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아내가 쌍둥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버린 아내가 쌍둥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By:  월야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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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년째, 윤서희는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남편 권재헌에게 이혼서류를 받았다. 남편은 첫사랑의 곁으로 떠났고, 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간 아내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서희는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졌다. 5년 후, 세계적인 아동복 브랜드 대표가 된 그녀가 쌍둥이와 함께 돌아왔다. 자신을 똑 닮은 아들을 본 재헌은 그제야 잃어버린 시간을 깨닫고 세 사람을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서희는 차갑게 웃는다. “당신이 버린 건 나 하나가 아니었어요.” 뒤늦은 후회와 광기 어린 집착 속에서 재헌은 처음으로 돈과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첫사랑이 숨긴 비밀까지 드러나자, 다섯 해 전의 악몽은 이제 어린 아이들을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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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산모님, 여기 보이시죠? 이쪽에 하나, 그리고 바로 옆에 하나 더 있어요.”

윤서희가 두 아이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들은 날, 남편 권재헌은 이혼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

산부인과 진료실의 조명이 어두워지자 초음파 화면에 작은 형체 두 개가 나타났다. 의사가 탐촉자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며 화면을 가리켰지만, 서희는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눈만 깜빡였다.

“하나 더 있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쌍둥이예요. 현재 임신 약 8주 정도로 보이고, 두 아기 모두 심장박동이 확인됩니다.”

의사가 화면을 확대하자 진료실 안에 빠르고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의 박동이 잦아들자 조금 다른 리듬의 소리가 이어졌고, 서희는 그제야 자신의 몸 안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 채 화면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아랫배 위에 올렸다.

“정말…… 둘 다 괜찮은 거죠?”

“지금 확인되는 심장박동은 좋습니다. 다만 쌍둥이 임신은 앞으로 더 세심하게 경과를 살펴야 하니까 정기 진료를 잘 받으셔야 해요.”

의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서희의 시선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얼굴도 손가락도 알아볼 수 없는 작은 생명들이었지만, 그 아이들이 자신의 몸 안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결혼한 지 일곱 해였다.

처음에는 아이를 갖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결혼한 이듬해부터 아기 옷을 구경했고, 재헌이 지나가듯 아이는 둘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는 몰래 작은 양말까지 사 두었다.

그 양말은 아직도 침실 옷장 안쪽에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나는 선명한 한 줄에 익숙해졌고,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혼자 화장실에 앉아 눈물을 삼키는 날도 늘어났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재헌이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서두르지 마. 우리한테는 시간이 많잖아.”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남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검사 결과를 묻지 않았고, 병원 예약일을 알려 주어도 일정이 겹친다는 말만 남겼다.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던 날에는 박성재 비서에게 차량을 준비시키라고 지시했을 뿐, 진료가 어떻게 끝났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그 뒤로 서희는 혼자 병원에 다녔다.

중요한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자신의 기다림까지 짐으로 얹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배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서운함을 삼켰고,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모든 기다림이 보상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일곱 해가 흘렀는데, 오늘 드디어 두 아이가 찾아왔다.

“산모님, 울지 마세요. 지금은 좋은 소식이잖아요.”

의사가 건네준 티슈를 받아 들고서야 서희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가를 닦으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죄송해요. 너무 좋아서……. 심장 소리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을까요? 남편한테 설명해 주고 싶은데, 제가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의사는 두 아기의 위치를 다시 보여 주었다. 서희는 화면을 놓칠세라 바라보았고, 설명이 끝난 뒤에도 쉽게 진료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남편이 이 소리를 함께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아마 처음에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눈썹을 조금 찌푸린 채 정말 두 아이냐고 되묻다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어느 쪽이 첫째인지 물었을지도 몰랐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 다시 웃음이 났다.

진료를 마친 뒤 복도 의자에 앉은 서희는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 작고 흐릿한 형체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었는데, 구겨질까 봐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잡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뒷면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덧붙였다.

*아빠, 우리 둘이에요.*

글씨를 쓰는 동안 손끝이 떨렸지만, 서희는 사진을 봉투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보며 남편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했다. 결혼하고 처음 아이 이야기를 나누던 날처럼 그가 환하게 웃어 준다면, 오늘 하루는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터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재헌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오후 회의가 한창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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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산모님, 여기 보이시죠? 이쪽에 하나, 그리고 바로 옆에 하나 더 있어요.”윤서희가 두 아이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들은 날, 남편 권재헌은 이혼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산부인과 진료실의 조명이 어두워지자 초음파 화면에 작은 형체 두 개가 나타났다. 의사가 탐촉자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며 화면을 가리켰지만, 서희는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눈만 깜빡였다.“하나 더 있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쌍둥이예요. 현재 임신 약 8주 정도로 보이고, 두 아기 모두 심장박동이 확인됩니다.”의사가 화면을 확대하자 진료실 안에 빠르고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의 박동이 잦아들자 조금 다른 리듬의 소리가 이어졌고, 서희는 그제야 자신의 몸 안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그녀는 숨을 들이마신 채 화면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아랫배 위에 올렸다.“정말…… 둘 다 괜찮은 거죠?”“지금 확인되는 심장박동은 좋습니다. 다만 쌍둥이 임신은 앞으로 더 세심하게 경과를 살펴야 하니까 정기 진료를 잘 받으셔야 해요.”의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서희의 시선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얼굴도 손가락도 알아볼 수 없는 작은 생명들이었지만, 그 아이들이 자신의 몸 안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결혼한 지 일곱 해였다.처음에는 아이를 갖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결혼한 이듬해부터 아기 옷을 구경했고, 재헌이 지나가듯 아이는 둘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는 몰래 작은 양말까지 사 두었다.그 양말은 아직도 침실 옷장 안쪽에 있었다.시간이 흐르면서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나는 선명한 한 줄에 익숙해졌고,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혼자 화장실에 앉아 눈물을 삼키는 날도 늘어났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재헌이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서두르지 마. 우리한테는 시간이 많잖아.”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남편이었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검사 결과를 묻지 않았고, 병원 예약일을 알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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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연결음이 세 번 울린 뒤 남편이 받았다.“무슨 일이야?”뒤쪽에서 서류가 넘어가는 소리와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헌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무뚝뚝했지만, 서희는 그마저도 반가워 초음파 사진을 무릎 위에 펼쳐 놓았다.“여보, 나 오늘 병원에 다녀왔어.”“어디 아파?”“아니, 아픈 건 아니고. 당신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서희는 사진 속 두 아이의 위치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입가에 자꾸 웃음이 번져 제대로 말을 잇기 어려웠다.“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재헌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고, 그 사이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와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지금 회의 들어가야 해. 급한 일이야?”“응. 나한테는 정말 중요한 일이야.”“그럼 저녁에 이야기해. 집에는 들어갈 테니까.”“정말?”최근 재헌은 회사 근처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며칠씩 얼굴을 보지 못할 때가 있었으므로, 오늘 돌아온다는 말만으로도 서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늦을 수도 있으니까 기다리지는 말고.”“괜찮아. 기다릴게. 당신 좋아하는 거 해 놓을 테니까.”재헌은 별다른 대답 없이 통화를 끝냈다.서희는 꺼진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가슴에 안았다. 남편이 먼저 전화를 끊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고, 회의가 바쁘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오늘만큼은 그런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병원을 나서며 가까운 꽃집에 들른 그녀는 분홍색 장미와 흰 리시안셔스를 골라 작은 꽃다발을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재헌이 좋아하는 소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샀다.예전에는 남편이 그녀가 직접 만든 음식을 좋아했다.결혼 초 어느 겨울밤, 서희가 끓인 소고기뭇국을 두 그릇이나 먹고는 다음에도 해 달라고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날 재헌은 늦게 퇴근했는데도 식탁에 앉아 그녀와 오래 이야기했으며, 서희가 국을 더 떠 주자 별다른 말 없이 그릇을 비웠다.서희는 그때의 저녁을 다시 만들고 싶었다.아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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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성재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사모님께서 오늘 저녁을 준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부회장님 귀가하시는 걸 많이 기다리시는 것 같아서…….”“알고 있습니다.”재헌의 목소리에는 짜증조차 묻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정을 자신이 고려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묻는 듯한 태도였다.“저녁을 준비했다고 해서 결혼을 계속해야 합니까? 서희가 그동안 집안을 잘 돌본 건 인정하지만, 그건 아내로서 해 온 일이잖아요.”그는 성재를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설명하듯 덧붙였다.“그동안의 수고는 충분히 보상할 생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은 다하겠다는 뜻이에요.”“사모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협의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그건 변호사가 처리할 일입니다. 서희도 결국 현실적인 선택을 할 겁니다.”재헌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이혼하겠다고 결정했으면 그다음에는 절차를 정리하면 됩니다. 불필요한 감정 문제까지 업무로 가져오지 마세요.”성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서류를 챙겼다. 부회장이 이미 결론을 내린 문제에 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가 물러나자 집무실에는 조용한 공기가 내려앉았다.재헌은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지난 결혼생활을 떠올렸다.서희는 좋은 아내였다. 집안 어른들에게 예의를 지켰고, 불필요한 구설을 만들지 않았으며, 그가 늦게 돌아오는 날에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그런 그녀에게 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그렇다고 지금의 결혼을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서희와 함께하는 생활은 오래전부터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익숙함을 평온이라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의무처럼 느껴졌다.아내가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도, 출장을 다녀오면 옷을 정리해 두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생활을 위해 서희가 무엇을 포기했는지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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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사진만으로는 아이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어 의사가 설명해 준 위치를 연필로 작게 표시해 두었다. 남편이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보여 줄 생각이었지만, 어쩌면 그가 들어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꺼내 버릴지도 몰랐다.서희는 웃으며 서랍을 닫았다.여덟 시가 지나고 아홉 시가 되도록 재헌은 돌아오지 않았다.국을 한 번 더 데우는 사이 따뜻했던 반찬은 점점 식어 갔고, 재헌이 좋아하는 고기도 표면이 굳어 가고 있었다. 서희는 음식이 더 식기 전에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몇 번이나 현관 쪽을 살폈지만, 집 안에는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여보, 아직 회사야? 저녁 준비해 놨어.*읽음 표시는 한참 뒤에야 사라졌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서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식탁의 수저를 다시 정리했다. 재헌은 원래 바쁜 사람이었으므로 조금 늦는다고 해서 마음이 변할 이유는 없었고, 오늘만큼은 기다리는 시간마저 행복하게 보내고 싶었다.그런데 열 시가 가까워졌을 때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거실 소파에 앉은 서희는 초음파 사진을 다시 꺼내 두 아이의 작은 형체를 바라보았다. 손바닥을 아랫배에 올리자 아직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안에 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아빠가 많이 바쁘시네.”아직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서희는 사진을 가슴 가까이 가져오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조금만 기다리자. 오늘은 꼭 같이 기뻐해 주실 거야.”그 말을 마치자마자 현관 쪽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서희는 서둘러 사진을 봉투에 넣고 일어났다.현관문이 열리고 재헌이 들어왔다.검은 코트와 짙은 정장을 입은 남편은 평소처럼 단정했지만, 표정은 유난히 굳어 있었다. 서희는 그가 피곤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다가갔다.“여보, 왔어?”그녀가 코트를 받아 들려고 손을 내밀자 재헌은 익숙하게 벗어 건넸다.“아직 안 잤어?”“당신 기다렸지. 저녁은 먹었어?”“먹었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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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일곱 해의 결혼을 끝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계약의 조건을 설명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갑자기 왜?”재헌은 손목시계를 풀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갑작스럽게 결정한 건 아니야. 오래 생각했어.”“오래?”“그래.”“얼마나 오래?”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서류를 정돈하며 대답했다.“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는 게 중요하지.”서희는 남편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가 오래 고민했다는 시간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같은 집에서 그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가슴을 찔렀다.“당신은 나한테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잖아.”“이야기한다고 결론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어.”재헌은 테이블 위의 서류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서희야, 난 이런 문제를 감정적으로 끌고 가고 싶지 않아. 네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건 알아. 그래서 조건도 최대한 좋게 정리해 둔 거야.”서희는 손가락으로 소파의 천을 움켜쥐었다.“결론을 혼자 내렸다는 거네.”“누군가는 결정을 해야 하니까.”재헌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네 의견을 듣겠다고 몇 달씩 같은 자리에서 맴돌 생각은 없어. 이미 마음이 떠난 결혼을 유지하는 게 서로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그는 서류를 조금 더 그녀 쪽으로 밀었다.“당장 서명하라는 건 아니야. 읽어 보고 필요한 조건이 있으면 말해. 다만 이혼 자체를 다시 의논할 생각은 없어.”서희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첫 장에는 재산 분할과 주거 문제에 관한 기본 조건이 정리되어 있었다. 다음 장에는 향후 협의 절차가 적혀 있었고, 법률 검토가 필요한 항목에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그녀가 오늘 저녁 남편에게 어떤 음식을 해 줄지 고민하는 동안, 재헌은 변호사에게 이 서류를 검토하게 했을 것이다.서희는 서류를 넘기다가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의 사용과 이전 일정에 관한 항목에서 손을 멈췄다.“집도 정리하자는 거야?”“네가 원하면 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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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그리고 네가 포기한 게 있다면 그에 맞는 보상을 요구해. 내가 줄 수 있는 건 충분히 줄 생각이니까. 다만 지난 시간을 전부 내 책임으로 돌리지는 마.”그 말에 서희는 입을 다물었다.그는 그녀가 꺼낸 기억을 따져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편을 위해 살아온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재헌은 그 시간을 얼마로 보상하면 되는지 계산하려 했다.서희는 천천히 서류를 내려놓았다.“당신한테 우리 결혼은 뭐였어?”재헌은 잠시 침묵했다.“서로 책임져야 할 관계였지.”“사랑은?”거실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재헌은 대답하지 않았다.서희는 그 침묵을 견디며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결혼 초에는 분명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가 먼저 손을 잡거나 피곤한 날에도 잠깐 시간을 내어 함께 산책한 적이 있었다.그 기억들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 어떤 기억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다른 여자가 있어?”재헌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서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누구야?”“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그런 식이라니?”서희는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내가 당신 아내잖아. 이혼하자는 말을 들었으면 적어도 이유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재헌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지혜가 돌아왔어.”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서희는 자신이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남편의 과거를 떠올렸다.서지혜.재헌의 첫사랑이었다.결혼 전 그가 오래 사랑했던 여자였고, 그를 떠난 뒤에도 가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름이었다. 서희는 지혜를 실제로 몇 번 보지 못했지만, 남편의 과거에 그녀가 얼마나 깊이 남아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그 사람이 돌아와서?”서희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당신이 이혼하고 싶어진 거야?”재헌은 부정하지 않았다.“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너도 알잖아.”“예전 같지 않으니까 다른 여자를 선택해도 된다는 거야?”재헌의 표정이 굳었다.“아직 아무 일도 없었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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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이 때문에 남는다면.그런 결혼에서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서희는 아직 답을 내릴 수 없었다.그래도 말해야 했다.두 아이는 재헌의 아이이기도 했다.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테이블 위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재헌의 전화였다.그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희는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들려온 이름에 몸을 굳혔다.“지혜야.”재헌은 창가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인데?”잠시 상대방의 말을 듣던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지금 어디야?”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알았어. 곧 갈게.”통화는 길지 않았다.재헌이 돌아왔을 때 서희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나가 봐야겠어.”그는 테이블 위에 놓아 둔 시계를 집어 들었다.서희는 남편의 손을 바라보았다. 결혼식 날 자신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었던 손이 지금은 다른 여자에게 가기 위해 서둘러 시계를 차고 있었다.“지금?”“급한 일이 생겼어.”“우리 아직 이야기 안 끝났잖아.”재헌은 코트를 집어 들었다.“서류는 천천히 읽어 봐.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서희는 일어나 남편을 따라 현관까지 걸어갔다. 그가 구두를 신는 동안에도 그녀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생각했다.아이들이 생겼다고 말하면 된다.오늘 병원에서 두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고.당신도 아버지가 된다고.그런데 막상 남편이 문손잡이를 잡는 모습을 보자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여보.”재헌이 돌아보았다.서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나 오늘 병원에서…….”“서희야.”그가 말을 끊었다.“지금은 정말 시간이 없어.”그 순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재헌은 화면을 확인한 뒤 문을 열었다.“내일 이야기하자.”문이 닫히자 서희는 현관에 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남편이 떠난 자리로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었고, 조금 전까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었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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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집에 두고 온 서희가 잠깐 떠올랐다.그러나 그는 곧 시선을 돌렸다.지혜가 말을 이어 갔다.“오늘은 그냥 네 얼굴이 보고 싶었어. 네가 나한테 화낼 자격이 있다는 것도 알아. 그래도…….”그녀가 고개를 숙였다.“내가 돌아온 걸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재헌은 찻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그는 이미 서희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생각했다고 믿었다. 다만 집을 나서기 직전 서희가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남았다.*나 오늘 병원에서…….*그녀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재헌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 의문을 밀어냈다.서희에게는 내일 다시 물으면 될 일이었다.그에게는 언제나 내일이 있었다.적어도 그날 밤까지는 그렇게 믿었다.서희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침실에 누워 눈을 감으면 남편이 이혼하자고 말하던 얼굴이 떠올랐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을 떴다.새벽이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내려갔다.따뜻한 물을 마신 뒤 식탁 위에 남아 있던 음식을 정리하면서 남편의 수저를 치우려다 손이 멈췄지만, 이내 다른 그릇들과 함께 싱크대로 옮겼다.물을 틀어 그릇을 씻는 동안 손에는 따뜻한 물이 흘렀으나 몸은 자꾸만 떨렸다. 서희는 마지막 접시까지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은 뒤에야 물을 잠그고 거실로 돌아왔다.테이블 위에 놓인 이혼 협의안을 다시 펼치자 자신이 앞으로 어디에서 살 것인지, 어떤 재산을 나눌 것인지, 언제까지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결혼생활의 끝을 설명하는 문장들은 놀라울 만큼 간결했다.서희는 서류를 넘기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지난 일곱 해 동안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일을 포기했는지, 얼마나 자주 남편을 기다렸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재헌에게 그것들은 정리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그녀는 서류를 덮고 초음파 사진을 꺼내 그 옆에 놓았다.두 장의 종이가 나란히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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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당신한테 하나만 물어볼게.”재헌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어도 나한테 이혼하자고 했을 거야?”재헌은 잠시 생각했다.“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너도 알잖아.”“그건 어제도 들었어.”서희는 물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야.”재헌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서희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그는 식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확인했다.“네가 납득할 때까지 설명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걸 이유로 내 결정을 계속 미루지는 않을 거야.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서희는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았다.그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고, 서희는 더 설명을 요구해 봐야 남편이 같은 말만 반복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식탁 아래에서 손을 꼭 쥐었다.“나한테 정말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아?”재헌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뜻이야?”서희는 입술을 적셨다.“어제 내가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잖아.”재헌은 그제야 그 말을 떠올렸다.“아픈 건 아니라며.”“응. 아픈 건 아니야.”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남편이 조금만 더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다.어떤 병원이었는지, 왜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그중 하나만 물어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재헌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그럼 다행이고. 오늘 오전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먼저 나가 봐야겠어.”서희는 물컵을 감싸 쥔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밤새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그녀는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들었다.“그래. 다녀와.”재헌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제와 달리 서희는 붙잡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고, 이혼을 다시 생각해 달라고 말하지도 않았으므로, 그는 그녀가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서류는 변호사 통해서 정리할게. 필요한 게 있으면 성재에게 이야기해.”서희는 대답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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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책상 위에는 성재가 정리해 둔 보고서와 결재 서류가 놓여 있었고, 재헌은 몇 장을 넘기다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서희에게 보낸 메시지는 읽음 표시만 떠 있었다.답장은 없었다.서희는 원래 답장을 빠르게 하는 편이었다. 늦게 들어간다고 하면 알겠다고 했고, 식사를 못 한다고 하면 다음에 함께 먹자고 했으므로, 오늘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일이 재헌에게는 낯설었다.그러나 그는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이혼을 요구받았으니 화가 났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가라앉을 테고, 필요한 조건을 정리하면 서로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재헌이 보고서에 다시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지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재헌아, 혹시 서희 씨 어디 아픈 거야?*재헌은 눈썹을 찌푸렸다.*왜?*잠시 뒤 답장이 왔다.*아니, 그냥 걱정돼서. 병원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재헌은 전날 서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꼭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도 했다.그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잠시 생각했다. 서희는 분명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자신이 시간이 없다고 했고, 결국 듣지 못했다.재헌은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지금이라도 전화해 볼까.그때 집무실 문이 두드려졌다.“부회장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성재의 목소리였다.재헌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습니다.”그는 재킷을 집어 들고 집무실을 나섰다. 서희에게 전화하는 일은 또다시 뒤로 밀렸지만, 재헌은 그 일을 특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그날 오전 늦게, 서지혜는 호텔 객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전송된 사진 한 장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는 지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어제 병원에서 권 부회장님 사모님을 본 것 같아. 혹시 어디 아프신가?*함께 첨부된 사진에는 병원 건물 앞을 걸어 나오는 여자가 찍혀 있었다.지혜는 화면을 확대했다.윤서희였다.사진 속 서희는 손에 서류 봉투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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