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잠시 뒤, 다른 사람이 이철훈 을 찾아오자, 화영은 마침내 신수와 단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화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오늘 일은 고마워.”신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날 저 여자가 나 찾아왔을 때, 말 꺼내는 순간 딱 감이 오더라. 그래서 그냥 맞춰 준 거지.”“진짜 네 친구였으면, 내 신분 알면서 너랑 나 사이가 어떤지도 모를 리가 없잖아?”신수는 비웃듯 덧붙였다.“계속 화영이한테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다고 하길래, 나 웃음 참느라 혼나는 줄 알았어.”조금 전 세라가 굳어버린 표정이 떠올랐는지 신수는 내심 즐거운 듯한 눈빛이었다.분명 지금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틀렸는지 이해 못 하고 있을 터였다.화영이 말했다.“걔는 내 친구 아니야. 우행 씨 첫사랑이야.”그러자 신수는 즉시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화영은 진심으로 말했다.“어쨌든 귀찮게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특히 지금은 강이윤이 산후조리 중이었으니까 더 고마웠다.“별소리를 다 하네.” 신수는 웃었다.“말했잖아. 내가 너한테 진 빚이 있다고. 만약 내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신수는 말투를 조금 낮추며 덧붙였다.“이세라, 겉으로는 번듯해 보여도 속은 꽤 치밀하니까 조심하고.”화영은 가볍게 웃었다.“겉모습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진짜가 아니면 결국 드러나. 오늘 다 봤잖아. 이제 어떻게 계속 연기하겠어?”화영이 강성으로 돌아온 뒤로 세라는 몇 번이나 연달아 깨졌고, 결국 마음이 급해져 신수를 찾아가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아마 본인은 굉장히 영리하고 계획이 완벽하다고 생각했겠지.’신수가 나타나기만 하면 화영은 약혼남이 있음에도 양다리를 걸치는 미친 여자라는 오명을 쓰리라 믿었던 것이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그 사실을 떠올리자 화영은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딱 10년 묵은 체증이 싹 가라앉는 그런 통쾌함 그 느낌이었다.오후가 되자, 신수는 이윤과 딸이 기다리고 있
우행도 너그럽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 신수의 표정은 담담했다.이철훈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화영 씨, 우리 학교가 이번에 정말 덕을 많이 봤네요.”화영은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총장님이 저를 너무 올려 쳐 주시네요. 저도 신수도 강성 출신은 아니지만, 교육에는 지역 구분이 없잖아요.”“이 학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오고 저희 둘이 조금 보탤 수 있었다면 그게 저희의 영광이죠.”말은 조리 있었고 태도는 따뜻하고 겸해 듣고 있던 이들은 절로 감탄했다.사람들이 화영을 칭찬하는 동안 세라를 향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수와 친분이 있다며, 학교 투자도 자신의 덕이라는 식으로 은근히 자랑했던 세라였다.그런데 당사자인 신수가 직접 잘 모른다고 말해 버린 것이다.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세라는 허영심 때문에 신수에게 억지로 들러붙어 스스로를 포장한 셈이었다.그 말을 들은 이철훈은 환하게 웃으며 화영과 신수를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사람들은 떠들며 안쪽으로 이동했고 홀로 남겨진 세라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존재감이라곤 전혀 없었고 오히려 웃음거리 같았다.그때 근처에서 수군거리는 말들이 들려왔다.“포트뉴그룹 다니는 친구한테 방금 전화해 봤는데, 걔 뭐 부장도 아니래. 이제 막 입사한 인턴이라던데?”“그러면 아까 왜 그렇게 말한 거야?”“엄친딸로 포장하고 엘리트 이미지 만들더니 해외 유학까지 들먹여서 완전히 속았네.”“허영심도 정도가 있지.”“원래 집안 형편이 별로라며? 그래서 더 그러는 거라고 하더라.”“상류층에 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거지.”...세라의 얼굴은 새하얘졌고 입술은 꽉 다물어졌다.그러고는 등을 억지로 곧게 세운 채 한 걸음씩 밖으로 걸어 나갔다.세라는 신수에게 당한 셈이었다.아니, 어쩌면 화영과 신수가 처음부터 판을 짜고 세라가 걸려들기만 기다렸던 것일지도 모른다.그럼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화영과 추신수의 관계는 대체 뭐지?’
화영과 우행이 이미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화영은 신수와 세라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상황을 단번에 이해했고, 일부러 놀란 척 남자에게 물었다.“여기서 뭐 하고 있어?”그러자 신수는 호탕하게 웃었다.“당연히 너 때문에 왔지!”그 말이 끝나자 신수는 우행에게 손을 내밀었다.“진우행 부사장님, 오랜만이네요.”그러자 우행도 가볍게 손을 맞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성에 온 걸 환영해요.”옆에서 세라의 심장은 터질 것같이 쿵쿵 뛰다가 그대로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세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바라보며 세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이게 뭐지?’이건 세라가 예상한 흐름이 전혀 아니었다.뉴스에서 봤던 화씨 집안의 자제와 신수의 결혼설은 조작일 리 없었다.따라서 그날 경성에서 직접 신수를 찾아갔을 때도, 남자의 말은 그 기사 내용을 더욱 확실하게 해줬다.뉴스 속 인물은 분명 신수와 화영이었다.‘그런데 왜...’‘왜 추신수가 화영이 다른 남자와 함께 나타났는데도 질투하지 않는 거지? 설마 우행과의 관계를 모르는 건가?’세라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어쩐지 오늘 계속 못 본 것 같더라. 동기가 그러는데 여자친구랑 같이 왔다고 해서, 우리 학교 구경하러 간 줄 알았거든. 근데 그 사람이 화영 씨였구나?”세라는 노골적으로 신수에게 신호를 보냈고 이는 명백한 힌트였다.그러나 표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우행은 오히려 날카롭게 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화영 씨지. 내가 또 다른 여자친구라도 있다는 건가? 내가 화영 씨랑 같이 있는 게 이상해?”“오히려 내가 궁금하네. 너는 추신수 씨를 어떻게 알게 됐는데?”그 말에 세라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산처럼 침착한 우행의 태도를 보면서 세라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계획이 잘못된 걸까?’세라가 대답할 틈도 없이 신수가 대신 대답했다.“세라 씨가 직접 경성까지 찾아와서 교내 행사에 참여해달라고
한편, 세라는 갑자기 신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화영한테 오늘 꼭 서프라이즈 해주겠다면서요? 내가 강성까지 와 있는데 왜 아직도 한 번도 못 본 거죠?]세라는 방금 희문과 전화를 해 진우행과 화영이 호텔로 오고 있다는 걸 이미 확인하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오늘 오전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화영도 바빴고요. 지금은 호텔에 도착했으니까 곧 올 거예요.”신수는 화영이 온다는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그러면 바로 옆 VIP룸으로 와요. 여기 있을게요.]“네, 금방 갈게요.”전화를 끊은 뒤, 세라는 가윤과 수호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옆 홀은 더 큰 파티장이었고, 총장과 이번 행사를 위해 초청된 주요 인사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대체로 대화와 웃음으로 밝고 여유로웠다.“세라 씨!”홀에 들어서자마자 신수가 손을 흔들자 세라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그쪽으로 걸어갔다.“학교에 큰 금액을 후원하셨다 들었어요. 학교를 대신해 감사드려요.”세라의 눈웃음은 차분하면서도 공손했다.“마침 교내 행사랑 겹쳐서 작은 성의를 보였을 뿐이죠.”그러자 신수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계속 화영을 못 보네요. 과연 나를 보면 놀라기는 할까요?”그렇게 말하며 세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놀라죠.”“나도 그렇게 생각해요.”신수는 들뜬 듯 고개를 끄덕였다.“선물도 준비했거든요. 좋아했으면 좋겠네요.”“신수 씨가 여기 나타난 것 자체가 화영한테는 제일 큰 선물일걸요?”“그래요?”신수는 기분 좋게 웃었다.둘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 세라를 아는 동기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세라야!”“세라, 이분이 네가 말한 경성 친구야? 우리도 좀 인사시켜 줘.”그러나 이때 이철훈 총장과 하석현 부총장도 다가왔다.“곧 파티가 시작될 텐데 혹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해요.”“총장님, 친절이 너무 과하시네요.”신수는 예의 바른 태도로 답했다.이철훈은 강성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이철훈 총장이 무대에 올라 길게 축사를 진행한 뒤, 이번 교내 기념식 기간 동안 학교에 기부한 여러 인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중에는 우행과 신수도 포함되어 있었고 신수는 신분을 숨겨 가명을 사용했다.두 사람이 모두 세라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 사정을 아는 동기들은 저마다 시선을 세라에게 돌렸다.세라는 단정히 앉아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그 자체로 주목받았다.행사가 끝난 뒤, 모두 호텔로 이동해 파티를 이어갔다.우행은 이철훈 총장님과 교수님들을 만나 인사했고, 화영에게 자신의 모교를 차분히 소개했다. 원래는 일찍 자리를 뜨려 했지만, 그때 화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이렇게 바빠? 힘들게 강성까지 왔는데 오전 내내 한 번도 못 봤네?]신수의 목소리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은근한 불만이 묻어 있자 화영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너 강성에 있어?”[정확히 말하면, 너랑 같은 강성과학기술대학에 와 있지.]신수가 웃으며 답하자 화영은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그러면 학교에서 말한 경성의 신비한 후원자가 너야?”신수는 크게 웃었다.[그래? 다들 그렇게들 불러?]화영도 웃으며 물었다.“근데 어떻게 강성에 있는 대학을 후원할 생각을 했어?”“너 때문이지. 네가 이연이 챙겨준 거 난 다 기억해.”시누의 말투는 여전히 농담처럼 가볍지만 속뜻은 분명했다.화영이 물었다.“지금 어디야?”[호텔 가. 우리 호텔에서 보자.]“그래, 조금 있다가 봐.”전화를 끊자 우행이 차분히 물었다.“추신수예요?”화영은 미소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학교 새 프로젝트 후원한 경성의 신비한 인사가 바로 추신수래요. 지금 호텔에 도착했으니 우리도 가요.”신수를 떠올리자 우행의 얼굴에는 여전히 냉기가 가셨다.“굳이 봐야 해요?”우행의 반응에 화영은 잠시 놀랐다가 바로 설명했다.“그날 걔는 일부러 날 자극하려고, 결혼식을 미루려고 연기한 거였어요. 그 이후로 다 오해 풀었고 사과도 받았어요.”그러나 우행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
학교의 새 프로젝트에 신원 미상의 후원자가 있다는 소식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그리고 세라의 말을 들은 동기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에 휩싸였다. 아무도 그 후원자가 세라의 친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그럼 세라 친구였던 거야? 그럼 그 사람이 후원한 것도 세라 때문이겠네?” 누군가 존경 어린 눈빛으로 묻자 세라는 부드럽게 입술을 모아 웃었다.“우리 학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도 영광이지.”그 말을 남기고 손을 가볍게 흔든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렇게 세라가 떠나자마자, 남은 동기들 사이에서는 곧바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세라 오랫동안 소식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잘 나가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돌아오자마자 대기업 핵심 인물이라니 외국에서도 굉장히 잘 지낸 모양이야. 게다가 학교에 후원자까지 데려오다니, 이게 바로 진짜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지!”“예쁜 데다 능력까지 있으니 하느님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야?”“이런 인생이 정말 의미 있는 삶이지.”“예전에 세라가 수학과 진우행이랑 사귀었을 때 다들 세라가 신데렐라라고 했잖아. 근데 지금 보니까 오히려 진우행이 눈이 좋았던 거네. 오늘 오려나?”“아마 오지 않을까? 혹시 아직 둘이 계속 만나나?”“진우행이랑 같은 반이었던 애가 그러는 데 헤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아깝다.”“근데 아직 결혼 안 했다며? 혹시 세라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몇 년째 한 사람만 기다린 거면 그건 찐사랑이지. 진짜 부럽네.”...세라는 신수를 찾기 위해 전화했지만, 남자는 총장님에게 호출되어 총장실에 갔다고 했다. 그래서 세라는 어쩔 수 없이 먼저 대성당으로 가서 기다렸다.반 시간이 지나고, 강성과학기술대학의 행사는 정확한 시간에 시작되었다.천 석에 가까운 좌석이 거의 다 채워져 있었다.세라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봤지만 우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조금 뒤, 이희문과 박수호가 노가윤을 데리고 늦게 도착해 세라의 옆에 앉았다. 세 사람 역시 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