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전의 거칠고 광적인 모습과 달리 이번의 유변학은 드물게도 한결 부드러웠다.이미 이 달콤한 존재가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걸 아는 듯,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음미하려는 태도였다.희유는 유변학의 입맞춤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처음에는 수동적이던 몸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유변학에게 화답하고 있었다.그러자 유변학의 인내심도 점점 사라졌고 더욱 강하게 희유의 부드러운 곳곳을 차지해 갔다.이렇게 얽히고설킨 뜨거운 키스는 단순한 욕망만은 아닌 듯했다. 욕망 너머에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전율과 저항할 수 없는 기분이 함께 밀려왔다.한참 후, 유변학은 멈춰 서더니 희유의 이마에 이마를 댄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먼저 씻고 올게.”희유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끄덕였다.유변학이 일어나 욕실로 향하자 희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자의 손가락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잠시 후, 유변학은 수건을 들고 욕실에서 나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머리를 닦기 시작했다. 허리에는 수건 하나만 두르고 있었고, 넓은 어깨와 단단한 근육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몸의 근육이 울끈불끈한 게 맨눈으로 잘 보였다.희유는 몸을 일으켜 유변학의 뒤로 다가가 무릎을 꿇듯 앉았다. 그리고 남자의 손에서 수건을 받아 대신 머리를 털어주었다.유변학의 체형은 완벽에 가까웠다. 피부는 거친 구릿빛이 아니라 오히려 차갑게 흰 편이었고 등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흉터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신은 하나도 없었다. 이곳의 보디가드들 대부분이 문신을 하고 있었고 전동헌조차 목덜미에 검은 독수리 문신을 새기고 있었던 터라 희유는 조금 의아했다.희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다른 사람들처럼 문신 안 했어요?”유변학은 등을 보인 채 앉아 있었는데 빛이 날카로운 옆선을 차갑게 비춰 표정은 읽기 더더욱 어려웠다.곧 남자가 담담히 말했다.“넌 좋아해?”희유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너무
유변학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규칙은 네가 정해.”희유는 자신의 카드 한 벌을 유변학에게 건네고 다른 한 벌을 집어 들고 셔플을 시작했다. 손놀림은 극도로 능숙했고 카드가 손끝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여러 가지 묘기를 부려 보는 이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유변학은 그런 희유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눈빛에는 약간의 감탄이 섞인 듯도 했고 동시에 그저 묘기로 보는 듯한 기색도 비쳤다.희유가 카드를 다 섞고 유변학에게 건넸다. 유변학은 희유의 카드를 받아 대충 몇 번 섞은 뒤 다시 희유에게 돌려주었다.“절 너무 얕보지 말아요.”희유가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런 적 없어.”유변학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역시나 감정은 읽히지 않았다.유변학은 희유가 섞어 둔 카드를 소파 위에 손으로 쓸어 펼쳤다. 희유 역시 자신의 카드를 한 줄로 늘어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곧 세 장의 카드를 골라냈고 만족한 표정으로 뒤집어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J, Q, K이였는데 같은 문양 스트레이트였다.이렇게 바로 이 세 장을 뽑아낸 것만으로도 상당한 실력이었다.희유는 자신만만하게 유변학을 바라봤다.“이제 사장님 차례네요.”유변학도 마찬가지로 세 장을 뽑았고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뒤집어 소파 위에 놓았다.역시 같은 무늬 스트레이트였지만 한 단계 더 높은 A, K, Q였다.그러자 희유가 소리쳤다.“말도 안 돼요!”자신이 셔플할 때 분명 유변학의 카드에서 A는 전부 빼 두었다고 생각했다.유변학의 눈동자는 짙게 가라앉아 있었고 남자는 담담히 말했다.“왜 안 돼?”희유는 당연히 자신이 속임수를 썼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속임수로 맞서다 더 큰 속임수를 만난 셈이니 말해 봐야 득보다 실이 컸다.희유는 머쓱하게 웃었다.“좋아요. 이번 판은 사장님이 이긴 걸로 할게요. 그래도 한 판으로 끝낸다고는 안 했잖아요. 3판 2선승제니까요.”유변학은 카드를 거두며 말했다.“그래.”아까와 같은 규칙이었고 서로 상대의
우한은 희유를 보자 자연스럽게 기뻐했다. 오랜만에 디저트를 맛볼 수 있었지만 희유가 사 온 것들을 앞에 두고도 좀처럼 입맛이 돌지 않았다.희유는 우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웃으며 달랬다.“유변학 사장님 곁에 있는 게 정말 괜찮아. 봐, 나 지금 이렇게 자유롭잖아.”“처음에 다른 사람한테 넘어갔으면 분명 더 힘들었을 거야. 어쩌면 지금쯤 목숨도 없었을지 몰라.”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고 희유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과 우한은 이미 운이 좋은 편이었다.우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표정도 조금 풀어졌다.곧 희유는 블루베리 케이크 한 조각을 우한에게 내밀었다.“너 블루베리 좋아하잖아. 너 먹으라고 일부러 샀어. 우리 강성에서 먹던 거랑 비슷한지 한번 먹어봐.”우한은 한입 베어 물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완전히 같진 않은데 그래도 맛있어.”희유는 마음에서 우러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다 먹으면 우리 같이 카드 연습하자.”우한은 케이크를 먹으며 웃었다.“이제 딜러도 안 하는데 카드 연습은 왜 해?”“시간 보내려고. 네 연습도 같이 할 겸 해서.”희유는 카드를 꺼내 능숙하게 섞었다.“예전에 TV에서 카드 잘 다루는 사람들 보면 부러웠는데 지금은 나도 하게 됐네.”희유는 이야기를 나누며 눈도 떼지 않고 셔플했다. 가볍게 카드를 네 묶음으로 나눠 펼치자 매 묶음마다 A부터 K까지 한 장도 틀리지 않은 완전한 무늬가 나왔다.희유는 턱을 괴고 우한을 보며 웃었다.“우리 여기 연수받으러 온 거 아니야?”우한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단단하고 밝은 희유를 보며 무심코 손을 뻗어 여자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내가 그 남자였으면 너한테 반했을 거야.”그러자 희유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밀어냈다.“방금 케이크 먹었잖아. 손에 크림 다 묻었어요.”밤이 되어 유변학이 돌아왔을 때, 희유는 소파 위에 다리를 접고 앉아 카드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사장님!”희유는 손에
“한번 만들어 보라고 하지.”유변학은 메뉴가 적힌 종이를 직원에게 건네자 직원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고는 돌아섰다.이에 유변학이 말했다.“마음에 들면 앞으로는 여기서 매일 먹어도 돼.”“저 혼자요?”희유가 놀라 묻자 유변학은 고개를 끄덕였다.“어. 2층이랑 3층 같은 곳은 자유롭게 다녀도 돼.”그 말에 희유의 얼굴에 기쁨이 스쳐 곧바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그 순간, 아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셰프와 접촉할 기회가 생긴다면, 신분과 상황을 충분히 파악한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유변학은 희유를 바라보며 경고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유변학에 희유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유변학이 자신의 속내를 알아챈 건 아닐까 긴장했지만, 곧 남자의 말뜻을 이해한 희유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저를 믿고 37층 밖으로 나갈 자유를 주신 거잖아요. 도망칠 생각은 없어요.”유변학은 시선을 내린 채 차를 들었다.“가끔은 너무 똑똑한 것도 좋은 일은 아니야.”그러나 이번에는 남자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얌전한 표정을 짓고 더 묻지 않았다.희유가 고른 음식들이 하나씩 차례로 나왔다. 완전히 희유가 알던 맛은 아니었지만 평소 먹던 음식들보다는 훨씬 나았다.익숙한 요리들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시큰해졌다.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었고 할머니, 진우행과 화영도 떠올랐다. 우행과 화영은 이미 경성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약혼 날짜도 아마 상의가 끝났을지 몰랐다.‘다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까?’눈물이 차오른 희유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유변학은 그런 희유를 보고 직접 반찬을 집어 주며 낮게 말했다.“생각은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게 좋아.”그 말에 희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번엔 유변학에게 반찬을 집어 주며 말했다.“제가 알던 그 맛이에요. 한번 드셔 보세요. 나
유변학은 이틀 연속 오전 내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탓에 희유는 유변학이 자리를 비운 시간에만 틈틈이 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가끔 해 질 무렵에 눈을 뜨면 방 안은 적막했다. 창으로 스며드는 석양만이 희미하게 번지고, 어둡고 고요한 빛이 괜히 마음을 쓸쓸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이렇게까지 애써왔는데 정말 나를 구한 걸까? 결국 지금도 소유물처럼 묶여 있는 건 아닐까?’처음 유변학을 의도적으로 달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젠 예전의 자신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이 된 것만 같았다.아무것도 모르고 걱정도 없던 그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고 희유는 남자가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 몰랐다. 그래서 곧바로 눈을 감고 여전히 자는 척했다.유변학은 다가와 소파 옆에 앉아 손을 들어 희유의 이마를 짚으며 낮게 말했다.“아직도 자고 있어? 어디 아픈 거야?”희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담요 속으로 몸을 웅크린 채, 원망이 담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는데 한없이 가엾어 보였다.유변학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 희유의 턱을 잡았다.“잘 거면 침대에 가서 자.”그러나 희유는 담요를 꼭 쥔 채 고개를 저었다.“조금만 더 누워 있을게요.”유변학의 검은 눈동자가 깊어졌고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나도 최대한 자제할게.”유변학은 원래 방탕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전에는 남녀 관계에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그런데 희유와 몸을 섞은 뒤로는 마치 중독처럼 벗어나질 못했다.희유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유변학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물었다.“일어날 수 있어? 괜찮으면 밥 먹으러 갈까?”그러자 희유는 놀란 얼굴로 유변학을 바라봤다.“밖에 나가서 먹어도 돼요?”“2층에서.”유변학이 덧붙였지만 희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옷을 집어 들고 욕실로 뛰어가며 말했다.“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요.”희유의 웃음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셌다. 희유가 즐거워하는 모습
희유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저를 아빠라고 부른 거예요?”아무래도 ‘아파’라는 말을 아빠라고 잘못 들은 것 같았다.유변학은 잠시 말이 없었고 희유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집이 그리운 거 아니에요? 아버지도 생각나고...”“그만해.”유변학이 낮게 제지했다.갑자기 가라앉은 얼굴에 희유는 놀라 몸을 떼어내며 도망치려 했지만 유변학은 한 팔로 희유를 끌어당겼다.입술이 곧바로 막혔고 희유는 또 한 번 벌받았다.희유는 눈을 감고 먼저 입을 맞추자 유변학의 태도는 조금 누그러졌다. 오전의 햇살도 그 열기 속에서 한층 부드러워졌다.희유는 두 팔로 유변학의 어깨를 감싸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성해영이라는 사람과도...”얼굴이 붉어져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날, 유변학 곁에 낯선 여자가 서 있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희유는 자신이 딜러가 되려 했던 진짜 이유를 유변학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혹시 오해하고 정말로 자신을 외면할까 봐 두려웠다.그러면 이후에 계획했던 모든 일들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없어.”유변학은 거친 숨을 내쉬며 희유의 귀 옆에서 낮게 한마디를 덧붙였다.희유는 놀라 눈을 크게 떴고 머릿속에 가득 찬 의문과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유변학은 다시 입술을 막아버렸다.심장은 빨라지고 뜨거운 키스에 희유의 정신은 금세 흐릿해졌다.갑자기 유변학이 몸을 뒤집고 두 손으로 희유를 받쳐 들고는 고개를 살짝 들어 뜨거운 키스를 이어나갔다.희유는 한 손으로 침대 머리를 짚고 다른 손으로 유변학의 어깨를 붙잡았다.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들어 아래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몸을 낮췄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낮게 말했다.“사장님, 제 이름은 진희유예요.”유변학의 검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더니 극도로 낮고 쉰 목소리가 관능적으로 흘러나왔다.“희유야.”유변학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글자에는 욕망이 묻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두고 마음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