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소율은 줄곧 짝사랑이었다.소율은 냉랭하게 말했다."과외 샘으로서의 본분을 주의해요. 주인과 거리를 두라고요. 당신이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하지 마요. 구택 씨는 절대로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니까요."소희가 물었다. "그럼 당신을 좋아하는 건가요?"소율의 눈빛에는 슬픔이 스쳤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아니요,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소율도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소율은 계속 말했다."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소희 선생님."하인은 갑자기 소율의 말을 끊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둘째 도련님이 소희 선생님이 단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주방에서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소희 선생님은 어떤 케이크가 드시고 싶으세요?"소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초콜릿 무스면 돼요. 고마워요.""네." 하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소희는 소율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와 어깨를 스치며 화장실을 떠났다.소율은 소희의 뒷모습을 차갑게 쳐다보며 마음속의 증오가 더욱 짙어졌다.전에 그녀가 진 이유는 그 여자보다 못하기 때문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절대로 과외나 하는 가난한 학생에게 질 수 없을 것이다!식사할 때 하인은 소희에게 5인분 정도 하는 케이크를 가져왔다.소희는 유민이 케이크를 쳐다보길래 그에게 물었다."절반 줄까?"유민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여자들만 이런 거 좋아할걸요."소율은 우아하게 나이프와 포크로 치즈 연어를 먹고 있었다. 유민의 말을 듣자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유민아, 모든 여자들이 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들만이 그런 거 좋아하는 거라고.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하게 맛 좋은 것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케이크만 먹으면 행복해하거든."말을 마치자 그녀는 소희를 향해 웃었다."사실을 말하는 거지 소희 씨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요."소희
소희는 이미 현관에 가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몸을 돌려 인사를 했다."구택 씨, 먼저 갈게요. 유민아, 다음에 보자."유민은 소희가 문을 나서는 것을 지켜보고는 고개를 돌려 입을 뗐다."둘째 삼촌, 우리 아빠 생일이라서 선물 좀 골라 봤어요. 삼촌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어요."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 먼저 올라가. 이따가 내가 찾으러 갈게.""빨리 와요!" 유민은 소율을 한번 흘기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구택은 거실로 가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소율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구택 씨, 넌 소희 씨가 유민이랑 너무 가깝게 지낸다고 생각하지 않아?"구택은 소파에 앉아 표정이 싸늘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물론이지!" 소율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우리 셋째 삼촌이 전에 청한 과외 샘이 일부러 한예를 끌어들여서 가족들과 다투며 그녀의 월급을 올려주라고 그렇게 떼를 썼잖아. 결국 우리 셋째 삼촌한테 해고당했어. 그리고 일반 정규 과외 회사에도 규정이 있어. 주인집 아이와 너무 가까이하지 못하게 말이야. 모두 이유가 있는 거라고!"구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소희 씨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에요."소율은 코웃음쳤다."유민이가 그녀 편을 되게 들더라. 두 사람도 그녀의 단순한 외모에 속지 마.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야!"구택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너랑 무슨 상관인데?"소율은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스스로 비웃었다."그래, 나랑 상관없지. 나도 그냥 일방적으로 이러는 것뿐이고! 너 설마 그 여학생을 좋아하니? 그럼 구은서는 어떡하고?"구택의 안색은 점점 차가워졌고 눈빛은 빙설로 뒤덮인 듯 싸늘하며 의미심장했다. 그는 일어나서 소율을 차갑게 쳐다보았다."너무 한가하면 길거리에 가서 쓰레기라도 주워. 네가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을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앞으로 내 허락 없인 내 집에 오지 마!"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응, 생긴 것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네가 쟤 남자친구 뺏으려면 난도가 좀 있을 거야."하나가 갑자기 분석했다.소희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너 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하나는 헤헤 웃었다."네 생각!"소희는 담담하게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난 너한테 관심 없는데.""누구한테 관심 있는데? 주민?" 하나는 농담하며 쫓아왔다."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알아봐 줄게. 주민이라는 사람이 어떤지."소희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문득 좋은 생각이라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하나는 놀라며 말했다."너 정말 걔 좋아하는 거야?"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네가 똑똑히 알아봐 주면 그때 내가 알려줄게."하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소희가 일부러 그녀를 애태우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밤.구택이 어정에 돌아왔을 때 이미 밤 11시였다. 그는 소희가 이미 잠든 줄 알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그가 다가갔을 때 마침 머리가 절반인 사람이 여주인공의 침대 밑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남은 한쪽 눈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시원이 오늘 저녁 국내로 돌아왔기에 두 사람은 술을 좀 마셨다. 그는 방금까지만 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술기운이 이따금 솟구쳤다.그는 소희의 뒤로 가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영화 보는 거죠?"소희는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입가에 딸기잼이 조금 묻은 채 그를 멍하니 쳐다보며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언제 돌아왔어요?"구택은 할 말을 잃었다."......"그는 손을 들어 눈썹을 살짝 만지며 담담하게 말했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그래요!" 소희는 대답을 하고는 계속 영화를 보았다.영화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 구택은 안방에서 나와 천천히 소희의 곁으로 가서 앉고 소파에 기대어 소희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소희는 남자를 한 번 보았다. 그는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다. 몇 가닥의 약간 젖은 검
소희는 바로 눈을 감으며 속눈썹을 살짝 떨었다.남자의 차가운 입술이 그녀의 미간을 따라 그녀의 연분홍색 입술에 한참 머물고서야 그는 그녀를 다리에 안고 짙게 키스했다.그는 그녀의 입술 깊숙한 곳의 딸기맛을 맛보았고 소희는 술의 향기를 빨아들였다. 독하고 진한 술은 사람을 매혹시켰다.의식이 모호해질 때 소희는 갑자기 오늘 소율이 임 씨네 집에서 못다 한 말이 생각났다. 구택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람은 누구 일가?그처럼 모든 것을 가진 남자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갑자기 소희는 혀끝이 아팠다. 남자는 그녀가 지금 집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녀를 깨물며 벌을 줬다.소희는 남자의 목을 두 팔로 감으며 비위를 맞추는 듯 그의 응답을 기다렸다.이 밤, 구택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가끔 참지 못하고 그녀를 거칠게 대했어도 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달래주는 말을 많이 했다.영화는 이미 끝났다. 초여름의 부드러운 바람은 반쯤 열린 창문으로 불어들어오며 커튼을 살짝 날렸고 소희의 부드러운 검은 머릿결을 불며 어두운 밤 속에 흩날리게 했다.무더운 날씨에 갑자기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같았다. 상큼한 느낌이 입술 사이로 번져 목을 따라 내려가며 쾌감이 몸에서 서서히 퍼져갔다.......월요일, 강성대 의과 부속병원.VIP 병실 안, 우청아는 소파에 앉아 책을 보다가 안에서 허연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청아야, 나 사과 먹을래. 사과 좀 깎아줘.""알았어!" 청아는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사과 하나를 들고 껍질을 깎기 시작했다.허연은 청아 외삼촌댁의 사촌 언니였고 장사를 하는 외삼촌댁은 부유하여 청아네 집안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이번에 허연이 다치자 그녀의 어머니는 기어코 허연을 돌보겠다고 나섰다. 청아는 그런 그녀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믿을 수 없었으니 외삼촌이 앞으로 그녀와 그녀 오빠를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그녀는 조금도 내키지 않았지만 허연이 자신의 어머니를 이리저리 심부
"싫어요, 난 안 헤어질 거예요!" 허연은 눈물을 흘렸다. 방금 가지만 해도 그렇게 부드러운 남자가 순식간에 가차 없이 헤어지자고 하다니. 그녀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체면을 버리고 애원했다."시원 오빠, 사랑해요. 정말 사랑한다고요. 그러니까 기회 한 번만 더 줘요. 네? 나 앞으로 오빠 말 꼭 잘 들을게요!"시원은 냉소하며 말했다."넌 나란 사람을 사랑하는 거니 아니면 내 돈을 사랑하는 거니?"허연은 대뜸 말했다."당연히 오빠를 사랑하는 거죠!"시원은 목소리가 차가웠다."돈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설백현의 비취는 왜 받았어? 예쁘다고 생각해서라고 대답하지 마."허연은 잔뜩 후회해하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그럴게요. 시원 오빠, 진짜로요."시원은 이미 귀찮아졌다."아직 좋은 추억이 좀 남아있을 때 좋게 헤어지자. 날 역겹게 하지 말고. 앞으로 밖에서 내 이름으로 일 저지르지 마.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할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그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허연은 달려들었지만 카펫에 걸려 넘어졌다. 그녀는 시원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것을 보며 엉엉 울었다."시원 오빠, 나 용서해 줘요. 정말 잘못했어요!"청아가 보온병을 들고 돌아왔을 때 마침 떠나는 시원과 마주쳤다. 그녀는 놀라서 물었다."벌써 가는 거예요?"시원은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무슨 일 있나요?""허연은 당신 여자친구 아니에요?" 청아는 손에 든 보온병을 그에게 건네주었다."그러니까 그녀 좀 돌봐줘요. 난 오후에 다른 일이 있어서요."시원은 책 속에서 나온 귀공자처럼 온화하고 우아했다."미안하지만 더 이상 아니에요."말을 마치고 그는 청아를 무시하고 떠났다.청아는 한동안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민 손도 미처 거두지 못했지만 남자는 이미 떠났다.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병실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허연이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시원 오빠, 내가
청아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하며 갑자기 목이 메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허연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가난하고 포부가 없어서 스스로 허연 집안에 아부했다. 그녀가 욕한 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그녀도 원래 행복한 가정이 있었지만 우임승이라는 그녀의 아버지가 도박에 미쳐서 그들의 집안을 망치는 바람에 그녀의 어머니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그녀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어른이지만 친정의 조카한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게다가 그녀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길가에 세워진 마이바흐 운전석에 앉은 시원은 소녀가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가 본 우는 여자들은 헤어져서 펑펑 울거나 아니면 억울하는 척하며 울었지만 지금까지 누가 이렇게 우는 것을 그는 본 적이 없었다.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그저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려왔다.엄청 슬퍼 보였다.그는 속으로 심지어 그녀를 동정했다. 왜 이렇게 슬프게 우는지 묻고 싶었다.......허연이 여전히 전화에서 화를 내는데도 불구하고 청아는 전화를 끊고 눈물을 닦았다.그녀는 노력해서 반드시 엄마가 허 씨 가족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도록 할 것이다!그녀가 막 가려고 할 때, 갑자기 고급차 한 대가 그녀 앞에 세워졌고 차창이 내려오자 남자의 잘생기고 온화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옅은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누구더러 찌질한 남자라고 말한 거죠?"청아는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시원은 고개를 살짝 들어 앞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가가 전부 빨개졌고 마치 한 마리의 토끼 같았다.빨간 눈의 토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슬프고 분한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바로 당신이요!"그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한테 화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마침 그녀가 허연 때문에 울 때 나타났다.시원은 화를 내지 않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내가 왜 찌질해요
시원은 다소 의외였다. 매부리는 매우 신비한 조직으로서 오로지 돈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일을 처리했다. 돈만 충분하고 완성할 수 있는 임무라면 그들은 종래로 실수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아무도 매부리에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이번엔 누가 돈을 써서 매부리를 찾아 설백현을 잡으러 갔을까?소 씨 집안?소 씨 집안은 확실히 그를 잡을 이유가 있었다.시원은 마음속으로 헤아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이 일은 더 이상 상관하지 말고 사람들 데리고 돌아와!"그가 설백현을 잡으려고 한 것은 허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의 분노를 삼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감히 그의 여자한테 구애하다니. 이건 여태껏 없었던 일이었다.그러나 지금 누군가가 그를 위해 힘을 썼으니 그도 더 이상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네, 형님!"시원은 또 사람을 파견하여 이 일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설백현은 누군가에 의해 묶인 채로 경찰서 문 앞에 던져졌다.경찰서 사람들은 누가 그를 잡았는지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 봤지만 뜻밖에도 아무런 화면도 없었다.......점심에 수업이 끝나자 소희와 하나는 교외로 나가 밥을 먹었다.두 사람이 교문을 나설 때 마침 소연이 소 씨네 집안의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하나는 소연의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가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내가 학교 채팅 그룹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4학년 선배가 있거든. 어제 내가 채팅하다 그냥 한 번 물어봤는데 글쎄 누가 주민이 예전에 소연을 쫓아다니며 고백했지만 실패했다는 거야."소희는 의외였다. "언제 일인데?"하나는 대답했다."아마 선배들이 1학년 때였을걸. 그들은 우리보다 한 학년 위잖아. 그때 임유림은 아직 강성대에 오지 않았고."소희는 머릿속에 문득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고 하나에 의해 앞으로 끌려갔다."내가 좋아하는 사람 맞은편에 있어. 빨리 가자고."소희는 어이가 없었다."......"소연은 차를 타고 국화 선생님 여정을 만
소연은 핸드폰을 쥔 손에 땀을 흘렸다."할아버지, 저는 금방 졸업해서 당분간 맞선보고 싶지 않아요."해덕은 한순간 침묵하며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연이야, 요 2년 동안 사업이 그렇게 잘되지 않아서 우리 소 씨네 집안은 이미 예전만 못해. 강성은 곧 큰 프로젝트 하나를 개발할 건데 마침 책임자가 서휘경의 고모부야. 만약 이 일이 잘 되면 우리 집안도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연이야, 너도 소 씨네 집안에서 20여 년간 지냈으니 양심이 좀 있어야지. 할아버지는 네가 줄곧 철이 있고 은혜를 알고 보답하는 아이란 거 잘 안다."소동은 숨을 쉬지 못했다."할아버지, 저도 소 씨네 집안 덕분에 이렇게 잘 자랄 수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저는 반드시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께 잘 효도할 거예요."해덕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무슨. 지금 효도할 기회가 있잖아."그는 또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사실 정상적으로 말하면 소희야말로 우리 소 씨네 집안사람이야. 너희 부모님의 재산은 모두 그녀에게 줘야 하거든. 그러나 네가 말 잘 들으면 할아버지한테 다 방법이 있어."소연은 머리가 윙윙거리며 한참 지나 입을 열었다."어디서 만나면 되죠?""저녁 6시, 샹젤 웨스트 레스토랑. 잘해봐."전화를 끊고 한참 지났지만 소연은 여전히 손발이 차가웠고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소 씨 집안은 지금 그녀를 서 씨네로 팔려고 한다는 생각!평소에 소가네 어르신은 모두 상냥하고 자상하며 마치 그녀를 친 손녀로 여기며 잘 대해줬지만 관건적인 상황에 부딪치자 그녀는 그들에게 있어 자신은 그냥 이익을 교환할 수 있는 물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그들은 왜 소희 보고 그 서휘경과 결혼하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설마 그녀가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대로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절대 그럴 순 없었다. 그녀는 20년 동안 응석받이로 자랐으니 결코 그들에 의해 자신의 미래를 망치지 않을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