아, 돈만 주면 되니까. 정 대표님 같은 분도 좋아. 네가 이혼 안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걸? 먹고 놀며 돈 걱정은 안 했을 거잖아. 이런 일 생겼을 때 직접 짐을 나르지 않아도 돈 주고 사람 부르면 그만이지.”신시아는 김지원 집 앞에 도착했다가 계단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김지원의 생각은 늘 변덕스러웠다.어떤 때는 사랑이 없으면 남자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싫다고 하더니, 막상 일이 닥치자 돈만 있어도 괜찮다는 식이었다.김지원에게는 그냥 하는 말이었겠지만, 실제로 그런 결혼을 살아본 신시아는 그 맛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신시아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감정 없는 결혼은 계속해 봤자 서로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22화

    터키석은 아주 값비싼 보석이었다.목걸이 하나만 해도 최소 2천만 원은 훌쩍 넘었다.신시아는 민여정과 이런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대뜸 대답했다.“그럼 감사히 받을게요.”“뭘요. 별말씀을요.”민여정은 신시아의 뜻을 알아차렸다.신시아는 민여정이 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본 뒤 몸을 돌려 산후조리원 안으로 돌아갔다.이곳은 율제시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산후조리원으로, 가장 저렴한 프로그램도 2천만 원부터 시작했다.신시아는 애초에 조리원 상담을 받을 생각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서는 김지원과 함께 육아 도우미만 알아봤다.김지원은 가장 경력이 좋은 육아 도우미 한 명이 마음에 들었지만 임금이 600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 아까워했다.“경원에서 알아본 사람은 400만 원이었는데.”“비싼 데는 이유가 있겠지. 마음에 들면 일단 시험삼아 써보자.”신시아가 경력서를 확인해 보니 경험이 풍부했고 이전 고용주들의 평가도 모두 좋았다.좋은 육아 도우미는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하기 힘들었다. 김지원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었으나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망설이는 것이다.김지원이 망설이는 사이 신시아는 카드를 꺼내 바로 계약하고 수습 기간 비용까지 결제했다.뒤늦게 알아챈 김지원은 감동하면서도 속이 쓰렸다.“앞으로 너도 돈 들어갈 데 많잖아. 좀 아껴 써.”“돈은 또 벌면 돼. 빈이한테 아끼긴 싫어.”신시아는 영수증을 김지원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근데 육아 도우미가 오면 지금 집은 좁아서 안 될 것 같아. 대책을 세워야겠어.”회사에서 제공한 복층 빌라는 방이 두 개뿐이라 육아 도우미가 머물 공간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거실 바닥에서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김지원이 바로 말했다.“나 어제 맞은편 아파트에 임대 나온 집 봤어. 내가 거기로 옮길게. 그러면 잘 곳도 생기고 라이브 방송할 공간도 따로 만들 수 있잖아.”육아 도우미를 구했으니 김지원도 일을 다시 시작해 방송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좋아. 그럼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21화

    신시아는 김지원을 달래며 말했다.“괜찮은 육아 도우미 구하면 하루 시간 내서 같이 쇼핑하러 가자. 바람도 쐬고.”김지원은 그 말에 금세 눈이 반짝였다.“백명 백화점 본점이 율제시에 있다던데, 그때 거기 가볼까?”“그래.”신시아의 몇 마디 위로만으로 김지원은 금세 기운을 되찾아 신나게 쇼핑 이야기를 시작했다.30분 뒤, 베리아 산후조리원.신시아는 차에서 내려 문을 잠그고, 김지원과 함께 빈이의 유모차를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면으로 만든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안내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직원은 다가오자마자 빈이 옆에 쪼그려 앉아 아이와 놀아주면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두 분은 산후조리 상담을 받으러 오셨나요, 아니면 육아 도우미를 알아보러 오셨나요?”“산후조리...”“육아 도우미요.”신시아가 먼저 대답하며 김지원의 말을 끊었다.신시아가 로비를 한 바퀴 둘러보던 중,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민여정과 그 옆에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여자는 굵은 웨이브 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배가 크게 불러 있어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이분이 고씨 가문의 며느리일 거야.’“지원아, 너 먼저 보고 있어.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인사하고 올게.”신시아가 김지원에게 눈짓했다.김지원은 신시아의 임신 사실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과 함께 빈이를 데리고 육아 도우미 상담을 받으러 갔다.신시아는 민여정 쪽으로 걸어갔다. 마침 민여정도 그녀를 발견했다.“신시아 씨?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여긴 무슨 일로...”민여정이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친구가 육아 도우미를 알아보고 있어서 같이 왔어요.”신시아는 민여정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여사님, 또 뵙네요.”민여정도 웃었다.“그러게요. 아직 젊고 결혼도 안 했을 텐데 이런 데 올 일이 없잖아요.”그러면서 옆에 있던 임신부를 가까이 끌어당겼다.“제 며느리, 오효연이에요.”“안녕하세요. 신시아입니다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20화

    박도영이 문을 열었다. 정우진을 보는 순간 놀란 표정과 함께 어딘가 해방된 듯한 안도감이 스쳤다.“역시 여기까지 찾아올 줄 알았어.”문이 조금 열린 틈으로 정우진은 발을 들여놓고 문을 밀어젖혔다.박도영은 옆으로 비켜서 두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바라봤다.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라 비좁았다. 체격이 큰 남자 둘이 서 있으니 더 답답해 보였다.정우진은 집 한가운데 서서 몸을 돌려 박도영을 훑어봤다.“순순히 말하면 넘어가 주고, 끝까지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박도영, 기회는 딱 한 번이야.”박도영도 은유라가 먼저 모든 걸 폭로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정우진처럼 눈치가 빠른 사람이 여기까지 찾아와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이미 뭔가를 눈치챘다는 뜻이었다.“할 말 없어.”그래도 박도영은 말할 수 없었다.은유라에게 정우진이 알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있었으니까.정우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침묵이 길어지며 집 안 분위기는 한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워졌다.“지금 돌아가서 짐 싸. 내일 나랑 율제시에 가자.”한참 뒤 정우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박도영을 스쳐 지나 밖으로 향했다.박도영은 고개를 돌려 정우진이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박도영은 이미 두 사람의 20년 넘는 우정이 오늘로 끝날 수도 있다고 각오하고 있었다.정우진은 원래 작은 거짓말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박도영만이 예외였다.그럴수록 박도영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율제시라. 어쩌면 신시아 역시 정우진이 특별히 눈감아 주는 또 하나의 예외일지도 몰랐다....율제시의 아침 공기는 조금 서늘했다.신시아는 연한 회색 원피스를 입고, 김지원이 억지로 챙겨준 숄까지 두르고 있었다.차에서 막 내리자 이은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신 상무님, 큰일 났어요. 지사 임원 몇 명이 회의실에 모여서 상무님을 끌어내리겠다고 난리예요. 주경재 그 아부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19화

    은유라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초조함은 어느새 서러움으로 번져갔다.“결과가 꼭 나쁘리라는 법은 없어.”정우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우리 결혼식은 그대로 진행하는 거야?”은유라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말을 뱉고 나자 정우진의 시선이 날카롭게 자신을 훑는 것을 느꼈다.“난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본 거야. 또 기사라도 나서 오빠한테 피해 갈까 봐.”은유라는 황급히 설명했다.정우진은 허리를 곧게 펴고 서 있었다. 아침 햇살 아래, 그의 얼굴은 더욱 또렷하고 잘생겨 보였다.하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따뜻한 햇살과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정우진은 은유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길어지는 침묵에 은유라의 마음은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임정현이 급히 돌아왔다.“대표님, 준비 끝났습니다. 은유라 씨, 들어가시면 됩니다.”은유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저도 몰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오늘은 그녀가 편히 검사받기 위해 이 층 전체가 비어 있었다.그러나 박도영은 오지 않았다.‘정말 안 올 생각인가?’은유라는 속에서 화가 치밀었고 안색도 저도 모르게 굳어졌다.“은유라 씨, 이쪽으로 가시죠.”임정현이 앞으로 다가와 검사실로 안내했다.은유라는 정우진을 몇 번이나 돌아보며 임정현을 따라 걸었다.“은유라 씨,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는 바로 밖에 있을 테니 무슨 일 있으시면 부르세요.”임정현은 검사실 문을 열고 정중하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은유라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은유라가 한쪽 발을 막 검사실 안에 들이려는 순간 가방 속 휴대폰이 울렸다.그녀는 바로 걸음을 멈추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뭐라고? 엄마가 왜...”은유라는 크게 당황한 채 설명할 겨를도 없이 통화하면서 그대로 뛰어갔다.임정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 있었다.“은유라 씨, 잠깐...”임정현이 뒤쫓으려 했다. 그때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정우진이 갑자기 말했다.“쫓아가지 마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5화

    신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패딩 자락을 끌어당겨 아직 평평한 배를 가렸다.“했어요 출근. 올해는 유독 추위를 타네요. 나이를 먹었나 봐요.”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제 노트북이 필요하신가요? 그럼 차에서 가져올게요.”“내 거 써.”정우진이 노트북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잠금 화면에 남녀의 뒷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띄워져 있었다.신시아는 한눈에 알아봤다. 남자는 정우진이고 여자의 실루엣을 보아 은유라와 닮아 있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곧장 파일을 열어 기계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기 시작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4화

    거실에 있던 몇 사람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정우진의 어머니 기현주가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왔다.쉰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녀의 몸매는 30대처럼 완벽하게 관리되어 있었다.그녀는 빨간 숄 하나만 어깨에 걸친 채 영하 10도에 달하는 바깥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을 맞으러 나섰다.눈이 부시던 헤드라이트가 꺼지자 신시아는 비로소 정우진과 함께 차에서 내리는 은유라를 똑똑히 보게 됐다.평소 신시아 앞에서는 고고하게 거리만 두던 기현주가 은유라에게는 제 팔짱을 흔쾌히 내어주고 있었다.정우진은 입가에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3화

    은유라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임정현은 한창 비행기 티켓을 예매 중이었다.“오빠는요? 비행기 티켓은 왜 예매해요?”“휴식실에 계세요. 지사에 급한 일이 생겨 대표님께서 급히 출국하셔야 합니다.”임정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은유라가 가방에서 여권을 꺼냈다.“내 것도 같이 예매해줘요. 따라갈 테니까.”“네?”임정현이 당황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이에 은유라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꾸했다.“왜요? 우진 오빠한테 직접 확인이라도 받으라고요?”지난 반년, 정우진이 가는 곳엔 늘 은유라가 있었다.임정현은 씁쓸하게 그녀의 여권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2화

    신시아는 보육원 출신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케이스였다. 우수한 성적 덕분에 국내 최고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그곳에서 정우진을 만났다.수많은 부잣집 도련님들 사이에서 그는 단연 눈에 띄었다.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그녀의 시선을 단번에 장악한 사람이 바로 정우진이었다.신시아는 지난 2년간의 결혼 생활과 밤마다 나누었던 그 뜨겁던 순간들만으로 평생을 버틸 추억이라 치부하려 했다.그런데 하필 배 속에 아이가 생겨버렸다.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차마 지울 수는 없었다.정우진이 아이를 빼앗아갈까 봐 두려우면서도 한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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