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택은 옥상에 서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뒷모습은 무척 차가웠다. 멀리 우뚝 솟은 건물은 어두컴컴한 하늘 속에서 무척 쓸쓸하고 썰렁했다.음침한 날씨와 어두운 광선에 남자의 안색은 희미했다.그는 따라오는 소녀를 힐끗 쳐다보며 비꼬았다."병실에 있는 그 사람이 소희 씨 할아버지예요?"소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드리우며 말했다."미안해요, 내가 구택 씨를 속였어요. 나는 운성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그는 누구죠?" 구택이 물었다."친구예요."구택은 코웃음쳤다."한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친구?"소희는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해명하지 않았다.구택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그녀가 떠난 그날 밤, 그는 안절부절못했고 그녀가 한밤중에 나쁜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웠으며 그녀가 말한 그 사촌 오빠가 그녀를 데리러 가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고 또 그녀의 집에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두려웠다. 그는 그때 하마터면 차를 몰고 바로 운성으로 가서 그녀를 찾을 뻔했다.그러나 그녀의 거짓말은 그의 모든 걱정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그의 열정도 그녀의 침묵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그는 자신을 비웃으며 말을 가리지 않았다."소희 씨가 어디로 가든, 어떤 사람과 함께 있든, 사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죠! 우리는 애인도 아닌 그냥 밤에 같이 자는 사이일 뿐, 언제든지 갈라질 수 있죠!"소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구택은 빛을 등지고 서있었다. 어슴푸레한 날씨는 그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며 그의 이목구비의 윤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소희 씨 자신이 우리의 관계를 잘못 알고 자신의 주제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나를 속일 생각을 한 거예요! 사실 난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날씨는 더욱 흐려졌고 바람 한 점 조차 없어 공기가 무더웠으며 사람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소희는 안색이 하늘처럼 창백하고 처량해졌다. 그녀는 손을 천천히 꽉 쥐며 마치 맞은편 건물이
두 시간 전, 그들은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구택은 전화 한 통을 받고 떠나며 이따 돌아올 테니 우행더러 회의를 계속 진행하라고 했지만 결국 회의가 끝나도 구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Kally가 말했다."돌아오셨어요. 한 시간 전에요. 근데 대표님 안색이 어찌나 보기 흉한지, 화가 엄청 나신 것 같아요."구택은 화를 거의 내지 않았다. Kally는 지난번에 그가 기분이 좋지 않아 며칠 동안 화를 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심한 것 같았다."왜요?"우행은 영문 몰라 하며 물었다. 분명 회의 때는 괜찮았는데.Kally는 고개를 저었다."몰라요, 아무튼 돌아오실 때 이미 화가 나신 상태였어요."우행은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섰다.오후까지 구택은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설아는 서류를 들고 와서 Kally에게 물었다."대표님 점심 식사하셨어요?"Kally가 대답했다."아니요. 점심때 대표님께 음식을 주문하고 싶었는데, 대표님께서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설아는 시선을 돌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 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설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밀고 들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이 몇 부의 서류에 사인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후 2시에 해외 부문과의 영상회의가 있으시고요. 저는 이미 모든 자료를 준비했습니다.""진 팀장 보내요!"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 서류를 보며 표정은 싸늘했다.설아는 잠시 멈칫하다 얼른 말했다."네, 그리고 스탤 그룹의 오 대표님과 4시에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미뤄요." 남자는 바로 말했다.설아는 잠시 멈추다 목소리는 더욱 나지막해졌다."대표님, Kally가 대표님께서 점심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제가 주문해 드릴까요?"구택은 고개를 들어 눈빛은 어두웠다."또 다른 일 있어요?"설아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나가요!"설아는 남자의 차갑고 매서운 잘생긴 얼굴을 보며 가슴이 떨리더니 즉시 대답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구택은
잠자리에 들 때 이미 새벽 1시였다. 이불 속에는 여전히 남자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소희는 이불을 품에 안고 참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문자를 보냈다. [속여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는 나의 친구일 뿐이에요.]그녀는 남자가 이미 잠든 줄 알았지만 곧 답장이 왔다.그녀는 즉시 핸드폰을 들고 확인했고 안색은 점점 하얗게 질렸다.[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우리의 관계로 말하자면 더욱 설명할 필요가 없고요.]그날 병원에서 소희는 그의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어정으로 돌아오니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정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가 아마도 홧김에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갔지만 남자의 답장은 한 글자마다 그녀의 마음을 짓밟는 것 같았다.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두 사람의 관계를 잘못 파악했고 자신의 주제를 몰라서 이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이다.......이튿날, 소희는 하루 종일 방에 있었다. 전에 다른 사람을 도와 고친다는 논문도 미처 다 고치지 못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재빨리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틈만 나면 멍을 때렸고 오후가 돼도 논문에는 아무런 진도가 없었다.저녁에 그녀는 케이슬로 가서 출근했다.시원은 복도에서 소희를 보고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소희 씨, 언제 돌아왔어요?"소희는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웃었다."오늘 금방 돌아와서 출근하는 거예요.""집안일은 해결됐어요? 방금 돌아왔으면 며칠 더 쉬지 그래요."시원이 걱정해하며 말했다."괜찮아요, 시원 오빠 오늘 무슨 술 마실래요? 이따가 내가 갖다 줄게요." 소희가 말했다.시원은 그녀와 몇 마디 말을 한 뒤, 룸에 돌아오자마자 구택에게 전화를 걸었다."소희 씨가 돌아왔는데, 너 오늘 저녁 올 거야 안 올 거야?""안 가!"구택은 목소리가 차가웠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시원은 끊긴 전화를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왜 이러는 거지?전에 구택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구택은 지금 화를 내
남자는 소희를 몇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나가봐!"소희는 쟁반을 들고 미선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이 적은 곳에 이르러서야 미선이 당부했다."이 룸에 있는 손님은 성이 성 씨라고 넌 그를 성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돼. 너 앞으로 이 룸을 책임져야 하니까 몇 가지 잘 기억해둬. 성 대표님은 매번 올 때마다 고정된 호스티스를 찾아서 함부로 그에게 다른 호스티스 불러주면 안 돼. 그가 주문한 술은 꼭 그의 앞에서 열어야 하고. 그리고 그가 부르지 않는 한, 절대 들어가지 마."소희는 일일이 대답했다."알겠어요!""응, 너 그냥 6616호만 책임지면 돼. 다른 건 상관하지 마. 수미 언니도 나보고 너 좀 챙기라고 했고. 무슨 일 있으면 얼마든지 나한테 말해." 미선은 웃으며 말했다.소희는 가볍게 웃었다."고마워요, 미선 언니."며칠 뒤, 구택이 케이슬에 오자 수미는 얼른 가서 인사를 했다."소희는 6층에서 주혜정을 대신해서 주문받고 있습니다. 제가 즉시 불러오겠습니다."구택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잘생긴 얼굴은 담담했다."아니에요, 술만 가져다주는 거니까 누구든 상관없어요!"수미는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영문을 몰라 하며 시원을 바라보았다.시원은 웃으며 말했다."소희 씨가 바쁜 이상 다른 사람 보내요.""네!" 수미는 대답하고는 이유비더러 8809호를 책임지라고 했다.두 사람만 남았을 때 시원은 그제야 물었다."도대체 왜 그래? 소희 씨가 뭘 했는데 이렇게 화가 났어?"구택은 연기를 내뿜었고 연기는 피어올라 그의 표정을 가렸다."앞으로 내 앞에서 그녀 언급하지 마!"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헤어졌어?"구택은 코웃음치며 말했다."나와 그녀의 관계는 헤어진다고 말할 수 없지!"시원은 웃었다."그래, 여자일 뿐. 싫으면 헤어지는 거지 뭐. 그게 별일이라고. 하지만 너 차인 것처럼 화난 표정 좀 짓지 말아 줄래?"구택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와 상관없어!"시원이 말했다."그럼 소희 씨가
백림은 구택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오늘 종업원이 유비로 바뀐 것과 시원이 소희를 언급할 때 구택이 고개도 들지 않는 것을 보고 큰일 났다는 것을 느꼈다.그날 그가 했던 전화와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 그는 무척 불안했다.후에 구택은 연속 두 판 이겼고 얼굴에는 아무런 정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얘기를 나누며 분위기는 무척 유쾌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그 후 며칠, 구택은 가끔 와서 시원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거나 혼자 소파에 앉아 술을 마셨고 종래로 소희를 언급하지 않았다.시원은 두 사람이 정말 헤어졌다고 느꼈다.구택은 평소에도 안색이 담담했고 정서를 밖으로 드러냈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일한 변화는 그저 그가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보다 더 심했다.......시원은 청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았는데 그의 한 회사에서 건축설계사의 조수로 일하는 것이었다. 청아는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디저트 가게에 지금 일손이 부족해서 청아는 이번 달까지 가게에서 일하고 개학 후 다시 시원의 회사에 가서 졸업 전의 정식 인턴으로 일하기로 결정했다.청아는 배달을 그만뒀으니 시간이 많아져서 계속 소희를 위해 아침밥을 해주었고 저녁에도 소희가 돌아오면 야식을 만들어 줬다.소희는 마트에 가면 식재료를 잔뜩 사서 청아의 냉장고에 넣었고, 또 자신의 냉장고에는 다시 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로 가득 채웠다.청아는 오랫동안 구택을 보지 못한 거 같아 소희에게 물어보았지만 소희는 그저 그가 최근에 아주 바쁘다고 말할 뿐이었다.그러나 청아는 여전히 소희가 기분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표정과 행동만 봐도 그녀에게 걱정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병원에서는 서인의 수하 이문이 그를 돌보고 있었다. 이문은 이름이 꽤 듣기 좋았지만 사실상 아주 건장하고 위풍당당한 사나이였다. 그는 병실에 오자마자 간호침대를 차지했고 저녁에 잘 때
"그래, 가족들은 잘 지내고?" 서인이 물었다."그럼요." 소년은 해맑게 웃었다. "우리 여동생도 벌써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어요."서인이 물었다."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소년이 대답했다."우리 아버지가 산에 올라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여기에 입원하셨어요. 내가 그를 간병하고 있고요.""그렇군!" 서인은 그의 말에 대답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 했다."나한테 현금은 이것밖에 없어서. 먼저 받아. 그리고 계좌 번호 좀 알려줘, 내가 입금해 줄게."소년은 놀라며 물었다."뭐 하시는 거예요?"서인이 말했다."너희 부모님은 너와 네 여동생 학교에 보낸다고 무척 고생했잖아. 병원에 입원하면 또 돈을 써야 하고. 나와 네 형은 아주 좋은 친구니까 너도 네 형이 너에게 준 돈이라고 생각해."소년은 거절하면서 말했다."고맙지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우리한테도 돈이 있어요. 정말이에요!""넌 금방 졸업해서 아직 취직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돈이 있다고." 서인은 믿지 않았다."정말이에요!" 남자는 헤헤 웃었다."요 몇 년 동안 우리 형도 줄곧 집으로 돈을 부쳤어요, 매달 부모님께 고정적으로 용돈도 주고, 나와 내 여동생이 학교 갈 돈도 모두 우리 형이 준 것이에요."서인은 멈칫했다."네 형이?""맞아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인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더니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다."매달 너희들한테 얼마 주는데?""500 만 원요!" 남자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한 편으로는 또 좀 유감스러웠다."형은 매달 우리 아버지에게 500만 원을 입금해 줬는데 줄곧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밖에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서인은 머리가 윙윙거리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소년이 말했다."우리 아버지도 링거를 거의 다 맞아가서요, 이만 가볼게요."서인은 인차 정신을 차렸다."어, 그래, 빨리 가봐!"소년은 밖으로 나가며 문을 열 때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서인에게 물었다."우리 형 아시면 형이 지금
서인은 수하더러 계속 조사하게 했다. 그의 사람은 하루 만에 표용 그들 가족들에게 입금한 계좌 번호가 모두 같은 계좌 번호라는 것을 알아냈다.이미 알아맞힌 이름을 보고 서인은 고개를 들어 눈을 감았고 몸을 가볍게 떨었다.소희, 그는 그녀를 매우 증오했다. 그녀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고 영원히 담담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마치 그들은 그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그는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요 몇 년 동안 설령 그녀가 강성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그녀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설령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하더라도 그는 쌀쌀했고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를 찔러 죽였으면 했다!요 몇 년 동안 그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며 멍청하게 살아갔고, 오직 이렇게 해야만 죽은 표용 그들에게 대한 죄책감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지만, 소희는 표용 그들이 그들의 가족의 마음속에서 줄곧 살아있게 도와주고 있었다.진정으로 버림받은 사람은 그인데, 그는 줄곧 정의로 자임하여 그녀를 심판하려고 했다!그는 무슨 자격이 있을까? 무슨 자격으로!남자는 주먹을 꽉 쥐며 무한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자신의 뺨을 두 대 때리고 싶었다.이문이 다가오며 놀란 표정으로 서인을 바라보았다."형님, 왜 그러십니까? 변비에 걸리신 겁니까?"서인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눈을 떴고 눈빛은 온통 핏발이 섰다. 그는 굵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꺼지지 못해!"이문은 헤헤 웃으며 재빨리 커튼을 당겨 간병침대에 가서 게임을 했다.서인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옆에 있는 핸드폰으로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뭐해?"소희는 6616에 술을 갖다주었고 나오자마자 핸드폰 벨 소리를 듣고 발신자가 서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구석으로 걸어가서 담담하게 받았다."무슨 일이야?"서인은 그녀 쪽에서 전해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또 물었다."어디야?"그동안 소희의 일에 무관심했던 그는 지금 소희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
소희와 이문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인을 바라보며 모두 어리둥절해졌다.서인은 소희의 눈빛에 다소 어색해지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네 말이 옳다고 생각해!"소희는 마음속의 의혹을 참고 이문에게 말했다."당신은 그를 휠체어로 옮겨요. 난 퇴원 수속 밟으러 갈게요.""네!" 이문은 서인의 생각을 잘 몰랐기에 얼버무리며 대답했다.소희가 떠나자 이문은 서인에게 물었다."형님, 지금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 계집애를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그녀는 또 임구택의 사람이잖습니까!"서인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정색하며 말했다."내가 아주 진지하게 말하는데, 너희들 앞으로 그녀를 공손하게 대해! 나를 어떻게 대하면 그녀한테도 어떻게 대하고. 누가 감히 그녀한테 버릇없게 굴면, 내가 아주 가만 안 둘 거야!"이문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몰랐다. 그들의 형님은 지금 그 소녀한테 홀렸나?"알아 들었어?" 서인이 물었다."네, 알아 들었습니다!" 이문은 헤헤 웃었다.소희가 돌아왔을 때, 이문 그들은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변했다. 말할 때 공손했고 그녀가 물건을 들자 즉시 누군가가 달려가며 그녀가 직접 손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대신 들어줬다. 소희는 서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 사람들이 왜 모두 이렇게 호들갑인지 몰랐다.서인은 소희를 따라가면서 이문에게 따로 장소를 찾아 다시 회사를 차리라고 당부했고 그가 없을 때 될수록 임 씨의 사람들과 싸우지 말라고 타일렀다.모든 것은 그가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자고.이문 등 사람들은 고분고분 대답하며 그들은 병원 밖에서 헤어졌다.소희는 차를 몰고 서인을 데리고 어정에 있는 진석의 집으로 들어갔다.그녀가 휠체어를 밀고 문을 열자 방 안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서 웃으며 물었다."소희 씨, 이분이 바로 서인 도련님이죠?"서인은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는 그에게 소개했다."이 분은 오 씨 아주버니인데 전문적인 간병인이야. 네 일상생활을 돌봐줄 거야."서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