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45 위험한 만찬“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하윤이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를 찾자 스탭 중 한 명이 안쪽을 가리키며 위치를 안내해주었다.식당 밖의 창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식당 안쪽의 사각지대에, 테이블 여러 개를 붙이고 오목조목 앉아 있는 에테르의 멤버들이 보였다. 시은을 찾으니, 그녀는 테이블의 안쪽 구석에 짱 박혀 앉아 있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에 하윤과 시은의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였다.“누나, 이리로 와.”시은의 맞은편에 자리 하나를 비워두고 그 옆 자리에 앉아있던 채민이 손을 흔들었다.하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채민의 옆자리에 천천히 앉은 하윤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시은과 다시 한 번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에테르의 루미로서 덕질을 한 지 벌써 5년. 평생 쓸 운을 올해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일반 팬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빠순이로서, 행복에 겨워 뒤질 일들.근데... 묘하게 불편한 것은 왜 인지. 그저 그들의 음악이 취향에 맞았고 그 취향에 맞는 음악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인형 같은 이 예쁜 남동생들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친해져도 되는 건가... 싶은 묘한 불안감.“소문 들었지? 나 고기 엄청 잘 굽는 거?”시은의 옆에 앉은 태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의 테이블에 놓인 집게와 가위를 집어 들었다. 하윤과 시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태윤이, 잡고 있던 집게로 두툼한 고기를 집어 들어 불판 위에 올렸다. 불판이 과하게 달궈진 탓에 치지직- 소리가 크게 났다. 이내 약간의 열기와 함께 기름이 사방에 튀기 시작했다.“어, 기름 튄다.”커다란 불판 위에서 투두둑 튀어나오는 기름을 보며 채민이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 하윤의 앞으로 자신의 몸을 훅 기울였다. 혹여나 기름이 하윤을 향해 튈까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것이었다.“아... 안 그래도 돼.”채민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그리고 너무도 가깝게 다가온 탓에 하윤이
#44 위험한 만찬으로의 초대탈덕 전까지는 세상 밖으로 절대 꺼낼 수 없는 귀한 사진을 잔뜩 찍은 하윤과 시은은, 이제 귀가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윤은 체조경기장 근처의 호텔로, 시은은 현민의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빨리 보내.”“응. 에어드랍 켰어?”“응. 빠짐없이 다 보내. 싹 다 지워야 되니까.”현민의 집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시은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시은의 집착광공 남친, 백현민이 핸드폰 검사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에, 방금 찍은 모든 사진은 하윤에게 넘겨 놓기로 했다. 하윤이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클라우드에 모든 사진을 업로드 시키고, 나중에 시은의 클라우드로 넘겨주기만 하면 됐으니까.머리를 맞댄 상태로 각자의 핸드폰을 가까이 두고 현생의 남친들을 방어할 완전 범죄를 위해 작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훅 다가왔다.“누나.”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홱 들고 그림자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태윤이었다.“그...”태윤이 살짝 주변 눈치를 보며 그녀들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밥 먹고 가.”태윤의 말에 하윤과 시은의 눈이 동시에 번뜩 뜨였다. 조금만 더 떴다간 눈알이 빠질지도 몰랐다.“아니, 아니, 아니, 아니!”“아냐, 우리 지금 집에 갈 거야!”하윤과 시은은 다급하게 양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태윤의 입가에 피식- 기분 좋은 웃음이 터졌다.두 사람의 반응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조금 전에도, 지금도... 이 두 여자의 선을 넘지 않는 개념 장착이 괜히 뿌듯했다. 이런 여자들이 에테르의 팬이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기분 좋았다.“식당 하나 전체 예약했어. 거기 스탭들 밖에 없어서 괜찮아. 소속사 실장님한테도 말씀드려 놨고.”“아니야, 아니야. 우리 밥 안 먹어도 돼.”“그래. 우리 안 그래도 지금 막 집에 가려고 했어.”두 팬의 염려를 알고 있는
#43 백스테이지의 환희“와, 시야 대박!”에테르의 리더, 강태윤이 시은에게 선물로 준 ‘에테르 VIP 콘서트 티켓’의 좌석은 1층 8구역의 12열이었다. 실질 1열. 심지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콘서트를 즐길 수 있도록 연석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태윤의 배려에 두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다 못 해, 뜨거워졌다.체조경기장, KSPO DOME의 8구역은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무대 전체를 보기에 상당히 좋은 자리였다. 본 무대와는 꽤 거리가 있긴 하지만 멤버들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을 따라가기 좋고, 전광판까지 정면으로 잘 보이는 곳이었다. 심지어 바로 앞에 돌출 무대가 있어, 그 무대 앞에 에테르 멤버들이 온다면 플로어 좌석보다 훨씬 더 시야가 좋은 자리였다. 거기다 실질 1열의 좌석이니 멤버들의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최고의 자리.“저기... 시우 부모님.”“와, 진짜 어머니 너무 미인이시다.”“그치? 누나도 엄청 예쁘더라. 근데 오늘은 안 왔나 봐."덕질 5년 차의 짬바는 내 최애의 가족도 괜히 친근해지는 법."어? 저기 저 사람, 태윤이 여동생 아냐?”“어? 어디?"시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윤이 가리킨 곳에 태윤의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어어, 맞아. 존나 예쁘지?”“응. 진짜 연예인들은 가족들이 다 장난 없네.”“그러니까. 부럽게.”VIP 초대권의 또 다른 혜택. 멤버들의 가족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보통 콘서트의 두 번째 날인 토요일, 중콘에 가족들을 초대하는 경우가 많아 하윤과 시은이 앉아 있는 8구역에서 에테르 멤버들의 가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눈이 즐거워지는 순간들이었다.***"꺄아아아아악!!!"암전과 함께 심장을 강하게 울리는 음악의 비트 소리와 함께 VCR의 화면이 재생되었다.또 다시, 에테르 단독 콘서트 [Luminate]의 두 번째 날 공연이 시작되었다.“시우야~~~!”"강태윤!!!"콘서트가 진행될수록 콘서트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
#42 거짓말의 서막“내일 몇 시에 마치는데?”바쁘게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하윤을 보며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은 건우가 툭- 물었다. 순간, 하윤의 손짓이 멈칫했다. 가만... 막콘이 몇 시에 끝나더라?막콘의 경우에는 앵콜에서 앵앵콜, 앵앵앵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좀 더 넉넉하게 알리바이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 어느때보다 하윤의 머리가 빠르게 팽팽- 돌아갔다.“음... 8시... 쯤?”“하, 더럽게 늦네. 데리러 가?”“아냐... 후배가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어.”응, 시은이가 태워 주기로 했어.“어디로 가는데?”아차차!이건 생각을 못 했는데...“어... 그... 우리 회사... 연수원 있잖아.”“아~ 용인에 있는 거?”“아, 응!”다행이었다.아주 스무스하게 잘 넘어갔다.“그럼, 집까지 1시간 정도 걸리겠네? 우리 집으로 바로 올 거지?”“음... 피곤할 것 같은데? 다음 날 출근도 해야 하고...”하윤은 건우의 눈치를 슬쩍 보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첫콘 때 구매한 콘서트 MD 굿즈는 시은이에게 다 맡겨 놓고 온 상태였다. 마지막 날에는 그 모든 것들을 바리바리 안고 귀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오피스텔로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했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할테고 말이다.“내일은 꼭 껴안고 자야지. 아이씨, 연수 개새끼. 월요일에 학교 가서 그 새끼 보이기만 해봐라. 확 대가리 날려 버릴 거야, 씨발.”하윤의 말은 들을 생각조차 없는 차건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그였지만, 두 사람의 2,500일인 일요일, 그녀와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차건우의 역린을 살살 건들고 있었다.빠...빨리 가야할 것 같다.“바빠도 중간 중간 연락 자주 해.”“응."시우의 우치와와 네임보드, 스케치북, 또 다른 루미들에게 나눔할 커스텀 미니 굿즈들을 잔뜩 넣은 작은 캐리어를 손에 끌고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혹시나 건우
#41 사랑의 깊이하윤은 건우의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사실, 앵콜곡까지 맛있게 말아줄 에테르의 마지막 모습까지 끝까지 보고 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에테르 멤버들이 콘서트장의 1층과 2층 사이의 통로에서 토롯코를 타고 등장하기 직전 빠르게 짐을 꾸려 콘서트 장을 빠져나왔다. 콘서트가 진행된 지 약 3분의 2 지점이 지난 상태였다. 아쉬움이 가득 남아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결국 그녀는 이성을 부여잡았다.“포장 주문했는데요.”건우의 집 근처의 건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덮밥 집에 들려, 미리 앱으로 주문한 포장 주문 음식을 받았다. 어쩌면 피곤함에 쩔어 저녁도 굶고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난 6월과 8월의 시험 마지막 날에도 그랬으니까.기왕이면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콘서트를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왔음에도 벌써 시간은 오후 10시를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띠띠띠띠띠띠띡- 띠리리-건우 집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건우가 깨어 있었다면 하윤이 문 따는 소리에 벌써 중문 앞까지 달려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침묵과 함께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어두움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거실에는 그가 아무렇게나 옷을 던져 놓은 흔적과 탄산수 한 병을 따서 반쯤 마시다만 흔적이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네.”하윤은 그의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내 정리를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옷들은 바르게 펴 스타일러에 넣어 기계를 작동 시켰고, 반쯤 남은 탄산수는 싱크대에 버리고 병은 재활용 통에 넣었다.굳게 닫힌 그의 마스터 룸을 힐끔 보고는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들어가 보지 않기로 했다. 만약, 건우가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않는다면 게스트 룸에 가서 잠을 자면 될 것이고, 건우의 그 잘난 얼굴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몸은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윤은 빠르게 욕실
#40 에테르 단독 콘서트 [ Luminate ]“콘서트 퇴근 길도 못 보고 간다고?”채아의 눈이 커졌다.에테르가 데뷔한 이래로 다섯 번째 단독 콘서트였다. 그때마다, 콘서트 기간 3일 내내, 공연을 마치고 퇴근하는 에테르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은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덕질의 룰이었다.이미 채아를 제외한 직장인 셋은, 반차를 내고 에테르의 단독 콘서트 [Luminate]가 열리는 [ KSPO DOME ]에 일찍 도착했다. 줄을 서서 콘서트 MD 제품을 구매하고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은 후, 진작에 공원 입구 쪽의 할리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콘서트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응. 마치자마자 바로 튀어가야 돼.”하윤이 아쉬워하는 채아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한 듯, 예쁜 미소를 흘렸다.가끔, 이 언니들은 참 이상했다. 에테르의 덕질에 정말 진심인 것 같으면서도 가끔 현생의 일로 에테르의 우선 순위를 바꿔버리는 기행을 하곤 했다. 빠순이질에 진심인 이들에게 현생의 일 따위는 감히 에테르보다 앞설 수 없는데 말이다.“시은아, 너는 애들이랑 같이 보고 와.”하윤은 시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오늘, 하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오늘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차건우의 10월 ‘변시 모고’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쯤에는 그가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의 콘서트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주말 콘서트보다 늦게 시작하는 이유로 밤 10시가 넘어야 끝날 판이었다.더군다나 토, 일 이틀 간 선행 연구팀의 연수가 있다고 알고 있는 건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도 억지로 삼키며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하윤이 보여준 중콘 티켓 취소 내역을 보며, 콘서트 3일 중 하루라도 재밌게 보고 오라며 저 답지 않게, 에테르의 첫콘을 쿨하게 보내준 그였다.그러니... 이하윤의 마음이 편할 턱이 있겠냐고.“나, 중간에 나가야 될 수도 있어.”하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