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는 한 무리의 용병들이 소희를 포위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를 인질로 소희를 위협했었다. 그러다 소희는 기습당하고 용병 한 명이 그녀에게 불명의 약물을 주입했지만, 소희는 순간 그 용병을 죽이고 나머지 용병들과 뒤엉켰다.당시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소희를 도우러 가려고 했지만 온몸이 나른해져 있었고, 어느 순간에 목덜미를 한 번 맞고 다시 기절해 버렸다.그러다 다시 깨어나니 이미 여기에 있었고.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희를 포위 공격했던 사람은 누구지?불곰인가?그럼 또 누가 그를 강성으로 데려온 거지?머리가 너무 아프고 혼란스러워 전혀 냉정하게 사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손발에 여전히 힘이 없었다. 다행힌 건 전처럼 전혀 걸을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상 쪽으로 걸어가 생수를 집어 들고 급히 마셨다.마시자마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그가 다가가 문을 열자 간미연이 성큼성큼 뛰어들어 그의 옷을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소희는? 소희는!"어젯밤 경기를 마치고 핸드폰에 접속한 후에야 그녀는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장명원의 몸은 그녀의 힘에 따라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러다 간미연을 멍하니 바라보며 대답했다."나도 몰라. 아마, 아마......"그 많은 사람들에게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었는데, 아직 살아 있을까?간미연는 힘껏 그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이를 악물며 그를 노려보았다."이 나쁜 놈아!"장명원은 바닥에 쓰러져 멍하니 간미연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이때, 간미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내용을 확인한 간미연의 눈빛은 순간 밝아졌다. 매곡리에 마침내 소희의 위치가 나타났다.그녀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장명원이 바로 따라와 간미연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간미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남자를 돌아보았다."너 아직도 모르겠어? 왜 임무를 받은 건 보스인데
그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하지만 목구멍이 메이는 것 같은 감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한참 후 그는 차를 몰고 있는 간미연을 쳐다보았다.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목소리는 엄청 낮았다."너, 푸른 독수리야?"앞쪽만 주시하고 있는 간미연의 얼굴색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장명원의 물음에 묵인했다.장명원이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왜 전에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간미연이 듣더니 차갑게 그를 흘겨보았다."우리 셋 맹세한 적이 있어, 그 누구든 신분을 절대 폭로하지 않겠다고. 나와 보스는 서로 공개한적도 없어, 다만 서로를 묵인했을뿐.”장명원이 자조하듯 냉소했다."역시 나만 바보였어.""너 바보 맞아."간미연이 인정사정 없이 장명원을 욕했다. 그러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 주시후, 수상해."그건 장명원도 이젠 눈치챈 일이다.주시후가 불곰을 찾는다는 이유로 그를 끌어들였던 건 사실 소희를 쳐내고 싶어서였겠지.나중에 밀수에서 만난 그 사람도 주시후 쪽 사람일 것이고. 고의로 그를 기절시켜 묶어둔 후 소희를 협박하려고.그는 정말 어리석었다. 구은서를 믿었기 때문에 주시후도 아무런 의심없이 믿었는데, 주시후가 소희를 상대할 때 쓰이게 될 미끼로 되다니.간미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주시후가 수상하다는 걸 눈치챘으면, 구은서도 배후 주모자일거라는 건 생각해 본 적 있어?"장명원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구은서가 그를 주시후에게 추천했고, 주시후는 소희를 죽이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더는 구은서가 주시후의 계획을 모를 거라며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주시후와 소희 사이에는 원한이 없다. 소희와 원한이 있는 사람은 구은서다.그럼 나중에 그를 납치한 일은?구은서가 알까?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가 자칫하면 불곰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건?장명원의 마음에 순간 한기가 돌았다. 이때서야 그는 자신이 완전히 구은서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우연히 그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또 주시후를 통해 소희에 관한
시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두 사람, 매곡리 쪽 사람인가? 줄곧 소희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던 것도 그쪽이고?""네. 중간에 오해가 좀 있긴 했지만, 하얀 독수리는 절대 고의로 보스를 해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이미 잘못을 뉘우치고 있기도 하고."간미연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장명원은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언에게 잡혀있는 그는 전혀 반항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장명원을 풀어준 시언의 눈빛에는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부하를 향해 말했다."서희한테 보내줘.""감사합니다, 진언님!"간미연이 듣더니 바로 감사를 표했다.소희는 양지바른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상처가 전부 봉합 처리된 소희는 하얀 잠옷을 입고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얼굴색은 무서울 정도로 창백했다.옆에는 하녀 한 명이 멍들고 부어오른 주사바늘 자국을 따뜻하게 찜질하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들어온 걸 보고 소리 없이 물러났다.침대에 누워있는 소희를 보면서 장명원은 후회와 자책하는 심정이 점점 용솟음쳤다. 그리고 그 심정에 손가락마저 떨렸고 콧등과 목구멍도 시큰시큰해 났다. 결국 두 무릎이 나른해지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그는 정말 세상 멍청이었다.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무고한 소녀일 뿐인데.왜 그녀를 겨냥하고, 왜 구은서를 도와 그녀를 해치려한 거냐고!그가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어리석은 짓을 했는데,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를 탓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위급한 순간에도 그녀는 그를 먼저 보호했었다.그 때문에 그녀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지금 돌이켜보면, 바보같은 짓들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았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후회되기 그지없었다.간미연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침대 옆으로 가서 조용히 소희를 바라보았다.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돌려 장명원에게 말했다."소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그래, 그녀는 아직 살아있어. 모든 잘못을 만회할 수 있고
구은서가 장명원에게 물 한 병을 가져다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명원아, 뭐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물 좀 마시고, 앉아서 천천히 말해 봐."장명원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구은서, 넌 줄곧 나를 이용하여 소희를 상대하고 있었어. 우리 어릴 때부터 알면서 쌓아온 의리를 이용하고 있었다고, 네가! 난 너를 친누나로 생각해서 망설임 없이 네 편에 섰어! 하지만 넌? 나의 손을 빌어 소희를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어! 임구택 때문에 소희를 죽이려 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나까지 죽이려 했다고, 너! 구은서, 너 어떻게 이렇게 끔찍할 수가 있어?"한 사람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게 정상이었던 것이다.적어도 이 일이 있기 전에는 그는 구은서가 이렇게 위선적이고 독한 여자라는 걸 절대 믿지 않았다.구은서의 얼굴색이 많이 덤덤해졌다. 그러고는 여전히 무고한 눈빛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명원아, 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소희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넌 뭘 또 내가 너를 죽인다고 그러는 거야, 무섭게."장명원의 빨갛게 달아오른 눈에는 실망과 침통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구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아직도 모르는 척할 거야? 좋아, 모르는 척해도 되고, 모든 것을 네 사촌 오빠 주시후에게 떠넘겨도 돼. 주시후는 이미 밤새 외국으로 도망쳤고, 아무도 너와 대치할 수 없을 거니까, 계속 그렇게 모른 척하고 있으라고!"임구택마저도 단서라고는 Maduro밖에 없었고, 아무것도 물어내지 못했다.Maduro도 중간에서 커미션만 받고 일을 처리했을 뿐, 구체적인 상황은 너무 상세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지금은 불곰이 죽고 주시후도 온데간데없이 달아났으니, 아무도 더 이상 진상을 알지 못할 것이다.구은서는 냉담하게 장명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난 아무것도 몰라.""승인 안 해도 돼. 너 내가 너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잖아."
3일이 지나서야 소식을 전해 들은 성연희와 서인은 곧장 차를 몰고 교외의 장원으로 갔다.차에서 내린 성연희는 두 다리가 나른해져 하마터면 땅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러는 그녀를 서인이 신속히 부축했다.성연희는 얼굴색이 창백해진 채 천천히 몸을 곧게 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 괜찮아."하인이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고, 방에 들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소희를 보자마자 성연희는 울음을 터뜨렸다.계속 걱정하고 있던 서인이 그녀의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울음소리에서 그녀가 진짜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소희는 어젯밤에 이미 깨어났다. 다만 움직이지도 못하고 혼미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 성연희의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눈을 뜨고 입구 쪽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나 죽지도 않았는데, 왜 울어?"목소리가 쉬어 있었다.소녀의 초점을 잃은 두 눈을 보며 성연희는 마음이 아파 아무 말도 못하고 오로지 울기만 했다. 마치 어린애 같았다."서인아, 너도 거기 있어? 네가 좀 말려줘."소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얘 울음소리에 머리가 아파."적의 손에서도 살아 남은 소희는 성연희의 울음소리에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성연희가 듣더니 애써 슬픔을 숨기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 소희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흐느끼며 말했다."서인한테 부탁해도 소용없어. 서인은 오는 길 내내 얼굴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고. 서인을 어떻게 위로할지나 생각해 봐."소희는 서인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드리우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인아, 앞으로 우리 모두 발 뻗고 살 수 있을 거야."서인은 갑자기 눈이 뻑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입술을 굳게 오므린 채 말을 하지 않았다."너희 둘이 이야기해, 나 나가 있을게."남자는 한마디만 하고 돌아섰다.성연희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일부러 콧방귀를 뀌었다."봐, 내가 서인이 무조건 화를 낼 거라고 말했잖아
그러다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며 신속히 눈가를 닦았다.시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요 몇 년 동안 난 줄곧 서희를 삼각주에 관한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고, 불곰을 찾아가 복수하는 것도 제지했지만 서희는 항상 내 쪽 사람의 눈을 피해 불곰을 죽어라 물고 놓지 않았지. 이번에 만약 내 쪽 사람이 서희의 수하가 서희에게 보낸 메시지를 알아내지 못했다면, 서희는 이미 불곰과 함께 죽었을 거야."서인이 듣더니 자조하듯 웃었다."서희가 만약 이대로 백양 만나러 갔다면, 저도 따라갔을 겁니다. 마침 다 같이 모일 수도 있고."그의 말에 시언이 그를 노려보았다."너희들은 정말 같은 고집불통이야."서인이 입꼬리를 헤벌리며 말했다."어쩔 수 없죠. 같은 상사의 손에서 나온 병사이니 성격도 같아진 거겠죠."시언이 웃으며 서인의 어깨를 세게 두드렸다."그 당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백양과 홍복 그들이 목숨으로 바꿔줬기 때문이야. 그러니 열심히 살아. 서희의 눈은 내가 반드시 치료해 낼 거야."서인은 눈빛이 순간 굳건해져 대답했다."그럴 겁니다."그러다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했다."서희와 임구택이 헤어졌습니다.""알아."시언은 얼굴색이 어두워져서 말했다."서희와 임구택 사이의 일은 아마 서희 자신만이 가장 잘 알고있을 거야.”예전에 소희가 갑자기 임구택에게 시집가겠다고 했을 때 그는 수상쩍어 몰래 임구택을 조사했었다. 그리고 그제야 모든 걸 눈치챈 그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별로 막지도 않았다."밀수 사건, 임구택도 참여했다죠?"서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사람은 그가 들여보낸 게 맞지만, 그도 포위된 사람이 서희라는 걸 몰랐어."시언이 대답했다.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임구택이 진심으로 소희를 좋아한다는 것을 진작에 눈치챘었다. 그러니 설사 두 사람이 이미 헤어졌다 하더라도 임구택이 그렇게 모질게 소희를 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임구택이 자신이 하마터면 소희를 죽일 뻔했다는 걸 알게
구 부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구성봉을 밀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그의 곁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부드럽게 말했다."성봉 씨, 다 도착했어요. 다들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어요.""회장님!"그룹의 몇몇 원로들이 구성봉의 모습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구성봉은 말을 할 수가 없어 충성심이 지극한 그룹 원로들을 복잡하고 또 처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몇몇 원로들은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마음이 무겁기도한 채 그의 뜻에 따라 다시 앉았다.구은서가 구성봉 앞에 가서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아빠, 제가 그룹을 인수한 후에 반드시 그룹을 더 크고 강대하게 만들 겁니다. 절대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니까 아빠는 엄마와 함께 집에서 만년을 누리세요."구성봉은 눈빛이 혼탁하고 흐리멍덩해진 채 구은서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구은서는 구 부인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일어서서 함께 온 변호사에게 말했다."아빠의 지분 이양 협의서를 읽어주세요. 아빠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면 서명하신 걸로 하죠."구성봉은 서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고개만 끄덕이면 동의한 셈 치고 다른 사람이 그의 손을 들고 협의서에 서명할 수 있었다.변호사는 큰 소리로 협의서를 한 번 읽은 후 구성봉에게 물었다."구 선생님, 이 협의서는 선생님께서 깨어나 있고, 자주적인 사고를 할 수있는 상황하에서 작성된 거 맞으신가요?”구성봉은 여전히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주주와 그룹 고위직 직원들은 이미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린 채 구성봉을 쳐다보고 있는 그들은 구성봉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하에서 강요당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구은서가 구 부인에게 눈짓을 했다.구 부인이 즉시 허리를 굽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성봉 씨, 어서 고개를 끄덕여요. 집에서 이미 상의가 다 끝난 일이잖아요."그러고는 또 목소리를 낮추어 남자의 귓가에 대고 한마디 했다.구성봉은 그제야
서인의 출현은 구씨 모녀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지분 이양 협의도 그 자리에서 폐기되었다.회의가 끝난 후 서인은 구성봉을 밀고 떠났다. 그러다 구은서의 곁을 지날 때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입을 열었다."알아? 사실 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 만약 네가 조용하게 살았다면, 가문을 너에게 준다해도 난 상관없었거든. 하지만 소희만은 건들지 말았어야지. 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구은서는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서인을 바라보았다.그러다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뭐야, 알고 보니 네가 돌아온 게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희를 위해서였네?"서인의 눈빛이 차가웠다."아버지는 너희 모녀를 선택하고 내 어머니를 포기했을 때 이미 오늘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했어야 했어. 모든게 그 자신의 선택인데 내가 왜 그를 동정해야 하지?"구성봉도 그의 말을 듣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서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구성봉을 밀고 성큼성큼 떠났다.구은서의 상기된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주먹을 너무 꽉 쥐는 바람에 방금 한 네일이 손바닥 살을 파고 찔러들었다.구 부인이 놀라서 구은서에게 물었다."구운정이 한 말이 무슨 뜻이야? 소희는 또 누구고?""엄마는 알 필요없어!"마음속의 원한이 극에 달한 구은서는 차갑게 한마디 내던지고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을 떠났다.*이틀 뒤면 강성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아문영화제가 열리게 된다.구은서는 전에 찍은 한 편의 영화로 상대 배우들을 제치고 최여우주연상을 받게 되었다.하지만 그녀가 무대에 올라 상을 받고 막 수상 소감을 발표하려던 찰나, 갑자기 일렬로 늘어선 경호원들이 몰려들어 통로를 전부 봉쇄했다.객석에 앉은 배우들이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일이야?""저 사람들은 누구야?""장내 경비원들은?"......다들 수군거리고 있을 때, 성연희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붉은색 긴 치마를 입은 그녀는 차가우면서도 요염한 기풍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한 걸음 한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