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 7년째, 윤서희는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남편 권재헌에게 이혼서류를 받았다. 남편은 첫사랑의 곁으로 떠났고, 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간 아내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서희는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졌다. 5년 후, 세계적인 아동복 브랜드 대표가 된 그녀가 쌍둥이와 함께 돌아왔다. 자신을 똑 닮은 아들을 본 재헌은 그제야 잃어버린 시간을 깨닫고 세 사람을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서희는 차갑게 웃는다. “당신이 버린 건 나 하나가 아니었어요.” 뒤늦은 후회와 광기 어린 집착 속에서 재헌은 처음으로 돈과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첫사랑이 숨긴 비밀까지 드러나자, 다섯 해 전의 악몽은 이제 어린 아이들을 겨눈다.
View More“산모님, 여기 보이시죠? 이쪽에 하나, 그리고 바로 옆에 하나 더 있어요.”
윤서희가 두 아이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들은 날, 남편 권재헌은 이혼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
산부인과 진료실의 조명이 어두워지자 초음파 화면에 작은 형체 두 개가 나타났다. 의사가 탐촉자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며 화면을 가리켰지만, 서희는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눈만 깜빡였다.
“하나 더 있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쌍둥이예요. 현재 임신 약 8주 정도로 보이고, 두 아기 모두 심장박동이 확인됩니다.”
의사가 화면을 확대하자 진료실 안에 빠르고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의 박동이 잦아들자 조금 다른 리듬의 소리가 이어졌고, 서희는 그제야 자신의 몸 안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 채 화면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아랫배 위에 올렸다.
“정말…… 둘 다 괜찮은 거죠?”
“지금 확인되는 심장박동은 좋습니다. 다만 쌍둥이 임신은 앞으로 더 세심하게 경과를 살펴야 하니까 정기 진료를 잘 받으셔야 해요.”
의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서희의 시선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얼굴도 손가락도 알아볼 수 없는 작은 생명들이었지만, 그 아이들이 자신의 몸 안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결혼한 지 일곱 해였다.
처음에는 아이를 갖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결혼한 이듬해부터 아기 옷을 구경했고, 재헌이 지나가듯 아이는 둘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는 몰래 작은 양말까지 사 두었다.
그 양말은 아직도 침실 옷장 안쪽에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나는 선명한 한 줄에 익숙해졌고,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혼자 화장실에 앉아 눈물을 삼키는 날도 늘어났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재헌이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서두르지 마. 우리한테는 시간이 많잖아.”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남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검사 결과를 묻지 않았고, 병원 예약일을 알려 주어도 일정이 겹친다는 말만 남겼다.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던 날에는 박성재 비서에게 차량을 준비시키라고 지시했을 뿐, 진료가 어떻게 끝났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그 뒤로 서희는 혼자 병원에 다녔다.
중요한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자신의 기다림까지 짐으로 얹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배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서운함을 삼켰고,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모든 기다림이 보상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일곱 해가 흘렀는데, 오늘 드디어 두 아이가 찾아왔다.
“산모님, 울지 마세요. 지금은 좋은 소식이잖아요.”
의사가 건네준 티슈를 받아 들고서야 서희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가를 닦으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죄송해요. 너무 좋아서……. 심장 소리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을까요? 남편한테 설명해 주고 싶은데, 제가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의사는 두 아기의 위치를 다시 보여 주었다. 서희는 화면을 놓칠세라 바라보았고, 설명이 끝난 뒤에도 쉽게 진료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남편이 이 소리를 함께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아마 처음에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눈썹을 조금 찌푸린 채 정말 두 아이냐고 되묻다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어느 쪽이 첫째인지 물었을지도 몰랐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 다시 웃음이 났다.
진료를 마친 뒤 복도 의자에 앉은 서희는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 작고 흐릿한 형체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었는데, 구겨질까 봐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잡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뒷면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덧붙였다.
*아빠, 우리 둘이에요.*
글씨를 쓰는 동안 손끝이 떨렸지만, 서희는 사진을 봉투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보며 남편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했다. 결혼하고 처음 아이 이야기를 나누던 날처럼 그가 환하게 웃어 준다면, 오늘 하루는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터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재헌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오후 회의가 한창일 시간이었다.
지금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면 명숙의 태도가 달라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변화가 자신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 터였다.손주를 가진 며느리라는 이유로 다시 그 집에 붙잡히고 싶지는 않았다.무엇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거래 조건이 되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제 몸을 모욕하실 권리는 없어요.”명숙은 잠시 말을 잃었다.서희가 일곱 해 동안 시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니?”“제 존엄을 지키겠다는 거예요.”명숙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좋아. 그럼 네 마음대로 해 봐. 대신 오늘 행사에는 절대 나타나지 마. 지혜가 재헌이 옆에 앉기로 했으니까 괜히 분위기 흐리지 말고.”서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제가 준비한 물품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게 해 주세요.”“아직도 네가 안주인인 줄 아니? 직원들이 알아서 할 일이야.”서희는 잠시 침묵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그 물품을 받는 아이들에게는 누가 안주인인지 중요하지 않아요.”명숙이 다시 언성을 높이려는 순간, 서희는 통화를 마쳤다.휴대전화를 내려놓자 손끝이 떨렸다.속이 울렁거려 잠시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는 물을 천천히 마셨다. 임신 초기라 쉽게 피로해졌고, 빈속에 감정이 격해지면 메스꺼움이 심해지곤 했다.서희는 아랫배를 감싸며 숨을 골랐다.“엄마가 지킬게.”그 말을 입 밖으로 내고 나서야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실감 났다.그날 저녁, 권성그룹 자선행사가 열리는 호텔 연회장은 화려한 조명과 취재진의 카메라로 가득했다.재헌은 박성재에게 행사 진행 상황을 보고받으며 중앙 테이블로 향했다.그의 오른쪽에는 서지혜가 앉아 있었다.짙은 남색 드레스에 진주 귀걸이를 착용한 지혜는 재헌을 발견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드럽게 휘어진 입술과 반가움이 어린 눈빛은 누구에게나 다정하게 보일 만큼 자연스러웠다.“재헌아, 왔어?”“일찍 왔네.”“후원사 관계자들하고 인사하고 있었어.”지혜는 테이블 위 이름표를 슬쩍
서희가 병원에서 돌아와 두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서랍에 넣어 두던 시간이었다.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제가 준비한 물품은 예정대로 전달되나요?”“네. 일정에는 변동 없습니다.”“겨울 외투 사이즈가 섞이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확인해 주세요. 재단 담당자에게도 전달해 두었지만 현장에서 실수하면 아이들이 맞지 않는 옷을 받게 돼요.”성재는 곧바로 확인하겠다고 대답했다.통화를 끝낸 서희는 행사 자료를 내려놓았다.자신이 준비한 일은 그대로 진행된다. 자신이 작성한 문서도, 담당자들과 주고받은 약속도 모두 유효했다.다만 자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현관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재헌은 출근 준비를 마친 채 식당으로 들어왔다. 평소처럼 커피잔을 찾던 그는 준비된 커피가 없자 직접 머신을 작동시켰다.서희는 식탁 위에 행사 자료를 펼쳐 놓았다.“제 이름을 빼셨더군요.”재헌은 커피잔을 들고 돌아섰다.“행사 명단 봤어?”“서지혜 씨가 제 자리에 앉는다고요.”“이혼할 사이인데 공식 일정부터 정리하는 게 맞지.”재헌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마치 오래된 업무 하나를 처리한 사람처럼 태연했다.서희는 그의 앞으로 기부 물품 목록을 밀었다.“제가 두 달 동안 준비한 행사예요.”재헌은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그동안 수고한 건 보상하지.”서희는 남편이 돌려놓은 종이를 바라보았다. 외투 사이즈를 수정한 붉은 표시와 담당자들의 연락처가 빼곡하게 남아 있었다.“일곱 해도 그렇게 계산했어요? 돈으로 갚으면 끝나는 시간이라고.”재헌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 네가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겠다는 뜻이야.”“인정한다면서 제 이름부터 지우셨네요.”“앞으로 참석하지 않을 자리잖아.”서희는 그를 바라보았다.“아직 이혼하지 않았어요.”“서류에 서명만 하면 끝날 일이야.”재헌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재킷 단추를 채웠다.“지혜는 후원사 관계자로 참석하는 거니까 괜한 오해는 하지 마
서지혜는 휴대전화에 떠 있는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산부인과 건물에서 나오는 윤서희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손에 든 서류 봉투를 가슴 가까이 끌어안은 모습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남편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여자가 산부인과에서 저런 표정으로 나올 이유가 무엇일까.지혜는 사진을 확대하다가 건물 입구에 걸린 병원 이름을 확인했다. 단순한 여성 질환으로 방문했을 수도 있었지만, 결혼한 지 일곱 해가 되도록 아이가 없던 여자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불길한 가능성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사진을 보낸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서희 씨, 혼자 나왔어?”“응. 내가 본 건 건물에서 나오는 순간뿐이야.”“표정은 어땠는데?”“글쎄, 기분이 좋아 보이던데. 그런데 왜?”지혜는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렸다. 목소리에는 조금의 불안도 묻어나지 않았다.“아는 사람이라서. 요즘 힘든 일이 있다기에 걱정됐거든.”전화를 끊자마자 웃음기가 사라졌다.서희가 임신했다면 재헌의 이혼 결정도 흔들릴 수 있었다. 백명숙이 일곱 해 동안 후계자를 낳지 못했다며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지혜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집안에서 아이가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 없었다.하필 지금이라니.지혜는 손톱 끝으로 휴대전화 테두리를 천천히 쓸었다.재헌은 이미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희가 아직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일곱 해를 차지했던 여자가 아이까지 갖게 된다면, 자신이 돌아온 의미가 흐려질 수도 있었다.지혜는 주소록에서 정혜원의 이름을 찾았다. 예전에 알게 된 병원 행정직원으로, 최근 가족의 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당장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확인해야 할 것은 하나 더 있었다.그녀는 다음 날 저녁 열리는 권성그룹 자선행사 초청장을 꺼냈다. 후원사 관계자로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중앙 테이블에는 아직 자신의 자리가 없었다.지혜는 재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재헌아,
책상 위에는 성재가 정리해 둔 보고서와 결재 서류가 놓여 있었고, 재헌은 몇 장을 넘기다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서희에게 보낸 메시지는 읽음 표시만 떠 있었다.답장은 없었다.서희는 원래 답장을 빠르게 하는 편이었다. 늦게 들어간다고 하면 알겠다고 했고, 식사를 못 한다고 하면 다음에 함께 먹자고 했으므로, 오늘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일이 재헌에게는 낯설었다.그러나 그는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이혼을 요구받았으니 화가 났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가라앉을 테고, 필요한 조건을 정리하면 서로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재헌이 보고서에 다시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지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재헌아, 혹시 서희 씨 어디 아픈 거야?*재헌은 눈썹을 찌푸렸다.*왜?*잠시 뒤 답장이 왔다.*아니, 그냥 걱정돼서. 병원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재헌은 전날 서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꼭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도 했다.그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잠시 생각했다. 서희는 분명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자신이 시간이 없다고 했고, 결국 듣지 못했다.재헌은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지금이라도 전화해 볼까.그때 집무실 문이 두드려졌다.“부회장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성재의 목소리였다.재헌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습니다.”그는 재킷을 집어 들고 집무실을 나섰다. 서희에게 전화하는 일은 또다시 뒤로 밀렸지만, 재헌은 그 일을 특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그날 오전 늦게, 서지혜는 호텔 객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전송된 사진 한 장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는 지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어제 병원에서 권 부회장님 사모님을 본 것 같아. 혹시 어디 아프신가?*함께 첨부된 사진에는 병원 건물 앞을 걸어 나오는 여자가 찍혀 있었다.지혜는 화면을 확대했다.윤서희였다.사진 속 서희는 손에 서류 봉투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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