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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Author: 라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9 19:50:23

#16 또 다른 수컷들의 접근

시간은 흘러, 다시 불타는 금요일이 다가왔다.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성수동의 복잡한 거리.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인파가 붐비는 그 중심에, [에테르]의 팝업 스토어가 화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윤, 시은, 재희, 채아 네 사람이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각자의 개성에 맞게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 네 여자는, 길을 걷는 내내 숱한 수컷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핸드폰 액정 속 에테르의 세상에 쏠려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근데, 우리가 팝업 스토어 가는 날짜랑 시간이 왜 궁금한 건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쏟아지는 근처 대형 카페.

재희가 신경질적으로 X앱을 종료하며 핸드폰을 대리석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투덜거리는 목소리였다.

"내 말이. 우리가 간다고 오빠들이 오는 것도 아닌데 왜 물어 보는 거야. DM으로 오지게들 물어 보네 진짜. 하, 귀찮아..."

채아 역시 읽지 않은, 징그러운 DM의 숫자를 보며 붉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막대한 자본과 시간, 열정을 갈아 넣는 그녀들 입장에선 기왕이면 팬들이 많이 몰리지 않는 쾌적한 시간에 여유롭게 방문하고 싶었다. 사람이 바글바글 거리면 예절 샷 하나 예쁘게 찍기도 힘들 뿐더러, 굿즈를 고르고 결제하는 데에만 끔찍한 체력과 시간이 소비되기 때문. 이 이유로, 굳이 평일을 선택해서 반차까지 쓰고 온 그녀들이 아니었던가.

"맨날 네임드라고 이름만 오르내리니까 우리 얼굴이 궁금해서 그런가?"

"우리 얼굴 알면 뭐, 멤버들이랑 친해지는 것도 아닌데, 왜들 쓸데없이 힘 빼는지 모르겠네, 진짜."“

하윤과 시은 역시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에테르 팝업 스토어가 시작되는 수요일 전부터 오늘 아침까지, 그녀들의 X계정으로 쏟아지듯 밀려든 수십 통의 DM 알림.

사실 네 사람은, 한 시간 전에 이미 팝업 스토어 입구까지 갔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대기 줄과 그 좁은 공간에 짐승 떼처럼 바글바글한 루미의 인파를 보고는 경악하며 곧장 발길을 돌린 참이었다.

어쩌면 이 눈에 띄는 네임드 네 명이 오늘 한꺼번에 팝업에 강림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거나 실물 구경이나 해보려는 수많은 루미들이 득달같이 몰려든 것인지도 몰랐다.

결국 인원이 좀 빠지기를 대기하느라, 그녀들은 근처 카페에 죽치고 앉아 달달한 디저트를 파먹으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헐!!! 미친, 대박!!!"

갑자기 테이블 위에서 짧은 진동을 울린 핸드폰을 확인하던 재희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재희에게로 쏠렸다. 재희는 숨을 헐떡이며 제 핸드폰 화면을 세 사람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 심재희 고객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에테르♡ 지한, 채민, 해성과 함께하는 기분 좋은 경험, 코스메틱 ☆플루아☆ 프라이빗 팬 싸인회에 최종 당첨되셨습니다. 하단에 보내드린 링크를 통해… ]

스무 명의 극소수만 뽑는다는 극악의 확률, [ 플루아 ] 대면 팬싸 당첨 문자였다.

"대박, 미친!! 언니, 진짜 대박이다!!"

채아는 재희보다 훨씬 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박스째로 제품을 사재기하고 영수증을 인증했음에도 재희 혼자만 당첨된 것이 못내 아쉽긴 했다. 하지만 같은 무리의 언니가 그 극악의 확률을 뚫었다는 사실에 진심 어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채아 역시 팬싸 참여 인원이 단 스무 명이라는 사실에 거의 포기를 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에, 오히려 재희의 당첨 소식이 드라마틱하게 놀랍고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 서사는 하윤과 시은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함이 맞았다.

하지만...

"어? 아... 어... 와... 진짜 대박. 축하해.“

"좋겠네, 우리 재희...“

축하 인사를 건네는 하윤과 시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묘하게 스치고 있었다.

당첨 소식에 정신이 팔린 재희와 채아는 당장에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잠시 후.

징-.

채아의 핸드폰마저 테이블 위에서 요란하게 떨었다.

"씨발! 언니! 나도 떴어! 나도 붙었어!!!"

채아가 제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돌고래 같은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재희와 채아는 좁은 테이블 너머로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방방 뛰며 환호했다.

단 스무 명. 그 숨 막히는 경쟁률을 뚫고, 내 최애 멤버와 코앞에서 눈을 맞추고 입을 털 수 있는 폐쇄된 공간에 두 사람이 함께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꺅꺅거리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던 두 사람은, 순간 등골이 싸해지는 걸 느끼며 슬금슬금 하윤과 시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 언니들...'

언니 둘을 제치고 동생 둘만 덜렁 붙어버렸으니, 괜스레 미안하고 뻘쭘해진 재희와 채아는 방방 뛰던 발을 멈추고 다시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헛기침을 했다.

"뭘 눈치를 보냐? 맘껏 좋아해도 돼. 우린 뭐 어차피 안 걸릴 줄 알았어…"

"그래... 어차피 걸렸어도 못 갔어... 망할... 하... 니들이라도 가서 실컷 즐기고 와."

하윤과 시은이 씁쓸하게 웃으며, 마치 인생의 쓴맛을 다 본, 달관한 어른처럼 굴었다.

"그... 케이크라도 좀... 더 시킬까?"

항상 텐션이 높았던 두 언니들이, 팬싸에 당첨되지 못했다는 것에 엄청 실망을 했다는 착각을 한 채아가, 미안한 마음에 지갑을 열 준비를 하며 나지막이 물었다.

"오우, 좋지. 달달하게... 당이나 충전 시킬까?“

"그래, 좋다. 우리는 케이크나 열심히 먹자."

하윤과 시은의 말에 채아가 재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케이크와 추가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 쪽으로 멀어지자, 얌전하게 축 처져 있던 하윤과 시은의 표정이 순식간에 표독스럽게 돌변했다.

"와, 이태현 개새끼! 진짜 끝끝내 딱 저 두 장만 빼준 거야?"

시은이 텅 빈 자신의 핸드폰 알림 창을 다시 한 번 신경질적으로 확인하고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씹어 뱉었다.

"어. 이태현, 며칠 전에 전화 왔더라. 뒤로 뺄 팬싸 티켓 두 장에 넣을 신상 정보 빨리 넘기라고. 혹시나 해서 진짜 두 장만 빼냐고 물었더니... 하, 피식 비웃고 전화 끊어버리던데?“

"하, 이태현 독한 새끼. 아~ 진짜 지난 주 모임은 내 인생 최악이었다니까! 내 새끼, 우리 태윤이 사진... 하, 씨발, 백현민 개새끼가 다 지워버린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

"나는 차건우 달랜다고 얼마나 영혼을 불태웠는지 아냐? 팬싸라도 갈 수 있었으면 억울하지도 않겠다."

현생의 그 지독한 알파메일 수컷들의 병적인 통제와 질투 때문에, 코앞에 굴러 들어온 내 새끼들을 영접할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려야 했던 이 엿 같은 운명을 한탄하며 한숨을 뱉어내는 그녀들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지인 찬스까지 썼는데 말이다.

"근데 하윤아. 애들이, 니가 뺀 티켓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 이거, 말해야 되는 거 아냐?"

"아, 팬싸 당일에 살짝 언질 해준대. 그리고... 지금 얘기하면 쟤들이 얼마나 미안해하겠어. 차건우랑 백현민 때문에 우리는 못 간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하긴... 뭐…"

두 사람은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좋겠다, 채아랑 재희는. 애들이랑 살 냄새도 맡고 꽁냥꽁냥 거릴 거 아냐."

"그러게... 그래도 뭐, 우리 최애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거기에 위안 삼자, 우리."

쓰린 속을 달래며 합리화하는 사이, 채아가 양손 가득 사 온 최고급 디저트를 보며 금세 밝아진 하윤과 시은은, 그래도 두 동생들을 기쁘게 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털어냈다.

그리고 당을 두둑하게 채운 뒤, 다시 결의를 다지며 팝업 스토어로 향한 네 사람이었다.

다행히 아까보다는 인파가 꽤 많이 빠져 있었다.

네 사람이 등장하자, 에테르의 네임드 팬임을 아는 여러 루미들로 인해 시선 집중이 되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남들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X에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각자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각자의 취향대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여전히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공간 자체가 주는 벅찬 도파민 덕분에, 이를 구경하고 즐기기엔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때였다.

팝업 스토어 외부 입구 쪽에서부터 건물 유리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엄청난 비명과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악!!!!“

"미친!!!“

"대박!!!“

깜짝 놀란 네 사람의 시선도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쪽을 향해 홱 돌아갔다.

보통 이런 아이돌 팝업 스토어가 열리면, 멤버들이 사전 예고 없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개인이 짬을 내어 깜짝 방문해 팬들과 섞여 사진도 찍고, 소통하는 기적 같은 이벤트를 가끔 벌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게릴라성 방문'이기에,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천운이자 빠순이들에게는 최고의 로또였다.

"뭐야, 미친! 누가 왔어?"

시은이 흥분해서 까치발을 들고 키를 쭉 늘여 인파 너머를 쳐다봤다.

웅성웅성-

꺅꺅-

미친미친-

몸 좋은 경호원들의 가드를 받으며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두 개의 우월한 피지컬.

태윤과 채민이었다.

"미쳤어, 미쳤어! 태윤이 왔어!!!"

시은의 눈에 자신의 최애 태윤이 들어오자, 시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곧 이어 숨넘어가는 꺅- 소리가 터지는 것은 덤이었다.

"언니, 언니!! 채민이도 왔어! 대박!!!"

재희가 시은이의 팔을 부러져라 붙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좀비 떼처럼 몰려든 팬들 탓에 모든 루미들이 아주 가까이서 그들을 밀착해 볼 수는 없었지만, 내 최애들과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곳에 있는 모든 루미들은 아랫배가 찌릿해질 만큼 기분이 벅차올랐다.

네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X에 실시간 중계를 때리기에 완벽한 타이밍. 네 사람은 멀리서나마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태윤과 채민의 주변으로 경호원들이 바리 케이트를 치듯 공간을 확보했고, 수많은 팬들이 이중 삼중으로 뺑 둘러싸며 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하윤 일행은 조금 안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터라 맨 앞줄은 놓쳤지만, 태윤과 채민의 큰 키와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 덕분에 그들을 눈 안에 담는 것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 루미들, 구경 잘하고 있어?"

태윤이, 특유의 짙은 인디언 보조개를 드러내며 다정한 대형견처럼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목소리에 암컷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네에에에-!!!“

"루미들. 좀 있다가 자연스럽게 팝업 즐기는 컨셉으로 있어 줘. 나 스토리에 사진 찍어서 힙하게 올리게."

팬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영악하게 잘 다루는 채민이, 나른한 눈웃음을 흘리며 능글맞게 요구했다. 그 말에 팬들은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이 공간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순진한 루미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지금 저렇게 천사 같은 얼굴로 다정하게 웃어주는 태윤과 채민의 두 눈동자가, 사실은 이 수많은 군중 속에서 오직 '특정 먹잇감' 두 마리를 찾기 위해 짐승처럼 흉흉하게 번뜩이며 스캐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두 수컷들은 이동하는 밴 안에서부터 팬들의 X 게시글을 실시간으로 염탐하고 있었다. 오늘 '마이슈'와 '에테르테태'가 무리를 지어 이곳 팝업에 뜬다는 정보를, 이미 며칠 전에 완벽하게 캐치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팝업 스토어 안으로 들어가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 스케줄을 마치자마자 이 근처로 넘어와, 그녀들이 팝업 스토어 안으로 진입했다는 목격담이 올라오는 타이밍에 맞춰 '우연을 가장한 척' 짠! 하고 나타난 것.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루미들의 인파 탓에 시야가 가려, 그 숨 막히게 야하고 농염한 두 누나들의 실루엣이 단박에 보이지 않자 두 수컷의 속은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었다.

경호원의 통제를 받으며 줄줄 따라다니는 루미들 틈에서, 두 사람은 애꿎은 일반 팬들과 다정하게 시선을 맞추는 척 연기하며 매의 눈으로 인파 곳곳을 샅샅이 훑었다.

"형, 저기..."

채민이,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태윤의 귓가에 낮게 소곤거렸다.

시선이 닿은 팝업 스토어의 가장 뒤쪽 구석.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빛이 나는 예쁜 얼굴들, 어떤 옷을 입어도 몸매의 곡선이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여자들. 언제나처럼 독보적인 페로몬을 흩뿌리며 서 있는, 그들의 타겟, 네 명의 그녀들이 보였다.

목표물을 확인한 두 사내의 눈빛이 포식자처럼 짙어졌다.

그들은 전시된 굿즈를 은근히 구경하며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척, 교묘하게 팬들의 벽을 뚫고 기어코 뒷줄 구석에 서 있던 그녀들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어? 누나들도 오늘 여기 왔네?“

채민이 짐승처럼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우연을 가장한 반가움을 드러내어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내 아이돌이 나라는 '특정 네임드 팬'을 콕 집어서, 알아보고, 인사해 주는 일.

주변 팬들의 시기 어린 질투의 시선이 수십 개가 꽂혔지만, 그 짜릿한 우월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덕질의 최고 오르가즘이었다.

"안녕~!"

하윤과 시은, 그리고 재희와 채아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배시시 웃으며 태윤과 채민이 던져주는 그 노골적인 관심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렇게 그들만의 은밀하고 끈적한 눈빛이 오고 가던 중.

입구 쪽에서 아까보다 훨씬 더 크고 귀를 찢을 듯한 거대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악!!!!“

"대박!!!“

“오빠아!!!”

이번에는 하윤의 최애인 이시우를 필두로, 조각 같은 도현과 자이언트 베이비 해성이가 사복 차림으로 무리를 지어 팝업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 여기서 마주치네?"

"어, 왔어?"

먼저 와 있던 태윤과 채민은 방금 도착한 시우 무리와 인파의 중심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들짝 놀라며, 아니, 이런 우연! 이라며 아이돌 특유의 잔망스러운 연기력과 리액션을 아주 자연스럽게 팬들 앞에서 시연했다. 순진한 루미들은, 이것은 운명 같은 에테르의 단합력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서로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이 수컷들의 머릿속은, 그 화기애애한 입 밖의 말과는 전혀 다른 살벌한 쌍욕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 연습실 간다며? 이 새끼들... 걔네 보러 온 거 맞지?’

‘스케줄 끝나면 연습실로 빨리 기어갈 것이지, 여길 들려? 속 보인다, 씨발.’

‘기어이 냄새 맡고 왔네, 개새끼들.’

눈부신 플래시 세례와 환호하는 수많은 팬들에게 둘러싸여 천사처럼 웃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집요하고도 맹렬하게, 저 뒤쪽에서 수컷들을 단숨에 짐승으로 만들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마이슈와 에테르테태의 붉은 입술과 젖은 눈빛을 향해 끈적하게 꽂혀 있었다.

팬 서비스라는 성스러운 명분 아래 철저하게 위장된, 오로지 이 아름다운 암컷들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다분히 의도적이고도 지독한 사냥이, 팝업 스토어 한가운데서 숨 막히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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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사랑의 깊이하윤은 건우의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사실, 앵콜곡까지 맛있게 말아줄 에테르의 마지막 모습까지 끝까지 보고 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에테르 멤버들이 콘서트장의 1층과 2층 사이의 통로에서 토롯코를 타고 등장하기 직전 빠르게 짐을 꾸려 콘서트 장을 빠져나왔다. 콘서트가 진행된 지 약 3분의 2 지점이 지난 상태였다. 아쉬움이 가득 남아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결국 그녀는 이성을 부여잡았다.“포장 주문했는데요.”건우의 집 근처의 건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덮밥 집에 들려, 미리 앱으로 주문한 포장 주문 음식을 받았다. 어쩌면 피곤함에 쩔어 저녁도 굶고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난 6월과 8월의 시험 마지막 날에도 그랬으니까.기왕이면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콘서트를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왔음에도 벌써 시간은 오후 10시를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띠띠띠띠띠띠띡- 띠리리-건우 집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건우가 깨어 있었다면 하윤이 문 따는 소리에 벌써 중문 앞까지 달려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침묵과 함께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어두움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거실에는 그가 아무렇게나 옷을 던져 놓은 흔적과 탄산수 한 병을 따서 반쯤 마시다만 흔적이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네.”하윤은 그의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내 정리를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옷들은 바르게 펴 스타일러에 넣어 기계를 작동 시켰고, 반쯤 남은 탄산수는 싱크대에 버리고 병은 재활용 통에 넣었다.굳게 닫힌 그의 마스터 룸을 힐끔 보고는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들어가 보지 않기로 했다. 만약, 건우가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않는다면 게스트 룸에 가서 잠을 자면 될 것이고, 건우의 그 잘난 얼굴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몸은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윤은 빠르게 욕실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40

    #40 에테르 단독 콘서트 [ Luminate ]“콘서트 퇴근 길도 못 보고 간다고?”채아의 눈이 커졌다.에테르가 데뷔한 이래로 다섯 번째 단독 콘서트였다. 그때마다, 콘서트 기간 3일 내내, 공연을 마치고 퇴근하는 에테르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은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덕질의 룰이었다.이미 채아를 제외한 직장인 셋은, 반차를 내고 에테르의 단독 콘서트 [Luminate]가 열리는 [ KSPO DOME ]에 일찍 도착했다. 줄을 서서 콘서트 MD 제품을 구매하고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은 후, 진작에 공원 입구 쪽의 할리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콘서트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응. 마치자마자 바로 튀어가야 돼.”하윤이 아쉬워하는 채아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한 듯, 예쁜 미소를 흘렸다.가끔, 이 언니들은 참 이상했다. 에테르의 덕질에 정말 진심인 것 같으면서도 가끔 현생의 일로 에테르의 우선 순위를 바꿔버리는 기행을 하곤 했다. 빠순이질에 진심인 이들에게 현생의 일 따위는 감히 에테르보다 앞설 수 없는데 말이다.“시은아, 너는 애들이랑 같이 보고 와.”하윤은 시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오늘, 하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오늘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차건우의 10월 ‘변시 모고’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쯤에는 그가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의 콘서트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주말 콘서트보다 늦게 시작하는 이유로 밤 10시가 넘어야 끝날 판이었다.더군다나 토, 일 이틀 간 선행 연구팀의 연수가 있다고 알고 있는 건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도 억지로 삼키며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하윤이 보여준 중콘 티켓 취소 내역을 보며, 콘서트 3일 중 하루라도 재밌게 보고 오라며 저 답지 않게, 에테르의 첫콘을 쿨하게 보내준 그였다.그러니... 이하윤의 마음이 편할 턱이 있겠냐고.“나, 중간에 나가야 될 수도 있어.”하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39

    #39 콘서트의 빠순이를 위한 정신 나간 아이돌의 빌드업쿵- 쿵- 쿵- 쿵-서초동의 에테르 단독 연습실. 반복 적인 음악의 비트 소리가 끊어지지 않은 지 벌써 7시간째였다. 단독 콘서트를 2주 앞두고 연습실과 숙소만을 오가며 본업에 충실하고 있는 5년 차 아이돌, [에테르].“잠깐, 잠깐, 잠깐!”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거대한 대형 거울 속에서 도현이 춤을 추다 말고 다급하게 손을 휘젓고 있었다.도현의 손짓에 매니저가 오디오의 스탑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뚝- 음악이 끊기고 잠깐 동안 그곳은 멤버들의 거친 호흡 소리로만 가득 찼다.“하아... 하아...”음악이 끊어진 틈을 타 바닥에 하나 둘 주저앉는 에테르 멤버들. 10월 초. 밖의 날씨는 서서히 가을의 서늘한 날씨로 변하고 있었지만 연습실 안은 여전히 한여름 같았다.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어도 멤버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이거 진짜 아니야.”도현이 거친 호흡이 조금 정리 되자마자 자신이 음악을 멈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콘서트 셋리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을 때부터 계속 말이 나왔던 부분.“루미들이 좋아할 만한 셋리는 맞는데... 이거 잘못하다간 사고 나. 무대 위에서 누구 하나 죽을 일 있어? 두 곡 다 빼든지, 아니면 곡 하나를 바꾸던지 해야 된다고.”다소 격양된 목소리의 도현. 여전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나머지 멤버들은 에테르의 리더인 태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갑내기이자 팀의 맏형들인 태윤과 도현은, 계속 해서 다른 의견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5년간 활동을 하면서 앨범의 곡들 중에는 같은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노래들이 있었다. 지금 셋리에 있는 이 두 곡은 특히나 루미들이 함께 연결해서 보고, 듣는 것을 상당히 좋아 했다.문제는 두 곡 모두 매우 빠른 비트에 안무 동작이 많이 어렵고, 움직임이 많아 한 곡을 소화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는 것에 있었다. 이런 곡을 연속으로 춤추고 노래를 하려고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38

    #38 콘서트를 위한 빠순이의 빌드업[ 에테르 일본 투어 콘서트 ]에 눈이 멀어, 자신들에게 미쳐있는 남친들의 깊은 사랑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어줍잖은 계획으로 남친들의 고삐를 쥐려 했던 어리석은 빠순이들, 이하윤과 최시은은...주말 내내 남친들의 분노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온 삭신이 쑤시는 쾌락을 주말 내내 즐겼던(?) 그녀들의 현생은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아, 미안해.”수요일의 늦은 저녁.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을 먹기로 한 하윤이와 시은이였지만, 하윤의 갑작스런 야근으로 저녁 식사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대신, 두 사람은 진한 수다나 떨기 위해, 시내의 24시간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났다.“그래도 용케 빨리 빠져 나왔네?”먼저 도착한 시은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 하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지난 주 금요일, 이태현과 저녁을 먹기로 했을 때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며 예쁘고 섹시했던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가슴팍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대충 묶어 올리고, 급하게 뛰어 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잔머리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원래도 진한 화장을 하지 않는 하윤이었지만 하루 종일 거울 한 번 못 들여다 본 듯 번들 거리는 유분기와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오늘 하루 그녀의 현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었다.“하... 엉망진창이네.”가쁜 숨을 고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그제서야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상태 체크를 하던 하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위한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대기업의 연구원 일이었지만 소망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연구실에 머무르기 보다는 온갖 수치를 문서화하고, 엑셀 창을 열어 서류 작성을 하는 일이 더 많은 주임 연구원의 삶. 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온 터라 허리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저녁은? 누구랑 먹었어?”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건만, 오늘 안에 전송해줘야 할 급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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