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3 현생으로 돌아가는 길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의 도심. 시은이 운전하는 국산 SUV 차량에 나란히 올라탄 네 사람은 아까 있었던 태윤과 채민의 깜짝 방문 이야기로 여전히 도파민을 터트리며 열을 올렸다.
특히나 눈앞에서 자신의 최애를 영접한 시은이와 재희의 목소리는 방금 전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미친 듯이 상기되어 있었다. 채민이 자신의 인스스에 올린 단체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그 찰나의 환희를 끈적하게 곱씹고 또 곱씹었다.
"아이, 그럼 이번 팬싸는 나랑 재희 언니만 가는 거야?"
뒷좌석에 재희와 나란히 앉은 채아가 못내 아쉽다는 듯 붉은 입술을 삐죽였다. 어쩌면, 이 화려한 언니들과 함께 가서 다른 루미들의 시선을 싹쓸이하는 맛, 그 맛이 이번 팬싸에는 없다는 것이 꽤나 아쉬운 모양이었다.
"대충 날짜 나오는 거 보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
"나도 그래. 이번에 무리해서 연차 빼면 정작 진짜 중요할 때 못 빼니까."
하윤과 시은은 진심으로 통탄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생의 굴레라는 듯, 두 동생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표정. 하지만, 하윤과 시은에게는 또 다른 그녀들만의 사정이 있었다.
다른 팬들에겐 절대 본명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이 네 사람은 서로의 본명을 깐 유일한 사이였다. 다른 팬들에겐 철저하게 아이디와 닉네임으로 불리며 신상을 철통같이 숨겼지만, 어쩌다보니 재희와 채아와는 영혼이 맞물린 덕메가 되어 진득해진 사이가 되었다. 다수의 팬이 모인 자리에서 혹시라도 서로의 본명이 튀어나올까 봐 철저히 입조심을 할 만큼 그들의 선은 견고했다.
허나, 이렇게까지 친한 덕메들이었지만, 하윤과 시은이 재희와 채아에게도 끝끝내 밝히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녀들을 단단히 쥐고 있는 그녀들의 현생 '남자 친구의 존재'였다.
굳이 구구절절 밝힐 필요도 없었지만, 이 금쪽같은 시간에 쓸데없이 현실의 연애사를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 예쁜 오빠(?)들을 앓는 얘기만 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랐으니까.
사실 하윤과 시은이 팬싸에 참석하는 건 1년에 많아 봐야 두어 번 남짓이었다. 에테르의 팬싸 컷은 잘나가는 아이돌에 비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한 번 갈 때마다 1~2백만 원의 단위로 깨지는 비용과 행사가 끝난 뒤 산더미처럼 쌓이는 수백 장의 앨범 처리가 골칫거리긴 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 현생의 남친한테 걸리면 뒤진다. ]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문자 그대로 명줄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게 침대 위에서든 에테르의 무대 앞에서든,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들의 현생을 꽉 쥐고 있는 수컷들은 유독 소유욕과 질투심이 병적으로 강했다. 제 여자 친구가 팬 사인회에 가서 딴 놈들과 두 손을 맞잡고, 꿀 떨어지는 눈빛을 교환하며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장담하건대 그 자리에서 눈이 뒤집혀 다 찢어 죽이려 들 게 뻔했다.
그러니 어쩌다 큰맘을 먹고 가더라도 무조건 몰래, 흔적 하나 없이 다녀와야만 했다. 그녀들의 핸드폰 사진첩에 ‘에테르’ 멤버들의 사진이 거의 없는 것도 지독한 현생 남친들의 검열 때문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녀들의 현생 남친들은 연예인인 에테르 멤버들과 비교해 봐도 외모나 스펙 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을 상회하며 압도하는 알파메일들이었다.
누군가는 '현생에 그렇게 잘난 남자들을 옆에 두고 도대체 왜 빠순이 짓을 하냐'며 혀를 차겠지만, 이건 그녀들에게 있어 철저히 영역이 다른 사랑이었다.
물론 유사연애를 하며 맹목적으로 발정 난 팬들이 훨씬 많겠지만, 적어도 하윤과 시은에게 이 아이돌의 덕질이란 것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조건적인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일종의 아가페적인 사랑이었다. 현실의 팍팍함을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관상용 피조물들을 향한 순수한 테라피랄까. 아니, 시각적 오르가즘?
"언니 고마워~ 조심해서 가!“
“다음 팝업 때 봐~!”
가까운 환승역 근처에 채아와 재희를 먼저 내려준 뒤, 차 안에는 다시 하윤과 시은, 둘만 남았다.
"하아... 이제, 나 좀 무서워해야 되나?"
시은이 운전대를 꽉 움켜쥐며 다시 현실의 '최시은'으로 돌아왔다. 슬쩍 곁눈질해 보니 대시보드 위에 올려둔 그녀의 핸드폰 액정이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켜졌다가 꺼지고, 다시 미친 듯이 켜지기를 반복하는 화면. 이는 백현민이 완전히 야마가 돌아서 이성을 잃고 전화를 폭격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내일 아침 뉴스에 최시은 부고 기사 뜨겠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큭."
하윤은 제 일이 아니라는 듯 얄밉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씨, 뭐야? 차건우는?!!"
시은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 미친놈은 왜 이렇게 조용해? 그 새끼, 연락 없어?"
소유욕과 질투심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징글징글한 차건우 새끼가, 오늘따라 잠잠하다는 게 시은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쌍으로 같이 덜덜 떨며 불안해 해줘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텐데 말이다.
"건우 오늘, 로스쿨 모의재판 있었거든. 아마 장난 아니게 피곤해서 깽판 치는 거 포기하고 일찍 집에 가서 뻗어 잘걸?"
하윤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떠는 시은과 달리 다소 여유로웠다. 어쩌면, 이미 차건우라는 수컷의 패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꿰뚫고 있는 조련사만의 여유일지도 몰랐다. 19살에 차건우를 처음 만나, 2년 동안 그의 끈질긴 구애를 받고, 6년간 미친 듯이 몸과 마음을 섞은 차건우의 유일한 주인.
"근데 시은아...“
하윤이 차분하게 시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저 현민이 전화... 조금이라도 빨리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발작하듯 다시 불이 들어오는 시은의 핸드폰을 힐끗거리며, 하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 그 깐깐한 씹선비 백현민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절대 포기할 새끼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오늘, 소유욕으로 점철된 백현민이 침대 위에서 최시은을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흑... 하아, 무서워, 씨발... 너... 너 어디 내려줘?"
시은이, 마치 현민의 환영이라도 본 듯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쥐며 하윤을 바라보았다.
"건우 집."
"너 미쳤냐? 지금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
시은의 기함에 하윤은 그저 여유롭게 웃었다.
"냉장고도 채워놔야 하고 이것저것 확인하고 챙길 게 있어서 그래. 어차피 지금쯤 뻗어서 쿨쿨 자고 있을 걸?"
목적지가 서서히 가까워져 오자, 하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신의 소지품을 챙겼다.
"수고했어. 내일 보자. 몸조심하고. 아, 허리 조심. 큭."
차에서 사뿐히 내린 하윤이 시은을 향해 씨익- 비죽 웃어 보이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절친 하윤이 남기고 간 그 사악한 웃음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아는 시은은, 울상을 지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핸들을 고쳐잡고는 이내 오른쪽 발로 엑셀을 밟았다.
******************************************************************************
강남 한복판에 우뚝 솟은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차건우의 집.
익숙하게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건우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적막하고 서늘한 어둠만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코끝에 은은하게 스며드는 묵직한 우디 향과 짙은 머스크 향. 그녀의 기분을 야릿하게 만드는 자신의 남자, 차건우의 체취였다.
저 안쪽, 굳게 닫힌 건우의 침실 방문을 확인한 하윤은 까치발을 한 채 조심스레 부엌의 간접 조명을 켰다.
6년간의 장기 연애를 해 온 두 사람 사이에는 웬만한 신혼부부 뺨치는 바이브가 흘렀다.
주변에서는 피곤하게 굴지 말고 쿨하게 동거를 하라고들 난리였지만, 두 사람 모두는 각자의 은밀한 개인 공간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동거라는 카드를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특히나 하윤이에겐 자신만의 성역 -- 완벽한 에테르의 덕질 공간 -- 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부엌으로 향한 하윤은 익숙하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평소 즐겨 마시는 음료와 생수, 그리고 간단하게 챙겨 먹을 만한 단백질 셰이크나 샐러드 팩의 재고가 떨어지진 않았는지 살피며 꼼꼼하게 메모장에 기록했다. 차건우의 냉장고라는 공간은, 하윤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평생 텅텅 비어있을 삭막한 공간이었다.
거실 소파 위로 시선을 돌리니, 오늘 입었던 수트 재킷과 셔츠, 그리고 넥타이가 신경질적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옷을 던져둔 꼬라지를 보아하니 어지간히 피곤했거나, 아니면... 하루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아서 단단히 빡이 쳤거나. 뭐, 둘 중 하나겠지. 후자일 가능성이 꽤나 높았지만...
하윤은 작게 혀를 차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건우의 비싼 양복들을 주워들어, 거실 한쪽의 스타일러에 곱게 걸어 넣었다. 그리고 섬세하게 작동 버튼을 눌렀다.
최소한의 간접 조명만 켜둔 터라 시야가 꽤나 어두웠지만, 그래도 더 챙겨야 할 것은 없는지, 어질러진 곳은 없는지, 거실과 주방을 한 바퀴 쭈욱 둘러보았다.
내친김에 그 잘생긴 얼굴이나 한 번 보고 갈까 싶었지만, 그의 침실 방문을 열었다가는 귀신같이 냄새를 맡은 맹수가 깨어날까 봐 오늘은 이쯤에서 얌전히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칫하다간, 아까 대놓고 신나게 비웃었던 최시은의 꼴이 날지도 몰랐다.
아까 까페에서, 먹는 내내 건우 생각을 하게 했던 맛있고 달달한 디저트들을, 카페에서 나오기 전에 포장을 해 왔다. 그 디저트 상자를 아일랜드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하윤은,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건우의 집을 나섰다.
평소 같았으면 귀에 에어팟을 꽂고 에테르의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버스를 타고 귀가했겠지만 오늘따라 유독 피로감이 몰려와 과감하게 택시 앱을 켰다.
푹신한 택시의 뒷좌석에 몸을 기대며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야경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내일 출근하자마자 쳐내야 할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숨 막히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현생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나의 사랑스러운 오빠(?)들도 보고, 텅 빈 집에서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다 잠들었을 자신의 섹시한 연하 남친을 생각하니, 이건 뭐, 그저 완벽한 하루가 따로 없었다.
뒷좌석에 몸을 잔뜩 뉘인 하윤은 스르르 감기는 눈을 애써 뜨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45 위험한 만찬“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하윤이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를 찾자 스탭 중 한 명이 안쪽을 가리키며 위치를 안내해주었다.식당 밖의 창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식당 안쪽의 사각지대에, 테이블 여러 개를 붙이고 오목조목 앉아 있는 에테르의 멤버들이 보였다. 시은을 찾으니, 그녀는 테이블의 안쪽 구석에 짱 박혀 앉아 있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에 하윤과 시은의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였다.“누나, 이리로 와.”시은의 맞은편에 자리 하나를 비워두고 그 옆 자리에 앉아있던 채민이 손을 흔들었다.하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채민의 옆자리에 천천히 앉은 하윤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시은과 다시 한 번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에테르의 루미로서 덕질을 한 지 벌써 5년. 평생 쓸 운을 올해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일반 팬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빠순이로서, 행복에 겨워 뒤질 일들.근데... 묘하게 불편한 것은 왜 인지. 그저 그들의 음악이 취향에 맞았고 그 취향에 맞는 음악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인형 같은 이 예쁜 남동생들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친해져도 되는 건가... 싶은 묘한 불안감.“소문 들었지? 나 고기 엄청 잘 굽는 거?”시은의 옆에 앉은 태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의 테이블에 놓인 집게와 가위를 집어 들었다. 하윤과 시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태윤이, 잡고 있던 집게로 두툼한 고기를 집어 들어 불판 위에 올렸다. 불판이 과하게 달궈진 탓에 치지직- 소리가 크게 났다. 이내 약간의 열기와 함께 기름이 사방에 튀기 시작했다.“어, 기름 튄다.”커다란 불판 위에서 투두둑 튀어나오는 기름을 보며 채민이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 하윤의 앞으로 자신의 몸을 훅 기울였다. 혹여나 기름이 하윤을 향해 튈까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것이었다.“아... 안 그래도 돼.”채민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그리고 너무도 가깝게 다가온 탓에 하윤이
#44 위험한 만찬으로의 초대탈덕 전까지는 세상 밖으로 절대 꺼낼 수 없는 귀한 사진을 잔뜩 찍은 하윤과 시은은, 이제 귀가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윤은 체조경기장 근처의 호텔로, 시은은 현민의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빨리 보내.”“응. 에어드랍 켰어?”“응. 빠짐없이 다 보내. 싹 다 지워야 되니까.”현민의 집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시은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시은의 집착광공 남친, 백현민이 핸드폰 검사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에, 방금 찍은 모든 사진은 하윤에게 넘겨 놓기로 했다. 하윤이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클라우드에 모든 사진을 업로드 시키고, 나중에 시은의 클라우드로 넘겨주기만 하면 됐으니까.머리를 맞댄 상태로 각자의 핸드폰을 가까이 두고 현생의 남친들을 방어할 완전 범죄를 위해 작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훅 다가왔다.“누나.”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홱 들고 그림자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태윤이었다.“그...”태윤이 살짝 주변 눈치를 보며 그녀들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밥 먹고 가.”태윤의 말에 하윤과 시은의 눈이 동시에 번뜩 뜨였다. 조금만 더 떴다간 눈알이 빠질지도 몰랐다.“아니, 아니, 아니, 아니!”“아냐, 우리 지금 집에 갈 거야!”하윤과 시은은 다급하게 양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태윤의 입가에 피식- 기분 좋은 웃음이 터졌다.두 사람의 반응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조금 전에도, 지금도... 이 두 여자의 선을 넘지 않는 개념 장착이 괜히 뿌듯했다. 이런 여자들이 에테르의 팬이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기분 좋았다.“식당 하나 전체 예약했어. 거기 스탭들 밖에 없어서 괜찮아. 소속사 실장님한테도 말씀드려 놨고.”“아니야, 아니야. 우리 밥 안 먹어도 돼.”“그래. 우리 안 그래도 지금 막 집에 가려고 했어.”두 팬의 염려를 알고 있는
#43 백스테이지의 환희“와, 시야 대박!”에테르의 리더, 강태윤이 시은에게 선물로 준 ‘에테르 VIP 콘서트 티켓’의 좌석은 1층 8구역의 12열이었다. 실질 1열. 심지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콘서트를 즐길 수 있도록 연석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태윤의 배려에 두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다 못 해, 뜨거워졌다.체조경기장, KSPO DOME의 8구역은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무대 전체를 보기에 상당히 좋은 자리였다. 본 무대와는 꽤 거리가 있긴 하지만 멤버들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을 따라가기 좋고, 전광판까지 정면으로 잘 보이는 곳이었다. 심지어 바로 앞에 돌출 무대가 있어, 그 무대 앞에 에테르 멤버들이 온다면 플로어 좌석보다 훨씬 더 시야가 좋은 자리였다. 거기다 실질 1열의 좌석이니 멤버들의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최고의 자리.“저기... 시우 부모님.”“와, 진짜 어머니 너무 미인이시다.”“그치? 누나도 엄청 예쁘더라. 근데 오늘은 안 왔나 봐."덕질 5년 차의 짬바는 내 최애의 가족도 괜히 친근해지는 법."어? 저기 저 사람, 태윤이 여동생 아냐?”“어? 어디?"시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윤이 가리킨 곳에 태윤의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어어, 맞아. 존나 예쁘지?”“응. 진짜 연예인들은 가족들이 다 장난 없네.”“그러니까. 부럽게.”VIP 초대권의 또 다른 혜택. 멤버들의 가족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보통 콘서트의 두 번째 날인 토요일, 중콘에 가족들을 초대하는 경우가 많아 하윤과 시은이 앉아 있는 8구역에서 에테르 멤버들의 가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눈이 즐거워지는 순간들이었다.***"꺄아아아아악!!!"암전과 함께 심장을 강하게 울리는 음악의 비트 소리와 함께 VCR의 화면이 재생되었다.또 다시, 에테르 단독 콘서트 [Luminate]의 두 번째 날 공연이 시작되었다.“시우야~~~!”"강태윤!!!"콘서트가 진행될수록 콘서트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
#42 거짓말의 서막“내일 몇 시에 마치는데?”바쁘게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하윤을 보며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은 건우가 툭- 물었다. 순간, 하윤의 손짓이 멈칫했다. 가만... 막콘이 몇 시에 끝나더라?막콘의 경우에는 앵콜에서 앵앵콜, 앵앵앵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좀 더 넉넉하게 알리바이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 어느때보다 하윤의 머리가 빠르게 팽팽- 돌아갔다.“음... 8시... 쯤?”“하, 더럽게 늦네. 데리러 가?”“아냐... 후배가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어.”응, 시은이가 태워 주기로 했어.“어디로 가는데?”아차차!이건 생각을 못 했는데...“어... 그... 우리 회사... 연수원 있잖아.”“아~ 용인에 있는 거?”“아, 응!”다행이었다.아주 스무스하게 잘 넘어갔다.“그럼, 집까지 1시간 정도 걸리겠네? 우리 집으로 바로 올 거지?”“음... 피곤할 것 같은데? 다음 날 출근도 해야 하고...”하윤은 건우의 눈치를 슬쩍 보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첫콘 때 구매한 콘서트 MD 굿즈는 시은이에게 다 맡겨 놓고 온 상태였다. 마지막 날에는 그 모든 것들을 바리바리 안고 귀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오피스텔로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했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할테고 말이다.“내일은 꼭 껴안고 자야지. 아이씨, 연수 개새끼. 월요일에 학교 가서 그 새끼 보이기만 해봐라. 확 대가리 날려 버릴 거야, 씨발.”하윤의 말은 들을 생각조차 없는 차건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그였지만, 두 사람의 2,500일인 일요일, 그녀와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차건우의 역린을 살살 건들고 있었다.빠...빨리 가야할 것 같다.“바빠도 중간 중간 연락 자주 해.”“응."시우의 우치와와 네임보드, 스케치북, 또 다른 루미들에게 나눔할 커스텀 미니 굿즈들을 잔뜩 넣은 작은 캐리어를 손에 끌고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혹시나 건우
#41 사랑의 깊이하윤은 건우의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사실, 앵콜곡까지 맛있게 말아줄 에테르의 마지막 모습까지 끝까지 보고 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에테르 멤버들이 콘서트장의 1층과 2층 사이의 통로에서 토롯코를 타고 등장하기 직전 빠르게 짐을 꾸려 콘서트 장을 빠져나왔다. 콘서트가 진행된 지 약 3분의 2 지점이 지난 상태였다. 아쉬움이 가득 남아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결국 그녀는 이성을 부여잡았다.“포장 주문했는데요.”건우의 집 근처의 건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덮밥 집에 들려, 미리 앱으로 주문한 포장 주문 음식을 받았다. 어쩌면 피곤함에 쩔어 저녁도 굶고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난 6월과 8월의 시험 마지막 날에도 그랬으니까.기왕이면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콘서트를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왔음에도 벌써 시간은 오후 10시를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띠띠띠띠띠띠띡- 띠리리-건우 집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건우가 깨어 있었다면 하윤이 문 따는 소리에 벌써 중문 앞까지 달려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침묵과 함께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어두움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거실에는 그가 아무렇게나 옷을 던져 놓은 흔적과 탄산수 한 병을 따서 반쯤 마시다만 흔적이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네.”하윤은 그의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내 정리를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옷들은 바르게 펴 스타일러에 넣어 기계를 작동 시켰고, 반쯤 남은 탄산수는 싱크대에 버리고 병은 재활용 통에 넣었다.굳게 닫힌 그의 마스터 룸을 힐끔 보고는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들어가 보지 않기로 했다. 만약, 건우가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않는다면 게스트 룸에 가서 잠을 자면 될 것이고, 건우의 그 잘난 얼굴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몸은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윤은 빠르게 욕실
#40 에테르 단독 콘서트 [ Luminate ]“콘서트 퇴근 길도 못 보고 간다고?”채아의 눈이 커졌다.에테르가 데뷔한 이래로 다섯 번째 단독 콘서트였다. 그때마다, 콘서트 기간 3일 내내, 공연을 마치고 퇴근하는 에테르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은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덕질의 룰이었다.이미 채아를 제외한 직장인 셋은, 반차를 내고 에테르의 단독 콘서트 [Luminate]가 열리는 [ KSPO DOME ]에 일찍 도착했다. 줄을 서서 콘서트 MD 제품을 구매하고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은 후, 진작에 공원 입구 쪽의 할리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콘서트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응. 마치자마자 바로 튀어가야 돼.”하윤이 아쉬워하는 채아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한 듯, 예쁜 미소를 흘렸다.가끔, 이 언니들은 참 이상했다. 에테르의 덕질에 정말 진심인 것 같으면서도 가끔 현생의 일로 에테르의 우선 순위를 바꿔버리는 기행을 하곤 했다. 빠순이질에 진심인 이들에게 현생의 일 따위는 감히 에테르보다 앞설 수 없는데 말이다.“시은아, 너는 애들이랑 같이 보고 와.”하윤은 시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오늘, 하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오늘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차건우의 10월 ‘변시 모고’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쯤에는 그가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의 콘서트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주말 콘서트보다 늦게 시작하는 이유로 밤 10시가 넘어야 끝날 판이었다.더군다나 토, 일 이틀 간 선행 연구팀의 연수가 있다고 알고 있는 건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도 억지로 삼키며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하윤이 보여준 중콘 티켓 취소 내역을 보며, 콘서트 3일 중 하루라도 재밌게 보고 오라며 저 답지 않게, 에테르의 첫콘을 쿨하게 보내준 그였다.그러니... 이하윤의 마음이 편할 턱이 있겠냐고.“나, 중간에 나가야 될 수도 있어.”하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