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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키스

Author: 이리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8 16:05:43

오늘도 어김없이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하성의 집이었다. 고소한 치킨 냄새가 거실을 채울 무렵, 하성은 자연스럽게 지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슬금슬금 옆으로 밀착해 왔다.

"오늘 무슨 일 있었지?"

"응? 아니. 무슨 일은."

"서운하려고 하네. 이지연, 나 못 믿어? 나 네 남자친구이기도 하지만 이 회사 대표야. 명령이니까 말해."

지연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잠시 깊은 고민에 잠겼다. 정말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하지만 숨기기엔 제 속이 너무 문드러지고 있었다. 결국 지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한테 전화 왔었어."

"지난번에 말했던 그 돈 때문에?"

"응. 미안해…. 너한테까지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걱정 좀 끼치면 어때. 그러려고 나랑 사귀는 거 아니야?"

"그래도. 오빠는 나처럼 이런 짐 짊어지고 살지는 않잖아."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둘 다 아무 일 없으면 금방 질려, 바보야. 설마 내가 돈 준다고 하면 또 화낼 거지?"

"당연하지. 그건 절대 안 돼."

"그럼 당분간은 그쪽 연락 아예 받지 마."

하성은 지연의 마른 어깨를 토닥이더니,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따서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지연은 마땅찮은 듯 고개를 으쓱이며 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원래는 취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알딸딸해지는 감각도, 다음 날 기억이 끊기는 것도 질색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정신으로 버티기 버거울 만큼 취하고 싶었다.

"걱정 마, 난 너보다 돈 많아서 돈 달라고 안 해. 물론 내가 너한테 주는 건 몰라도."

"뭐야? 농담도 참…. 그럼 나 1억만 줘. 회사 때려치우게."

"안 되지. 이지연 없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회사 다녀."

"뭐래, 진짜. 대표라는 사람이."

지연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자 하성과 눈이 딱 마주쳤다. 마주 닿은 시선 속에 온기가 번지며 하성이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 하성이 천천히 상체를 기울여 다가왔다.

하지만 지연은 입술을 겹치려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향해, 묘한 그늘이 진 표정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밀려오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일까. 지금 제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그저 '좋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안…. 오늘은 왠지 키스할 기분이 아니네."

"다음에 하면 되지, 뭐. 오늘만 날인가. 근데 미안해하진 마. 알겠지?"

그 다정한 목소리가 도리어 방아쇠가 되었던 걸까. 결국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둑처럼 터져버렸다. 지연은 하성의 단단한 품에 그대로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지…. 흐읍, 나도 울고 싶지 않은데."

하성은 당황하면서도 곧장 안쓰러운 눈빛으로 돌변해, 울음으로 들썩이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고 묵직하게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울어도 돼. 힘들면 나한테 맘껏 기대."

"이러다가… 오빠가 나한테 질리면 어떡해."

"이 불안형을 아주 어쩌면 좋냐. 안 질려, 절대. 실컷 울고 다 떨쳐내면 돼."

"……응……."

"근데 넌 이렇게 우는 모습마저 귀엽고 예쁘면 어떡하냐. 진짜 반칙 아니야?"

"아잇! 오빠도 참, 이 상황에 그런 농담이 나와?"

울음 끝에 터져 나온 퉁명스러운 타박에 하성이 낮게 픽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래서 아까 맥주 마시겠다고 한 거였구나? 나 운전 못 하게 해서 오늘 집에 못 가고 묶어두려고."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지?"

하성의 능청스러운 농돌에 지연은 눈물을 그렁인 채 당황한 듯 눈만 깜빡였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고장 나버린 그녀를 보며, 하성은 이내 장난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지연의 굳은 턱끝을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지연의 동그란 눈동자가 토끼처럼 놀라 커졌다.

"귀여워. 네가 내 여자친구여서 얼마나 좋은지 넌 모르지? 일단 마저 먹고 자자. 오늘은 팔베개 해줄 테니까."

하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물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지연이 먼저 그의 턱을 붙잡더니 까치발을 홱 들며 하성의 입술에 제 입술을 깊숙이 포갰다. 씁쓸한 눈물 맛 대신, 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얽혀드는 달콤함이 온몸을 천천히 적셔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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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과 헤어지겠습니다.   외전 4(완)

    문을 열고 들어서며 크게 이름을 부르는 하성의 목소리에 집 안 전체가 온기로 가득 찼다. ​"지아야, 지수야!"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터트린 지수가 아장아장 걸어 하성에게 향했다. 몇 걸음 못 가 쿵 넘어지며 울음소리가 배로 커졌지만, 지연은 푹 한숨을 쉬면서도 입꼬리를 올린 채 지수를 일으켜 안아주었다. ​"오빠 왔어?" "응, 많이 기다렸어?" "그치. 혼자 두 애 보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랬어? 휴가라도 좀 낼까?" "휴가는 무슨. 일 열심히 해서 매출이나 올려야지." ​지연은 장난스레 씨익 웃으며 하성의 콧등을 톡톡 쳤다. 하성은 그 다정한 손길에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더니, 옷 속에 숨겨두었던 작은 꽃다발 하나를 꺼내 밀어밀었다. ​"선물." "엥? 뭐야. 오빠 요즘 용돈도 없다며." "그렇긴 하지. 애들 간식 사느라 털렸어. 그래도 길 가다 너 생각나는데 안 살 수가 있어야지." ​머쩍게 웃던 하성은 지연의 품으로 쏙 들어와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지연은 하성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지만, 이내 그를 살짝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구석에서 또 다른 작은 눈동자가 찌릿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아 또 질투한다. 오빠 삐치는 거 진짜 똑 닮았다니까." "아니거든. 이건 완벽하게 이지연 너 닮은 거야." ​티격태격 웃음을 터트린 두 사람은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고 포근한 이불 위에 눕혔다. 지아와 지수는 아직 더 놀고 싶은지 조그만 발로 이불을 펑펑 찼지만, 이내 집 안을 채우는 지연의 나지막한 자장가 소리에 잔물결처럼 조용해졌다. 긴 속눈썹이 내려앉고 조용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자, 두 사람은 까치발로 방을 빠져나왔다.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들어선 시원한 베란다. 창밖 짙은 밤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과 커다란 둥근 달이 떠 있었다. 환한 달빛이 쏟아져 내려 베란다에 서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려놓았다. ​"달이 오늘따라 진짜 크네." "그러게... 지

  • 대표님과 헤어지겠습니다.   외전 3

    지연의 가쁜 신음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하자, 그녀를 품에 안은 하성의 몸도 붉은 열기로 조금씩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로의 숨결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내는 열기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을 위한 방 안을 가득 채워나갔다. ​"오빠..." "왜 불러, 강아지?"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싫은 척하면서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지는데?" "...몰라, 진짜." ​지연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녀의 발버둥이 다정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지연의 두 손목을 가볍게 잡아당겨 아래로 내렸다. 결국 그녀는 하성의 깊은 눈빛을 온전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씁. 이렇게 예쁜 얼굴 가리면 못 쓰지." "우응... 진짜 부끄럽단 말이야..." "내 눈엔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왜." ​하성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검지 손가락 끝으로 지연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촉촉한 입술 위로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입술을 겹쳐 눌렀다. 짙게 이어지는 키스 소리와 함께 몸무게를 실어 흔들리는 침대의 삐걱거림이 두 사람의 체온을 한층 더 뜨겁게 달구었다. 그날 밤은 서로를 향한 갈증으로 가득 찬 밤이었다. ​. . . ​"지아야~ 지수야~ 엄마한테 와보세요!" "우브브...! 엄마!"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해 아장아장 발걸음을 옮기는 쌍둥이 지아와 지수가 지연이 부르는 소리에 반갑게 달려왔다. 지연은 두 팔을 넓게 벌려 조그만 아이 둘을 한 품에 꽉 안아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들! 엄마가 그렇게 좋아?" ​첫째 지아는 앙증맞은 두 손으로 짝짝이 박수를 치며 헤실헤실 예쁘게 웃었다. 그러나 둘째 지수는 엄마 품에 안겨서도 무언가 아쉬운 듯 연신 현관문 쪽을 두리번거리며 아빠를 찾는 눈치였다. 확실히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도 얼굴만 판박이처럼 닮았을 뿐 성격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지아는 울거나 떼를 쓰면 바로 달래주고 원

  • 대표님과 헤어지겠습니다.   외전 2

    하성은 빵집에 들려 딸기 케이크를 사서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 안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나 왔어." "오빠 왔어?" ​지연은 엉망이 된 머리칼과 풀린 눈을 한 채로 하성을 맞이했다. 고된 육아의 흔적이 역력한 그녀의 모습에 하성은 말없이 다가가 지연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딸기 케이크 사왔어. 일단 이거부터 먹고 조금 자." "진짜?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다니깐." ​지연은 피곤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케이크 상자를 열어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점심조차 거른 탓이었다. 그 사이, 지수와 지아가 손을 휘적이며 엄마를 찾자 하성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작은 손을 맞잡아주었다. ​"아빠 왔어~" "아바바... 아바." ​지수는 활짝 웃으며 하성을 반겼지만, 지아는 엄마를 찾느라 잠시 뾰족하게 표정을 굳혔다. ​"이 녀석, 아빠가 아직 어색한 거야? 속상하네. 아빠도 일 끝나자마자 부스스 달려온 건데." "아맞다. 오늘 회사 일은 잘 되고 있는 거야?" "응, 걱정하지 마. 팀원들이 워낙 손발이 잘 맞잖아." "휴, 다행이네."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크를 비운 지연은 하성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에 지친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하성은 다정한 손길로 지연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겨 주었다. 마침 지연이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자, 하성은 장난스럽고도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마와 코끝을 거쳐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쓰읍. 오빠, 아시죠? 아직 수술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어. 한 달 동안은 절대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이래~" ​쌍둥이를 낳고 고민 끝에 정관수술을 한 지 이제 막 일주일째였다. 하성에게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지만, 다시는 지연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꾹 참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녀를 볼 때마다 밀려드는 설렘은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이쁜데 내가 어떻게 참아." "못살아 진짜. 아, 저기 봐. 애들 눈 감기 시작

  • 대표님과 헤어지겠습니다.   외전 1

    동시에 울리는 쌍둥이의 울음소리. 일란성 쌍둥이 지아와 지수의 앙증맞은 울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첫눈에 봐도 엄마인 지연을 꼭 빼닮은 외모였다. 동그랗고 맑은 눈망울에 오뚝한 코까지, 닮지 않은 구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록 고집스럽고 달콤한 성격은 아빠인 하성을 더 닮았지만 말이다. 지아와 지수 모두 지연의 시선이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향하면 서러운 듯 옹알이를 터뜨리곤 했다. ​그래서 하성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 남아 쌍둥이를 다독여 재우는 일이 지연에게는 매일 치르는 사랑스러운 전쟁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육아에 합류한 하성 덕분에, 마침내 두 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아… 겨우 재웠네." ​지연이 지친 기색으로 숨을 내쉬자, 하성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러게. 지연아, 고생했어. 먼저 들어가서 자고 있어. 난 애들 조금만 더 보다가 들어갈게." ​"정말? 고마워." ​지연은 피로가 녹아내리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하성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하성의 단단한 품에 살짝 앵겼다 떨어진 지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침실로 향했다. ​하성은 요즘 밤낮없는 수유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지연이 내심 늘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든 아내의 짐을 덜어주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살뜰히 돌보았다. 아빠의 깊은 애정을 알아챘는지, 첫째 지아는 벌써 엄마보다 아빠 품을 더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든 아가들의 이마에 차례로 밤인사를 건넨 하성이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 공주님들 잘 자네… 나도 내 진짜 공주님 곁으로 가야겠다." ​하성은 이미 옅은 숨소리를 내며 잠든 지연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누웠다. 지연이 잠결에 온기를 느끼고는 자연스럽게 하성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성은 지연의 작은 몸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에 오랫동안 입술을 묻었다. 은은한 샴푸 향과 아기 냄새가 섞인 달콤한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은 채 아늑한 잠에 빠져들었다.. ​..

  • 대표님과 헤어지겠습니다.   45. 마지막화

    민정은 결국 하성의 합의를 거부한 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피고인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성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씁쓸함과 지독한 허탈함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단단한 각오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번 충격이 민정에게 진정한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하성은 거실 소파에 앉아 지연을 말없이 품에 끌어안았다. ​지연은 그의 단단한 품 안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그간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과 서늘한 공포를 서서히 내려놓았다. ​"지연아, 그… 기자에게 제보한 사람 말인데." 조심스럽게 울리는 하성의 목소리에 지연은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지?" "어… 알고 있었어?"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어. 오빠, 괜찮아?" "너야말로 정말 괜찮은 거야? 그래도 네 어머니인데." "응. 난 괜찮아.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타격도 별로 없어. 그래서 엄마, 고소한 거야?" "…방금 경찰서 다녀오는 길이야." "잘했어. 오빠가 틀린 일 한 거 아니잖아." ​지연은 오히려 하성의 등을 다독이며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성은 지연의 티 없이 밝은 표정을 마주하고서야 겨우 비로소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지연의 아직 평온한 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우리 기쁨이도 놀라지 않고 잘 있지?" "응, 아기가 아주 튼튼한가 봐. 기분 좋은지 아빠 마음을 아는지 얌전해. 아빠가 멋지게 결단 내린거, 아주 대견해데." "푸흡, 무슨 아기가 그걸 알아. 그래도 다행이다. 고마워, 지연아." "고마운 건 나지. 이렇게 끝까지 내 손 잡아준 사람인데." ​지연은 장난스럽게 하성의 콧등을 툭 치며 청량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환한 미소는 그간의 모든 풍파를 씻어내리는 정화제 같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람의 삶은 그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처럼 마침내 단단하고 평온한 안정을 찾아가고

  • 대표님과 헤어지겠습니다.   44. 남남으로

    ​차 안에서 터져 나온 눈물을 간신히 닦아내며 하성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지연과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빠였다. 눈가에 남은 온기를 지우고 단단한 표정으로 회사 로비에 들어선 하성의 눈빛에는 서늘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사내 회의실로 직원들을 소집한 하성은 단호하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돌고 있는 기사는 명백한 허위 사실입니다. 지연 씨가 가진 아이는 온전히 저와 지연 씨의 아이입니다." ​평소 하성의 따뜻하고 배려 넘치는 성품을 잘 알던 직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말을 믿었다. 평소 두 사람의 깊은 애정을 곁에서 지켜봐 왔기에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주영이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대표님... 이 비서님은 지금 괜찮은거에요?"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지만,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도움이라니요? 저희가 뭐하면 되는데요?" ​"인터뷰입니다." . . . ​잠시 후, 회사 로비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직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저희 대표님과 실장님 사이가 얼마나 각별한데요. 그게 오히려 눈이 부실 정도죠. 맨날 둘이서 깨가 쏟아지는데 딴 남자의 아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맞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 다정해서 손을 잡고 출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그쵸, 과장님?" ​"그렇고 말고요." ​사실 하성과 지연이 사내에서 손을 잡고 출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대표를 지키고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직원들이 완벽한 팀워크로 '착한 거짓말'을 보태며 기자의 펜을 이끌었다. ​이어서 하성 측의 공식 입장문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두 사람이 이미 혼인신고를 마치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정식 부부라는 사실과 함께, 아이가 오직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라는 점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여론은 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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